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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98화 (98/818)

제98화. 진입

용병을 따라 북쪽으로 몇 분 정도를 뛰어가니 용병들이 안으로 약간 들어간 듯한 모래 바닥 주위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비켜, 비켜!”

길을 안내하던 용병이 소리를 지르자 이내 용병들이 양 옆으로 갈라졌다.

이준이 그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보니 용병들이 이미 반 미터 정도나 입구를 파 놓은 상태였는데, 그 속은 칠흑같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에서는 은은한 열기가 전해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요?”

이준이 입구를 가리킨 채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하하, 네. 원래 모래로 막혀져 있었는데…예린이 여기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면 우리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 용병이 대답했다.

말을 들은 이준이 맞은 편을 바라보자 예린이 온 몸에 모래를 묻힌 채 환히 웃고 있었다.

“하하, 녀석. 잘했어!”

준이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자, 예린은 수줍게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천천히 어두운 입구 앞으로 걸어가며 그가 손바닥을 뒤집자 월광석 한 개가 손 안에 나타났다. 준은 그 월광석을 동굴 안으로 던졌다.

휘릭!

월광석이 은은한 빛을 내며 어두운 동굴에서 몇 번 정도를 구르다가 차츰 어두워 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월광석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보아 하니 통로가 직선은 아닌 것 같네……”

“네. 저희도 방금 탐색을 해 봤는데 이 아래에 통로가 적어도 열 몇 개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두 구불구불한 것이 마치 커다란 뱀이 지나간 느낌이에요.”

“그렇군……”

통로를 잠시 바라보던 이준이 뒤로 돌더니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 통로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아래에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저 혼자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준의 말을 듣자마자 큰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실력이 괜찮은 단원들 열 몇 명을 데리고 너와 같이 내려갈게. 너 혼자 내려가는 건 우리가 걱정이 돼서 안 돼.”

이찬 역시 큰 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형 말이 맞아, 진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은빛성에서 달려와서 우리를 반쯤 죽여 놓으실걸?”

준은 잠시 망설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돌발 상황이 생기면 큰 형이 모두 데리고 철수하세요. 제 안전문제는 걱정하지 마시고…”

이정과 이찬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빛을 주고 받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어젯 밤 그만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사라가 입도 뻥끗하지 못한다는 것은, 적어도 준이 자신들 둘을 합친 것 보다도 월등히 나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도련님, 아래 통로 에는 분명 반년 전, 그 사람이 남긴 기운이 있을 거에요. 아마 제가 정확한 통로를 찾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때, 예린이 우물쭈물 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진짜?”

“네.”

예린은 준이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표정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하하! 고마워 예린아!”

준은 예린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은 뒤 다시 자신의 두 형제를 바라봤다.

“먼저 내려갈게.”

“하하, 좋아.”

이정은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인 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용병단 내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몇을 추려냈다.

“우리가 안에 들어간 후 나머지 사람들은 주위의 방어에 더욱 신경을 쓰고, 절대 다른 사람이 침입하게 못하게 해주게. 이 통로를 이루고 있는 모래는 견고하지 않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생매장될 수 있어.”

“단장님, 걱정 마십시오. 이 구역에 침입하면 그게 누구든 절대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찬아. 너는 우리가 내려간 후 위에서 전체 지휘를 맡아줘. 만약에 위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가 있어줘야 해.”

정의 말에 함께 내려갈 준비를 하던 찬이 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이정은 긴 밧줄 하나를 꺼내 나무 말뚝을 박은 뒤 그곳에 밧줄의 한쪽 끝을 단단히 고정하고 다시 나머지 반대편을 동굴 안으로 집어던졌다.

“다행히 통로가 가파른 편은 아니야. 이 밧줄은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내려 놓는거니까, 혹시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치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밧줄을 빠르게 당겨서 밑에 있는 사람을 끌어올려.”

준은 자기도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편이라고 했지만, 형의 일처리를 눈앞에서 보자 자신은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준이 손을 흔들자 예린이 황급히 그에게 다가와 비취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준을 올려다보았다. 준은 아기처럼 가녀린 예린의 허리를 꼭 끌어 안은 뒤 그녀를 안심시켰다.

“좀 있다가 길을 안내 해 줘.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지켜줄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지마. 알았지?”

준의 다정한 태도에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말 없이 얌전히 머리를 끄덕였다.

“여러분, 갑시다!”

그 말을 끝으로 드디어 준의 모습이 검은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 * *

준은 예린을 꼭 끌어 안은채 빠르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예린의 손에는 작은 월광석 하나가 들려있었는데, 준은 그 빛에 의지해 장애물을 확인하며 신속하게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뒤로는 십 여개의 은은한 빛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준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동굴 양 옆을 훑어 보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이 통로의 벽은 무척이나 반들반들해서 돌멩이 하나도 삐쭉 튀어 나온 것이 없었던 것 이다.

‘미끄럼틀 수준인데…?’

아래로 2-3 분 정도 미끄러져 내려가니 드디어 통로의 밑바닥이 보였고, 다리를 안으로 오므리자 잠시 후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발이 땅에 닿았다.

땅을 밟은 이준은 예린의 손을 잡고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월광석으로 앞을 비추자 아니나 다를까 십 여개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흠…예린아, 혹시 그 사람의 기운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있겠어? 이 열 몇 개의 통로를 하나하나 들어가 보려면 며칠은 걸릴거야. 네 도움이 꼭 필요해.”

“네.”

예린은 이준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깜박였다. 그녀의 옥빛 눈동자 주위에 진한 점 세 개가 다시 나타나고 있었지만, 어두운 통로 안이었기에 준은 그것을 보지 못 했다.

……

잠시 후, 이정을 비롯한 용병단원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준은 머리를 돌려 그들을 향해 소리를 내지 말라고 입에 손을 갖다 댄 후 다시 손으로 예린을 가리켰다.

이준의 동작에 이정이 머리를 끄덕이며 손을 들자 뒤따라 내려오던 사람들도 이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움직였다.

정과 용병들은 손에 든 밧줄을 놓고 천천히 무기를 꺼내든 후 준과 예린을 둘러싼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정적이 이어지고, 예린이 왼쪽에 있는 통로 하나를 가리켰다.

“도련님, 다른 통로에도 기운이 조금씩 남아있긴 한데 이 통로에 기운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요! 반 년 전에 그 사람이 여기에 머문 시간이 가장 길었던게 분명해요!”

준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 어두운 통로를 바라보더니 자신의 형과 눈빛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준이 막 발을 옮기려는 순간, 이정이 급히 그를 막아섰다.

“잠시만…”

이정은 이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젓더니 머리를 돌려 몸집이 거대한 사내 하나를 불러냈다.

“한모, 네가 가서 이 통로에 특이한 점이 있는지 한 번 탐색해 봐.”

“예.”

한모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더니 어두운 통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땅에 엎드려 얼굴을 바닥에 붙인 채 모래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이건……?”

한모의 이상한 동작에 이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한모의 속성은 흙속성에서 특이하게 변이한 모래 속성이야. 그는 사막에서 모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는 숨은 기운을 감지할 수 있어. 누구도 와 보지 못한 곳이니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아. 실력이 있더라도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건 단순한 경솔함과 오만에 지나지 않아.”

준은 형의 충고를 새겨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는 신기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네요. 이런 단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정말 다행이에요. 혼자였다면 절대로 못 찾았을 거에요.”

바로 그 때, 한모라는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어때?”

“뭔가 이상하군요. 500미터 정도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앞으로는 흙속성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습니다. 타르 사막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정말로 흙속성의 기운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흙속성 기운이 사라졌다고?”

말을 들은 이준과 이정은 모두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이 사막 깊은 곳에는 흙속성 기운이 가장 짙어야 하는데…혹시…’

동생이 무언가를 느낀 듯 눈을 반짝이자 이정은 조용히 준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좋아.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절대 서두르지마. 뭔가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즉시 철수하고 다시 오는걸로 하자고. 방해할 사람도 없고, 위치도 확인했으니 괜히 서두르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알겠지?”

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예린을 자신의 등 뒤에 세우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두운 통로 안에 들어서자마자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50미터마다 월광석을 하나씩 박으면서 따라와.”

이정은 동생의 뒤를 따라오면서 용병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열 몇 사람의 그림자가 월광석의 도움으로 천천히 어둠을 지나고 있었지만, 통로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위험이 있을 지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컴컴한 통로 안에서 한참을 이동하자 따스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이한 온기를 느낀 이준은 발걸음을 천천히 멈추고 머리를 돌려 이정 등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흙속성 기운이 사라진 게 아니라…이 곳 전체에서 너무 강한 불속성의 에너지가 뿜어져서 다른 기운을 모두 눌러버린 거였어.”

준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이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해…숨이 막힐 정도의 짙은 불속성 에너지야.”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가야 해요. 여러분, 가다가 주위의 불속성 기운을 감당할 수 없으면 바로 멈추세요. 그대로 계속 앞으로 가다가는 몸이 타 버릴 수도 있어요.”

이준이 머리를 돌려 진지하게 말하자, 모든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린아, 너도 버티기 어려우면 나한테 말해. 알겠지?”

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예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도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깊은 통로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주위의 불속성도 점점 짙어져 실력이 낮은 사람 순으로 하나 둘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결국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자 이준과 이정, 그리고 예린만이 남고 나머지 용병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준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자신의 염력이 미칠 듯이 요동을 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염력의 결정체인 염력 회오리뿐이 아니었다. 그의 온몸에 퍼져있는 혈관이, 세포 하나하나가 며칠을 굶은 늑대처럼 탐욕스럽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거의 다 도착했어……”

다시 골목에 접어들자 멀지 않은 통로 끝에서 붉은색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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