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간단한 해결책
두 형은 준의 실력이 사라만 못하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동생에게 무언가 수가 있다는 것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들의 동생은 절대로 허풍을 떠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준이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더라도 준이 장담을 할 때는 무언가 확실한 수단이 있을 때 뿐 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설란이가 지금 당장 본부로 돌아가서 지형 탐색에 능숙한 단원들을 데리고 오도록 해. 하루 안에 통로를 찾도록 해보자고!”
준의 확신에 찬 태도를 본 이정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을 추진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설란이 몸을 돌려 휘파람을 불자 말 한 마리가 발 아래 먼지를 날리며 달려왔다. 날렵하게 말 위에 뛰어 오른 설란은 모래를 날리며 성으로 달려갔다.
이준은 천천히 몸을 굽히고 앉아 손을 뜨거운 모래 사이에 쑥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곳에 그 물건이 있는걸까?”
……
30분 후.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서 지형 탐색에 일가견이 있다는 단원들이 모두 모여들었고, 총 40여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이정의 명령 아래 임무를 나누어 빠르게 탐색을 시작했다.
모래바람성의 큰 세력인 그들의 이동은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정이 천지의 불꽃이 숨겨져 있을 법한 구역을 전부 통제하였기 때문에 구경 온 용병과 나머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구역 밖에서 머리만 기웃거릴 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이정은 구경꾼들에게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서 3급 마수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구경꾼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가는30분도 안 되서 사막 용병단에서 사람을 보낼 것 같은데…”
이찬이 자신의 창을 힘껏 모래에 꽂으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를 건드리면 사막 용병단이라 해도 무사히 끝나지는 않을거야. 사라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 하니까.”
……
뜨겁게 타오르는 사막의 열기가 조금씩 누그러들 무렵,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막용병단 사람들이야.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겠어”
“하하, 사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 모양이야.”
걸어오는 용병들을 보며 주위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사막의 칼날 용병단을 향해 걸어오는 용병들은 그 수가 사 십은 족히 되어보였다.
“내가 그 자식의 인내심을 과대 평가했군……”
걸어오는 용병 분대를 보는 이정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아직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이니 사라 그 자식이 직접 나타나지는 않을 거야. 지금 분대를 거느린 녀석은 사막용병단의 2인자인 마성이군. 쓸모없는 자식.”
이찬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창을 움켜잡자, 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20여명의 단원들이 무기를 쥐고 이찬을 따라나섰다.
두 무리가 대면하는 순간, 분위기가 빠르게 고조되었다. 두 용병단의 충돌은 이미 모래바람성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이벤트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멈추시오!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니까.”
“어? 이정 단장님. 용병 공회에서 이런 임무를 내렸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요? 그리고 여기 모래바람성 근처 지역은 모두 공공 구역인데 제가 못 들어갈 이유가 있나요?”
음흉한 인상의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서자, 이찬이 코웃음을 쳤다.
“마성, 지난 번 사라가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폐인이 됐을 텐데 말이야. 왜? 아닐 것 같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증명해줄까?”
이찬이 수중의 장창을 빙글 빙글 돌리며 앞으로 나오자 마성이라는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이찬과 눈이 마주치자 은근히 시선을 피하며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나도 돌려 말하기는 싫으니까…우리 단장님도 이 곳에 아주 관심이 많아. 그러니까…”
“그러니까는 무슨… 꺼져.”
마성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소년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넌 뭐야? 쪼끄만게 어디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드나?”
마성이 이준을 향해 훈계를 하자, 이찬의 얼굴 색이 차갑게 변하며 갑자기 마성의 코끝까지 창날이 날아들었다.
슉!
“뭐, 뭐야…말로, 하자고……”
마성은 갑자기 날아든 창에 그 자리에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찬!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우리 단장님이 절대 당신들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마성은 점점 가까워지는 은색 창을 보자 독사 앞에 선 쥐새끼마냥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찬의 은색 창은 막힘 없이 마성에게 다가와 멈춰섰고, 창에 담긴 예리한 기운이 그의 목을 긁자 마성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네 까짓 게 감히 내 동생한테 무례하게 굴어?”
침을 꿀꺽 삼킨 마성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모랫바닥을 헤집으며 뒷걸음질 치더니 무리 속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당장 돌아가서 단장님한테 보고할 거야! 단장님이 나타나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나보자고!”
말을 마친 마성은 급히 사람들을 거느리고 도망을 쳤다.
“멍청한 녀석들……”
“이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쫓아냈으니 아마 내일이면 사막 용병단에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 땅을 빼앗으러 올 거야.”
이찬이 조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준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큰 형, 작은 형. 정말로 괜찮다니까.”
“너…할 수 있겠어? 만약 힘들 것 같으면……”
이정 역시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하하, 고작 무투사 한 명이잖아!”
이준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옆에 선 말의 등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어휴, 의심 많기는. 그럼 형들이 이 땅을 조사하는 동안 그 사막용병단 놈들이 성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야겠어.”
말을 마친 이준은 말 등에 올라타 모래 바람을 날리며 성으로 달려갔다.
점점 멀어지는 이준을 보며 이정과 이찬은 서로 눈길을 주고 받더니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녀석한테 우리가 모르는 방법이 있겠지. 사라도 너무 날뛰지는 못할 거야. 목숨 걸고 싸우게 되면 그들 사막용병단도 손실이 작지 않을 테니…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정도 손해를 감수할만한 인간은 아니야.”
“준이가 진짜 사라 그 자식을 얌전히 모래바람성에 남아있게 할 수 있을 지 궁금한데?”
“기대해보자. 난 믿어.”
“허 참, 형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준이를 안 믿는 것 같잖아.”
둘은 불안해하면서도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막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 *
모래바람성 서쪽의 커다란 마당.
마당에서는 환한 불빛이 퍼져 나오고 있고, 그 위에는 나무로 만든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깃발에는 ‘사막 용병단’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 구석의 한 방 안에서 커다란 나무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한 무리의 사내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장님, 사막의 칼날 용병단이 점점 더 날뛰고 있습니다. 우리 사막용병단이야 말로 모래바람성의 가장 오래 된 세력인데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두 녀석이 여기 온 지 고작 몇 년 됐다고 감히 우리를 무시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게 뻔합니다.”
입을 뗀 것은 마성이었다.
마성의 말을 듣고 있던 중년의 사내는 팔짱을 낀 채 그 이야기를 듣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이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봤느냐?”
“그건 아직…가까이 가기도 전에 이찬에게 제지 당했습니다."
“뭐라고? 감히……”
“단장님, 그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놈들의 태도로 보아 매우 귀중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마성이 보고를 마치자, 사라는 잠시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물론 사라가 모래바람성 용병들 중 최강자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막의 칼날 용병단에는 이정과 이찬을 비롯해 두 명의 2성 무투사가 더 있었고, 그 아래로도 뛰어난 용병들이 많아 전반적인 실력에서는 사막 용병단을 웃돌고 있었다.
“단장님,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높은 레벨의 수련법이나 무투기 같은 것을 파내기라도 하면 정말로 이 성의 패권은 그들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마성이 심각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자, 결국 사라는 마음을 굳혔다.
“좋아. 내일 단원들을 불러 사막의 칼날 용병단이 뭘 하는지 확인해보지.”
“하, 사라 단장님. 단장님의 결정이 참으로 실망스럽네요.”
바로 그 때, 방 안에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방 안 구석의 의자 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도포를 입은 소년 하나가 앉아 있었다.
“당신 누구야!”
“단장님, 저 놈이 이정과 이찬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이준의 모습을 본 마성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이런 야심한 밤에 우리 사막용병단에는 무슨 용건이 있어서 왔는가?”
“하하, 별 일 아닙니다…사라 단장님께서 앞으로 며칠 동안 사막용병단 단원들을 잘 단속하여 우리 형님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리러 온 것 뿐입니다.”
이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사라를 올려다 봤다.
“건방진…! 네 까짓 게 뭐라고 감히 그런 요구를 해!”
이준의 말에 마성이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은 바람처럼 방안의 장애물들을 가로질러 마성의 뒤를 잡았다.
“이런 쓸모 없는 부하가 있으니까 그딴 작전이나 꾸미지……”
곧이어 차가운 말과 함께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하얀색 불길이 나타나 마성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백색 화염이 치솟으며 사막 용병단의 2인자가 재로 돌아갔다.
사라가 이 놀라운 광경에 넋을 잃고 있는 사이,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여유롭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소년의 웃는 모습을 보며 사라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소년의 실력은 명백하게 투왕급 이상인 것이 틀림없었다.
“투왕…”
사라는 눈앞의 어린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이준은 손 바닥의 하얀색 불을 흔들어대며 사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결국 사막 용병단의 대장은 식은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사막용병단은 절대 그 지역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겠습니다!”
* * *
타르사막 동쪽 지역.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불태울 듯 내리쬐는 오후, 사막의 칼날 용병단은 쉬지 않고 탐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큰 형, 뭔가 이상하지 않아? 사막 용병단 놈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는걸?”
“하하, 내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어제 저녁에 마성 그 녀석이 황천길로 갔다는군. 그런데 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만히 있으니, 그게 신기할 따름이지.”
“우리 동생이지만 참 모를 놈이야…사막 용병단의 2인자가 죽었는데 이렇게 아무 문제가 없다니…”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용병단원 하나가 팔을 흔들며 황급히 그들에게 달려왔다.
“단장님! 3분대에서 통로의 흔적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발견했어?”
이정과 이찬은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돌려 모래 언덕 위에 서있는 이준을 바라보았다.
“통로를 발견했어요?”
“네.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지하로 통하는 통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뛰어온 용병이 흥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준은 손뼉을 치며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요! 빨리 그곳으로 가보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