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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96화 (96/818)

제96화. 뜻밖의 조력자

“쯧쯧…… 둘째가 급하긴 급했나 보군. 우레 방패까지 사용하다니……”

이찬의 가슴에 펼쳐진 은색 방어막을 보며 이정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줄 알았어. 준이는 늘 비장의 수를 감춰두는 아이였으니까. 내 동생이지만 참 영악한 놈이란 말이야.”

쿵-!

묵직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멀리 튕겨져 나가자, 이찬은 놀랍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녀석, 근접전에 이렇게 능할 줄은 몰랐구나. 하하. 하지만 내 우레 방패를 뚫기에는 아직……”

“하하…형, 그건 아직 몰라. 하압!”

그리고 준의 목구멍에서 힘찬 기합 소리가 터져나오는 순간, 이찬은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이찬의 몸이 세차게 떨렸고, 그는 무려 스무걸음 가까이 뒷걸음을 치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반짝하더니 뾰족한 창 끝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작은 형, 항복 이지요?”

가슴에 닿은 창 끝을 보며 이찬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준의 놀라운 실력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조차 지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찬은 용병들로 득실거리는 모래바람성에서도 손에 꼽는 강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녀석, 이렇게 실력이 늘었을 줄은 몰랐구나. 아무리 봐도 1성 일반 무투사 수준이 아닌데?”

“하하, 운이 좋았을 뿐이야.”

동생이 해맑게 웃으며 창을 땅에 꽂고 검은 송곳을 향해 걸어가자 이찬이 따라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커먼 쇳덩이를 가리켰다.

“내가 한 번 해보자. 이 검…좀 이상해.”

찬은 땅에 꽂힌 시커먼 검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했다.

‘뭐, 뭐지…’

그는 준의 검을 붙잡자마자 자신 몸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번개 속성 투기가 갑자기 느려지는 것을 느끼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뭐야…엄청 신기한 칼이군.’

이찬이 팔에 힘을 불끈 주자 팔뚝에 핏줄이 솟았다. 그는 검은 송곳을 좌우로 휘두르는 자신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너…방금 이것을 메고 나와 싸운 거야?”

이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검은 송곳을 가볍게 넘겨받았다.

“푸하하!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대단해. 나설아라는 애는 정신이 나갔나보구나. 밖으로 나와서 나름대로 재능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네 발끝에라도 미치는 아이를 찾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형의 칭찬에 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은이도 나보다 약하지 않을 걸?”

“은이? 이은? 하하, 그래, 그 꼬마 아가씨도 대단했지. 벌써 못 본지 몇 년은 됐구나.”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은이랑 함께 형들을 만나러 올게. 그리고…나, 형들에게 부탁이 좀 있는데…”

“무슨 부탁? 뭐든지 말해. 몇 년만에 만난 동생 부탁인데, 뭐든지 들어줘야지.”

* * *

준과 두 형은 넓은 방으로 이동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예린은 늘 그렇듯이 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와 조용히 찻잔에 차를 따르고 얌전히 준의 뒤에 서있었다.

“하하, 무슨 일이야? 얼른 말해 봐. 우리 대단한 동생이 무슨 부탁이 있나 벌써부터 궁금한걸?”

이정이 싱긋 웃으며 질문을 던지자,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형. 사실 이번에 타르사막에 온 것은 어떤 물건을 찾기 위해서야.”

“무슨 물건?”

“천지의 불꽃.”

준이 누군가 들을까 신경이라도 쓰는 듯 낮은 소리로 운을 떼자, 이정과 이찬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지의 불꽃? 그 물건은 연금술사들이나 필요한…”

정은 자신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는지 순간 하던 말을 삼키고 흥분한 눈빛으로 준을 바라봤다.

“네가 연금술사라고?”

“하하, 응. 어쩌다보니 은빛성에 있을 때 훌륭한 스승님을 만났거든. 나도 내가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을지 몰랐어.”

준의 입에서 확답이 나오자 이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우리 준이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우리 이씨 가문에서 연금술사가 나올 줄이야. 하하!”

둘째가 신이 나서 흥분해 있는 사이, 이정이 차분한 목소리로 준의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타르 사막에서 천지의 불꽃의 소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정의 말을 듣고 있던 이준이 손가락으로 저장반지를 살짝 튕기자, 그 속에서 낡은 양 가죽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이준은 그것을 테이블에 펴고 손가락으로 그 위의 불 표시를 가리키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내가 얻은 지도야. 이 불꽃 표시가 있는 곳에 천지의 불꽃이 있을수도 있어. 근데 나는 이 주위의 지형을 모르잖아…이 지점이 어디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어…형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있었으니까, 혹시 뭔가 짐작가는게 있으면 알려줘. 이 주위에 지형이 좀 특이한 곳이라던가…”

이정은 그 지도를 대충 훑어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지막이 감탄했다.

“이렇게 자세한 지도는 처음 보는 구나.”

“음, 정말로 놀랍도록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이찬 역시 지도를 자세히 관찰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불 표시가 있는 곳은…모래바람성 동쪽?”

“음. 정확히 말하면 동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향한 곳인 것 같아.”

“그런데 성 동쪽에 특이한 곳이 있던가?”

“없어. 부하들과 일 때문에 자세히 수색해 본 적이 있는 곳이야. 하지만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이준의 얼굴 위로 실망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몇 년이나 이곳에서 살았던 형들이 그렇다면 정말로 동쪽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때…예린이 예의 그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도련님, 모래바람성 동쪽에…뭔가 특이한 물건이 있는 것 같아요.”

예린의 말에 준은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

“예린아, 혹시 뭔가 아는게 있는거야?”

이정과 이찬도 놀란 듯한 눈빛으로 예린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전혀 모르는 사실을 예린이 안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예린은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겁을 집어먹은 듯 계속 손 끝을 만지작거리며 땅바닥을 바라봤다.

“그게…저도 제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하지만 반 년 전에…성 동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지역에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너는 어떻게 그걸 알았어?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안 된 것 같은데?”

이정이 찻잔을 만지며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반 년 전에 아주 강한 기운이 모래바람성 밖에 나타났었고…그…그 기운은…제 피에 흐르는 기운이랑 비슷했어요…그래서 느낀 것 같아요…그리고…그 기운은 사막 용병단의 단장보다도 훨씬 강했어요…”

예린은 혼이 날까봐 겁을 먹은 아이처럼 더듬더듬 말을 꺼낸 뒤 불안한 듯 준의 뒤로 바짝 붙었다.

“뭐?”

예린의 말에 이정과 이찬은 모두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사막 용병단의 강자는 모래바람성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자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는…그 기운이 적어도 투왕 레벨 이상의 강자라는 말 이었다.

“너와 혈통이 비슷하다면…메두사?”

생각에 잠겨있던 이찬이 갑자기 놀란 듯 소리 쳤다.

메두사의 실력이라면 하룻밤 새에 모래바람성을 쓸어버리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 이었다. 그런 강자가 왜 인류의 눈을 피해 모래바람성 주위를 몰래 돌아다닌단 말인가.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예린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도 단지 흐릿하게 느낄 수 있었는걸요…반 년 전에 갑자기 모래바람성 동쪽에 와서 하룻밤을 머물렀어요. 그리고 제가 느끼기로는…그 사람이 그 곳을 떠날 때 부상을 당한 것 같았어요.”

예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준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너, 그 사람이 머물렀던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찾을 수 있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반 년이 지나긴 했지만 그 사람이 남긴 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녀는 잠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가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었다.

“도련님이 가고 싶다면 예린이가 길을 안내해 드릴게요!”

“하하, 그럼 미리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구나.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하도록 하자.”

준은 뜻 밖의 곳에서 얻은 단서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예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예린아, 여기가 확실해?”

이준이 실망한듯한 표정으로 사막을 둘러보며 말했다. 준의 등 뒤에는 두 형과 사막의 칼날 용병단의 정예 수 십명이 서있었다. 그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길을 안내하는 예린을 바라보았다.

모래바람성에서 몇 년 혹은 십 여 년을 살아 온 그들의 눈에 이 곳은 흔하디 흔한 사막의 모래언덕 중 하나였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 곳을 수 십 번도 넘게 이곳을 지났지만, 여기에 이상한 물건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네…정말로 여기가 확실해요…”

준은 가만히 예린의 비취색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줌의 의혹조차 없이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에 뭔가 있기는 있겠구나. 네가 그렇다니까…하지만 특이한 지형도 없고…”

바로 그 때, 이정이 무언가 짚히는 바가 있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와 무릎을 바닥에 대더니 모래를 움켜잡았다.

“지하?”

형의 행동을 바라보던 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부 강자들은 사막의 공기를 이용해서 건물이나 시장 같은 헛것이 보이게 만들기도 해. 하지만 모래바람성 주변의 공기는 아직 그런 착각이 생길 정도로 오염되지 않았으니…그럴 가능성은 없을거야. 그러니 지하밖에 더 있겠어?”

이준이 머리를 끄덕이며 발로 몇 번 땅을 밟아 보더니 말했다.

“정말로 그 물건이 지하에 있다고 해도 무작정 땅을 팔 수는 없겠지?”

“하하, 당연히 안 되지. 사막에서 함부로 땅을 파다가는 그곳이 자기 무덤이 되는 수가 있으니까…하지만 그 메두사 여왕이 이곳에서 꽤 오래 서성였다고 하니까…어딘가에 통로가 있지 않을까? 우리 용병단에 지형 탐색에 능숙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보자.”

큰 형의 말에 이준이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그 분들한테 부탁을 해야겠네…”

“통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여기가 모래바람성에서 가깝다 보니 우리쪽 사람들이 이 주위를 뒤지면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게다가 타르 사막의 밤은 짧으니까…밤에만 작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게다가 어두워서 탐색도 어렵고. 횃불을 들면 너무 눈에 띄니까…물론 다른 용병단이야 우리를 어찌하지 못 하겠지만, 사막 용병단은 사정이 다르니까.

“사막용병단?”

“사막용병단은 모래바람성의 성주 다음으로 가장 강한 세력이야. 우리 사막의 칼날 용병단도 뒤지지는 않지만 사막용병단의 단장 사라라는 사람이…이 성의 최강자거든.”

이찬이 답답한 듯 말했다.

“괜찮아. 큰 형과 작은 형은 여기 탐색만 맡아줘. 그리고…절대로 천지의 불꽃에 대한 이야기가 새나가지 않게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아. 그 사막용병단과의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볼게.”

“하하, 여기 사람들은 모두 사막의 칼날 용병단의 주요 단원들이야. 처음부터 우리 용병단에서 몇 번이나 생사의 위기를 함께 한 사람들이니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어. 절대로 비밀이 새어나갈리는 없을거야. 걱정하지마.”

그러나 이찬이 걱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했다.

“그런데…사막용병단 문제는 네가 손을 쓸 수 있다고?”

“작은 형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어. 형은 통로만 찾아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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