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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91화 (91/818)

제91화. 10대 강자

“너 이 녀석, 이건 무슨 비법이냐?”

노인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염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방안에 가득 퍼져있던 백색의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유리처럼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얼음 갑옷이 되어 노인의 몸을 감싸고, 눈처럼 새하얀 백색 창 한 자루가 허공에 나타났다.

“얼음 정령의 갑옷!”

노인의 고함 소리와 함께 묵직한 염력이 허공을 가로지르자, 방안에 가득 차있던 안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보랏빛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있던 소년이 힘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자 그의 몸이 사냥감을 발견한 독수리마냥 수직으로 급강하했고, 그를 향해 날아들던 수백 개의 얼음 가시가 순식간에 증발해 안개로 돌아갔다.

“이것은…영혼의 힘?”

자신의 머리 위로 시커먼 송곳이 날아드는 순간, 노인은 온 힘을 다해 얼음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우우웅-!

시커먼 송곳과 눈처럼 새하얀 얼음창이 부딪히자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퍼져나가며 방안의 땅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쾅!

그리고 흑백의 두 병기가 맞붙는 순간, 검은 송곳에서 한줄이 염력이 흘러나와 얼음 창안으로 흡수되고, 그 힘이 폭발하면서 얼음창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음?’

노인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에 깜짝 놀라 잽싸게 땅을 박차고 뒤로 몸을 날리면서 동시에 두 손을 바삐 움직여 빛나는 일곱 개의 얼음 거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노인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 송곳을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소년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건방진…! 얼음 칼날의 군무!”

노인은 자신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날아오는 소년을 바라보자 울컥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가 손을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초승달 모양의 얼음 칼날들이 나타났다.

초승달 모양의 얼음 칼날들은 계속해서 그 수를 불리며 허공에서 춤을 추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 없이 많은 얼음 칼날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노인을 향해 달려들던 준은 얼음 회오리가 다가오자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서며 몸을 감싸고 있던 보라색 불꽃을 거두어 들인 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눈부신 백색 불꽃이 그의 손바닥 위에 나타나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태연한 표정으로 백색 불꽃을 손에 쥐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흥! 죽음을 자초하다니,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노인은 자신의 절기에 정면 도전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이준이 백색 불꽃으로 뒤덮인 팔을 회오리 속에 밀어 넣는 순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퍼져 나오며 얼음 칼날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이럴 수가!”

이윽고 소년이 숨을 한번 내쉬자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얼음 칼날이 완전히 멈춰서며 얼음 기둥으로 변했다.

곧이어 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얼음 기둥에서 손을 빼더니 가볍게 얼음 기둥을 툭 건드리자, 굉음과 함께 얼음 기둥이 투명한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어르신…죄송하지만 그 물건은 제가 가져가야겠습니다.”

“끌끌… 어린 놈이 정말 대단하구나.”

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노인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이 물건이 꼭 필요해서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손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허…20년간의 은둔 생활만에 나에게 패배를 안겨준 인간이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일 줄이야…”

이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머리를 살짝 끄덕인 뒤 지도를 움켜쥐고 몸을 돌렸다.

“허허. 내가 예전에 사막에서 엄청 힘들게 이 그림 조각을 얻었는데 그 후에 다년간 지도를 만든 경험으로 완벽하게 두 장으로 나눴지. 그 중 한 장은 지금 네 손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한 장은…… 허허.”

“뭐라고요?”

노인의 말에 준은 발을 멈추고 지도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지도가 기묘한 형태로 잘려 있었다.

‘젠장…원래 이런 크기인줄 알았는데…’

힘들게 고생해서 얻은 지도가 겨우 절반짜리 조각이라니 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르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사실을 말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르신이 말하지 않았다면 저는 원래 이 정도 크기인줄 알았을 텐데요.”

노인은 살기등등한 준의 눈빛을 보고도 태연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그래. 네가 마음만 먹으면 내 목숨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죽어도 나머지 반쪽의 행방에 대해 말할 마음이 없다. 왜? 내가 그리 하지 못할 것 같으냐? 끌끌…그렇다면 한번 해보거라. 내 숨통을 끊어놓는 순간 너는 영영 그 지도의 나머지 반쪽을 찾지 못할게다.”

준은 노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채고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뭔가 원하시는 게 있으시군요.”

“끌끌끌…실력만 있는 게 아니라 머리도 잘 돌아가는구나. 십 년 뒤면 가한제국을 뒤집어 놓을 놈이 되겠어.”

“어르신,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원하는게 무엇인지나 말씀해주시지요.”

노인은 준의 불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으로 대단한 불꽃이구나…방금 사용한 것은 천지의 불꽃이겠지?”

“네.”

“호오…내가 본래 투황급의 투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느냐?”

“네.”

노인은 막힘없는 준의 대답에 더욱 흥미가 동한 듯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는 알겠느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래…?”

준이 절레절레 머리를 젓자 노인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동해다. 아마 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겠지. 하지만…‘얼음왕’이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얼음왕이요?”

얼음왕은 가한제국의 10대 강자 중 하나로, 성격이 괴팍하고 오만하기로 이름난 자였는데, 성 하나를 얼음으로 만들어 버린 일과 운남종의 종주와 대결을 펼쳐 아쉽게 패배한 일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 두 가지 사건을 제외하고도 가한제국과 구름 제국 사이의 친선 경기에서 구름 제국의 투황과 투왕을 동시에 상대해 꺾은 일로도 유명했다.

노인은 준이 자신의 이명(異名)을 알아차린 듯 놀란 표정을 짓자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래도 얼음왕이라는 이름이 아직 세상에 남아있기는 한가 보구나. 20년간 속세를 떠나있었음에도 후배가 내 이름을 알다니…기분이 나쁘지는 않군.”

“어르신, 아니 선배님…가한제국을 뒤집어 놓았던 강자가 이런 변두리에서 지도를 팔며 살고 있다니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군요. 게다가 지금 선배님의 실력은 투령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끌끌…구름 제국과의 대결 이후 타르사막에 왔다가 우연히 이 지도를 얻었지. 하지만 그로 인해 뱀 인간들의 영왕, 메두사에게 추격을 받았고…자네도 알다시피 메두사는 투황 중에서도 최정상급의 실력자지. 그녀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기회를 틈타 도망을 치는 데는 성공했지만…염력을 봉인 당해 노인의 몸이 된 데다가 실력도 투령 레벨로 내려가고 말았네. 결국 20년간 이곳에 숨어 지내며 그 지도의 비밀을 연구하면서 이 봉인을 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불가능했지.“

준은 얼음 왕의 말이 무엇인지를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선배님…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노인은 준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20년간 아무 결실도 없었던 것은 아닐세. 뱀 여왕의 봉인을 풀 연금 비약의 조합표를 얻었거든. 그 연금비약을 제조하는 데만 성공하면 예전 실력을 되찾을 수 있어.”

“선배님, 저는 2품 연금술사에 불과합니다. 투황급 강자의 힘을 억제할 정도의 봉인을 풀 연금 비약이라면…단왕 고하를 찾아가셔야 할 겁니다. 얼음왕 정도라면 단왕 고하와도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안 되네.”

“고하가 못 만든다면 저도 못 만들지 않겠습니까? 누가 뭐라 해도 가한제국에서 연금 비약 제조로는 그 자를 따를 자가 없으니까요.”

“아니, 그는 안돼. 내게 필요한 약을 제조하려면…천지의 불꽃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고하는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너는 있지. 아닌가? 만일 자네가 그 연금비약을 정제하는데 성공한다면 내가 가진 지도의 나머지 반쪽을 내어주지. 그리고…언젠가 이 빚을 꼭 갚도록 하겠네. 자네도 잘 알겠지? 이 가한제국 내에서 얼음왕에게 빚을 지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거래 조건이 이쯤 되자 마냥 거절할 수는 없었다. 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선배님께 필요하다는 그 연금비약은 몇 품입니까?”

“6품.”

“선배님…무리입니다. 천지의 불꽃이 있다고 해도 저는 2품 연금술사입니다. 저 같은 애송이에게 6품이라니요.”

그러나 얼음왕은 준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거짓말 말게. 아까 보여준 실력으로 2품 연금술사라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을 감추고 있지 않은가. 염력을 봉인 당했다고 눈도 해태 눈깔이 된 것은 아니네.”

상황이 이쯤 되자 준은 다시 약로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쨌거나 정화의 불꽃과 관련 있는 지도 조각이니 우리는 반드시 손 안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 네 수련법을 진화시키든 말든 할 것 아니냐?‘

‘그럼 거래를 할까요?’

‘음. 우선 승낙해. 그리고 투황에게 빚을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저 노인네가 실력을 회복하면…’

‘하하, 걱정 말거라. 내가 있으니. 실력을 회복했다고 해도 그 지도를 다시 빼앗아 가지는 못할게다. 투황 정도로는 이 몸의 상대가 되지 못 한다. 다만 혹시 모르니 연금비약을 정제할 때 장난을 좀 쳐두어야겠구나.’

스승의 말을 들은 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선배님.”

준의 확답을 듣자, 동해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웃음이 번졌다.

“약재는 직접 준비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이미 한 종류의 약재만 빼놓고 모두 구해두었다.”

“네…? 한 가지가 빠졌다니요?”

“뱀독말풀. 타르사막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약재다. 나는 얼음 속성을 가진 투사라서 사막에 들어가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 게다가 내 몸 안에는 뱀 여왕의 봉인이 걸려있으니 사막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말게다…”

준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설마 저더러 찾아달라고 하시려는 건 아니죠?”

“내 자네에게 제안 하나 하지”

“무슨 제안이요?”

“천지의 불꽃과 관련된 것일세.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나?”

천지의 불꽃이라는 말에 소년의 눈이 반짝 거리기 시작하자, 얼음 왕은 여유만만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도 타르 사막에 천지의 불꽃이 숨겨져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네. 설마, 선배님께서 그 불꽃의 소재를 알고 계신 겁니까?”

“끌끌…이 곳에서 지도를 그린 지 20년일세. 여러 가지 정보를 토대로 천지의 불꽃이 있을만한 곳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 내 장담하네만, 내가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면 10년이 걸려도 그 불꽃을 찾을 수 없을게야. 어때? 나를 도와 뱀독말풀을 구해준다면 그 정보를 자네에게 넘기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천지의 불꽃이다. 정화의 불꽃이 아니더라도 불개를 진화시킬 수 있음에는 틀림이 없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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