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86화 (86/818)

제86화. 최연소 2레벨 연금술사

자리에 있던 모든 연금술사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멍한 표정으로 준의 약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시험이 시작되면 수험생들 주위에는 빛의 보호막이 쳐지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준의 불꽃은 명백하게 이상한 색을 띠고 있었다.

“천지의 불꽃인가?”

“아닌 것 같군…저 아이의 실력으로 저렇게 진한 천지의 불꽃을 능숙하게 다룰 수는 없어”

“그런데 어떻게 저 녀석의 불길이 보라색을 띨 수 있지?”

만석과 오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들의 상식으로, 천지의 불꽃이 아닌 이상 연금술사의 불꽃이 다른 색으로 변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1레벨 연금술사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네. 저 불꽃이 천지의 불꽃은 아닌 것 같지만…불꽃의 세기로 보아 아무리 못해도 5성 투사는 될거야.”

“내가 앞서 저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니까…”

“난 갑자기 저 녀석의 스승을 만나고 싶구만 그래. 어떻게 19살 짜리가 저런 실력을 가질 수 있지…?”

오탁과 대화를 나누던 만석은 갑자기 손을 들어 주위에 있던 연금술사 하나를 불렀다.

“다른 성의 연금술사 공회에 통보를 보내서 약로라는 연금술사에 대해 수소문해봐. 무명의 연금술사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두 사람이 입을 닫자 시험장은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만, 자리에 있는 어느 하나 빠짐없이 준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이미 2레벨의 연금 비약을 만들 수 있는 준에게 힘의 결정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고, 준은 보라색 불꽃을 능숙하게 조절하며 어느새 축력단을 반 이상 완성한 상태였다.

한편, 장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설매와 린셀은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들의 약솥이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들은 아직 햇병아리 연금술사인지라 준의 불꽃이 왜 보라색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다루고 있는 불꽃의 화력이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시험중인 것도 잊고 준을 바라보던 두 여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들의 약솥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약솥에 담긴 연금비약에 반짝반짝 윤이 나기 시작하자, 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약솥에서 손을 뗐다.

이윽고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약솥이 열리고 노란색의 연금비약이 이준에게 날아왔고, 준은 약병 하나를 집어 그 안에 자신이 제조한 힘의 결정을 집어넣었다.

빛의 보호막이 사라지자, 준은 그제서야 장내의 불편한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어…시험 시간이 끝났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준의 태도에 설매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이내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고작 몇 분 지났어. 스승님이 네가 아직 안 끝나서 잠시 기다려 주신 같아. 걱정 마. 그것 때문에 시험자격을 뺏지는 않을 테니까.”

만석과 오탁은 먼저 설매와 린셀이 정제한 연금비약을 꼼꼼히 관찰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음, 꽤 훌륭해. 아직 불 온도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심사 기준은 넘었구나.”

두 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만석과 오탁은 준을 건너 뛰고 나머지 여섯의 심사를 먼저 진행했다.

하지만 여섯명 중 넷이 탈락했고, 만석은 풀이 죽은 넷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제의 소년을 심사할 차례가 다가왔다. 심사위원들뿐 아니라 함께 시험을 치른 다른 학생들 역시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 마음으로 준을 바라봤다.

만석은 준의 탁자위에 놓인 조이를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힘의 결정? 자네 이딴걸 1레벨 연금술사 시험에 낸거야? 그래서 이 녀석이 시간이 더 걸린거였구만…이건 1레벨 연금술사들 중에서도 제조할 수 있는 놈들이 많지 않은데 말이야.”

만석은 오탁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준의 약병을 기울여 힘의 결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준이 만들어낸 연금비약은 그 빛깔과 향기부터가 다른 수험생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완성된 약을 손 위에 놓고 굴리자 비약에서 은은한 파도같은 문양이 나타났다.

“이런…”

그 문양을 보자마자 만석과 오탁을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준의 연금비약에 나타난 문양은 완성도가 정점에 달했을 때만 나타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이준. 합격이다.”

하지만 준의 다음 말에 시험장이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저기…어…그럼 바로 2레벨 시험을 볼 수 있는 거죠?”

“2레벨 연금술사 시험을 계속해서 본다고?”

소년의 말에 만석과 오탁은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가한제국의 역사를 둘러보면, 19살에 연금술사가 되는 자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유명한 단왕 고하가 바로 19살에 연금술사가 된 자였다. 하지만 19살에 2레벨 연금술사가 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흥, 1레벨 시험을 잘봤다고 기고만장해가지고는…2레벨 연금술사가 되려면 2레벨 연금비약을 정제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투사로서도 무투사 레벨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해있던 린셀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2레벨 시험에 대해 묻는 준을 보고 배알이 꼴렸는지 이미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아니…그냥…시험 정도는 볼 수 있잖아요…”

“너 진짜 2레벨 연금술사 시험을 계속해서 보고 싶으냐?”

린셀의 말에도 준이 쭈뼛거리며 시험을 계속하고 싶다는 식으로 말을 꺼내자, 만석과 오탁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다가 준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자신은 있느냐?”

“음…반 정도…안 되나요?”

“반 이라……”

“안되면 할 수 없죠…안 된다고 하시면 돌아갈게요. 이번에 일이 있어서 검은 바위성에 온 거라서…곧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거든요. 그 곳에서 다시 시험을 보면 바로 2레벨 시험을 볼 수 있는거죠?”

“잠깐!”

소년이 순진한척 더듬거리다 몸을 돌리자 만석이 급히 그를 막아섰다. 19살의 천재소년을 못 알아봐 다른 시험장에서 2레벨이 된다면 검은 바위성 연금술사 공회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 뻔했다.

“얼른 2레벨 연금술사 시험을 준비하거라!”

만석의 명이 떨어지자 즉시 뒤에 있던 연금 술사들이 다른 문을 열었고, 그 문에는 ‘2레벨 연금술사 시험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좋다, 내가 계속해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주지.”

준은 자신의 연기가 먹히자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듣자 하니 시험에 합격해서 공회에 등록하면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던데…”

“그래, 연금술사가 연금비약을 정제하려면 희귀한 약재들이 필요하니까. 그렇다고 매일 같이 약초를 채집하러 다닐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 가한제국 연금술사 공회에서는 등록된 연금술사간에 거래를 중개해주지. 예를 들어 네가 하얀 난초를 구하는데 누군가 그걸 가지고 있다면 공회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다. 물론 거래가 성립되는건 양쪽이 내건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어쨌든 중개는 해주지. 그리고 레벨이 높은 연금술사일수록 권한도 커지지.”

“네, 잘 알겠습니다.”

준이 공손하게 머리를 끄덕이자 만석은 즉시 그를 시험장으로 데리고 갔다.

“자, 2레벨 연금술사의 시험을 준비했으니 이쪽으로 따라 오거라.”

“네.”

“2레벨 연금술사의 심사는 1레벨 연금술사와 달라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모두들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결과는 금방 나옵니다.”

“스승님. 들어가서 보게 해주세요.”

린셀은 준의 시험을 보고 싶었는지 오탁을 쫓아가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 응석을 부렸다.

“이건 연금술사 공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온 규정이라 나도 별 다른 수가 없단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하지만 스승이 고개를 젓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흥, 안 봐요, 안 봐!”

린셀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설매 곁으로 다가가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생각엔 저 녀석이 성공할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알아? 방금 자기 입으로 반이라고 했으니 반이겠지.“

“치, 2년만에 1레벨 연금술사가 됐다고 기뻐하고 있는데 어디서 저런놈이 튀어나온거야.”

린셀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투덜거리자 설매가 짜증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검은 바위성에서는 네가 최고라더니?”

“미안한데 저 녀석 검은 바위성 사람 아니거든.”

……

린셀과 설매가 투닥거리다가 멀리 떨어져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레벨 시험장의 문이 열리고, 만석과 오탁이 한숨을 내쉬며 걸어 나왔다.

“벌써 심사가 끝난 거야?”

“흥, 거봐! 될 리가 없잖아! 19살에 2레벨 연금술사라니!”

린셀이 고소하다는 듯 입방정을 떠는 순간, 만석의 입에서 귀를 의심할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검은 바위성에서 19살의 2레벨 연금술사가 나올 줄이야! 껄껄! 아주 귀한 구경을 했군!”

“진짜 성공했어? 열 아홉 살밖에 되지 않는데 무투사라고…?”

린셀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는 사이 만석과 오탁은 신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점점 더 저 녀석을 키운 연금술사가 대체 어떤 자인지 궁금해 지는군.”

“하지만 그 녀석의 그 보라색 불은 천지의 불꽃은 아닌게 확실하네. 그런데 대체 뭘까? 일반 불보다는 강하지만 천지의 불꽃은 아니라니…”

잠시 후, 시험을 마친 이준이 옷에 묻은 약가루를 털어내며 모습을 나타내자 만석의 부하 중 하나가 급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망토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2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들을 위한 특제품이다. 이 망토는 공회에서만 생산되는 비전의 약물로 만든 것이라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향기는 주인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신체와 감각을 단련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결국 연금비약을 만드는 능력을 발전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독을 막아주고 웬만한 갑옷보다도 방어력이 강하지.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물건이다.”

만석의 설명을 듣던 준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검은색 망토를 바라봤다. 질감이나 색깔로 보아 고급품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 물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던 것 이다.

준은 검은색 망토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자신의 낡은 망토를 벗어던졌다.

연금술사 공회가 자랑하는 특제품이라 그런지 옷이 닿자마자 물속에 들어간 듯 시원한 느낌이 전해졌고, 독특한 향기가 코끝을 지나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금술사 도포를 입은 이준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초라한 분위기가 싹 가시고 귀공자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좋네요…”

“자,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여러분들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만석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대충 손을 흔든 뒤 다정한 말투로 준에게 말을 걸었다.

“시간 있으면 따로 얘기 좀 할까?”

“음…그러죠. 사실 저도 회장님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

만석은 자신의 제자인 설매마저 손을 휘저어 내쫓은 뒤 준과 함께 자신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자자, 여기 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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