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1레벨 연금술사 시험
“스승님 추천서를 찾았어?”
오탁이 공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한 장정이 이준을 향해 물었다.
“미안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방금 저 아가씨도 당신들한테 추천서를 보여주지는 않은 것 같던데요?”
“흥, 린셀 아가씨의 스승님은 4레벨 연금술사 오탁대사님 이시다. 설마 그 이름을 모르는건 아니겠지?”
이준이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뻗자 두 장정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준의 손바닥을 보고는 대번에 안색이 변했다.
준의 손바닥 안에서 보라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4레벨 연금술사십니까?”
염력으로 만들어진 불꽃을 약솥도 없이 실체화 시키는 것은 연금술사, 그것도 4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만이 가능한 일 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사내는 아무리 봐도 20살도 되어 보이지 않았으니,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뇨…그런건 아닌데, 음…설명하긴 어렵지만, 여튼 일이 좀 있어서…염력 화염을 실체화 시킬 수 있게 된 것은 맞아요.”
준은 자신의 보라색 불꽃이 사람들의 불러 모으기 시작하자 황급히 불꽃을 감춘 뒤 두 장정에게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럼 이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그럼, 요 꼬마, 아니, 저…그,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 * *
연금술사 공회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약 향이 코 끝을 찔렀다. 하지만 건물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모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연두색 옷을 입은 한 여자가 급히 걸어 나와 이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처음 뵙는 분 같은데…검은 바위성 연금술사공회에는 처음이신가요?”
“네. 연금술사의 징표를 좀 얻으려고요.”
“네? 선생님도 연금술사시라고요?”
준의 말을 들은 여인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을 훑어보았다.
“네. 어떻게 하면 되죠?”
“이쪽으로 오세요.”
하지만 일단 연금술사 공회건물안으로 들어왔다면 뭔가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니 그녀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책상 옆으로 걸어가 누런 양가죽 종이를 한 장 꺼내들었다.
“선생님, 성함과 나이, 스승님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면 이 엘렌이 대신 등록을 해드리지요.”
“이름은 이준, 올해 열 아홉 살이고 스승님은…약로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신데 참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을 엘렌이라고 소개한 여인은 펜을 들어 준의 신상명세를 적다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다시 한번 준을 위아래로 훑었다.
“선생님, 스승님의 성함이 우리 연금술사 공회에 등록 된 적이 없는 듯 합니다.”
“그 분은 은둔생활을 하셔서 등록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꼭 그 분이 등록을 한 기록이 있어야 제가 시험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정 안되다면 돌아가구요.”
이준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엘렌은 황급히 준을 불러세웠다.
“선생님, 잠시만요. 스승님이 등록을 하신 기록은 없지만 선생님은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금술사의 휘장도 받을 수 있구요.”
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엘렌을 향해 친절하게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이쪽으로 가시죠. 시험은 1레벨 시험을 보시는 거죠?”
“아니요, 2레벨.”
습관적으로 질문을 던진 엘렌은 2레벨이라는 말에 갑자기 멈춰서며 몸을 돌렸고, 그 덕에 준은 엘렌의 가슴에 부딪힐 뻔 했다.
“지금…2레벨 시험을 보신다고 하셨나요?”
고개를 돌린 엘렌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자 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요.”
상황이 이쯤 되자 엘렌의 태도는 공손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지나치게 친절해지기 시작했다. 19살의 2레벨 연금술사라면 가한제국 전체를 뒤집어 털어내도 나오지 않을 인재였기 때문이다.
“이준씨는 이번에 처음 시험을 보시는 건가요?”
“네.”
“만약 그렇다면 이준씨는 1레벨 연금술사 시험부터 보셔야 해요. 일단 1레벨 시험에 통과해야 2레벨 연금술사 시험을 보실 수 있거든요.”
“아, 네. 그럼 그렇게 하죠.”
잠시 후, 둘은 네 명의 장정이 지키고 있는 대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네 장정은 모두 9성 투사였고, 그 중 한명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곧 무투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테오도르 아저씨, 시험이 시작됐나요?”
엘렌은 준의 자료를 무투사가 될 것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넘겼다.
“하하, 아직입니다. 근데 곧 시작할 것 같아요. 또 신입을 데리고 온 건가요? 꽤 훌륭해 보이네요.”
테오도르라는 사내는 준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무투사에 가까운 자신의 실력으로도 앞에 보이는 앳된 소년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어린 아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네, 됐습니다. 들어가시죠.”
테오도르는 수험표 위의 자료와 도장을 확인한 두 검은 팔찌 하나를 건넸다. 팔찌 위에는 커다랗게 ‘5’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시험 번호입니다.”
준은 팔찌를 건네받아 팔뚝에 끼고 테오도르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씨, 이제부터는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규정에 따르면 저희는 함부로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네.”
웃으며 머리를 끄덕인 이준은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당당하게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안으로 들어서자, 환한 등불이 널찍한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속닥속닥 귓속말을 하는가 하면 간간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연금술사로, 그들의 가슴에는 1레벨부터 4레벨까지 다양한 연금술사의 징표가 붙어 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4레벨 연금술사는 둘로, 그 중 하나는 방금 전 공회 건물에 들어설 때 만났던 오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검은 바위성 연금술사 공회의 회장인 ‘만석’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받침대가 열 몇 개 놓여 있었는데 그 받침대 위에는 연금비약을 정제하는 도구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뒤로는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하고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가 서 있었다.
“만석, 설매는? 왜 아직도 안 오는가? 시험이 곧 시작 될 텐데.”
오탁은 책상 위의 모래시계를 보다가 머리를 돌려 다른 사람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만석을 바라봤다.
“조급해하지 말게. 설매도 첫 번째 시험이라 준비가 필요한가 보지.”
만석의 대답에 오탁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이제 십 분 뒤에도 안 나오면 당신이 회장이라고 해도 이유 없이 시험을 뒤로 늦출 수는 없네.”
오탁의 핀잔이 귀찮다는 듯 딴청일 피우던 만석은 어느샌가 대열에 끼어들어온 준을 발견하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도 연금술사 시험을 보러 온 거냐?”
“네, 그렇습니다만”
이준이 머리를 끄덕이자 만석이 더욱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면서 물었다.
“나이는?"
“열아홉입니다.”
“뭐?”
소년의 대답에 오탁도 머리를 돌려 이준을 바라보더니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어쩐지…뭔가 느낌이 있다 했더니만 저 녀석도 연금술사였구나.”
“쯧쯧, 열아홉? 이보게, 오탁. 저 녀석의 나이가 우리 두 사람의 제자보다도 한참 어리군.”
만석이 혀를 끌끌 차며 감탄했다.
“저 녀석이 순조롭게 시험에 통과한 후 감탄하게. 몇 년 전 린셀이도 열아홉 되던 해에 그 녀석도 시험 보러 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때 하마터면 애꿎은 약솥만 터뜨릴 뻔 했지.”
만석의 말은 괜한 시비가 아니었다. 진정한 연금술사가 되려면 다중 속성의 영혼을 가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최소한 1성 투사 수준의 염력을 갖춰야했다.
게다가 스승을 통해 기초적인 정제술을 익히는데만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19살에 연금술사가 된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봐,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당신도 사사로이 설매를 봐 주지 않았는가? 하지먼 그 녀석도 약솥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한창 서로를 헐뜯고 있는 사이, 갑자기 장내에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대문을 열고 은발의 여자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은발…신기한 머리색이네…거기다 은색 치마라니, 요란한 여자군.’
은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만석을 향해 걸어갔다.
“스승님!”
“하하, 드디어 왔구나. 오탁 이 노인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어.”
“오탁대사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오탁에게도 인사를 한 뒤 정제도구가 놓인 탁자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은색 치마를 입은 그 여자는 머리를 돌려 만석한테 눈을 흘기는 오탁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녀는 오탁의 제자인 린셀과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섰고, 두 사람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 너도 들어가거라.”
만석은 자신의 제자가 들어서자 즉시 시험을 시작하려 했지만, 준은 만석이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 미간을 찌푸렸다. 만석이 가리킨 곳은 척 보기에도 사이가 나빠 보이는 두 여자 사이였다.
‘휴…어째 예감이 안 좋구만.’
……
1레벨 연금술사가 되려면 공회에서 임의로 정해주는 연금비약을 혼자서 정제할 수 있어야 했다.
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들어 자신이 정제해야할 약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힘의 결정이네…이거 1레벨 치고는 꽤 어려운 거잖아.’
탁자 위에는 축력단을 정제하는 데 필요한 약재 3묶음과 약병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준은 시험 시작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코 양 옆을 훑어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다.
오탁과 만석의 제자라는 두 여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백하게 가장 기초적인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쓰이는 약재만이 놓여있었던 것 이다.
“자, 모두들 자신이 만들어야 할 연금비약이 뭔지 확인했겠지? 그럼 시작하도록.”
만석의 시험 시작 선언과 동시에 종이 울리자, 준은 제외한 모든 수험생들은 서둘러 손바닥을 약솥에 가져다 댔고, 시험장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모두 평범한 불꽃 속성의 화염을 사용하고 있었고, 설매와 린셀 두 사람의 불꽃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시험장에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험장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이 종이 울리고 나서도 멍하니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 광경을 바라본 만석이 이마를 찌푸리자, 오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에헴…저 녀석 스승님 추천서 있어? 어떤 사람이 키운 놈인 지 구경이나 좀 하게…”
만석이 손을 들자 시험장 안에 있던 사내 하나가 달려왔다.
“회장님, 저 사람은 스승의 추천서가 없다고 합니다. 기록부에는 약로라는 연금술사가 스승이라고 적혀있기는 한데…”
“약로?”
“이 이름 들어본 적 있어?”
“내가 가한제국이 몇 십 년 살았어도…제자를 받을 수 있는 연금술사 중에 약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못 들어봤네.”
“아무튼, 끝나는 대로 자세히 물어보자고. 지금 보자니 저 녀석이 우리한테 장난을 친 것 같군.”
사정을 알 리 없는 만석은 준이 연금술사 공회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준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신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는 것을 느끼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약솥의 화구에 가져다 댔다.
‘에이…설마 뭐 보라색 불꽃 좀 내뿜는다고 잡아가기라도 하겠어…’
퍽…!
이윽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보라색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 만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라색 불길…? 천지의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