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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82화 (82/818)

제82화. 기력의 조각

준이 검은 송곳을 어깨에 꽂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호는 못내 미안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들이 잡은 마수의 마정석을 건넸다.

“정말 미안하네. 괜한 고생만 시킨 것 같군…이건 내 성의네. 이거라도 가져가게. 흙속성이기는 하네만…”

“아닙니다. 저는 나무 속성의 마정석이 필요한 것이라서요.”

소년이 다시 몸을 돌려 숲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린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2레벨 목계 마정석이 꼭 필요한 건가요?”

“네, 급히 필요합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에 건 목걸이를 풀어서 그것을 준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놀랍게도 2레벨 나무속성의 마정석 이었다.

“2레벨 나무 속성 마수의 마정석이에요. 동료들의 목숨 값이라 생각하고 받아요.”

“린아…고맙다. 은인에게 보답을 하지 않는 것은 용병단 전체의 체면과 직결된 것이라 영 마음에 걸렸는데…하지만 그 목걸이는 용병단 소유의 목걸이가 아니라 네 물건이니 본부로 돌아가면 반드시 다른 물건으로 보상해주마.”

린의 행동을 보던 비호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보상을 약속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사람덕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 몇 인데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호오…이 용병단은 상당히 정상적이네…청산마을 용병단이라고 다 늑대머리 용병단 같은 것들만 모여있는건 아니구나.’

둘의 대화를 듣던 준은 흑표 용병단 사람들에게 상당히 호감을 느꼈다.

비호도 그렇고 카은도 그렇고, 지금 눈 앞에 있는 린이라는 여자도 상당히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의 물건이니 저도 그냥 받기는 그렇네요. 마정석을 못 구한건 제가 운이 나쁜 것 뿐이니까요.”

이윽고 준은 손바닥을 뒤집어 작은 약병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 속에 기력의 조각 다섯 알이 있어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빠르게 염력을 회복시켜 줄 거에요. 가격으로 따지면 아마 2레벨 마정석과 비슷할거에요. 제가 사정이 급해서 일단 받기는 하겠지만…남의 물건을 그렇게 덥썩 덥썩 받아가는 건 좀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요. 받아주세요.”

린과 비호는 준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준을 바라봤다. 청석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연금술사가 정제한 진짜 연금비약은 구경조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도 기력의 조각 다섯알이라니…그들 입장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 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준은 약병을 넘기자마자 즉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

숲속으로 점이 되어 사라지는 준을 바라보던 비호는 자기도 모르게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자가 우리 용병단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말이야…차마 말을 못 꺼내겠군.”

“단장, 저 정도 재능 있는 사람이 시골 용병단에 들어와서 뭐하겠어요. 아마도 천둥산에 수련하러 온 대단한 집 자제나 되겠죠. 아니면 기력의 조각을 다섯 알씩이나 선뜻 내놓겠어요? 게다가 저장반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던걸요. 아마 십 년 뒤면 대투사나 투령이 되어있을 거예요.”

린의 말에 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렇겠지. 그럼 우리는 시골 용병단답게 마을로 돌아가볼까? 오늘은 2레벨 마수를 두 마리나 잡았으니 잔치라도 해야겠구나.”

* * *

한편, 숲속으로 들어 간 이준은 한참을 뛰어가다가 천천히 걸음을 멈춘 뒤 날개를 천천히 펴 아라가 있는 계곡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아직 그의 염력으로는 매의 날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었기에 계곡까지 도착하는 동안 기력의 조각을 세알이나 먹어야 했지만, 마수의 불꽃을 통해 불개를 성공한다면 기력의 조각의 도움을 받는 일도 줄어들 것 이라고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 * *

준은 산굴안에 들어서자마자 저장반지에서 약솥을 꺼낸 뒤 연금비약을 정제하기 위한 재료들을 늘어놓았고, 약로가 반지 속에서 나와 바위 위에 앉아 준을 지켜보았다.

이준은 약로를 한번 바라본 뒤 천천히 눈을 감고 연금비약의 조합표와 정제에 필요한 온도를 다시 한번 떠올린 뒤 약솥의 화구에 불을 붙였다.

보라색 불꽃이 약솥에 들어가자, 장작이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약솥이 후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호오…이 녀석, 어느새 이렇게 발전했지?’

능숙하게 마수의 불꽃을 조절해내는 제자를 바라보며 약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다시 한번 스승을 바라본 뒤 비취색이 나는 식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가 집어든 식물은 상록의 줄기라는 것으로, 줄기와 잎에 함유된 부드러운 기운으로 혈관을 보호해주는 약초였다.

상록의 줄기 약솥에 들어가자마자 거센 보라색 불꽃이 비취색의 열매를 불태워 누렇게 만들었고, 준은 깜짝 놀라 불꽃의 온도를 더욱 낮추었다.

이윽고 상록의 줄기 잎의 표면에서 초록 색 액체가 방울방울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액체가 점점 많이 나오자 나뭇잎이 빠르게 쪼그라 들었고, 마지막 한 방울의 액체까지 짜낸 나뭇잎은 검은 재로 변해 약솥 바닥에 떨어졌다.

“정말 많이 늘었구나. 어쭙잖은 2레벨 연금술사보다 나은걸?”

약로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칭찬하자 더욱 자신감이 붙은 준은 약솥에 담긴 초록색 액체를 약병에 옮겨 담은 뒤 신속하게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열 번 정도 약재를 태워먹기도 했지만, 여분의 약재를 많이 준비해두었기에 정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약로는 줄곧 제자가 연금 비약을 만드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봤다.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실패가 잦았지만, 처음으로 2레벨의 연금비약을 만드는 것 치고는 아주 높은 성공률이었다.

이준은 모든 재료를 정제해 낸 뒤 긴 한숨을 내쉬며 기력의 조각 한 알을 삼켰다.

약로가 보기에도 지금 준에게는 염력 수련법을 진화시키는 일이 절실했다.

고작 2레벨의 연금비약을 정제하는데도 염력이 바닥날 정도이니, 3레벨의 연금 비약을 만들려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쑤셔 넣듯 입 안 가득 기력의 조각을 쑤셔 넣고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염력이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기력의 조각을 입에 물고 가만히 염력을 회복한 준은 눈을 뜨자마자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손을 펼치자 눈처럼 하얀 한기를 뿜어내는 마정석 하나가 나타났고, 마정석을 약솥 안에 집어넣고 불을 지피자 2레벨의 얼음속성 마정이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보라색 불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안에는 보라색 불꽃과 서리가 대치하면서 만들어 진 하얀 안개가 가득 찼고, 약로가 손을 휘저어 안개를 동굴 밖으로 몰아낼 때까지 준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약솥에 염력을 쏟아 부었다.

‘흠…내 제자지만 집중력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지.’

하지만 현재 준의 염력으로는 2레벨의 마정석 하나도 한 번에 녹여낼 수 없었고, 결국 준은 기력의 조각을 문채 정제 작업을 해야 했다.

한참 뒤, 끝내 보라색 불꽃이 약솥 안에서 한기를 완전히 몰아내고, 하얀색 마정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정석 표면이 재가 되어 부서지고, 눈처럼 하얀 에너지 덩어리가 나타났다.

준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 그 에너지 덩어리를 정성스럽게 정제한 뒤 약병을 꺼내 들었다.

“후우…”

소년은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린 이마를 훔치며 지금까지 정제한 약제들을 모두 약솥에 집어넣고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보라색 불꽃이 다시 맹렬하게 타오르면서 여러 색의 재료들이 하나가 되고, 이윽고 2레벨의 연금 비약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준이 만들어 낸 연금비약의 모양은 표면이 울퉁불퉁하였고 형태도 불규칙적 이었으며, 표면의 광택도 일부는 파란색, 일부는 보라색이었지만, 30분 가량을 더 보라색 불꽃으로 달구자 연금비약이 마정석의 에너지를 온전히 흡수하며 뽀얀 알약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준은 방금 내린 눈처럼 새하얀 연금 비약을 확인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연금 비약을 약병에 옮겨 넣은 뒤 벌떡 일어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스승님! 성공했어요!”

“그래, 오늘은 아주 제법이구나. 칭찬할만하다. 아직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치고는 아주 훌륭해. 일단 조금 쉬면서 염력을 회복하거라. 다음 연금 비약을 정제하려면 또 염력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소년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다시 기력의 조각 한 알을 삼킨 뒤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았다.

……

잠시 후 염력을 완전히 회복한 이준은 다시 바삐 손을 놀려 호수의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 2레벨의 연금비약을 만들어보았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전보다 한결 쉬운 느낌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몇 개의 약재를 태워먹기는 했지만, 뒤로 갈수록 작업에 속도가 붙어 두 시간만에 호수의 약을 제조하는데 성공해냈다.

그 때, 어두워지기 시작한 밖을 내다보던 약로가 웃음을 지으며 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딱 좋구나. 낮에는 태양의 도움으로 마수의 불꽃이 더욱 활발히 움직여서 마수의 불꽃을 삼키는데 어려움이 생기지.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이 그 불꽃을 삼키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때? 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조금 피곤할 뿐, 밤을 새워도 끄떡 없을걸요.”

“하하, 좋아. 기력의 조각은 몇 알이나 남았느냐?

“열 일곱 알이요.”

“좋아. 그 정도면 괜찮겠구나. 염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기력의 조각을 복용해야 한다. 중요할 때 염력이 바닥나면 끝장이니까.”

“네!”

“솔직히 나도 이 보라색 불꽃이 불개를 얼마나 진화시킬지 궁금하구나. 다만, 3격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일게다. 너도 알다시피 4격과 3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니까.”

준은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감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머리를 돌려 스승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스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준은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

소년의 몸속에 있던 염력 회오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이전과는 달리 회오리의 중심에 있던 보라색 불꽃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의 염력 회오리는 몇 번에 걸쳐 회오리의 중심에 있던 보라색 불꽃을 몽땅 밖으로 몰아냈고, 잠시 후 노란색 염력이 갑작스레 춤을 추며 보라색 불꽃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보라색 불꽃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기라도 한 듯 준의 노란색 불꽃에 거칠게 저항했고, 보라색 불꽃이 부딪힐 때 마다 준의 불꽃도 격렬하게 일렁이며 그에 대항했다.

잠시 후, 준의 불꽃이 하늘사자의 불꽃을 온전히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됐어…그럼 다음으로…’

준은 노란색 불꽃으로 보라색 불꽃을 가늘고 길게 만들어 자신이 염력을 수련할 때 이용하는 통로로 보라색 불꽃을 밀어넣었다.

“으윽…”

보라색 불꽃이 혈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는 바람에 준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식은 땀을 흘렸다.

“지금이다! 혈관 보호약을 복용해!”

약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준은 즉시 하얀색 연금 비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혈관 보호약이 입 안에 들어가자 부드러운 느낌이 목구멍에서부터 온 몸에 전해지고, 부드러운 하얀색 에너지 막이 준의 혈관을 감싸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준의 굳어졌던 근육들이 천천히 풀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도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혈관에서 가끔 뜨거운 느낌이 전해졌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휴…스승님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폐인이 될 뻔 했어.’

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력의 조각을 삼켰다.

그리고 노란색 불꽃으로 둘러싸인 보라색 불꽃이 준의 혈관을 절반정도 돌았을 즈음…준의 마음속에서 갑작스럽게 짜증과 분노, 살의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지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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