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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81화 (81/818)

제81화. 마정석

산 정상에 오른 이준은 아래에 있는 아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 매의 날개를 펼쳤다. 햇살을 받은 그의 날개는 2주 전보다 한층 아름다운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천둥산은 굉장히 넓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 2레벨 나무속성의 마수를 찾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한 시간 가량 숲을 찾아 헤매고도 아무런 수확이 없자, 이준은 어쩔 수 없이 약로에게 도움을 청했다.

약로의 영혼 탐지 능력이라면 반경 천 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마수를 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둥산에 들어온 후 모든 일을 알아서 하라고 늘 핀잔을 하던 약로였지만, 이번만큼은 순순히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숲의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2레벨 나무속성의 마수가 있구나. 그런데 다른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가겠느냐? 만약 가기 싫으면 다른 곳도 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준은 약로가 가리키는 곳을 보며 날개를 펄럭이며 두말없이 방향을 돌렸다.

“일단 가보죠.”

* * *

약로가 가리킨 곳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숲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로 보아 한 두 명이 아닌 듯 했다.

“스승님, 여기에요?”

“그래. 아래에 있는 용병들은 아마도 다른 마수를 유인하려다 실수로 2레벨 나무속성의 마수 한 마리를 더 유인한 모양이구나.”

준은 즉시 날개를 접고 주위에 있는 굵은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는 꽤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공터 안에서 몇 십 명의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2레벨 마수 두 마리에게서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음…?’

용병들은 관찰하던 준은 그 용병들의 가슴팍에 달린 흑표 용병단의 표식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악!”

바로 그 때, 그의 귀에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소녀 하나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그 뒤로 2레벨의 마수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린채 달려오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던 소녀를 보던 이준이 또 한 번 미간을 찡그렸다.

‘구하기엔 너무 멀어…’

하지만 마수가 라엘을 덮치려고 하는 찰나, 서슬 퍼런 고함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당장 꺼지지 못해!”

이윽고 수풀속에서 검을 든 사내 하나가 달려 나왔고, 그가 검을 휘두르자 2레벨의 마수가 발을 들어 맞섰다.

“어?”

준은 2레벨 마수와 맞설만한 실력자의 갑작스런 등장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비호 삼촌!”

창백한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라엘은 그 사내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라엘, 뒤로 물러 서!”

하지만 2성 무투사인 그에게 2레벨 마수 두 마리는 도저히 무리였다.

“단장님, 어떡하죠?”

바로 그 때, 한 중년의 사내가 용병들 속에서 튀어나와 검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카은, 우선 대형을 다시 정돈해라! 절대 흔들려서는 안돼! 아니면 단체로 저 녀석들의 먹잇감이 될거다!”

“비호 삼촌…혼자서는 두 마리를 당하지 못하잖아요.”

라엘이 급히 소리치며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를 잡아 당겼다.

“단장님 방해하지 마!”

“린이 언니, 우리가 가서 비호 삼촌을 도와줘야해요!”

린이라고 불리는 그 여자는 늘씬한 키에 인상적인 구리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검은색의 딱 붙는 가죽 옷을 입고 있었고, 검은 색 치마를 입은 그녀의 늘씬한 두 다리 위에는 긴 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대형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전멸이야. 지금은 단장님의 명령대로 대형을 갖추는게 가장 중요해. 그리고 방금 네가 설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위험한 일은 애시당초 생기지도 않았을거고.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네 덕에 동료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걸 명심해.”

린이라는 여자의 단호한 태도에 라엘은 더 이상 변명조차 하지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라엘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볼테니.”

재목이 자신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라엘을 부탁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시끄러. 난 단장님의 결정에 따를 뿐 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려면 실력이나 키워.”

“흑표 용병단! 대형을 갖춰라!”

재목과 린이 재화를 나누는 동안 카은의 호령 소리에 따라 용병들이 대형을 갖추자, 앞길이 막힌 마수가 분노한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2레벨의 마수가 앞발을 휘두르자 방패 몇 개가 순식간에 박살나고 말았다.

“빨리 막아! 흙속성 투사들이 앞에 서고 불속성 투사들은 그의 급소를 공격한다!”

카은의 말이 떨어지자 나무속성의 마수가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 짖었고, 그러자 짙은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온 뒤 쪼개져 날카로운 비수처럼 용병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악!”

2레벨 마수의 일격에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카은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도움을 요청했다.

“제길! 안돼! 대형을 유지해! 단장님,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비호 역시 2레벨의 마수 한 마리를 상대하기도 벅찬 상태였다. 그는 2레벨 마수에 맞서 검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소리를 쳤다.

“위에 있는 젊은이, 미안하네만 손을 좀 빌려줄 수 있겠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단장의 갑작스런 행동에 흑표 용병단의 용병들은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뜰 뿐 이었다. 바로 그 때, 나무 위에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하, 도와 드리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만, 만약 마수의 몸에서 마정석이 나…”

“그건 자네 몫일세!”

어지간히도 다급했는지 그는 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하고 있었다.

“하하, 좋아요! 얼마 전에 흑표용병단과 작은 인연도 있었고 하니 기꺼이 힘을 빌려드리죠!”

이윽고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움직이더니 검은 그림자가 날렵하게 수풀을 가로질러 흑표용병단의 단원들과 맞서고 있는 나무 속성의 마수를 향해 돌진했다.

……

쾅!

“이준?”

소년의 등 뒤의 달린 신기하게 생긴 검을 알아 본 카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하하, 카은 아저씨, 잘 지내셨죠? 회포는 좀 있다가 풀고 먼저 저 녀석부터 치워 버리죠.”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준은 다시 마수를 노려보며 발을 굴렀다.

쿵!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소년의 몸이 사라졌다가 마수의 왼쪽에 다시 나타나고, 검은 송곳이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마수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쾅!

마수는 시커먼 쇳덩이에 얻어 맞자마자 그대로 날아가 커다란 나무를 몇 개나 쓰러뜨린 뒤에 멈춰섰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용병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크헝!”

잠시 후, 불의의 일격을 맞고 날아간 마수가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자 독을 품은 뾰족한 침들이 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은 쇳덩이에 신비한 보라색 불꽃이 서렸고, 보라색 불꽃에 휘감긴 검은 송곳이 다시 한번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허공을 가르자 마수의 독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크르르르르…!”

이윽고 회심의 일격이 막힌 마수가 다시 한 번 낮게 울부짖자, 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털이 빳빳하게 일어서면서 짙은 초록색 에너지가 녹색의 갑옷으로 변화했다.

“크왕!”

갑옷이 완성되자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초록색 마수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준은 머리를 들어 그를 향해 뛰어 오는 마수를 보며 천천히 숨을 내 쉬더니 갑자기 검은 송곳을 손에서 놓았다. 곧이어 그가 주먹을 불끈 잡자 보라색 불길이 그의 팔뚝을 감싸기 시작했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뚝에서 불타는 보라색 불꽃은 바라보던 이준이 마수를 향해 정면으로 몸을 날렸다.

“태초의 힘…!”

마수가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보라색 불꽃에 휩싸인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마수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고, 마수의 몸을 감싼 초록색 껍데기가 녹아내리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쿠웅!

이윽고 보라색 불꽃이 폭풍처럼 마수의 머리를 강타하는 찰나,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소년의 주먹이 마수의 머리 깊숙한 곳에 쳐박혔다.

“크…크르르르…”

이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마수의 머리통에서 팔뚝을 꺼냈다.

마수의 두개골에 들어갔다 나온 팔에는 시뻘건 피가 가득했다. 하지만 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천을 꺼내 피를 닦아낸 뒤 날카로운 비수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마수의 머리를 잘라 그 안에서 마정석을 찾아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씨…허탕이네.”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용병들은 준이 입을 열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단장을 바라봤다.

“우린 단장님을 도와 다른 마수를 잡는다!”

카은의 외침소리에 완전히 정신이 든 용병들은 즉시 무기를 들고 비호를 향해 달려갔고, 준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휴…빨리 불개를 진화시켜야겠어. 염력이 너무 부족해.’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는 염력이 거의 바닥나가는 상태였다. 아직도 4격 하 수준에 불과한 그의 염력 수련법으로는 폭풍 걸음 몇 번에 태초의 힘 한 두 번이면 염력이 바닥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기력의 조각을 꺼내 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봐, 이준. 괜찮아?”

바로 그 때, 그녀의 귓가에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준은 라엘에 대해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나쁜 쪽이 맞을 것 이다. 그는 다정한척 말을 걸어오는 라엘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건성건성 대답을 했다.

“손에서 피가 나는데 묶어줄까요?”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인이 말을 걸자, 준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라엘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별 일 아닙니다.”

준의 냉담한 태도에 세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묘한 정적은 반대편에서 환호성이 울릴 때까지 이어졌다.

……

비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마정석을 찾으라고 명을 내린 뒤 카은과 함께 준을 만나러 갔다.

“하하, 자네가 이준이군. 명성은 익히들었네. 직접 만나서 영광이야. 오늘 일은 내 평생 잊지 않겠네. 덕분에 부하들도 나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준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꾸벅 머리를 숙여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비호가 마음에 들었다.

“하하, 아닙니다. 명성은요…”

“하하하! 아닐세, 강헌은 청산마을 전체에 교활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놈이었지. 하지만 늑대머리 용병단은 이 근방에서 나름대로 위세를 떨치는 용병단이었는데…그 나이에 늑대머리 용병단을 혼자 궤멸시켰으니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네.”

비호는 아주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 했고, 그의 웃음 소리와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위에 있던 새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제가 지금 2레벨의 나무 속성 마정석을 급하게 구해야 해서, 자리를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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