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80화 (80/818)

제80화. 타고난 자질

약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약으로 나라 하나를 통째로 파괴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독에 목숨을 잃었지. 상상이 되느냐? 이후 그녀에게 많은 강자들이 찾아갔지. 모두 그녀의 독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그녀의 악행에 경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약한 자도 투령이었고, 심지어 9성 투황도 있었어. 곧 투종이 될 자였지.”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그 여자 손에 죽고 말았어. 결국 속세를 떠나 은둔하던 강자들마저 나서게 됐지. 심지어 그 중에는 투종급의 강자도 몇 이나 됐어. 결국 당시 5성 투황이던 그녀는 멀리 도망을 가버렸지. 하지만 그 전투에서 그녀의 독에 당한 자들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고, 투종 레벨의 강자조차 십 년이 지나서야 그 독을 몰아낼 수 있었다고 하더군.”

“와…”

약로의 설명을 듣던 준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더 무시무시한 것은 그녀가 20년 뒤 투종이 되어 나타났다는 것이지.”

“5성 투황에서 투종이요? 20년 만에…?”

“그녀의 재능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그리고 이전에 그녀의 독에 당한 적이 있던 강자들은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았지. 뭐…어찌됐건 나중에 내가 귀한 약초를 찾다가 그녀와 마주쳤고, 그 후에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준은 처음으로 듣는 약로의 과거 얘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승을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결국……”

그는 과거를 떠올리자 마음이 복잡해졌는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내가 한 수 위였지. 음하하……!”

‘우와…!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약로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지만, 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약로를 바라봤다.

투황일 때 투종과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 투종이 되었는데 그 여자를 이겼다면 약로는 사실상 당시 최고의 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을 것이 분명했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 앞으로 너도 그런 강자가 될 수 있다. 말이나 잘 듣거라!”

하지만 준은 어깨만 으쓱할 뿐 스승의 말에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투황이니 투종이니 하는 것들은 지금 자신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별로 실감도 나지 않았고, 그 정도 수준의 강자가 되려면 실력이나 재능도 필요하지만 운 역시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준이 욕심이 많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허황된 꿈을 꾸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어찌됐든…아라도 그 재난독체라는 건가요?”

침대에 누워 있는 아라를 다시 돌아보며 이준이 질문을 던지자, 약로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재난독체를 가진 사람들은 오랜 시간 염력을 수련할 필요가 없이 그냥 독약을 먹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의 특수한 체질이 독약에 들어있는 독을 특수한 독기(毒氣)로 전환시켜주지. 그리고 독성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지.”

“정말이지…말도 안되는 몸이네요.”

“하지만…독약은 독약일 뿐 이다. 재난독체라 해도 한계는 있는 법…강해지기 위해서는 점점 더 강한독이 필요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계를 넘으면 그 동안에 흡수했던 독이 온 몸에 퍼지면서 끔찍한 고통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약로의 말을 듣자 문득 준은 아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결국 천천히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힘을 얻기 위해…”

“쉽게 힘을 얻었으니 당연히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그럼 독약을 복용해서 힘을 얻는 방법을 포기하면 그런 결과는 피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

“음……”

“하지만 말이다…너 같으면 평범한 사람이 몇 년에 걸쳐 쌓아야 할 염력을 약 한 번 삼키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유혹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 결국 재난독체를 가진 사람들은 점점 더 독에 끌리고, 강한 독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독을 빼앗지. 어떤 때는 더 강한 독을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독을 만들기도 하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게야. 그러다가 악행을 저지르고, 최종적으로는 제 목숨도 버리게 되는 것이지.”

약로의 말에 준은 왠지 할 말이 없어졌다. 자신 역시 연금비약의 힘을 빌어 강해지지 않았던가, 약로의 말을 듣고 자신이 재난독체를 가졌더라면…하는 생각을 해보자 그 유혹을 이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아이가 한 번도 독약을 먹지 않았다면 재난독체가 열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일단 복용을 했다면…설령 실수로 복용을 했다하더라도 재난독체가 열리게 되어 있어. 그 다음에는…누구의 말도 소용이 없지. 그야말로 불꽃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파멸을 향해 달리는 것 밖에 남지 않은 운명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여자의 몸이 아직 본격적으로 독기를 품기 전이라는 것 정도 이지. 독체가 성숙해지면 만지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테니까.”

약로의 설명을 듣자 준은 그제서야 요 며칠 사이 아라가 했던 괴상한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라는…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청산마을은 은빛성보다도 훨씬 작은 마을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을리가…”

약로는 짐작가는 바가 있다는 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아라의 품에 있던 칠색 두루마리가 허공을 가르고 그에게 날아왔고, 약로는 기묘한 색상의 두루마리가 펼친 뒤 그것을 준에게 넘겨주었다.

[재난독체 : 독약을 삼켜 빠른 시간 안에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독특한 체질. 아랫배에 있는 한 줄기의 작은 칠색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 칠색 선은 몸 속에 함유 된 독의 농도에 따라 길어지며, 칠색 선이 심장 위치에 도달하는 순간 최고의 힘을 얻게 됨. 단, 칠색선이 심장까지 도달하면 결코 살아날 수 없고, 끔찍한 고통속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됨.]

문장 아래에는 아주 자세하게 재난독체가 어떤 파괴력을 가졌는지 역시 잘 적혀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거군요. 이렇게 계속 하다가는 조만간 몸에 모든 독을 품게 될 것까지…”

이준은 그 두루마리를 약로한테 건네준 뒤 아라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재난독체는 모든 독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왜…?”

“독 효력이 너무 세서 잠시 기절했을 뿐이야. 곧 일어날 것 이다. 절대로 저 여자의 몸에 손대지 말거라. 알았느냐?”

“네.”

약로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준의 반지 안으로 들어갔고, 준은 반대편 상에 걸터앉아 조용히 아라를 바라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피부에 은은하게 비추던 기이한 빛이 조금씩 더 옅어지고 있었다.

‘이제 깨어나는건가…’

다시 몇분 정도가 지나고, 아라의 눈꺼풀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검은색 독약을 바라본 뒤 씁쓸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눈물을 떨구었다.

“또 참지 못했어…어떡하면 좋아.”

의자에 앉아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준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 쓴 그녀의 몸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인기척에 깜짝 놀란 아라가 이불을 확 내리자 침대 옆에 앉은 소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준을 발견한 아라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너…어떻게 들어왔어?”

“네가 의식을 잃은 후에 들어왔어.”

잠시 후, 아라는 잠시 준을 바라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검은색 독약을 품안에 감췄다.

“너 설마…”

“아직도 나를 몰라? 내가 남이 위급한 상황을 틈타 해치는 그런 인간으로 보여?”

“아니,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내 말은…내 몸에 손 댔어?”

“아니.”

이준이 머리를 젓자 아라는 그제야 안도한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무릎을 굽히고 앉아 턱을 무릎에 대면서 낮게 말했다.

“나 괜찮아. 그냥 약을 정제할 때 조금 실수가 있었을 뿐이야.”

“너…그 물건을 끊을 수는 없는 거야?”

“무, 무슨 소리야?”

“무슨 뜻인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자 아라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그럼 너도 이제 내가 무섭지?”

하지만 소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토닥 하면서 말했다.

“무서우면 네가 깰 때까지 기다렸겠어?”

“진짜 내가 안 무서워? 그럼 앞으로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당연하지! 맛만 있는걸! 아마 독이 들었다고 해도 먹을지도 몰라.”

준의 시덥잖은 농담에 결국 아라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라가 독약을 먹고 쓰러진 날 이후, 또 다시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아라는 이준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전과 다름 없는 태도로 자신을 대하자 크게 감동을 받은 듯 이전보다 더욱 준을 신뢰하고 아끼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사이, 준의 실력은 또 다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이제 그의 보라색 불꽃은 손바닥을 감싸는 수준이 아니라 팔뚝을 타고 올라가 팔꿈치를 뒤덮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하압!”

쾅!

보라색 불꽃으로 뒤덮인 주먹으로 땅을 치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졌고, 준은 하늘사자의 불꽃이 가진 놀라운 위력에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럭저럭 쓸만하구나. 하지만 이제 마수의 불꽃이 가진 힘과 네 힘이 대등해졌으니, 더 이상 그 불꽃을 키우면 그 불꽃이 너를 집어삼킬게다.”

준의 수련을 지켜보던 약로의 말에 준 역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제 염력 회오리속에 있는 보라색 불꽃을 점점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좋아…그럼 이제 때가 됐구나.”

드디어 스승의 승낙이 떨어졌다. 지난 한달 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온 것이다. 소년의 눈은 기대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언제 시작할까요?”

“내일 점심에 하도록 하자. 그리고 오늘은 준비할 것이 있다.”

“네!”

제자가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약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우선 혈관 보호약과 호수의 약, 두 가지 연금비약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연금비약은 모두 2레벨의 연금 비약이니 아직 1레벨 연금술사인 네 실력으로는 정제할 수가 없지만…네게는 하늘사자의 불꽃이 있으니 가능할게다. 혈관 보호약은 이름 그대로 혈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마수의 불꽃은 일반적인 염력으로 만들어진 불꽃과 달리 파괴력이 엄청나니 혈관을 지켜야해. 혈관은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 절대로 다쳐서는 안 된다. 게다가 마수의 불꽃은 천성적으로 난폭한 불꽃이니 그 불꽃을 삼키는 과정에서 네 정신을 공격할게다. 그리고 그 힘에 먹히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겪게 될테니 이 두 가지 연금 비약은 반드시 필요하지.”

약로의 무거운 표정에 준 역시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연금비약의 조합표를 주마. 그리고 2레벨의 나무 속성 마정석과 얼음속성 마정석을 구해야 한다.”

노인의 손가락이 준의 이마에 닿자, 연금비약의 제조에 필요한 약초들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무속성과 얼음 속성의 2레벨 마정석이요?”

현재 준의 저장반지 안에는 얼음 속성의 2레벨 마정석 한 알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하여 힘들게 2레벨 마수 한 마리를 죽여 얻은 것으니, 나무 속성의 마정석을 얻으려면 꼼짝없이 마수 사냥을 나서야 할 판 이었다.

준은 눈을 감고 조합표에 들어있던 약재들을 확인한 뒤 아라에게 가서 잠시 계곡밖에 나갔다 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라는 2레벨 마수라는 말에 그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는 방해만 될 뿐 이었고, 준의 실력으로는 아라를 지키면서 2레벨 마수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준을 따라나서는 것을 포기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독약 하나를 건넸고, 이준 역시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여 독약을 저장반지 안에 넣은 뒤 마수 사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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