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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9화 (79/818)

제79화. 독술사의 길

“음…전보다는 낫지만 아직 스승님의 불꽃보다는 많이 약한 것 같아요…”

소년의 얼굴에 조금은 실망한 듯한 기색이 비치자 약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흥! 이놈아, 내 얼음불꽃의 정수는 천지의 불꽃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불꽃이다. 마수의 불꽃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최상위급의 마수의 불꽃이라 해도 천지의 불꽃에는 비할 바가 못 돼. 그래도 이 불꽃을 잘 키워내면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어. 아직 갓난아이 같은 불꽃이라 그런 것 이다. 잘만 키우면 천지의 불꽃만큼은 아니어도, 그 때 하늘사자가 사용했던 불꽃처럼 투황급의 상대에게도 먹힐만한 불꽃이니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하지만 제자는 아직도 자신의 불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십 년? 이십년?”

“본래대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너에게는 하늘사자의 정수가 있지 않느냐.”

스승의 한마디에 준은 눈을 반짝이며 허둥지둥 저장반지 안에서 하늘사자의 정수가 담긴 약병을 꺼내들었다.

“앞으로는 반드시 햇볕이 가장 뜨거운 때, 가장 뜨거운 장소에서 수련을 하거라. 그리고 하늘사자의 정수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지금 네 실력으로는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먹는 정도면 충분할게다. 욕심을 부려 지난번 같은 꼴을 겪고 싶지는 않겠지?”

약로의 말에 준은 얼마 전 겪었던 고통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졌다.

“명심하거라. 지난번처럼 욕심을 부리다가는 정말로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딱 한 달만 차분하게 하늘사자의 정수를 이용해 불꽃을 키워봐라. 그럼 불개를 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진화’라는 한 마디에 준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한 달이요? 한 달이면 되는 건가요?”

“왜? 자신이 없느냐?”

“아뇨! 좋아요! 그럼 한 달 뒤에 불개를 진화시켜보죠!”

* * *

수련을 마치고 산굴을 나서자 정오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를 걷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약초를 채집해 돌아오는 아라의 모습이 보였다.

준이 반갑게 손을 흔들자, 아라 역시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준이 숨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지만,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물어볼 마음이 없었다.

“배고프지? 내가 점심밥 만들어줄게.”

그녀는 준과 함께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소매를 걷고 불을 지펴 요리를 시작했다. 아라의 요리 솜씨는 제법 뛰어나서, 같은 손으로 독약을 만든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독술사는 투기대륙에서 공포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었다. 특히 높은 경지에 오른 독술사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적을 암살할 수 있었으니, 많은 투사들이 독술사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독술사의 전략은 대부분 몰래 독을 타거나 전투 중에 독을 뿌리거나 묻혀 적을 죽이는 것으로, 이런 전투 방식은 많은 강자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하여간 무서운 여자라니까…’

준은 한창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아라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언제 여기를 떠날 거야?”

“응? 왜?”

“아니, 별건 아니고…나는 보름이나 한 달 정도는 여기에 더 머물러야 될 것 같아서.”

“괜찮아. 마음 편하게 있어. 나도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거든. 아직까지는 천천히 투기대륙 곳곳을 돌아다니겠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어.”

“투기대륙을 돌아다닌다고?”

준이 부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아라가 웃음을 지었다.

“관심이 있으면 같이 갈까? 너 정도로 실력 있고 마음 맞는 친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하하, 나도 그러고 싶지만…당분간은 무리야. 중요한 일이 남아 있거든.”

“아쉽네… 너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는데 말이야.”

그녀의 호의적인 말투에 준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말을 마친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한가지 충고를 건넸다.

“그리고…혼자 다니게 되면 독술사라는 직업은 숨기는게 좋을거야. 지금처럼 의술사로 행동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의술사는 모두 좋아하지만, 독술사는 모두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니까.”

준의 한마디에 아라는 긴 한숨을 내쉰 뒤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난 꼭 독술사로 성공할거야. 그리고…내가 유명한 독술사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좋은 친구로 남아줬으면 해…”

준은 갑작스럽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 아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그만하자. 얼른 먹어.”

그러자 그녀는 다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만든 버섯 수프를 가득 담아 조심스레 준에게 건넸다.

“와…”

준은 맛있는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은 뒤 단숨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그녀의 요리를 먹어치웠고, 몇 번이나 다시 그릇을 가득 채워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식사를 했다.

“오오…정말 대단해…설마 이런 외딴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걸 먹게 될 줄은 몰랐다고.”

준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배를 두드리며 아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쉰 뒤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야. 그런데 말이야, 독술사로 유명해지면 아무도 내 요리를 먹어주지 않을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또 다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요리를 만들 때 내뱉었던 말을 반복했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꼭 지금처럼 좋은 친구로 대해줬으면 좋겠어.”

준은 자꾸만 어딘가 슬픈 표정으로 그 말을 반복하는 그녀를 보며 영문을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라는 준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그릇을 들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 * *

소년은 바위 위에 앉아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일지를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아라의 말이 몹시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말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녀가 유명한 독술사가 됐다고 해서 자신이 그녀를 미워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참…이상한 소리를 한단 말이야.’

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찾았다.

‘음…저기가 좋겠어.’

쿵!

경쾌한 폭발음과 함께 준의 몸이 총알처럼 벼랑을 향해 튕겨 올라가고, 연달아 다섯 번의 폭발음이 울리자, 벼랑 위에 소년의 그림자 하나가 우뚝 섰다.

햇볕이 한창 뜨거운 시간대인지라 벼랑 위에 있는 바위들은 모두 뜨끈뜨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위 위에 발을 올리자 후끈거리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온 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가볍게 훔쳐낸 뒤 햇볕이 정오의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자세를 취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있던 불속성의 기운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에게 빨려 들어가 혈관을 타고 흘렀고, 순식간에 소년의 염력회오리에 빨려 들어갔다.

……

그렇게 한참 동안 외부의 기운을 흡수한 뒤, 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저장반지 속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준이 손가락으로 그 안의 액체를 찍어 핥자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그의 전신이 점차 붉을 빛을 띠기 시작했다.

하늘사자의 정수가 가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전신을 타고 흐르자, 준은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 * *

준이 하늘사자의 보라색 불꽃을 키우기 시작한지 보름째 되던 날, 새끼 손톱만하던 보라색 불꽃의 크기는 이미 몇 십 배나 자라 있었다.

오늘도 준은 온 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수의 불꽃을 키우기 시작한 이 후 그의 염력 회오리는 더욱 거대하고 농밀해졌으며, 회오리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며 염력이 쌓이는 속도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후……”

눈을 감고 수련에 열중한 뒤 두 시간이 흐르고…수련을 마친 준이 염력을 이동시키자 등 뒤에서 매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 사이 그의 날개는 몰라볼 정도로 커져있었고, 예전에 약로가 준의 몸을 빌려 날개를 펼쳤을 때처럼 보라색 빛이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흠…”

잠시 후,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자 은은하게 보라색 빛을 내뿜는 날개가 천천히 펄럭이며 그를 우아하게 바닥에 안착시켰다.

“좋아, 좋아.”

하지만 흡족한 표정으로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던 준은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다른 느낌에 이마를 찌푸렸다.

‘이상하네…채집을 끝내고 돌아올 시간인데…’

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두막 앞으로 걸어가 조용히 문을 두드려 보았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쿵쿵쿵!

다시 몇 번이나 문을 세게 두드려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든 준은 잠시 망설이다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콜록!”

문이 열리자 방안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준은 기침을 반복하며 척력장을 사용해 방안의 연기를 날려 보냈다. 그 때, 준의 눈에 침대 위에 두 눈을 꼭 감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아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숨이 끊긴 듯한 아라의 모습에 이준이 급히 앞으로 뛰어 가려는 순간, 준의 머릿속에 약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가까이 가지마!”

약로의 호통에 깜짝 놀란 준이 발걸음을 멈추자 약로가 모습을 나타냈다.

“죽고 싶거든, 저 여자를 만지거라.”

“네?”

“가만히 있어!”

약로는 준에게 또 다시 소리를 지른 뒤 혼수상태에 빠진 듯 한 아라의 주위를 빙빙 돌며 그녀를 관찰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어두워진 약로의 얼굴을 보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스승님, 대체 왜 그러세요?

“저 여자를 자세히 보거라. 특히 손을.”

약로의 말에 따라 아라의 몸을 천천히 살펴보니, 그녀의 피부 위에 어렴풋하게 기묘한 색의 빛이 번갈아가며 떠오르고 있었고, 그녀의 손바닥 안에는 검은색 약가루가 쥐어져 있었다.

“저게 뭐죠?”

준은 조심스럽게 아라에게 다가간 뒤 그 약가루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우욱…!”

“확실히 독을 만드는 데는 대단한 재능이 있는 아이인 것 같구나.”

약로는 독향(毒香)을 맡고 현기증을 느껴 구역질을 하며 비틀거리는 제자를 옆에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여자의 입가를 다시 자세히 보거라.”

스승의 말에 따라 아라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입술 주위에 검은색 가루가 묻어 있었다.

“서…설마? 자살…?”

깜짝 놀란 준이 몸을 움직여 그녀를 만지려 하자, 약로는 즉시 준의 손목을 붙잡았다.

“만지지 말라니까! 죽은 사람이 저리 혈색이 좋겠느냐?”

“하지만…지금 독을…”

“평범한 사람이라면 진즉에 죽었겠지…하지만 저 여자는 아니야.”

“네? 아무리 독술사라고 해도…독을 먹어도 괜찮은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라는게 있는 법…‘천생독체’, ‘재난독체’ 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

준이 조용히 고개를 젓자, 약로가 설명을 계속했다.

“너는 은빛성에만 있었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던 시절, 투기대륙에 재난독체를 가진 여인이 나타난 적이 있다.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약로의 표정은 이제껏 보았던 어떤 표정보다도 무겁고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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