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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8화 (78/818)

제78화. 보라색 불꽃

공중에서 폐허가 된 용병단의 본부를 내려다보던 아라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하늘 수리와 함께 천천히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이준의 옆으로 달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됐어?”

“적어도… 중상은 입었을 거야. 콜록…”

“괜찮아?”

아라는 창백해진 준의 얼굴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힘이 좀 빠졌을 뿐이야.”

이준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무너져 내린 벽 아래서 꿈틀거리는 강헌의 몸을 바라보다가 검은 송곳을 움켜쥐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송곳을 가볍게 휘둘러 돌을 치워내자 두 다리가 사라진 강헌의 모습이 드러났다.

“내, 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 봤구나.”

강헌은 이미 숨조차 쉬기가 힘든 듯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내…너를 절대, 가만 두지 않을…”

하지만 강헌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준에게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럴 기회가 올까?”

소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강헌을 비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 돌 상자에서 얻은 3격 무투기는?”

“그걸 갖고 싶으냐? 하지만 내가 죽으면 넌 영원히 그걸 얻지 못할 걸.”

“설마…지금 그걸 믿고 이렇게 당당한거야?”

싸늘한 한 마디와 함께 검은 송곳이 다시 허공에서 춤을 추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헌의 가슴에서 피가 튀어올랐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는 소년의 태도에 강헌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살려주면, 내가 3격 무투기를 어디에 숨겼는지 알려줄게. 그리고 이제 우리 사이의 원한도 깨끗이 지우는 걸로…”

강헌은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느끼자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거래를 제안했지만…때는 이미 늦었다.

“필요없어.”

퍽…

다시 한번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지고…그것이 끝이었다.

……

준은 폐허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뒤 몸을 돌려 아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늑대머리용병단도 이제 우두머리가 없으니 뿔뿔이 흩어지겠지. 늑대머리 용병단은 이제 이 땅에서 사라졌어.”

아라는 소년이 보여주는 공포스러운 일면에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헌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용병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하나 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치고 있었다.

아라는 몸을 돌려 이준을 부축해 독수리의 등에 태운 뒤 자신도 독수리에 올라탔다. 그녀가 손을 들자 파란 하늘 수리가 낮은 울음 소리를 토하며 천천히 날개짓을 거듭했다.

* * *

20살도 되지 않은 소년 하나가 3대 용병단 중 하나를 박살냈다는 소식은 얼마 되지 않아 청산 마을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며칠 뒤 강헌을 죽인 사람이 천둥산에 들어갔던 바로 그 소년이고, 정면으로 늑대 머리 용병단의 단장 셋의 숨통을 끊고 강재를 일격에 폐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내막이 퍼져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넘어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 * *

며칠 후, 준은 청산마을을 나와 아라와 함께 하늘 수리를 타고 이전에 약초채집단과 함께 갔던 분지 근처에 와 있었다.

아라는 하늘 수리와 함께 준을 분지에서 조금 더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계곡으로 데려갔다.

계곡에서는 기분 좋은 약내음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좋은 기운이 가득했고, 공기를 들이키는 것만으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때? 여기 좋지? 여기 작은 계곡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야. 그리고 하늘도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이야. 소란이가 아니었으면 나도 몰랐을걸. 매번 약초를 캐러 이 근처에 오면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 했으니까.”

“그러게…정말 좋은곳이네.”

준은 진심으로 감동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갖 진귀한 약초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마도 이 곳의 공기가 이토록 맑고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듯 했다.

“우리 며칠만 여기에 머무는 게 어때? 칠색독경 중에 필요한 약초들이 마침 여기에 있어서……”

아라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준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좋은 수련 장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무투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준이 호탕하게 대답하자 아라도 활짝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가 독수리를 향해 피리를 불자 하늘 수리가 날개짓을 해 계곡을 벗어났다. 아라는 이준을 데리고 작은 계곡의 구석 진 곳으로 가더니 손으로 조그마한 오두막 집을 가리켰다.

“저 오두막 집은 전에 왔을 때 내가 지었어. 우린 앞으로 저기서 지내면 될 거야.”

“어…우리…그런 사이였어?”

준이 짖궂게 농을 던지자 아라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주먹을 날려댔다.

“뭐어? 내 실력이 너보다 낮다고 무시하지 마.”

“하이고오…그러다 언제 또 독을 탈지 모르는 여자를 어떻게 무시해요.”

“흥!”

아라는 한마디도지지 않는 준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나는 약초 채집하러 갈 거야. 너 마음대로 구경 해.”

준은 아라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조용히 중얼거렸다.

“스승님, 여긴 아무 문제없겠죠?”

“여기 지형이 아주 특이하구나. 바깥에는 이렇게 진귀한 약초들이 많이 자랄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곳의 기운이 매우 순수하니…네가 수련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야. 여기에서 한두 달 정도 수련하면 진정한 무투사가 될 것 같구나.”

“무투사요?”

준은 또 다시 새로운 단계에 오른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아주 중요한 것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이제 수련을 떠난지도 반 년이나 지났네요. 그리고…약속했던 3년까지는 1년도 안 남았구요.”

“그래, 그러니 이제 수련 속도를 조금 더 올려보자꾸나. 천둥산에서의 수련이 끝나면 다음은 타르 사막이다. 여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굴려줄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게야.”

약로의 한마디에 준은 또 다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더 굴린다구요?”

* * *

외부와 차단된 작은 계곡.

이준과 아라는 각각 염력 수련과 독경 수련에 전념하며 평화롭고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무투사가 되는 것은 애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는데, 보름 정도의 수련을 통해 염력이 많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준은 아직 무투사가 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스승의 말에 따라 조급해질 때면 무투기를 연습하거나, 약초 아래에 가서 약초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연금술은 아라 앞에서 연습할 수 없었으니, 결국 계곡 주위에서 작은 산굴을 하나 찾아 그 속에서 연금비약을 정제하는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금비약을 정제하던 과정에서 준은 놀랍게도 자신이 약솥 속에 넣는 노란색의 불길이 전보다 더욱 뜨거워졌음을 발견하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노란색 불길과 함께 보라색 빛이 은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설마, 이것은 하늘사자의 보라색 불꽃?”

“이 불이 어떻게 내 몸 속으로 들어온 거지?”

“설마 하늘사자의 정수 때문인가?”

준은 약솥 속에 있는 불꽃 중에서 양이 가장 적은 보라색 불꽃을 노란색 불길에서 천천히 분리해 옮겼다. 하지만 보라색 불꽃은 과연 마수의 불꽃답게 좀처럼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쉽지 않네……”

그는 미간을 찌푸린채 한참동안이나 정신을 집중하고 보라색 불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보라색 불꽃은 여전히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준이 막 포기하려던 순간, 보라색 불꽃이 노란색 불꽃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고, 준이 약솥에서 손을 떼자 노란 불과 뒤섞인 상태 그대로 준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

정신을 집중하자 자신의 염력회오리에도 어느새 보라색 불꽃이 섞여 있었다. 준은 시험 삼아 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정신을 집중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손끝에서 작은 보라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스승님, 빨리 나와 보세요!”

“응?”

제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약로는 준의 손가락 위에 있는 보라색 불꽃을 바라보고는 흥분한 표정으로 그 불꽃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천지의 불꽃? 아니, 아니지. 그것보다는 약한데. 혹시…하늘사자의 불꽃이냐?”

“네, 맞아요”

“하늘사자의 정수에 이런 효과까지 있을 줄은 몰랐구나…”

“하늘사자의 불꽃도 천지의 불꽃에 속하나요?”

“아니, 그건 아니다. 다만 이것도 기이한 불꽃이긴 하지…천지의 불꽃에 비하면 힘은 부족하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불꽃보다는 훨씬 상위의 불꽃이라고 볼 수는 있겠구나.”

“음…그럼 이제 제가 이 불꽃의 주인이 된 건가요? 혹시 이 불꽃에 삼켜진다거나…”

“아니다, 이 불꽃은 너무 작아 아직 너를 삼킬 힘이 없을게야.”

“음…그럼…이 불꽃으로 불개를 진화시키는 건요?”

준의 질문에 약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가능은 할 것 같구나. 다만, 진화할 수 있다고 해도 아주 높은 수준까지 진화할 수는 없을게야. 이 불꽃은 천지의 불꽃에 비하면 너무 약하니까. 게다가 아직은 불꽃이 너무 작아 삼킨다고 해도 아무 효과도 없을게다. 하지만…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스승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년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게 어떤 방법이에요?”

“이것을 네 염력으로 키워보거라. 그리고 어느 정도 커지면 불개를 사용하여 삼키는 것이지. 그렇게 진화의 효과를 만드는 거야”

“네? 무슨 닭이나 돼지도 아니고… 불꽃을 성장시켜서 먹으라는 거예요?”

“그래. 바로 그 말이다. 이 보라색 불꽃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네 불꽃으로 이 불꽃을 키울 수 있다.”

준이 자신의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약로는 즉시 자신의 손가락을 제자의 머리 위에 가져다 댔다.

준은 약로가 전해준 정보에서 본대로 먼저 정신을 집중해 영혼 탐지능력으로 자신의 몸 안에 존재하는 보라색 불꽃을 끌어 모았다.

잠시 후 보라색 불꽃이 모이기 시작하자 그는 정신을 집중해 노란색 불꽃으로 새로운 불꽃을 감싸 회오리의 정중앙에 보라색 불꽃을 위치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염력 회오리의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하게 요동치는 회오리의 바깥 부분과는 반대로 보라색 불꽃이 자리 잡은 회오리의 중심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나자 보라색 불꽃은 노란색 불꽃을 흡수하며 점점 짙고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보라색 불꽃이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의 모든 노란색 불꽃을 흡수하게 되자 준의 염력 회오리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 *

이준이 두 눈을 천천히 뜨자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성공했느냐?”

이준이 눈을 뜨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약로가 웃으며 물었다.

“네!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된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준이 손을 앞으로 내 밀고 손가락을 튕기자 가늘고 작은 보라색 불꽃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아름답게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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