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무투사와의 결전
“가라! 저 자식을 죽여버려!”
강헌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퍼지자, 주위의 용병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준에게 달려들었다.
“끼이익!”
하지만 용병들이 준을 막 공격하려는 찰나, 하늘 위에서 거대한 독수리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하늘에서 싸락눈 같은 하얀 가루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뭣들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놈을 쳐!”
강헌의 호통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려던 용병들이 다시 몸을 날렸다.
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가볍게 숨을 내쉰 뒤 검은 송곳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검은 송곳이 준의 팔을 따라 허공에서 춤을 추자, 눈 깜짝할 사이에 너댓명의 용병이 피를 흘리며 나가 떨어졌다.
쿵!!!
검은 송곳이 준의 발아래 꽂히자 그 무게로 인해 바닥에 금이 가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용병들의 표정에는 공포와 놀라움이 가득했다.
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으로 검은 송곳을 붙잡은 채 왼손을 펼쳐 흡장을 사용한 뒤, 하얀 가루들이 손 안에 모이자마자 척력장을 사용해 하얀색 가루를 용병들에게 날려댔다.
“켁…켁…!”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번갈아가며 발휘되니 하얀색 가루가 회오리 바람마냥 소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고, 백색 가루의 회오리에 휘말린 용병들은 하나 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가루가 이상하다! 뒤로 물러서!”
하얀색 가루를 한모금 들이킨 강헌이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무투사인 그는 무사했지만 대부분의 용병들은 연신 기침을 해대며 나자빠지기 시작했고, 실력이 조금 높은 몇 몇만이 간신히 구석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강헌이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염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가루를 날려 보내 보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물 먹은 솜처럼 바닥에 늘러붙어 있는 부하들의 모습 뿐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하들이 몰살당하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네 이 놈! 감히 독약을 사용해?”
“아니, 아저씨. 이봐요. 어린애 하나한테 이렇게 떼로 달려 들어놓고, 독약 좀 썼다고 화를 내면 안되지!”
준은 뻔뻔한 표정으로 독약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광경을 훑어보며 실실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 때, 땅바닥에 엎어져 있던 용병 중 하나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날카로운 비수로 이준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준은 눈썹하나 까딱 않고 손에 쥔 검은 송곳을 내리꽂아 가볍게 비수를 막아냈다.
팅!
비수와 검은 송곳이 맞부딪히자 불꽃이 튕겼지만, 검은 송곳에는 작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기습이 실패하자 준을 향해 칼을 날렸던 사내는 즉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 가?”
하지만 이준은 자신을 죽이려한 상대를 용서할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소년이 발을 구르자 폭발음과 함께 번개처럼 그의 몸이 튀어나갔고, 준은 자신을 기습한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준을 습격한 것은 다름아닌 강재였다. 그는 멀찍이 뒤에 있다가 꾀를 부려 중독된 척 하고 쓰러져 있다가 준을 암살하려 했지만,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강재야!”
강헌 역시 강재의 얕은 꾀를 알지 못 했던 듯 했다. 그는 기습에 실패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사람이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자마자 새파랗게 질려 소리를 질렀다.
“이미 늦었어!”
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염력을 끌어올린 뒤 강재의 가슴을 향해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강재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힘에 새하얗게 질린 채 젖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준에게 대적하려 했다.
퍽…!
그러나 9성 투사인 강호조차 일방적으로 유린할 수 있는 준에게 강재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검은 송곳이 허공을 가르자, 강재는 저항다운 저항조차 해보지 못 하고 그대로 가슴을 얻어 맞고 피를 토했다.
퍽!
준은 강재가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그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고, 번개와도 같은 발차기에 걷어차인 강재는 힘 없이 날아가 커다란 말뚝에 부딪힌 뒤 또 한 번 피를 토하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강재야!”
자신의 아들이 손 한번 뻗어 보지 못 하고 개처럼 얻어맞아 기절하는 모습을 본 강헌은 잠시 넋이나간 듯 멍하니 서있다가 황급히 달려가 강재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강재야! 강재야!”
강헌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강재의 맥을 짚어보고는 즉시 부하들에게 강재를 맡기고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건방진 애송이…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라!”
준은 강헌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실려 들어가는 강재를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강헌은 싸늘한 표정으로 준을 노려보며 창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 표면에 청색 염력이 천천히 피어오르며 얇은 막처럼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염력으로 방어막을 만드는 것은 무투사 수준에 오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이 방어막은 주인을 방어해 줄뿐만 아니라 속도와 공격도 더욱 빠르게해주고, 외부의 기운을 더욱 많이 빨아들여 소모된 염력을 빠르게 보충하는 작용을 해주는 것 이었다.
그리고 무투사가 이 염력 방어막을 꺼낸다는 것은 곧, 전력으로 전투에 임할 태세를 갖추었다는 의미였다.
천천히 방어막을 완성한 강헌을 보며 이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무투사는 무투사군.’
“흡!”
방어막이 완성되자마자 강헌은 낮은 기합 소리와 함께 발을 구르며 준을 향해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그가 손에 든 창을 휘두르자 놀랍게도 공중에 하얀색 창들이 눈꽃처럼 피어나 준의 급소를 향해 날아 들었다.
팅! 칭! 칭!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창과 검은 송곳이 부딪치며 사방에 불꽃이 튕기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흥!”
눈을 가늘게 뜬 강헌이 차갑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창 자루를 힘껏 치자, 긴 창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헌의 창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보일 정도로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쾅!
준은 폭풍걸음 사용해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고, 강헌 역시 발끝으로 땅바닥을 차며 빠르게 준을 따라갔다. 무투사의 맹공 앞에 이준은 어느 새 벽까지 몰려있었다.
“어딜 도망가!”
이준은 즉시 벽에 발을 딛고 폭풍걸음과 척력장을 모두 사용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의 몸이 방향을 틀었고, 준은 그 회전력을 그대로 활용해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갑작스레 폭발한 무시무시한 기세에 강헌이 놀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염력을 끌어올리니 순식간에 그의 창 끝이 청색 회오리로 뒤덮이고, 바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두 쇠붙이가 다시 한번 격돌했다.
깡!
그리고…강헌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준이 무기를 놓치고 만 것 이다.
검은 쇠붙이가 허공으로 튀어오르자, 두 사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먼저 쇠붙이를 붙잡은 것은 바로 강헌이었다.
하지만 적의 무기를 빼앗고도 얼굴이 굳은 것은 오히려 강헌이었고, 무기를 빼앗긴 준의 얼굴에는 여유만만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강헌은 검은 송곳을 손에 쥐자 마자 무시무시한 기운에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게다가 이 기이한 쇠붙이는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의 염력을 거짓말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염력과 함께 움직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미친 놈…뭐 이딴걸 짊어지고…’
강헌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황급히 검은 송곳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
“태초의 힘!”
강헌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황급히 염력 방어막을 강화했지만, 이미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대의 주먹이 그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크윽…”
강헌은 잽싸게 앞으로 몸을 날린 뒤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민첩하게 몸을 굴려 준의 공격을 회피했다.
‘위험했…’
하지만 별 타격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막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젠장…!”
펑!
“우욱…”
“아깝군.”
강헌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너 같이 어린놈이 이런 고급 무투기를 사용하는거냐…”
그는 준의 무투기가 단순히 몸의 외부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몸속에 염력을 집어넣어 폭발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하자, 갑자기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웃으며 입을 우물거렸다. 싸움에 임하기 전 미리 입안에 숨겨놓은 기력의 조각 한 알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염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크큭…하지만 너만 고급 무투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강헌이 창으로 땅을 힘껏 내리찍자,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방어막이 사라지며 창 위에 청색 투기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너와 아라 덕분에…나한테 딱 맞는 고급 무투기를 얻었거든. 오늘 내가 그 무투기로 너를 죽여주마!”
강헌의 광기 어린 웃음 소리를 들은 이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준은 열쇠가 자기 손에 있었으니 설마 그 돌함을 강제로 열고 거기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던 것 이었다.
강헌의 창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염력을 보며 준은 그것이 적어도 3격 수준의 투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강헌의 손에 쥐어진 창에 더욱 많은 염력이 모여들자, 창 끝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머리 형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애송이! 내가 오늘 무투사가 사용하는 3격 상의 투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강헌은 호랑이의 형상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해지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창 끝을 앞으로 향한 뒤 발을 굴러 이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맹호의 발톱!”
그러자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그의 창 끝에 질주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나타나고, 맹수의 울부짖음 소리와도 같은 우렁찬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은 송곳에 전력을 다해 염력을 불어넣었고, 이윽고 검은 송곳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태양검!”
소년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주위의 공기가 달아오르고, 검은 송곳의 표면에 기이한 붉은 문양이 떠오르자 지상에 태양이라도 떠오른 듯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이럴수가.”
강헌은 대지를 불사를 듯 뜨겁게 타오르는 준의 무투기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무투기의 위력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 이었지만, 그도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것 이다.
“젠장! 죽어라!”
그는 자신의 모든 염력을 바닥까지 쥐어짜내 창에 불어넣으며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준의 무투기에 달려들었다.
……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돌풍이 몰아닥치고, 붉은 빛과 강헌이 부딪힌 곳을 기점으로 해서 사방 팔방으로 커다란 금들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붉은 빛이 사라지며 정적이 감돌고, 다시 굉음과 함께 붉은 빛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튕겨져 나온 그림자는 공중에서 피를 토하다가 벽에 부딪히고는 땅에 떨어졌고, 그가 부딪힌 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쿵!
곧이어 바람이 불어 흙먼지를 날려보내자…검은 송곳을 움켜 쥔 소년의 모습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