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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2화 (72/818)

제72화. 하늘 사자의 수정

준은 한숨을 내쉬며 스승을 쳐다보았다. 약로라면 이 받침대에서 하늘사자의 정수를 꺼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준과 눈이 마주친 약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내가 이 물건을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나라도 이 물건을 조용히 파내는 것은 불가능하니 놈이 눈치를 챌 테고, 그렇다면 이 귀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어.”

약로의 설명에 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 구체는 하늘 사자의 정수가 아니라, 그 껍데기라고 보면 된다. 정수를 흡수하려면 한 입에 뱃속에 삼켜 몸 속에서 녹여내거나, 강제로 깨서 그 속의 정수를 꺼내야 하지. 물론…그 어떤 공격으로도 이 껍데기를 깰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한 입에 삼킨다고요?”

준을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구체는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크기였으니, 도저히 한 입에 삼킬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옛날에 스승님도 이 물건을 찾아 다녔다면서요.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찾아 다녔을 것 아니에요.”

“힘으로는 절대 못 열어. 이것을 열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지.”

“무슨 방법인데요?”

약로는 준의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손가락으로 은지가 준 수정 구슬을 가리켰다.

“이 수정 구슬이요? 아니지, 그러니까…하늘 사자의 수정이군요?”

“그래, 하늘 사자의 수정이 있어야만 이 물건을 열 수가 있어!”

노인이 머리를 끄덕이자 준은 신이 나서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요. 빨리 하늘 사자의 수정을 찾아야죠!”

이준은 신이 나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아까 전 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하늘 사자의 수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로는 화색이 만연해 달려가는 제자를 따라 날아가며 한 가지 사실을 일러주었다.

“아참, 아까 말했다시피 하늘 사자의 정수가 있다는 것은 하늘 사자가 출산을 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 동굴 어딘가에 아마도 하늘 사자의 새끼가 있을 것이야.”

소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 거리다가 다시 달려나가며 사나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흥, 그래봤자 밖에 있는 그 사자왕보다 강하겠어요?”

“녀석, 자신감 하나는 맘에 든다니까…하지만 아직 자기 실력을 잘 모르는구나. 하하!”

……

순조롭게 왔던 길을 되돌아간 이준은 갈림길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통로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하늘 사자의 새끼가 있다는 말이 신경 쓰였는지 그는 돌멩이 하나조차 밟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통로를 통해 한참을 걸으니 눈앞이 다시 훤해졌다. 준은 동굴 입구에 몸을 찰싹 붙이고 보라색 수정으로 가득 찬 산굴 안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굴 안을 둘러보던 준의 눈길이 우뚝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작은 하늘 사자 한 마리가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저 꼬마는 3레벨 마수 수준 밖에 안된다. 싸워 봐.”

등 뒤에서 약로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살며시 울려퍼졌다.

“3레벨 이라고요?”

비록 은지가 준 염력이 있다고는 해도 지난번 하늘 사자의 위력을 본 준은 선뜻 싸움을 걸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스승님…스승님이 나서서 저 녀석을 좀 치워주시면 안되나요?”

준이 겁먹은 목소리로 부탁을 해보았지만 스승의 태도는 단호했다.

“천둥산 에서는 모든 걸 네 손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내가 전에도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정말로 죽게 생기지 않은 이상은 나서지 않을게다.”

“칫!”

소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스승을 흘겨보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흥…혼자서도 이길 수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년은 가만히 서서 저장반지를 어루만질 뿐 도저히 싸움을 걸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호오…작다고 얕잡아 보지 말거라. 작아도 전투력은 3레벨 최상급의 수준이니, 네 몸으로는 2격 무투기를 쓴다고 해도 승산이 없을게다.”

그러나 준은 약로의 말을 무시한 채 어느새 벽에 앉아 저장반지에서 무언가를 잔뜩 꺼내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저놈이랑 정면으로 붙을 줄 알았어요?”

그는 자신이 꺼낸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피다 연한 보라색의 열매와 청색 액체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불꽃의 열매?”

보라색 열매를 발견한 약로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준을 바라봤다.

“허 참, 그 녀석 준비를 철저하게 해 왔네. 불 속성 마수가 이런 걸 좋아하는 것도 알다니.”

불꽃의 열매는 천둥산 에서만 자라는 열매로, 소량의 불 속성 에너지가 함유되어 있어 많은 불 속성의 마수들이 좋아하는 열매였다.

준은 이번에도 약로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저장반지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내든 뒤 청색 액체를 담아 불꽃의 열매 속에 청색 액체를 집어넣었다.

“호오…얕은 꾀 쓰지 말거라. 새끼라고는 해도 그 사자왕의 자식이다. 네가 만든 독약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을게다.”

하지만 준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액체를 집어 넣었다.

“독약 같은거 아니에요. 이건 제가 만든 설사약 이라구요. 아무리 면역력이 강해도 별 수 없을걸요?”

“쯧쯧…여러모로 잔머리를 많이도 굴리는구나. 하지만 저 녀석도 3레벨 마수급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게다. 밖에 있는 사자왕 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가 좋은 녀석이지. 조금이라도 수상한 음식이라면 손을 대지 않을걸?”

그러나 제자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하, 두고 보자구요.”

준은 다시 저장반지에서 붉은색 물약 한병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기이한 향이 풍겨오며 식욕을 돋구었다.

“이건 제가 아기 돼지 풀로 만든 물약이에요. 이걸 불꽃 열매 속에 넣으면 분명 제 함정에 걸려들고 말걸요?”

약로는 저장반지에서 이것저것 꺼내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

약을 정제하는 연습을 하랬더니 이런 온갖 해괴망측한 것들을 만들어 가지고 다닐 것 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던 것 이다.

“이걸 먹더라도 놈이 자리를 뜬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그럼 아마도 헛수고일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에요. 이놈 틀림없이 배가 아프면 밖으로 나갈걸요? 이 굴 안에는 배설물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데요? 게다가 이 안으로 오는 길에도 배설물 같은건 전혀 보이지 않았구요. 아마 상당히 깔끔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리고 도와주시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방해하세요! 지금 제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고 있는 중 이라구요!”

준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불꽃의 열매 속에 청색 액체와 붉은 액체를 번갈아 한참이나 집어넣은 뒤에야 물건들을 다시 저장반지에 집어넣고 불꽃 열매를 동굴 입구에 내려놓았다.

그는 미끼를 내려놓자마자 땅을 차고 산굴의 위쪽으로 몸을 날린 뒤 흡장을 사용해 거미처럼 천장에 들러붙었다.

……

잠시 후, 바람이 불며 불꽃 열매의 독특한 향기가 서서히 동굴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기가 퍼져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꼬마 사자왕은 코를 실룩거리며 귀를 몇 번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눈을 떠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면서 동굴 안을 훑어보았다.

곧 이어 새끼 하늘 사자는 준이 내려놓은 불꽃의 열매를 발견한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꼬마 사자왕은 킁킁 거리며 열매의 냄새를 맡더니 경계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놈은 커다란 앞발로 보라색 열매를 두 어번 툭툭 건드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약로의 말대로 머리가 좋은 녀석인 듯 싶었다.

‘쳇…생각보다 의심이 많은 녀석이네…그럼 이제 어쩌지?’

하지만 준이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다른 계획을 세우려는 순간, 녀석이 다시 몸을 일으켜 불꽃 열매 쪽으로 걸어왔다. 놈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덥썩 불꽃의 열매를 집어삼켰다.

‘좋았어…!’

함정에 걸려든 꼬마 마수는 잠시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벌떡 일어나 동굴 밖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오오! 됐어! 아싸!’

꼬마 마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준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뻔 했다.

그는 꼬마 사자왕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바닥으로 내려가 수정 구슬을 꺼내들었다.

‘이쯤…이쯤인가…’

준은 수정구슬의 온도 변화를 통해 하늘 사자의 수정의 위치를 짐작하며 걸음을 옮겼다. 목표물의 위치는 아마도 아까 마수의 새끼가 누워있던 곳의 근처인 듯 싶었다.

하지만 수정 구슬이 최대로 뜨거워졌을 때 조차 하늘 사자의 수정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소년은 구슬이 가장 뜨거워진 지점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다가 발 밑이 묘하게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미묘하게 위치를 옮겨가며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그러다가 바닥에서 ‘통’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는 바짝 엎드려 주먹으로 바닥을 두드려보았다.

‘여기…비었어!’

준은 즉시 바닥에 엎드려 뼈다귀를 파헤치는 강아지마냥 열심히 바닥을 파헤쳤다. 그러자 보라색 수정더미 아래에 석판 하나가 깔려있었고, 오른 손으로 급히 석판을 들어올리자 찬란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소년은 너무나 눈부신 보라색 빛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역시나 석판 아래에는 그토록 찾아헤매던 보라색 수정 하나가 영롱한 빛을 뿜어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라색 수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손 안에 쥐고 있던 구슬이 불처럼 달아 올랐다.

‘이게 하늘 사자의 수정이 틀림없어! 확실해!’

이준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은지가 준 수정 구슬과 하늘 사자의 수정을 황급히 저장반지 안에 집어넣은 뒤 수정을 파낸 자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는 정신없이 달려 갈림길로 돌아갔다.

……

갈림길을 돌아 다시 왼쪽 통로로 달려가자 익숙한 열기가 그를 반겼다.

약로의 설명대로라면 하늘 사자의 정수에 담긴 에너지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몇 레벨은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준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금 얻은 하늘 사자의 수정을 꺼내들었다.

“그런데…정말 이렇게 해서 여는거 맞아요?”

“아마도…그럴게다. 나도 열어본 적은 없으니까.”

“에이씨…그러다가 잘못되면 저 죽어요 스승님!”

약로의 자신 없는 말투에 준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즉시 하늘 사자의 수정을 치켜들고 보라색 구체를 세차게 내리쳤다.

캉!

캉!

수정이 두 세 번 정도 구체에 부딪히자 잠시 조용해졌다가 보라색 구체에 금이 가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보라색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빨리 병을 꺼내 저 액체를 담거라! 저게 바로 하늘사자의 정수다!”

약로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준은 재빨리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꺼내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스럽게 하늘 사자의 정수를 약병에 옮겨 담았다.

하늘 사자의 정수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무지막지하게 뜨거운 껍데기와 달리 미적지근한 정도였고, 머리통만한 껍질의 크기가 무색하게 액체의 양 역시 옥병 하나면 충분했다.

준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살뜰히 병속에 집어 넣은 후 받침대 위에 흘러내린 액체를 보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머리를 숙여 혀로 그 액체를 핥아댔다.

“허허, 내 제자지만…독한 놈 이구나…”

받침대 옆으로 흘러내린 액체의 남은 한 방울까지 깨끗이 핥은 이준은 입가에 묻은 액체를 스윽 닦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기면 안 돼요”

“서두르자꾸나. 이곳을 빨리 뜨지 않으면 하늘 사자의 새끼가 돌아오고 말게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역시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통로를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마수의 포효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꼬마 하늘 사자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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