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사람을 구하다
준은 조금이라도 그 끔찍한 맛을 덜 느끼기 위해 숨을 참고 단숨에 물고기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녀의 요리가 선사한 것은 충격적인 맛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온 몸이 이유 없이 뜨거워지고 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기…준아. 너, 너는 혹시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은지가 갑자기 발그레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준은 사태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요…저는 괜찮은데요…하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기를 한입 더 집어삼키더니 다시 한번 준을 바라봤다.
“정말 안 이상하다고?”
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탄맛과 충격적일 정도의 맛 없음은 둘째치고, 무언가 매스꺼운 느낌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으으…설마 물고기가 상했나…그럴리는 없는데…’
그 때 그의 눈에 흐트러진 약병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혹시 방금 이 고기 위에…뭐 뿌렸어요?”
이준의 말에 은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약병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병 중에 어떤 거요?”
“저거…”
“병이 많잖아요…그러니까 저 중에 대체 어떤걸…”
“하얀 가루가 들어있는 거…소금…”
그 때 준의 머릿속에 몇 가지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소년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제발 틀리기를 바라며 정확히 어떤 병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물었고, 은지는 자신의 첫 요리가 실패를 넘어서서 무언가 위험한 결과를 불러왔다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이고 비틀거리며 자신이 사용한 약병을 가져왔다.
“이게 대체 뭔데?”
“이게…제가 우연히 만든 약인데…그…자양강장제 같은거거든요…확실히 이거 쓴거 맞아요?”
이준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은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그를 다그쳤다.
“자양강장제…? 근데 왜 이래…혹시 무슨 산삼 같은 거 보다 효력이 좋다거나 그런 거야? 몸이 너무 뜨거운데?”
소년은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정확히는 정력…에 좋은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은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식은땀을 흘리며 성을 냈다.
“어린 게 나쁜 것만 배워가지고. 어디 이런 거를 만들어! 네 스승님은 대체 뭐하는…으으…”
은지가 화를 내자 이준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봐요. 그걸 소금이라고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럼 이제 어떡해?”
이준도 이준이지만 은지는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였다. 얼마 전 천둥산의 지배자와 당당히 맞서던 그 자태는 온데 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염력으로 눌러요. 이 약은 제가 아무렇게나 만든 거라 약효가 그리 세지 않아서…염력으로 누르면 금방 사라질 거예요.”
“멍청아…난 지금 염력을 봉인당한 상태라고…”
잠시 후,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혼자 천천히 눌러. 난 여기에 있으면 안 되겠어. 나갈 거야!”
염력으로 약효를 억제하던 이준은 은지의 말을 듣고 은지를 막아섰다.
“누나, 지금 나가면 우리 둘 다 죽어요.”
이준이 앞길을 막아서자 은지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너…이게 무슨 짓이야.”
“누나, 정신 차려요. 이대로 나가면 정말 둘 다 죽어요.”
은지는 계속해서 식은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준을 노려봤다.
‘스승님, 좀 도와줘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에요?’
‘허허…왜, 아주 좋은 기회이지 않느냐. 투황급 강자와 백년해로라도 하는 날이면…’
약로의 장난스런 태도에 준은 마음속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스승님!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니라구요! 이러다가 정말 저 죽어요!’
제자가 화를 내자 스승은 조금 민망해졌는지 웃으며 해결책을 일러주었다.
‘허…녀석 참, 농담도 못하냐! 우선 염력을 손바닥에 모아라. 그리고 복부, 허벅지, 목 아래의 염력이 지나가는 통로를 눌러주면 된다. 위치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누, 누나. 제가 어떻게 하면 약효를 억누를 수 있는지 알고 있어요! 침착해요!”
소년의 말에 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알고 있었다면 왜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은거야! 너 설마…!”
“아이 참, 저도 방금 생각났다구요! 얼른요! 약효가 더 돌면 진짜 큰일나요!”
준이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은지는 잠시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비지땀을 흘리며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빨리 이리 와서 누워요! 약효를 가라앉혀 줄테니까…!”
……
이윽고 복부로 염력이 들어가자 은지의 얼굴에서 홍조가 점점 사라지고 비처럼 흐르던 식은 땀이 멎기 시작했다.
다음은 허벅지였다. 은지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은 전에 붕대를 감아줄 때처럼 눈을 꼭 감고 그녀의 몸에 염력을 불어넣었다.
잠시 후 땀범벅이 된 이준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은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은지에게 염력을 불어넣느라 상당한 양의 염력을 소모한 준에게 약효를 누를만한 염력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 이다.
약효를 누를만한 염력이 부족하자 이번에는 준이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온 몸에서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가만히 은지를 바라보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으으…돌아버리겠네…어떻게 해야 하지?’
은지는 봉인으로 인해 염력을 쓸 수 없는 상태이니 이준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수를 쫓는 향을 덕지 덕지 바른 뒤 힘이 빠져 누워있는 은지를 놔두고 산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고…’
이준은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며 폭포 가까이로 몸을 옮겨 기력의 조각을 꿀꺽 삼킨 다음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몸을 흠뻑 적시자 열기가 조금 가라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력의 조각의 약효가 발휘되며 염력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푸우!”
그는 염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자마자 천천히 헤엄쳐 호수를 벗어난 뒤 바위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정말이지 힘드네. 어쩌자고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이게 무슨 고생이람.’
……
물에서 나온 그는 옷을 벗어 물기를 모두 짜낸 뒤 바위에 널어두고 햇볕에 옷을 말리며 휴식을 취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었으려나…”
그는 해가 조금 기운 것을 확인하고는 은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에 아까 침대에 눕혀두고 나온 은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 뭐야?”
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황급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막 고개를 들려 은지의 거취를 확인하려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그의 목덜미에 와 닿았다.
목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느낌에 이준은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왜 이래요…”
그러나 그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은지의 검은 그의 목으로 더욱 바짝 파고들었다.
“너…”
은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아직 물기가 다 빠지지 않은 준의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검을 거두고는 산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말이지…무슨 짓을 한거야 너.”
“미안해요…그냥 재미로 만들어 본건데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산굴 구석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봉인을 푸는데 몰두했다.
준 역시 어색한 분위기에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 하고 은지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주저 앉은 뒤 눈을 감고 염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 동안이나 말 없이 각자의 할 일을 했다.
……
어색한 분위기는 점심 무렵이 지나서까지 이어졌다. 준은 그 사이 밖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와 식사를 준비했다.
물고기를 굽는 동안 은지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왠지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자시 후, 준은 우물쭈물거리다 다 구워진 물고기 한 마리를 은지에게 내밀었다. 은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적잖이 시장했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고기를 식히지도 않고 덥썩 한입 베어 물려했다.
“아직 뜨거워요!”
이준의 말에 은지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준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곧 이어 조금 기분이 풀린 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봉인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막 물고기를 한입 베어 물려던 준은 그 말에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은지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면 둘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일 것 이다.
까닭 없는 서운함에 준은 문득 오랜 산속 생활로 인해 자신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언제까지고 의미 없는 소꿉놀이를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축하해요.”
“실력을 회복하면 다시 하늘 사자를 만나러 갈거야.”
은지의 한마디에 준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리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냥 봉인이 풀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소년을 향해 물고기를 집어던졌다.
“뭐? 재수 없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가 먹던 물고기를 받아먹었다.
“너…정말이지…”
은지가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터뜨리자 준 역시 미소를 띤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별 도움은 안 되지만 혹시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도 있으면 말해요.”
“정말?”
준은 은지의 반응에 자기가 제안을 해놓고도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투황 수준의 강자가 아니던가. 보통은 자신에게 부탁할 일 따위가 있을리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놈의 동굴에 하늘 사자의 수정이 있어. 사실은 몰래 슬쩍 하려다가 걸린거거든…아마 내일이면 봉인이 풀리고 염력이나 상처가 다 회복될거야. 내일 내가 놈을 유인하면 그 동굴에 들어가서 수정을 가지고 나와줘.”
은지의 말에 준은 조금 곤란한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무투사도 못 됐는걸요. 제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제 실력으로는 3급 마수만 마주쳐도 목숨이 오락가락해요.”
“걱정 하지마. 내일 내 봉인이 풀리면 내가 비술을 사용해서 잠깐 동안이지만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그 정도면 놈의 거처에 들어가서 수정을 훔쳐 달아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하늘 사자의 거처에 얼씬거릴만큼 배짱 좋은 마수 따위는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저장반지에서 작은 수정 구슬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구슬을 몸에 지니고 있어. 하늘 사자의 수정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뜨거워질거야.”
준은 수정 구슬을 건네받아 목에 걸면서 미소를 지었다.
“최선을 다 할게요.”
하지만 용건이 끝나자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쉬어요. 저는 수련을 조금 더 하고 잘게요.”
소년은 정적이 길어지자 먼저 입을 열고 생긋 웃으며 옆에 있는 돌 위로 걸어가 자세를 취한 뒤 눈을 감았다.
은지는 눈을 감고 수련에 집중하는 준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등을 돌려 잠을 청했다.
준은 은지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저장반지에서 망토를 꺼내 그녀에게 덮어준 뒤 조용히 몸을 일으켜 검은 송곳을 메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밤에는 마수가 더욱 자주 출몰 하는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