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67화 (67/818)

제67화. 하늘사자

5일이라는 말에 준은 벌떡 일어나 스승을 바라봤다.

“제가 5일 동안 기절을 했다고요?”

“이놈이! 처음부터 매의 날개를 이용해서 도망을 치면 될 일이지, 거기서 억지로 2격 무투기를 쓰는 건 또 뭐하는 짓이냐! 내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마수의 먹이가 됐을 게다.”

스승의 꾸지람 아닌 꾸지람에 준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헤헤…2격 무투기로 무투사를 상대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스승님도 그랬잖아요. 이런 생사를 건 결투야말로 진정한 투사를 만드는 거라고.”

제자의 말에 약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더욱 잔소리를 해댔다.

“네가 쓴 그게 2격 무투기냐? 아이고, 내가 너에게 괜한 헛바람을 넣은 것은 아닌가 후회가 되는구나.”

준은 스승의 지적에 민망했는지 멋쩍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것은 스승이 보여준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우리 지금 천둥산 내부에 있지 않나요?”

“여기는 내가 고르고 고른 아주 좋은 장소다. 그리고 근처의 강한 마수는 내가 싹 치워버렸으니, 이 근처에서는 마음대로 다녀도 될 게다. 하지만 혹시 뛰쳐 들어 올 마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조심하거라.“

“우리 여기에 얼마 동안 있어야 되는 거죠?”

소년은 약물이 담긴 웅덩이에서 뛰어내리며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온 몸에 힘이 넘치는걸 보니, 역시 새로운 단계가 코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네가 무투사가 될 때까지.”

약로가 이준의 저장반지를 그에게 던져주며 대답했다.

“앞으로는 딴 생각 말고, 여기에서 수련을 하거라. 복수니 뭐니 하는 일은 네가 무투사가 된 후에 다시 꺼내도록 하고. 그리고 약을 정제하는 것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천둥산에는 약재가 풍부하니, 연습은 아주 지겹도록 할 수 있을게다.”

간만에 찾아온 연금술 실습에 준은 눈을 반짝이며, 검은 송곳을 메고 산굴을 나섰다.

* * *

스승이 찾아낸 새 수련지에서 준은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3일재 되던 날, 이준은 7성 투사가 될 수 있었다.

7성 투사가 된 이후의 수련은 이전보다 조금 느긋하게 진행이 되었다.

무투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7성 투사에서 9성 투사까지의 시기는 급격하게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기는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고, 조급해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거처에도 자그마한 폭포가 있었다. 준은 폭포 옆의 넙적한 바위에 앉아 은빛성에서 샀던 대량의 약재와 약솥을 꺼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약솥이었다. 준은 반가운 마음에 손을 비비다가 왼손을 살며시 불구멍에 가져다댔다.

정신을 집중하자 염력 한 줄기가 손바닥 속에 전해지고, 염력이 약솥의 불구멍을 지나며 짙은 노란색의 불꽃으로 바뀌어 천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백 여 가지 약초들을 훑어보던 이준은 눈을 반짝이며, 기이한 향을 풍기는 빨간 열매를 집어 들었다.

[뱀의 정기, 고급 마수 뱀들이 교배를 한 으스스한 곳에만 성장함. 성질이 차며 자양강장에 효과가 있다.]

준은 연달아 여덟 개 정도의 약재를 집어 들었다. 나머지 약재들도 모두 자양강장 효과가 있는 약재들이었다.

약로는 몰래 반지에서 나와 준이 고른 약재들을 보고는 눈을 살짝 치켜뜨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약재를 고른 준은 우선 빨간색 열매를 약솥에 넣었다. 불꽃이 수분을 빠르게 증발시켜버리자 그 빨간색 열매는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곧이어 준은 욕망의 꽃 한줄기를 약솥에 넣고 다시 불을 지폈다.

[욕망의 꽃. 꽃향기 하나로 마수를 발정내서 울부짖게 만들 수 있음.]

욕망의 꽃을 가루로 만든 이준은 연이어 다른 약재들을 연달아 약솥에 넣고 녹여냈다.

그리고 다시 약솥 안에 욕망의 꽃을 녹여 만들어 낸 즙을 넣자, 나머지 약재를 녹인 가루들이 골고루 섞여 분홍색의 액체로 거듭났다.

마지막으로 고온의 불꽃으로 분홍색 액체의 수분을 모두 날려버리니, 최종적으로는 하얀 가루만이 남게 되었다.

처음으로 직접 정제한 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준은, 하얀 가루를 손끝에 살짝 묻혀 찍어 먹어보고,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하하, 성공이야!”

약 가루가 혀에 닿자 이준의 온 몸이 답답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에헴……”

갑자기 등 뒤에서 약로의 기침 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황급히 약병을 등 뒤로 숨겼다. 약로는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준을 놀려댔다.

“숨기기는 뭘. 정력제 만든 걸 가지고… 희한하게도 사내놈들은 연금술사가 되면 꼭 그걸 만들어보지.”

“네?”

스승의 말에 준은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준을 노려봤다.

“스승님도 이런 약을 정제하셨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제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약로는 얼굴이 벌개져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 같은 줄 아느냐!”

“맞구만 뭘…”

약로의 태도에 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몸을 일으켜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그 때,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느껴지며, 사자의 울음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광폭한 기운이 가득한 사자의 울음소리에, 약로는 먼 하늘을 꼼짝도 하지 않고 노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6레벨 마수 하늘사자의 포효소리야. 누가 그 마수를 건드릴 생각을 한 것일까?”

“6레벨 마수요? 그럼…인간으로 치자면 투황 수준인거잖아요. 미치지 않고서야…”

하늘을 온통 뒤덮은 먹구름 사이로 신비한 빛이 흘러나오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이 떠나갈 듯한 폭발이 일어나고, 푸른빛과 붉은 빛이 하늘 가득 퍼져나갔다.

약로는 계속해서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는 인간인 것 같은데…왜 천둥산까지 와서 하늘 사자와 왜 전투를 하려는 거지?”

준이 넋이 나간 듯 하늘을 바라보자 약로는 헛기침을 한 뒤,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을 해왔다.

“구경하러 가고 싶으냐?”

스승의 한 마디에 소년의 눈은 별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을까요?”

“에헷! 이 스승을 뭘로 보고!”

약로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빛이 되어 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너의 몸을 움직이마.”

준의 몸에서 약로의 하얀 불꽃이 뿜어져 나오자, 순식간에 매의 날개가 솟아나왔다. 약로의 힘으로 만들어 낸 매의 날개는 준의 그것보다 두 배나 더 길었을 뿐 아니라, 밝은 보라색 빛이 감돌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약로는 하얀색 기류를 뿜어 전신을 뒤덮어 몸을 숨긴 후, 날개짓을 해 허공으로 솟구쳤다.

준은 처음으로 제대로 하늘을 나는 쾌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 *

대략 10분 만에 준은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곳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약로는 준의 몸을 조종해, 근처의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마수의 머리는 흉악한 사자의 모습으로, 몸 끝 부분에는 보라색 날개가 붙어 있었으며, 머리에는 나선형의 붉은 뿔이 있었고, 전신에서는 신비한 보라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윽고 옆으로 시선을 돌린 준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여자였어?”

공중의 신비한 여인은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기이한 청색 빛을 발하는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등에는 검과 비슷한 색의 청색 날개가 달려있었다.

‘우와…저건 매의 날개 같은 무투기가 아니야. 정말로 염력으로 날개를 만들었어.…진짜 대단하다.’

준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마수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이유로 본 왕의 휴식을 방해하느냐?”

마수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이준은 감동으로 눈을 반짝였다. 높은 레벨의 마수는 인간 이상의 지혜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정말로 인간의 말을 하는 마수를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 이었다.

“하늘 사자의 수정을 빌리고 싶습니다.”

“하늘 사자의 수정은 우리 하늘 사자들의 몸에서 20년에 한 번, 그것도 아주 작은 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갖고 싶다고 하는 것이냐?”

“당신이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해 주겠습니다.”

“교환? 하하, 좋아. 만약 네가 마수의 구슬 한 알을 얻어 오면, 너에게 하늘사자의 수정을 주마. 내 제안이 어떠냐?”

약로는 마수의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군. 마수의 구슬은 7레벨 그 이상의 연금술사만 정제할 수 있는 연금비약이야. 저 여자가 바보라고 그걸로 하늘 사자의 수정 한 알을 교환하겠어?”

“마수의 구슬? 그게 그렇게 진귀해요?”

“마수의 구슬이 있으면 마수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후에, 그들의 수련 속도는 실로 놀랍기 그지 없지…마수의 수명은 본래 인류보다 길기 때문에, 높은 레벨의 마수가 인간으로 변화해, 그 뒤로 수련을 쌓는다면 인간 따위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의 강자가 된단다.”

약로의 예상대로 신비한 여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마수의 구슬과 같은 물건은 가한제국에서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원하신다면 5급 마정석 세 알과 3격 상의 수련을 드리죠.”

“마수의 구슬이 없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 외의 것은 관심이 없으니까.”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자 여인은 즉시 실력행사에 들어가려 했다.

“정 그러시다면 강제로 가져가겠습니다.”

마수는 여인의 말을 듣자마자 이빨을 드러냈다.

“인간들은 정말 제멋대로야. 하하, 네가 투황 수준의 강자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나에게 힘으로 하늘 사자의 수정을 빼앗겠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만…애꿎은 목숨 버리지 말고 썩 꺼지거라!”

“그런 걱정까지 해주시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여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작은 청색 회오리가 하늘에 나타나더니 점점 자라나, 작은 산 하나를 덮을 크기까지 자라났다. 회오리가 커짐에 따라 산을 빼곡이 채운 나무들이 하나 둘 뽑혀나가며 거대한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가소롭구나.”

이윽고 사자의 포효 소리가 하늘을 뒤덮자 눈 깜짝할 사이에 보라색 불길이 하늘을 꿰뚫었다. 사자가 내뿜은 불길이 어찌나 뜨거운지 한참 떨어져있는 준의 이마에서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스승님이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글쎄다…이 정도 강자들의 싸움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

* * *

커다란 청색 회오리가 신비한 여인의 손을 따라 사나운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들자, 회오리가 스친 곳 아래의 숲에서는 노란 흙길만이 남았고, 마수들조차 앞 다투어 달아나기에 바빴다.

다행히도 약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준은 회오리에 쓸려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처음으로 본 투황급 강자의 파괴력에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회오리를 보며 사자왕이 날개를 펼치자, 보라색 불기둥이 회오리와 충돌하고, 삽시간에 천지가 쥐죽은 듯 고용해졌다.

쿠우웅! 콰아아앙!

퍼어엉!!

두 강자의 강력한 에너지는 몇 분간이나 밀고 당기다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신비한 여인은 청색 날개를 움직여 순식간에 하늘사자의 몸 뒤로 이동한 뒤 불기둥에 자신의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이 바람을 가르고, 하늘 사자의 몸에 닿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몸에는 가느다랗게 하얀 흔적만 남았다가 다시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소롭군.”

다시 하늘 사자의 붉은색 뿔에서 보라색 불길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오자 신비한 여인은 손을 모아 염력을 끌어올렸다.

“바람의 군무!”

그러자 다시 한 번 거친 청색 회오리가 그녀의 몸 앞에 나타나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커다란 불길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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