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무투사와의 대결
강헌은 즉시 주먹을 휘둘러 준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염력을 뿌리치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의 무투기가 충돌하며 생겨난 돌풍으로 인해 나뭇가지가 꺾이고 나뭇잎이 흩날리자, 강헌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속력을 높였다.
“꼬마야! 술래잡기는 끝이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달려 봐도 기본적인 속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100미터, 90미터, 80미터…둘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기 시작하자, 준은 등에 있는 검은 송곳을 뽑아 저장반지 속에 집어넣었다.
“끝은 얼어죽을!”
하지만 검은 송곳을 집어넣은 준이 발끝으로 땅을 힘껏 밀어내자,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호오…보아하니 그 동굴에서 희귀한 것을 얻긴 했나보군.”
이준의 실력이나 상황을 알 리가 없는 강헌은 이 모든 것이 산굴에서 얻어낸 보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2성 무투사인 자신의 추격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소년은 순식간에 바람처럼 달려 수풀 속으로 몸을 감추었고, 강헌 역시 더욱 속도를 내 즉시 숲으로 따라 들어갔다.
* * *
강헌이 수풀속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역한 피비린내가 풍겨오며 칼날 같은 바람이 날아들었고, 사내는 즉시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춤에서 검을 꺼낸 뒤 염력을 불어넣어 휘둘렀다.
“끼이이이익!”
날카로운 검이 마수의 육체를 가르자, 귀청을 찢을듯한 끔찍한 울음소리가 숲을 가득 매웠다.
강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달려 나가다가 다시 두 세 마리의 흡혈쥐가 달려들자 안색이 변해 검을 휘둘렀다. 그 앞에는 또 다시 10여 마리의 흡혈쥐가 있었다.
그가 추격을 멈출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 뒤늦게 그를 따라온 수하들이 즉시 검을 빼들고 흡혈쥐를 처리하자 다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 *
하지만 대규모의 추격전으로 인해 천둥산에 소란이 일며 일대의 마수들이 모두 깨어나기 시작했고, 준의 행방은 찾지도 못한채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오후 내내 벌어진 추격전에도 소득이 없자 늑대머리 용병단을 제외한 다른 용병들은 서서히 추격을 포기하고 무리를 벗어났다.
결국 준을 추격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점점 줄어, 해가 기울 무렵이 되어서는 늑대머리 용병단과 극소수의 용병만이 남게 되었다.
준은 자신을 쫓는 함성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섰다가, 하늘에 뜬 달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반나절을 꼬박 달아난 자신도 자신이지만, 반나절을 꼬박 쫓아온 강헌도 참으로 지독한 사람이었다.
한편 날이 어두워질수록 강헌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대로 뒤쫓아 간다면 천둥산의 깊은 곳까지 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고, 홀몸인 이준과 달리 늑대 머리 용병단은 수가 많아 마수의 주의를 끌기도 그만큼 쉬웠다.
그러나 갑자기 앞을 달리던 소년의 그림자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잠시 무언가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던 강헌은, 앞쪽을 바라보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전력으로 앞을 향해 내달렸다.
소년의 앞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하하, 꼬맹아,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야.”
강헌이 점점 거리를 좁혀들면서 손을 들자, 뒤에 따라오던 용병들이 부채꼴로 대형을 갖추며 준을 포위했다.
“이준, 산 굴 속에서 얻은 물건을 모두 내 놔!”
늑대머리 용병단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한 용병이 먼저 앞으로 나서자, 준은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진짜 당신한테 주라고? 그럼 당신 죽어.”
이준의 한마디에 늑대머리 용병단이 아닌 자들의 표정은 모두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강헌은 늙은 너구리처럼 교활한 자였다. 그는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전에 즉시 흐름을 끊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 자식이 우리 늑대 머리 용병단의 동료 수십 명을 죽였습니다. 늑대머리 용병단의 3단장 재필도 저 흉악한 놈의 손에 목숨을 잃었지요. 게다가 저 자식이 산굴에서 얻은 보물 역시 내 아들인 강재의 것을 도둑질 한 것입니다. 저 자는 제 부하의 원수이자 도둑놈입니다. 오늘 저 악랄한 어린놈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신다면, 제가 그 은혜는 반드시 갚지요. 하지만 방해하신다면 저도 뒷일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강헌의 살기등등한 말과 동시에 늑대머리 용병단들이 칼을 뽑아들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다른 용병들은 모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용병들이 뒤로 물러서자, 강헌은 그제야 머리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손에 든 칼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물건을 내 놔.”
섬뜩한 표정으로 다가 오는 강헌을 보며 이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바닥을 뒤집어 다시 검은 송곳을 꺼내들고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가져가”
* * *
갑자기 평정심을 되찾은 이준을 본 강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칼을 움켜쥐었다.
“애송이놈이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강헌은 한달음에 달려들어 손에 든 칼로 힘껏 이준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소년은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몸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하며, 강헌의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 그대로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하지만 강헌은 머리 위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지는 묵직한 검을 보고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칼을 들어 검은 쇳덩이를 막아냈다.
캉!
이준은 자신의 무기를 통해 밀려드는 강력한 힘에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지만, 강헌은 뒤로 한걸음을 물러설 뿐 전혀 타격이 없어보였다.
“애송이, 물건을 내놓으면 곱게 죽여주마.”
소년은 강헌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검은 송곳을 높게 쳐든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준을 포위한 늑대 머리 용병단의 용병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강헌은 무언가 불길한 것을 느낀 듯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고, 신중한 걸음걸이로 준의 주위를 빙빙 돌 뿐, 좀처럼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2성 무투사의 조심스러운 행동에 주위의 용병들도 덩달아 긴장한 듯 칼을 움켜쥐며 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새끼가…무슨 개수작이야!”
조심스레 준을 지켜보던 강헌은 적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년의 목덜미를 향해 전력으로 칼을 내리쳤다.
“늦었어……”
차가운 한 마디와 함께 이준이 검은 쇳덩이를 번쩍 들어 올리자,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고, 주위에 있는 무수한 에너지들이 빨려 들어가듯 준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태양검!”
준의 마지막 한줄기 염력까지 모두 빨아들인 검은 송곳은, 더욱 붉은 빛을 뿜어내며 불타오르다가 시뻘건 불덩이를 강헌에게 토해냈다.
이 광경을 바라본 강헌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염력을 모아 밖으로 방출하는 것은 대투사 수준은 되어야 가능한 고급 염력 운용법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소년은 아주 완벽하게 대투사들이나 쓸법한 염력 운용을 해내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강헌은 즉시 자신의 염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내 검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의 검 위에 연한 청색 빛이 너울거리며 타올랐다.
“바람칼춤!”
고함 소리와 함께 강헌이 팔을 휘두르자, 검이 춤을 추듯 허공을 수놓으며 무수한 그림자를 남겼다.
쾅!!
곧이어 무시무시한 충돌음과 함께 찬란한 빛이 대낮처럼 주위를 환히 밝혔다.
그리고 두 개의 빛이 뒤엉켜 힘을 겨루다가 폭발하는 순간, 먼지가 일며 한 사람이 튕겨져 나왔다.
우직…!
두 힘이 맞부딪히며 생겨난 충격파에서 튕겨져 나온 그림자는 그대로 멀리 날아가 커다란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춰섰다.
“쿨럭…”
앞을 가렸던 흙먼지가 걷히자 검은 송곳을 손에 든 이준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서…설마…”
늑대머리용병단은 일제히 나무에 처박힌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를 토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2성 무투사인 강헌이었다.
……
“다…단장님!”
피를 토하는 단장을 발견한 그의 수하들은 즉시 강헌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달려온 부하들을 밀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죽여! 저새끼 지금 힘이 다 빠졌…쿨럭! 힘이 다…빠졌다고…”
확실히 이준의 얼굴은 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두 손으로 천천히 검을 만지고 있는 그가 뿜어내고 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에, 용병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 하고 눈치를 볼 뿐 이었다.
“죽이라고!”
결국 단장의 고함 소리에 용병들은 무기를 움켜쥔 뒤 움찔거리면서도 발을 떼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어.”
소년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무언가를 입에 털어 넣더니 그대로 낭떠러지로 뛰어내렸다.
“저…저 독한 새끼가!”
소년의 돌발 행동에 용병들은 황급히 절벽으로 달려갔다.
이는 결코 그를 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하나 같이 준이 보물을 넘기지 않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다고 생각해 달려갔던 것 뿐 이었다.
그러나…소년의 등 뒤에는 보라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검은 날개가 솟아나 마치 새처럼 유유히 맞은 편 절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어…어떻게 저럴…”
눈앞에서 펼쳐진 거짓말 같은 장면에 모든 용병들이 얼이 빠져있는 사이 소년의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을 가로지르고 귀에 꽂혔다.
“오늘 일은 두고두고 기억하지. 기다려. 곧 두 배로 갚아줄 테니까.”
……
준은 맞은 편 절벽에 도착하기 직전 몸속의 염력이 바닥나는 것을 느끼고는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어, 어… 안 돼!”
염력이 바닥나자 매의 날개가 사라지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멋지게 복수를 다짐한 그는 처참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
잠시 후, 약로가 나타나 기절한 제자를 바라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그를 안아 들고 천둥산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녀석…강제로 2격 무투기를 사용하다니. 정말이지 배짱 하나는 두둑한 놈이로구나.”
* * *
한 조각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준은 어렴풋하게 자신의 몸 곳곳에 스며드는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꿈을 꾸는 듯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더 이상 어떤 기운도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순간, 준은 의식을 되찾았다.
의식을 찾은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넓은 산굴이었고, 산굴의 네 벽에는 조명으로 사용 되는 월광석이 걸려있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귓가에는 물소리가 들렸다.
이준은 그제야 자신이 작은 웅덩이 속에 누워 있고 웅덩이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맑은 물에는 아직 미처 흡수하지 못 한 연한 초록색 빛이 감돌고 있었다.
물을 떠서 냄새를 맡아 본 이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금비약…?”
“그래, 연금비약이다. 이 회복물약을 만들기 위해 이 스승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나 가느냐?”
약로는 흐뭇하게 웃으며 준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도 회복하려면 보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5일 만에 완전히 회복이 되었구나. 게다가 운 좋게도 7성 투사의 문턱에도 닿은 것 같다. 지금 상태를 보니 며칠만 수련을 더 하면 새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을게다.”
5일이라는 말에 준은 벌떡 일어나 스승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