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태양검
한편, 늑대머리 용병단의 주둔지에서는 한 중년의 사내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오늘 나간 수색대 중 한 팀이 천둥산 중간 지점에서 실종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고. 그렇다면 사람에게 습격을 당했겠지. 흔적이 없는 것은 당연히 습격한 놈이 흔적을 지웠기 때문일 테고.”
중년 사내의 말에 강재는 고개를 저었다.
“이준은 아닙니다. 제가 그 자식과 싸워봤는데, 그놈 실력으로는 신호탄을 발사하기도 전에 5성 투사 두 명을 제거할 수 없어요.”
“그건 조사를 해보면 알겠지. 내일 천둥산으로 조사할만한 인원을 보내겠다.”
“네. 알겠습니다.”
“산굴에서 가져 온 돌 상자는?”
“열쇠가 이준 손에 있어요. 청산마을에서 제일 훌륭한 열쇠 장인을 불러 열어보려고 했지만…안 될 것 같습니다.”
강재의 말에 중년의 사내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힘으로라도 열어 봐! 산굴 곳곳에 70만 골드와 진귀한 약초들이 가득했어! 동굴의 주인은 당연히 상당한 실력자 였을테고, 진귀한 약초와 금은보화 조차 방안에 널려 있었는데, 그 상자만 그렇게 단단히 잠궈 놓았다면, 그 안에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 들어있겠느냔 말이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 돌상자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보다, 아라는 어떻게 하시려구요?”
“일단 나서지 말거라. 섣부르게 행동 했다가 용병들의 반감을 사면 오히려 귀찮아 질 수도 있어.”
“그 계집을 그냥 둔다구요?”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내일 소문을 퍼뜨려라. 그 아라가 산 속에서 한 강자의 유물을 얻었는데, 유물은 아마 3격의 무투기일 거라고 말이야.”
사내의 말에 강재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만약 만약상회에서 그 유물을 욕심낸다면, 그 계집이 자랑하는 방패도 사라지는 꼴이 되는군요.”
“그래, 지금 중요한건 그 이준이라는 놈이다.”
이준을 떠올리자 강재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것보다 문제는 그 놈이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이런 놈이 원한을 품으면, 절대 좋게 끝날 리가 없지. 반드시 그 놈을 찾아야 한다.”
단장의 단호한 말투 속에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살기가 배어 있었다.
“네, 그럼 내일부터 수색대를 두 배로 늘리고 현상금도 두 배로 올리겠습니다.”
* * *
한편, 거센 폭포가 바위를 내리치며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바라보는 준은, 거의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에는 열 개의 말뚝이 박혀있었다.
“스승님, 설마 저 아래에 가서 수련을 하라는 건 아니죠?”
“맞아.”
“네…?”
“2격 무투기, 2격 무투기, 노래를 부른 것은 네 놈 아니더냐. 2격 무투기는 3격 무투기처럼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아…”
제자가 한숨을 내쉬자 약로가 조용히 다가가, 준의 등에서 수련용 검을 뽑아들며 입을 열었다.
“진정한 2격 무투기를 본 적이 있느냐?”
“그럴 리가요. 2격 무투기가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럼 오늘 한 번 보겠느냐?”
스승의 한 마디에 소년의 눈이 기대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약로는 즉시 한쪽 손에 검을 쥔 채,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가 호수 가운데로 이동하더니, 머리를 들어 거대한 폭포를 올려다보았다.
노인이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고르다가 눈을 뜨자, 그의 전신에서 폭포를 날려버릴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약로의 발아래의 조용한 호수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하더니 하얀색 물거품이 되어 쉴 새 없이 출렁거리고, 노인의 손에 들린 검에서 기이한 붉은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이 천천히 허공을 가르자 주위의 공간 역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석양처럼 은은한 붉은 빛을 발하는 검을 잡은 약로가 힘차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약로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먼발치에서 나타나고, 손에 들고 있던 수련용 검에서는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2격 무투기: 태양검”
약로의 외침과 함께 텅 빈 골짜기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의 발치에서 거대한 물기둥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힘차게 솟아오른 물줄기들은 검에 닿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온 천지를 자욱하게 매우는 물안개로 변하고 말았다.
거대한 물줄기를 모두 증발시킨 붉은 빛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거세게 내려오는 폭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콰앙! 콰아아앙! 콰앙!
무시무시한 굉음이 산골짜기를 가득 매우고, 돌멩이들이 암벽에서 가루가 되어 떨어지자, 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잠시 후, 거센 바람이 불며 물안개가 걷히니, 폭포 아래에 있던 거대한 바위가 어느새 사라지고, 무수한 칼자국으로 가득한 구덩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약로는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제자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태양검, 2격 무투기.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산을 쪼개고 바다를 가를 수 있음.”
아주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준은 그 설명에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
약로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 하는 제자를 보며. 폭포 아래의 말뚝을 가리켰다.
“오늘부터 폭포 속에서 수련을 할 것이다. 열 번째 말뚝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 삼백 번을 버틸 수 있게 되면. 태양검의 1단계를 쓸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명심하거라. 너의 실력으로는 태양검을 한 번밖에 사용할 수가 없고, 억지로 사용하게 되면. 네 몸은 엉망이 되고 말게다. 단순히 다치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야, 최악의 경우에는 쌓아놓은 염력이 날아가거나, 염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준은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 이었다.
“그리고 수련할 때는 꼭 검을 지니고 올라가야 한다. 사실 이 물건이 없으면 이 2격 무투기의 위력을 낼 수 없어. 다른 검은 이 무투기의 위력을 버티지 못 한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기력의 조각을 전부 꺼내라. 이런 수련에는 연금비약을 사용해서는 안돼. 이제부터는 오로지 너 자신의 힘으로 염력을 회복해야 한다.”
스승의 말에 소년은 홀린 듯이 약병을 꺼내, 기력의 조각을 내려놓았다. 지금 그의 눈에는 폭포도, 기력의 조각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약로는 싱긋 웃으며 제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갔으니, 이 검의 이름을 가르쳐주마. 이놈의 이름은 ‘검은송곳’이라고 한다.”
“검은 송곳…”
이준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검을 집어 들었다.
이 무투기만 익힐 수 있다면, 나설아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소년의 가슴에는 불길이 일었다.
이준은 이를 악물고 옷을 벗은 뒤 검을 짊어지고 날렵하게 바위에 뛰어 올라, 말뚝을 향해 질주했다.
퍼억!
그러나 두 발이 말뚝에 제대로 닿기도 전에 거센 물살이 그를 후려치고, 이준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호수에 처박히고 말았다.
“으아아! 좋아! 오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퍼억!
“으아아!”
퍼억!
“아아아악!”
퍽!
“아아악! 이런 제기랄!”
퍼억!
그렇게 몇 번이나 물속에 처박히고 다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기를 반복하는 제자를 보며 약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준은 검은 송곳으로 눈앞의 물살을 가르며,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말뚝 위에 단단히 두 발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그의 두 다리는 의지와 무관하게 휘청거리며 균형을 잡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때, 약로가 향이 모락모락 나는 구운 물고기를 이준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먹고 하거라.”
향긋한 냄새에 급격하게 허기를 느낀 준은 비틀거리며 내려와, 바위에 기댄 채 걸신들린 듯이 물고기를 입에 쑤셔 넣었다.
“요즘 들어 용병들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 같구나.”
“늑대 머리 용병단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나 봐요.”
“조만간 이 곳을 발견하게 되겠구나. 속도를 올려보자.”
이준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요?”
“방법은 있다만, 이 물건을 사용하면 고생을 좀 많이 하지.”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고생은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만.”
“요놈이…”
약로는 웃으며 이준의 저장반지를 꺼내, 그 속에서 투명한 옥병 몇 개를 꺼내들었다. 병속에는 붉은 액체가 가득 차 있었는데, 액체는 얼핏 보면 피로 착각할 정도의 섬뜩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뭐에요…?”
“이 연금비약은 불의 숨결이라고 한다. 무려 23가지의 각기 다른 불속성의 약초와 세 종류의 2급 불 속성 마수의 피로 정제한 것이다. 레벨로 따지면 4레벨 연금비약 정도는 되는 물건이지.”
“4레벨…이요?”
“요놈이…놀라기는!”
“효과는요?”
“이 불의 숨결은 불 속성의 염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쓸 수 있다. 물속성의 염력을 수련하는 사람한테는 독약과 같지. 이 물건을 몸에 붙이면 염력을 더 빠르게 소모하게 되고, 동시에 회복속도도 더 빨라진다.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갔느냐?”
“빨리 쓰고 빨리 찬다는 건…그만큼 실력도 빨리 는다는 거겠죠?”
약로는 제자의 표정을 살피더니, 또 다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걸 쓰고 나면 아주 고생할 텐데?”
“그깟 고생, 해 보겠습니다.”
이준이 활짝 웃으며 시원하게 대답을 하자, 약로는 즉시 손을 뻗어 제자의 팔을 잡고 약병을 기울여 연금비약을 떨어뜨렸다.
붉은 액체가 팔뚝에 떨어지자, 이준의 이마에는 순식간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팔뚝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연금비약의 온도는 도저히 액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으으으으…”
이준이 부들부들 떨며 통증을 참아내는 사이, 약로는 반지에서 조그마한 옥패 하나를 꺼내 붉은 액체를 더욱 넓게 펴발랐다.
그렇게 10여분이 흐르자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거…너무 아파요.”
“고생할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자, 이제 팔뚝으로 흐르는 염력을 한번 느껴보거라.”
이준은 약로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팔뚝 쪽의 혈관에 정신을 집중했다. 분명히 불의 숨결을 바른 왼팔의 염력은 오른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소년은 옆에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약로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숨을 내쉬며 오른팔을 내밀었다.
“시작하시죠!”
이준이 이를 악물고 머리를 끄덕이자, 약로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엎드려라. 앞으로는 매일 전신에 이 불의 숨결을 발라야 한다.”
준은 통증을 참기 위해 벗은 옷을 입안에 밀어 넣고, 두 손으로 옆에 있는 바위를 붙잡았다.
“으으…으으으으읍!”
고통스러운 소리가 다시 한 번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 * *
한편, 늑대 용병단의 용병들은 여전히 사라진 이준의 행방을 찾아 온 산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준을 추적하기 위해 온 산을 헤집고 다니던 용병하나가 마침내 준의 거처를 발견하고 말았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자 거대한 폭포와 함께 푸르른 평원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사내는 천천히 골짜기를 둘러보다 폭포 아래에서 수련하고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었다.
쾅!
바로 그 때, 하늘에서 검은 쇳덩이 하나가 날아들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 속 깊숙이 박혔다.
그 기괴한 쇳덩이는 분명히 용병단에서 현상금을 건 애송이가 짊어지고 다니던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