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현상금
소년은 약재를 찾기 위해 무거운 검을 짊어진 채, 녹음이 우거진 숲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도 천둥산에는 약재가 풍부해 기력의 조각을 정제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가지 약재 중 네 가지는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돌부리 열매 하나로, 돌부리 열매는 천지의 기운이 충만한 곳에서만 서식하며, 주로 단단하고 오래된 바위 틈에서 자라는 열매였다.
준은 온 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운 채로, 숲을 지나 작은 돌맹이로 이루어진 벽 앞에 도달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천천히 돌무더기를 살피다가 그 뒤에 있는 산벽의 작은 보라색 나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람에 흔들려 살랑거리는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은 색의 열매가 보였다.
“찾았다…”
소년은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려 이틀만에 찾아낸 귀한 열매였다.
그러나 이런 귀한 열매 주변에는 마수가 들끓기 마련이었다. 준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틀 만에 찾아낸 열매를 막 손에 들어오려는 순간, 준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젠장!‘”
쿵!
그리고 그가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찰나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산 위에서 새하얀 물체가 떨어져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준의 앞을 막아선 것은 거대한 하얀색 늑대로, 2~3미터는 족히 되는 크기에 온 몸에는 눈처럼 하얗고 긴 털이 가득했다.
“2레벨 마수…눈보라늑대?”
소년은 늑대의 칼날 같은 이빨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2레벨 마수라면 대투사급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스승님…”
……
몇 초나 흘렀을까, 잠깐의 정적이 둘 사이를 가로지르고, 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단지 발을 굴렀을 뿐인데, 주위의 돌들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자, 소년은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윽고 마수의 붉은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자, 준은 더욱 다급한 마음에 몇 번이나 스승을 불러댔다.
“장난하지 마세요. 2레벨 마수라고요……”
아직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지금 마수의 태도는 명백히 사냥을 준비하는 야수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채 늑대의 몸을 훑어보던 준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본래 눈동자와 입속을 제외하고는 전신이 백색이어야 했던 눈보라 늑대의 배 아래쪽이 이상하리만치 붉은 색을 띄고 있었던 것이다.
‘상처…?’
소년은 늑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늑대의 복부를 살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뼈가 드러날 정도의 중상이었다.
‘저 정도 상처라면…’
쿠웅!
이준은 이를 악물고, 등에 매고 있던 검을 즉시 내리꽂았다.
그러자 침입자의 돌발적인 행동에 더욱 화가 난 거대한 늑대가 두 발로 가슴에 있는 단단한 비늘을 두드려댔다. 이윽고 철판을 돌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늑대가 몸을 날리자, 거대한 발소리가 숲을 뒤흔들고, 늑대의 앞발에 새하얀 기운이 모여 들며, 주위의 공기가 서늘한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젠장, 매의 날개!”
소년은 다급히 땅을 박차며 자신의 등에 새겨진 문신을 향해 염력을 이동시켜, 날개를 펼친 뒤 가볍게 허공으로 몸을 띄워 늑대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우우!”
그 순간, 섬뜩한 울음소리와 함께 늑대의 발 앞에 모여 있던, 새하얀 에너지가 형태를 이루며 소년을 덮쳤다.
그러나 약로와의 훈련을 통해 늘어난 것은 염력뿐이 아니었다. 소년은 산짐승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마수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낸 뒤, 늑대의 아랫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흡장!”
그러자 순식간에 강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오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돌덩이들이 일제히 이준의 손바닥을 향해 날아들었다.
늑대는 침입자의 기이한 능력에 의해 잠시 균형을 잃었지만, 즉시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랫배의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터지는 것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컹! 컹!”
마수는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자 미친 듯이 짖어대며, 더욱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허나 날카로운 발톱을 아무리 휘둘러봐도, 눈 앞에 있는 자그마한 침입자를 잡을 수가 없었고, 이준은 한 마리 새처럼 정신없이 늑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늑대의 피를 계속해서 뽑아냈다.
이윽고 주위의 돌맹이가 모두 시뻘건 피로 붉게 물들자, 늑대는 더 이상 울부짖을 힘도 없는지 비틀거리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준을 향해 몇 걸음을 걸어오다가, 끝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까뒤집고 바닥에 눕고 말았다.
“하아…하아…”
준은 늑대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멀찍이 서서 늑대가 움직이지 않는지를 바라봤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늑대가 털끝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준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때, 얄미운 목소리가 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허허허…대단하구나. 내가 제자 하나는 잘 거뒀어.”
“스승님! 정말 이러시기예요?”
“이놈아,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할게냐.”
“이번에는 저 놈이 마침 부상을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멀쩡한 상태였다면 정말 위험했다구요!”
기진맥진한 제자의 표정을 보고 스승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부상을 입고 있었으니까 안 나선게지 요놈아.”
“아휴…정말이지…알았어요. 그럼 망이나 봐주세요.”
준은 한숨을 내쉰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
30분 후, 염력이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 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손바닥에는 아직도 얼얼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소년은 저린 손을 어루만지며 작은 나무 옆으로 걸어가, 그 위에 있는 돌부리 열매를 모두 뜯어 병에 넣은 후 저장반지에 잘 보관하였다.
다음은 눈보라 늑대의 시체를 처리할 차례였다. 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수를 꺼내들고 늑대의 시체로 걸어가 머리를 베어냈다.
“어…?”
늑대의 머리를 자르자, 눈처럼 하얀 마정석 한 알이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행운에 기분이 좋아진 준은, 흥분한 표정으로 잽싸게 마정석을 주워들었다. 과연 2레벨 마수의 마정석답게 손이 시릴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이준은 눈보라늑대의 마정석도 저장반지 안에 넣은 뒤 한숨을 내쉬며, 수련용 검을 다시 짊어지고 폭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소년은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온 몸에 배어 있는 피 냄새를 지우기 위해 풀을 빻아 만든 즙을 온 몸에 발랐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한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는 즉시 풀숲 안에 몸을 숨겼다.
“늑대 머리 용병단…?”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사내로, 가슴에는 늑대머리 용병단의 표식이 빛나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자. 너무 멀리 왔다고. 이 근처는 마수 소굴이야.”
“젠장…2단장님이 그 놈을 찾아오라잖아.”
“이미 마수한테 잡아먹혀서 죽었겠지. 천둥산은 그런 애송이가 몇 달이나 혼자 살아남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라구.”
“에휴…어쩌겠어. 시체라도 찾아오라는데.”
“그래도 그 놈 몸값이 8000 골드야. 시체라도 상관없다니까 운 좋게 얻어걸리기라도 하면 횡재하는 거라고, 살아있다고 해도 5성 투사 둘인데, 그깟 애송이 하나 놓칠까봐?”
“일단 오늘은 안 되겠어. 날도 저물고 있고, 너무 위험하니까 돌아가자고.”
“그래, 그럼 내일 다시…”
두 용병이 신나게 떠들어대며 방향을 트는 순간, 숲속에서 시커먼 물체가 뛰쳐나와 그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뭐야!”
갑작스런 공격에 용병은 반사적으로 그림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컥…!”
그림자와 부딪힌 용병이 벌건 피를 토하면서 날아가자, 옆에 있던 사내는 황급히 칼을 빼들었다.
“누…누구냐!”
하지만 사내는 칼을 휘둘러볼 틈도 없이 강력한 힘에 의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고, 사내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그의 뒷목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자리에 쓰러진 용병은 그대로 피를 토하면서, 눈을 까뒤집고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 때, 선공을 당한 사내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다, 당신 누구야? 왜 우리를 공격하지?”
그의 눈 앞에는 새빨간 피와 풀즙을 덕지덕지 바른 소년 하나가 서있었다.
“너희들이 찾는 사람.”
“이준?”
놀란 눈으로 이준을 본 용병은 급하게 몸을 돌려 달아나면서, 신호탄을 꺼내기 위해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이한 힘이 그의 손에서 신호탄을 빼앗아가고, 눈앞에 있던 소년이 번개처럼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억!
검을 빼들던 용병은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다시 한 번 피를 뱉어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사내는 5성 투사인 자신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손 한번 뻗어보지 못 하고 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자식…”
소년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운 뒤 다시 한 번 번개처럼 몸을 날려,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상대의 목을 겨누었다.
“움직이면…… 목을 잘라버릴 거야.”
“나를 죽이면 우리 늑대 머리 용병단에서 가만 두지 않을 걸?”
사내의 협박에 준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하, 처음부터 가만둘 생각은 없었잖아?”
“대답하면 살려줄 거야?”
“시끄러워.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만 하면 돼. 아니면 이 검에 찔린채로 육식 개미굴로 들어가든지.”
이준의 차가운 눈빛을 본 사내는, 그것이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오금이 저려왔다.
“뭐, 뭐가 궁금한데.”
“강재가 산굴에서 발견한 돌상자. 거기에 뭐가 있었어?”
“몰라. 돌 상자와 붙어있던 책상째로 들고 가셨다는 것 밖에 몰라.”
“그래? 그럼 그건 됐고, 늑대 머리 용병단에서 나를 두고 현상금을 걸었다고?”
“맞아. 단장님이 직접 현상금을 걸었어. 너의 행방을 알고 용병단에 보고하면 높은 현상금을 받을 수 있어.”
“끝까지 해보자는거군. 아라는? 무사한가?”
“청산마을에 돌아간 후 아라는 계속 만약상회에 머물고 있어. 그러니 단장도 손을 쓸 수가 없지.”
사내는 질문에 답변하는 내내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이준은 사내의 거동에서 수상한 점을 느끼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개수작 부리지마!”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떨어지고, 이 장면을 본 준은 즉시 몸을 뒤로 빼며,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준의 손에 들린 검이 은빛 반원을 그리자, 사내의 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준은 잠시 주위를 살핀 후 두 용병의 시체를 들어 깊은 골짜기로 던져버렸다.
“스승님, 수련을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한 달 만에 벌써 여기까지 따라온 걸 보면…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거처가 발각되고 말거에요.”
“좋아. 서두르자꾸나.”
“스승님…그런데 그 2격 무투기는 대체 언제 가르쳐 주실 거예요? 이제 정말 급하다구요.”
“요놈이…2격이랑 3격 무투기의 습득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란 말이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데요…”
준이 반지를 어루만지며 머리를 긁어대자, 드디어 스승의 입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으니 시작하자꾸나. 하지만 정말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