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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9화 (59/818)

제59화. 결의

……

“컥! 쿨럭……”

강재가 자신의 몸속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의 입에서 시뻘건 선지피가 터져 나왔다.

“가자!”

이준은 강재의 몸이 휘청거림과 동시에 아라의 허리를 붙잡고, 전력으로 몸을 날려 동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잠시 후, 용병들은 바닥에 쓰러진 강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재는 6성 투사였고, 상대는 새파랗게 어린 2성 투사였다. 그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쓰러진 강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강재는 멍하니 서 있는 자신들의 수하를 향해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녀석들! 안 따라가고 뭐해! 어서 나가서 잠복조에게 그 놈을 죽이라고 전하란 말이야! 컥!”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 번 시꺼먼 핏덩이를 토해냈다.

“예!”

용병들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급하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강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대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실력을 감추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절대 우리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을 거다.”

* * *

한편, 아라를 끌어안고 동굴 안을 달리는 준의 주먹에서도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확실히 진정한 태초의 힘은 자신이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아직 6성 투사와 정면으로 맞붙을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재라면 낭떠러지 위에도 자신의 수하들을 잠복시켜 뒀을 거야.”

아라는 팔에서 피를 흘리며 밧줄을 붙잡고 올려가려는 준을 막아섰다.

“절벽을 올라가야 수풀 속에 숨어들어 갈 수 있어!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밧줄을 타고 올라가면 위험해. 그들이 밧줄을 끊기라도 하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거야.”

“안 올라가면 뛰어 내리기라도 할거야? 아니면 저 용병들이 나와서 우리를 죽이길 기다릴 거냐고!”

“내가 너를 떠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뭐…?”

“믿어줘 ! 몇 번인가 너를 속인건 사실이지만, 난 생명의 은인을 배신할 정도로 막되먹은 여자가 아니라고! 내가 너를 속이고 있는 거라면, 오히려 네가 낭떠러지를 기어오르게 유도했겠지!”

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아라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알았어.”

소년이 머리를 끄덕이자, 아라는 즉시 가슴속에서 자그마한 피리 하나를 꺼내들어 입에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친구를 부르는 거야.”

아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피리를 다시 집어넣으며 웃음을 지었다.

“친구?”

“1레벨 하늘 수리.”

“비행 마수?”

준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비행 마수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준은 전력을 다해 아라를 끌어 안고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근데 아쉽게도 마지막 상자를 못 열었어.”

소년은 이 상황에서도 마지막 상자를 열지 못 한 것을 아쉬워하는 아라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대담한 여자였다.

“됐어. 욕심 부리지 마. 기회가 되면 그 자식한테 찾으러 가면 되지.”

하지만 아라는 아직도 그 상자가 못내 아쉬웠는지 한숨을 내쉴 뿐 이었다.

어두운 통로를 향해 한참을 더 달리자, 드디어 달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전력을 다해 동굴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준은 아라를 끌어당겨 동굴 벽에 바짝 붙은 뒤,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절벽 위에는 적지 않은 수의 횃불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곧 뒤에서도 놈들이 쫓아올 거야. 그 비행 마수는 언제 오는 거야?”

준이 초조한 표정으로 되묻자, 아라가 다시 한 번 피리를 꺼내들었다.

이윽고 기이한 소리가 천천히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거대한 하늘 수리가 달빛을 받아 우아하게 빛을 발하는 깃털을 뽐내며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라는 준의 손을 붙잡고 신속하게 마수의 등위로 몸을 날렸다. 둘이 하늘 수리의 등에 올라타자 마자, 동굴 안쪽에서 용병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아! 빨리!”

이윽고 거대한 마수의 날개가 허공을 가르자, 세찬 바람이 일며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남녀를 태운 독수리의 몸이 허공에 떠오를 무렵, 드디어 용병들이 동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잠복조! 활을 쏴! 어서!”

동굴에서 나온 용병들은 마수의 등에 올라탄 둘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절벽 위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발사! 발사!”

신호와 동시에 벼랑 위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젠장!”

준이 화살을 막아내기 위해 다급하게 염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거대한 마수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독수리의 날개에서 푸른 광풍이 휘몰아치며 화살비를 깔끔히 날려버렸다.

결국 용병들은 거대한 마수를 타고 유유히 하늘로 달아나는 두 사람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준은 천천히 멀어져가는 동굴을 내려다 보다가, 힘이 풀린 듯 독수리의 몸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긴장이 풀리자,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지상에는 어느새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 동굴 입구까지 걸어 나온 강재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조만간 이 빚은 꼭 갚아주지…’

이준은 점점 작아지는 강재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 * *

산 위에 있는 용병들이 주먹만하게 보일 때 쯤, 이준은 시선을 돌려 아라를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아라는 바람으로 인해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나는 약초 채집단으로 돌아가야지.”

“돌아간다고? 강재 그 자식도 돌아갈 텐데?”

준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약초 채집단에 돌아가면, 그 녀석도 어쩔 수 없어. 우리는 의뢰인이니까. 게다가 청산마을에 돌아가면 더더욱 어쩔 수 없게 돼. ‘만약상회(萬藥商會)’는 청산마을에서 제법 지위가 높다구. 게다가 3대 용병단의 나머지 두 용병단 단장들은 모두 나에게 빚이 있어. 동시에 늑대머리 용병단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 마을에 돌아가면 강재는 더더욱 날 어쩌지 못 해.”

“헤…대단하네. 역시 만만치 않은 여자야.”

이준은 청산마을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히 그 정도로 인망이 있다면 강재도 그녀를 쉽게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아라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자 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는 당신이랑 다르지. 나는 돌아가면 강재한테 죽임을 당할걸? 게다가 내 진짜 실력도 보여줬으니, 이번에는 더 확실한 수단을 동원할거야. 이번에는 어떻게든 빠져나왔지만 운이 좋았던 것 뿐이고. 그러니 청산마을에 돌아갈 수는 없지.”

“그럼 떠날 거야?”

“내가? 하하! 아니, 사내가 얻어맞고 도망만 칠 수는 없지. 나는 천둥산에서 조금 더 실력을 쌓고 빚을 갚으러 갈 거야.”

하지만 아라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늑대머리 용병단의 단장은 2성 무투사야. 강재와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니까 조심해야해.”

“걱정 마. 무투사가 뭐 대수라고.”

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아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라는 준의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동을 방금 전까지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 소년이 괜한 허풍을 떨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 * *

멀리 야영지가 눈에 들어올 무렵, 준의 머릿속에 야속한 스승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하, 녀석 훌륭한데? 아주 훌륭해. 그 상황을 그렇게 빠져 나올 줄이야. 아주 잘했다.”

약로가 입을 열자 이준은 입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렸다.

“사라진 줄 알았네요.”

“하하하, 서운해 말거라. 정말 위험한 순간이 왔다면, 이 스승이 제자 죽는걸 손가락 빨고 지켜보고 있었겠느냐?”

제자는 순간 스승이 얄밉게 느껴졌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진정한 투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위기도 필요하기는 했다. 그 때 마다 번번이 약로의 도움을 받아서는 자신도 강해질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답 정도는 해야죠…사람 놀라게…”

약로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대서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검을 벗은 소감은 어떻더냐?”

“나쁘지 않았어요…”

조금 서운한 듯한 제자의 말투에 약로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복수하고 싶으냐?”

“제가 이렇게 당하고 그냥 넘어가는 거 본 적 있으세요? 그 미친놈은 저를 죽이려고 했다구요.”

“호오…하지만 2성 무투사라는데? 수련은 도와주겠지만,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지는 않을게다.”

“흥, 걱정 마세요. 매번 스승님 손만 빌리면, 저는 언제 강해져요? 대신 스승님은 제가 하루라도 빨리 무투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소년의 당찬 태도에 약로는 또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녀석. 배포 하나는 마음에 든다니까. 그래. 내가 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무투사로 만들어주마.”

* * *

준이 스승과 마음속으로 투닥거리는 사이, 어느새 발아래로는 만약상회의 야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아래가 채집단이 묵고 있는 곳이야. 만약 안 돌아갈거면 여기에서 내려 줄께. 날이 밝으면 혼자 떠나. 괜찮겠어?”

아라는 아래에 보이는 야영지를 바라보며, 또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년의 태도는 씩씩하기 그지 없었다.

“응. 고마웠어.”

“그래…그럼 이제 안녕이네. 다시 만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

하지만 아라는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잠시동안 물끄러미 준을 바라보다가 가슴 속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대단한건 아니지만…몸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거야.”

준은 머리를 끄덕이며 약봉지를 받아든 뒤, 고개를 끄덕여 감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수풀 속으로 걸어갔다.

“고마워,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그 강재라는 놈과 늑대머리 용병단을 박살내줄게. 기대하고 있어.”

이윽고 준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아라는 싸늘한 표정으로 야영지를 바라보다, 다시 마수의 등에 올라탔다.

* * *

야영지에는 어느새 따스한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아라가 단잠에서 깨어날 때 쯤, 천막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강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역겨운 기분을 억누르며, 천천히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재 도련님께서 아침부터 제 숙소에는 무슨 일로……”

“하하, 별 일 없습니다. 이제 해도 떴으니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와봤습니다.

강재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주위를 살핀 뒤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목표는 당신이 아니니, 이준이라는 꼬마 놈을 내놓으시지요.”

“어머, 여기서 당신이 절 어떻게 할 수 있었나요?”

아라가 그의 말을 맞받아치자, 강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게다가 이제 내놓고 싶어도 내놓을 수가 없는걸요. 설마 그가, 바보같이 여기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녀는 강재를 비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른 용병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흥! 제깟 놈이 도망가 봤자지…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결의를 다지는 강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만약상회의 약초꾼 하나가 아라에게 다가왔다.

“소의선님, 필요한 약초는 거의 다 수집했습니다. 이제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요…”

아라는 언제나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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