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55화 (55/818)

제55화. 천둥산

‘무슨 일이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모여든 사람들 틈 사이로 하얀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의선(小醫仙)은 우리 '만약상회'에서 특별히 초빙한 의술사입니다. 청산마을에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천둥산에 약을 채집하러 갈 때, 소의선님이 함께 가면 용병단들도 서로 따라가려고 안달인걸요.”

점원은 이런 소란에 익숙한 듯 했다.

“의술사요? 저 여자는 연금술사가 아니에요?”

투기대륙에서 ‘의술사’는 불꽃을 사용해 약재를 섞어 치료를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치료 능력이나 몇 가지 치료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효과가 높은 치료약이나 연금비약을 제조하는 능력은 없기에 연금술사에 비하면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준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하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소의선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상회를 빠져 나와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 * *

객점방에 들어서자마자 준은 등에 짊어진 무거운 검을 조심스레 내려두고 휴식을 취했다.

괴물 같은 검을 벗어던지자 온 몸에서 염력이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준은 저장반지에서 황금 연꽃 열매가 담긴 상자를 꺼내, 피의 연꽃 열매를 조심스레 골라 낸 뒤, 손바닥만한 하얀 함을 꺼내 조심스레 그 안에 집어넣었다.

‘피의 연꽃 열매를 손에 넣었으니, 신선초와 얼음속성의 4급 마정석 한 알만 얻으면 피의 결정을 정제할 수 있겠네.’

준은 뜻 밖의 행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 * *

다음 날 이른 새벽, 소년은 아직 해가 보이기도 전부터 잠에서 깨어나, 침대 위에 앉아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태양이 그 얼굴을 드러낼 무렵이 되자, 소년은 눈을 뜨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 속도라면 보름 뒤면 5성 투사가 되겠어.’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문제의 검은 철검을 집어 들기 위해 한참을 낑낑거렸다.

“읏…차!”

소년은 매번 크기에 맞지 않는 이 검의 놀라운 무게에 진땀을 빼야했다.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야. 그래도 이제 이걸 맨다고 휘청거리지는 않으니까! 언젠가는 한 번에 쓱! 하고 들 수 있겠지. 쓱! 하고. 흠흠…”

* * *

천둥산은 마수로 득실거리는 가한제국 최대의 위험지대 중 하나였다. 준은 객점의 입구에 가만히 서서 울창한 숲과 우뚝 솟은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오늘부터 그는 천둥산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가슴이 기대감과 두려움으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후…괜찮아! 겁먹지 말자! 이곳이 나의 첫 수련지야. 여기서 진정한 투사가 되는거야. 여차하면 스승님이 도와주실 테니까. 겁먹지 말자구!’

마을의 중심가로 이동하자, 용병단이 천둥산에 들어갈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종종 혼자 있는 용병들도 보였지만, 그들 역시 아직 어느 무리에 들어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을 뿐, 그 위험천만한 곳에 혼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준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했다. 그 때, 광장의 한쪽 구석에서 준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만약상회입니다! 천둥산에서 약초 채집단을 호위할 용병을 구합니다! 이번에도 ‘소의선’ 아라님이 동행하십니다. 실력은 2성 투사이상, 모집인원은 50명입니다.”

‘소의선’이라는 말에 용병들이 앞다투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준 역시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으려 작은 체구로 열심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용병단을 모집하는 사내의 앞까지 나아갔다.

“이제 자리가 하나 남았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손에 든 양가죽 두루마리를 흔들며 마감이 임박했음을 알리자, 준은 다급한 마음에 폴짝 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저요! 저요! 저!”

용병을 모집하던 중년의 사내는 준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에게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조건을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꼬마야, 2성 투사 이상이라고 했을텐데? 어리다고 해서 조건은 달라지지 않는다.”

용병들은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쪼끄만게 어른들 일에 끼어 들려고 하다니.”

“비켜, 귀찮게 하지 말고.”

그러나 소년은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성인 사내의 몸통만한 나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소년이 주먹을 쥐자 옅은 노란색의 염력이 주먹을 감싸고, 잠시 후 두꺼운 나무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자리에 있던 용병들이 얼이 빠져있는 사이,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용병단을 모집하던 사내의 앞으로 태연히 돌아와 있었다.

“이 정도면 됩니까?”

중년의 사내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지막 자리는 너에게 주마. 재능이 대단하구나. 어린 나이에 벌써 2성 투사라니…보수는 500골드, 할 일은 간단해. 우리가 약재를 캐는 동안 우리를 지켜주면 되지. 선금으로 250골드, 일을 마치고 250 골드. 어때?”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험악한 용병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 * *

산 안으로 진입하자 빼곡이 들어선 나무로 인해 어두컴컴한 숲 속에는 으스스한 곤충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만약상회의 약초 채집단은 용병단과 말을 탄 호위 몇 명과 함께, 조용히 줄을 맞춰 이동하고 있었다.

숲길을 걷기를 20여분, 용병단 무리를 이끌던 사내가 뒤돌아서서 주먹을 치켜들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늑대머리 용병단 주목. 이제 곧 본격적으로 천둥산에 들어가게 된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마라.”

“예! 2단장님!”

주위의 용병들이 작은 소리로 대답하자, 청년은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활짝펴고, 약재 채집단 사이에 있는 아라를 향해 달려갔다.

“한심한 새끼…아버지가 단장이지 지가 단장이야? 왜 지가 나서서 지랄이야 지랄은.”

준의 옆에 서 있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나지막히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준은 아까 ‘제2단장’ 이라고 불리던 청년의 가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내의 왼쪽 가슴에는 외눈박이 늑대머리 모양을 한 휘장이 붙어 있었다.

이번 약재 채집단 호위 임무를 맡은 50명 중 약 30명은 늑대머리 용병단 소속의 용병들로, 청산마을 3대 용병단 중 하나였다.

용병단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수련을 떠난 준의 입장에서는 조금 맥이 빠지게도, 500여 미터를 걷는 동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1레벨 마수 몇 마리뿐 이었다.

그리고 준은 자신의 첫 번째 전투에서, 1레벨 마수 한 마리를 공격해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검에 의해 염력을 상당히 제약당한 탓에, 마수를 죽이는데 실패한 준은 기분이 상했지만, 용병단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꼬마 녀석이 대단하군. 뱀꼬리 표범과 정면으로 맞서다니.”

“대단하군. 대단해. 앞날이 창창한 친구야. 하하.”

소년은 용병들의 칭찬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멋쩍게 웃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 어번 정도 더 1레벨 마수 몇 마리를 격퇴하며 숲길을 나아간 뒤, 아라가 손을 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여러분, 이제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잠시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식 시간이 다가오자 용병들은 능숙하게 임무를 분담해 일부는 경계를 취하고, 일부는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준은 바닥에 앉자마자 눈치를 보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틈을 타, 저장반지에서 기력의 조각 하나를 꺼낸 뒤, 하품을 하는 척 하며 몰래 그것을 집어 삼켰다.

기력의 조각을 먹은 뒤 잠시 나무에 등을 대고 휴식을 취하니 다시 온 몸에 힘이 솟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용변을 보겠다고 둘러댄 뒤,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앞을 가리는 커다란 나뭇가지와 이름 모를 식물들을 손으로 치워가며, 점점 더 어두운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준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갑작스럽게 눈부신 햇빛이 보이며 발밑으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보였다.

“이야…”

준은 갑자기 나타난 비경에 감탄하며,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낭떠러지 건너편에는 또 다시 산등성이를 따라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나저나…그렇게 깊이 들어왔나. 왜 이런 곳에 갑자기 절벽이 있는거야…’

천천히 주위를 훑던 이준의 눈에 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하얀 식물 하나가 들어왔다. 식물에는 하얀색 꽃이 활짝 피어있었고, 꽃송이 안에는 붉은색의 열매가 열려있었다.

이준은 식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굽혔다. 그리고 그의 손이 막 식물을 꺾으려는 순간, 갑자기 낭떠러지 아래에서 새하얀 손 하나가 불쑥 솟아나와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으악!”

준이 땅에서 솟기라도 한 듯 절벽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백옥 같은 손에 깜짝 놀라 손을 뿌리치려는 찰나,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저를 좀 끌어 올려줄래요?”

아라의 목소리였다. 준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아라의 손을 잡아 위로 끌어당겼다.

‘어휴 놀래라…귀신이라도 튀어나온 줄 알았잖아. 왜 저런 위험한데서 갑자기 튀어 나오는 거야, 사람 놀라게…’

절벽에서 올라온 아라는 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마워요. 만약상회에서 고용한 용병 맞죠?”

“네.”

“방금 저 약초를 꺾으려고 한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약초인지 알아요?”

“하얀 난초과의 중급 약초네요. 보통 벼랑 끝에서 자라고, 희귀하지는 않지만 조류(鳥類) 마수들이 좋아하는 식물이라, 대부분 열매를 맺기 전에 마수 뱃속으로 들어가서 제법 희소성이 높죠. 이미 열매가 맺혔으니, 약재 가게에 팔면 400 골드는 받을 수 있겠네요.”

대수롭지 않은 듯 약초에 대해 줄줄 설명하는 소년을 보고, 아라는 조금 놀란 듯 그를 유심히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약초 분별하는 것을 배웠어요?”

“뭐, 조금 아는 정도에요.”

그녀는 준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식물을 꺾어 이준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하얀 난초 열매는 당신이 먼저 발견했으니 당신 몫이에요. 어서 돌아가죠.”

준은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다급하게 식물을 손에 쥐어주는 그녀의 태도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낭떠러지 아래는 왜 내려간 거에요?”

“별일 아니에요. 어떤 약초들은 저런 곳에서 피기도 하니까요. 혹시 뭔가 있을까 싶어서 내려간 것 뿐이에요. 그런데 너무 경사가 심해서 더 이상은 못 내려가겠더라구요.”

아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준의 질문에 답한 뒤, 종종 걸음으로 휴식지로 돌아갔다.

“아…”

준이 별 생각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휴식지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약로가 말을 걸어왔다.

“낭떠러지 아래에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확인해 봐.”

약로의 지적에 준은 자신이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즉시 낭떠러지로 다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파른 절벽에는 기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자라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무언가 희끗희끗한 물체와 돌멩이가 보였다. 하얀 물체는 아마도 사람이나 마수의 뼈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자, 나무 틈사이로 어두컴컴한 동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뭔가 있군.’

바로 그 때, 준은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에, 다급히 몸을 날렸다.

펑!

“이게 무슨 짓이야!”

준은 자신이 몸을 피한 자리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염력을 끌어올려 임전태세에 들어갔다.

“콜록…”

그러나 희뿌연 가루가 눈앞을 가리고, 소년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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