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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1화 (51/818)

제51화. 대투사의 위력

“그래. 1년 휴학을 허락할 수는 있어.”

하지만 무언가 조건이 있는 듯한 그녀의 말에, 이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차분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뿐 이었다.

‘휴…이거 보통 골칫덩어리가 아니네. 재능이 있는데다 머리도 좋고…눈치까지 빨라. 그런데…이렇게 고집이 세서야…’

그녀는 가람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선발해왔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학생이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좋아. 그럼 나와 겨뤄서 네가 내 공격을 20회 받아내면 내가 허락을 받아주지.”

여린은 속으로 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하며 소년을 관찰했다. 하지만 소년은 당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뭐지 이 아이는…’

오히려 제안을 꺼낸 그녀가 당황할 무렵,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겠습니다!”

준의 시원스런 대답에 여린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좋아. 여기는 좁으니까 밖으로 나갈까?”

“네.”

여린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자,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자신의 녹색 저장반지에서 파란색 채찍 하나와 철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자.”

여린이 손을 움직이자, 철검이 순식간에 준의 코앞까지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시작할까?”

“좋아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휘두르자, 새파란 채찍이 굴에서 나가는 독사처럼 섬칫하게 일렁이며 푸른 빛을 내뿜고, 주위의 공기가 마치 비라도 내릴 것처럼 습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쉭!

뱀의 숨소리처럼 날카로운 채찍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자, 준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차분하게 왼쪽으로 한 발을 내뻗어 첫 번째 공격을 피해냈다.

“피해?”

고함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채찍이 춤을 추었지만, 그녀의 공격은 이번에도 준의 옷깃만을 스친 채 바닥을 내리칠 뿐 이었다.

준은 물 속성의 염력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든 땅을 힘차게 밟고 화살처럼 여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응?”

그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채찍을 휘두르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준은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고, 식은 땀을 흘렸다.

‘위!’

소년은 황급히 앞으로 손을 뻗어 척력장을 시전해 몸을 띄웠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몸을 띄운 준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바닥에 내려선 여린을 향해 철검을 휘둘렀다.

“흥.”

여린은 준의 공격을 보고 콧방귀를 뀌고는 가볍게 손목을 돌려, 채찍으로 반원을 그려 푸른색 막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철검과 물 속성의 염력이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고, 소년의 손에 있던 철검이 산산조각 났다.

“1년 휴학은 무슨. 푸흡! 어때, 여기까지 할까?”

무기를 잃은 소년을 보며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다시 한 번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준은 무기가 없어진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무형의 힘에 의해 부서진 철검의 파편들이 소년을 향해 빨려들었다가, 놀라운 속도로 다시 여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것 봐라…?’

여린은 아직 투사에 불과한 준이 대투사들이나 사용하는 흡입력과 염력 방출을 해내는 것을 보며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의 장막!”

그녀가 손을 뻗자 하늘색 염력이 뿜어져 나와, 몸 앞에 커다란 물거울을 생성해냈다. 그러자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던 철검 조각들이 모두 물로 된 장벽에 빨려 들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공중에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 이준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2~3m 가량 남은 순간, 여린의 채찍이 바닥을 후리고 다시 한 번 소년의 몸을 향해 날카롭게 휘감아 들었다.

“흡장!”

준은 재빠르게 흡장을 펼쳐 더욱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채찍이 스친 그의 왼팔에서는 새빨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바닥에 내려앉은 준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응?”

그의 다리가 마치 바닥에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프니? 이리 와봐. 왜? 발이 떨어지지 않니?”

준이 바닥에서 움직이려 안간힘을 쓰는 사이, 여린은 재미있다는 듯 계속해서 그를 도발했다.

“태초의 힘…!”

소년은 몸을 빼낼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온 몸의 염력을 모두 쥐어짜내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흠…끝까지 한 번 해보겠다 이거지?”

여린이 싱긋 웃으며 손을 살짝 돌리자, 그녀의 하얀 손바닥에 작은 염력회오리가 나타났다.

펑!

준의 사력을 다한 일격은 그녀가 만들어 낸 작은 염력회오리 조차 뚫지 못 했다. 소년은 온 몸에서 힘이 빠지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느꼈다.

“보아 하니 휴학은 못 가겠는 걸?”

“……스승님”

여린이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준은 뒤늦게 호칭을 수정했다.

“이미 늦었어.”

이준은 힘껏 다리를 들어 함정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아직 그의 실력으로는 대투사의 힘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얘, 이제 끝났어. 나랑 얌전히 아카데미에 가자?”

여린이 다시 손을 들자 파란 채찍이 뱀처럼 몸을 틀며, 그녀의 팔에 칭칭 감겼다.

잠시 후,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채찍의 손잡이에 달린 뱀의 아가리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파란색 염력이 그녀의 입안에서 뿜어져 나와 채찍 안으로 들어가고, 파란색 염력을 흡수한 채찍은 생명을 얻기라도 한 듯 하늘로 분수처럼 용솟음치며 거대한 물뱀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이무기!”

이윽고 거대한 물뱀이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대투사의 손짓에 따라 공포스러운 기세로 소년을 덮쳤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다가오는 물뱀을 본 준은 눈을 감고 약로를 불렀다.

“스승님, 도와주세요…”

“녀석. 이제 너의 실력을 잘 알겠느냐? 진정한 강자들 눈에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 동안 상대다운 상대를 못 만나서 마음이 풀어진 게지.”

“네, 스승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어요!”

쿵!

거대한 물뱀이 끝내 준을 집어삼키자 대지가 뒤흔들리며,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여린은 자신이 만들어 낸 거대한 물뱀을 바라보다 조용히 이옥을 불렀다.

“옥아, 저 꼬맹이를 데려와. 물에 오래 잠기면 몸이……”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물기둥을 바라보던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거대한 물기둥은 어느 새 광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량의 물안개로 변해있었다.

이윽고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짙은 안개 속에서, 한 소년의 그림자가 걸어 나와 여린 앞에 마주 섰다.

“스승님…죄송하지만 약속을 지켜주셔야 할 것 같네요.”

* * *

자리에 있던 신입생은 물론이고 선배들조차도 이 놀라운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여린 역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참 동안이나 소년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녀석, 좀 하는데? 이건 정말 예상 밖이야. 좋아. 인정! 내가 책임지고 휴학을 허락하지.”

준은 시원스럽게 자신을 인정해주는 여린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에요. 스승님이 전력을 다했다면 절대 못 막았을 거에요.”

“짜식…아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4성 투사 애송이에게 전력을 다하면 그게 선생이겠니?”

“하하…”

준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여린은 다시 한 번 웃으며 약속을 지킬 것을 확인해주었다.

“어찌됐든 대단해.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아이가 고집을 부린다면 이유가 있겠지. 가람 아카데미 선생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하하, 감사합니다.”

이윽고 여린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카데미에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고 애를 쓰는데 말이야…참 골치 아픈 놈이 들어왔구만. 덕분에 나만 고생이잖아.”

“아하하, 죄송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린은 못내 기분이 좋은 듯 부드럽게 채찍을 걷어들이며 몸을 돌렸다.

“흠. 그럼 오늘 원생 모집은 이만 마무리 하도록 할까? 남은 7일 동안 하면 되니까.”

“스승님, 은빛성에 계시는 동안 저희 이씨 가문으로 가요.”

그 때, 이옥이 여린에게 급히 달려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옥아,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 숙소도 있는데, 괜히 이씨 가문에 폐를 끼칠 수는 없어.”

“폐라니요! 스승님께서 우리 이씨 가문에 오신다면 저희 가문 사람들도 좋아할 거예요.”

이옥의 사근사근한 태도에 여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잉…선생니임~”

결국 제자의 애교가 스승을 이기고 말았다. 여린은 할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씨 가문에 며칠 신세를 질까?”

“정말요? 사랑해요 스승님!”

여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옥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애교를 부렸다.

“기태야, 남자애들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 내일 늦지 않게 오고.”

그녀는 이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려 남자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네.”

기태는 스승의 명에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뒷정리를 마친 뒤 광장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 * *

“가람 아카데미의 스승님께서 저희 이씨 가문을 방문해 주시다니. 이것 참 영광입니다.”

이한과 세 장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귀빈의 등장에 상당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워낙 보채서…며칠만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여린은 막상 이씨 가문에 들어서자, 조금 민망해졌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쉬시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이씨 가문의 여자 시녀들이 나타나, 여린과 가람 아카데미의 여제자들을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 * *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달이 얼굴을 내밀 무렵, 이씨 가문의 연회장에서는 가람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선생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하지만 준은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만한 상황이 되자, 즉시 연회장을 빠져나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온 준은 극심한 피로감에 몸조차 씻지 못 하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 * *

다음 날 아침, 준은 자신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쬐는 환한 햇빛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마를 찌푸린 채 한참을 누워 있다가, 긴 하품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 비로소 몸을 씻었다.

책상 위에는 반투명한 상태로 앉아 그를 바라보는 약로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 출발하나요?”

“흠…일단 수련에 필요한 물품들을 좀 사야한다. 물, 마른 먹거리, 천막, 낮은 레벨의 약재도 필요할 테고…상처를 치유하거나 원기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연금비약도 있어야 한다. 모두 수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지. 일단 산에 들어가면 한 동안은 바깥 세상 구경하기는 힘들게다.”

하지만 이미 수련을 떠날 생각에 마음이 들뜬 준은, 웃음을 참지 못 하고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얼른 떠나고 싶어요!”

반면, 제자와 달리 스승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너는 생사를 오가는 대결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하지만 진정한 투사란 생사가 걸린 싸움을 통해서만 탄생하는 법이다.”

“그럼 어떤 수련을…”

준은 스승의 말을 듣고 태초의 힘을 익히기 위해 채찍질을 당했던 것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식은 땀을 흘렸다.

“허허…너의 재능은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너는 아직 진정한 투사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지. 이번 수행을 통해 너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네, 새롭게 태어나야죠!”

기대감과 열의로 가득한 준의 표정에 약로는 기분이 좋아졌다.

“녀석…의욕 하나는 맘에 든단 말이야.”

스승의 기분이 좋아보이자, 준은 능글맞게 웃으며 새로운 무투기에 대해 물었다.

“히힛… 그나저나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2격의 무투기는 언제 배우게 되는 건가요?”

“허…요놈! 아직도 나를 못 믿는 게냐. 아니면 성격이 급한 게냐. 일단 수련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배우게 될 테니 걱정 말거라.”

준은 스승의 꾸중 아닌 꾸중에 어색하게 웃으며 수련을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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