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50화 (50/818)

제50화. 레벨을 나누다

여린은 신입생들이 천막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태도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화가 나서 그런 거니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말고.”

“당연한 말씀을요. 제가 어떻게 하늘같은 선배님을 미워하겠어요.”

여린은 방금 전까지도 기태와 각을 세우다가 태연하게 웃음을 짓는 소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 소년은 보통이 아니었다.

“휴…조장, 대철이 좀 데리고 와.”

“네!”

대철이 남학생들에게 업혀서 들어오자, 여린은 고개를 숙여 대철의 상처를 살피다가 인상을 쓰며 준을 올려다 보았다. 준은 여린의 눈빛에 괜스레 마음이 뜨끔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어휴…”

잠시 후, 그녀의 팔에서 은은한 푸른 염력이 흘러나오자, 대철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여린은 물속성의 대투사로, 물속성의 염력은 모든 속성의 염력 중 가장 부드러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뛰어난 물속성의 염력을 가진 투사는 움직이는 상처 치유약이라고 불리며 많은 용병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여린 역시 물속성의 염력을 가진 투사였으니, 당연히 상처를 치료하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님.”

“대철아, 좀 어떠니?”

“괜찮습니다…”

“괜찮으면 됐어.”

여린은 제자가 나아진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몸을 돌려 천막 중앙에 있는 의자에 우아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여러분, 가람 아카데미에 온 것을 환영해요. 먼저 여러분들의 레벨을 나누도록 하죠.”

여린이 웃으며 입을 열자,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초록색 저장반지에서 빛이 반짝이며 두루마리와 붓이 나타났다.

“참고로 말하자면, 염력 8단은 ‘F’반이고, ‘F’반은 가람 아카데미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에요. 이후 4성 투사부터 1성 투사까지 순서대로 D, C, B, A반 순으로 반이 배정됩니다. 여러분은 1성 투사가 될 때까지는 ‘F’반에 있어야 해요. 그리고…아주 드문 일이지만, 5성 투사가 된 학생은 다섯 개 등급의 반 이외에 특별히 배정된 특별반으로 승격 될 거예요.”

여린은 설명을 이어가며 이준과 이은을 위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흠…이 아이들은 적어도 C반 이겠는걸…아주 뛰어난 아이들이야.’

그녀는 자신의 영혼 탐지 능력으로 둘의 능력을 가늠해보다가 다시 심사를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왼쪽부터 이름과 레벨, 나이를 불러주세요.”

드디어 기록이 시작되자, 텐트 안의 여학생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러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옥아, 저 이준이란 애는 과연 무슨 레벨일까?”

“아마 C나 B?”

“정말?”

“그렇게 높다고? 우리가 전에 레벨 평가 받을 때는 제일 높았던 애가 D레벨 이었잖아.”

“그냥 한 번 봐. 나도 저 녀석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니까.”

이옥은 친구들의 질문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천막 중앙을 바라봤다.

여린은 연달아 학생들의 이름을 레벨을 평가한 뒤 반을 배정해주었다.

“준태, 염력 9단이고 스무 살입니다.”

“E.”

“민선, 염력 8단이고 19살입니다.”

“F.”

“지희, 염력 9단이고 17살입니다.”

“E.”

드디어 이준의 차례가 오고, 천막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관심의 중심이 된 인물은, 그 사이를 못 참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상태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결국 은이 그를 흔들어 깨우자, 준은 반쯤 감긴 눈으로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이준, 17살, 4성 투사입니다.”

“이준, A.”

순간 기태와 대철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장내에 또 다시 소란이 일었다.

“옥아… 너… 너는 C 아니면 B레벨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바로 A레벨이 될 수 있지?”

“하…”

이은은 준에게 다가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놀려댔다.

“오라버니, 매번 사람들을 놀래키네요?”

준은 한숨을 내쉬며 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웃기지마. 네가 나보다 더 강한 거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어떡하지… 그냥 가짜로 말할까요?”

“그냥 솔직하게 말해. 아카데미에서 너의 자질을 알면 앞으로 너의 발전에도 좋아. 물론 너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이준의 단호한 태도에 이은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치…오라버니 말 들을게요.”

소녀는 사뿐사뿐 여린의 앞으로 걸어가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은. 16살, 6성 투사입니다.”

16살 6성 투사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괴물 같은 년에게도 드디어 라이벌이 생겼군…”

이옥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여린은 기쁨으로 눈을 반짝이며 이은을 칭찬했다.

“대단하네, 아마 올해 신입생 중 최고는 너일 것 같구나.”

그러나 이은은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 이었다.

“아…아닌데요…”

“응? 그럼 설마 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단 말이야?”

“네. 그 사람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응?”

여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16살의 6성 투사라면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매해 가람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지역에서 내노라하는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A 레벨의 평가를 받는 신입생조차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것이었고, 심지어 눈앞의 소녀는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은보다 더 대단하다니…여린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

은의 말에 준은 무언가 짐작이 가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린의 질문에 이은은 머리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아, 준이의 자질도 아주 훌륭해. 하지만 너보다 강하다는 말은 조금 지나치구나.”

“그래, 그 녀석은 너한테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 겸손도 지나치면 상대를 놀리는 거나 다름없어.”

구석에 서 있던 기태가 비꼬듯 한마디를 보태자, 이은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여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은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은아. 그럼 준이가 지금 실력을 속이기라도 했다는 거니?”

“아니요…그게 아니라…”

하지만 소녀는 난처한 기색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여린은 이 상황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두 신입생이 자신을 속이거나 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번에는 준을 바라봤다.

“흠…준아 네가 말해볼래?”

“휴…뭘 감춘 건 아니고요. 제 상황은 은빛성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문제거든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은 이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어떤 상황인지 들려줄 수 있을까?”

여린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아예 붓을 내려놓고 준을 바라봤다.

“아니에요, 제가 말씀 드릴게요. 오라버니는 자기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이준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껄끄러워 하는 기색을 보이자, 다시 은이 나섰다.

“그래, 좋아.”

“오라버니는 네 살부터 수련을 시작해서 열 살에는 이미 염력 9단이 되었다가 열한 살에 이미 투사가 됐었어요.”

“열한 살에? 그…그래, 그 다음에는?”

여린은 놀라운 듯 눈을 크게 뜨며 이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음…그런데 열두 살 이후 3년 동안 염력이 3단으로 다시 떨어졌었거든요.”

“투사에서 염력 3단으로 떨어졌다고?”

여린은 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준을 위 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네에…”

“그게 무슨…”

그녀는 머릿속으로 준의 성장속도를 대충 계산해본 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 오라버니는 1년 반 만에 다시 염력 3단에서 다시 4성 투사가 된거예요. 저는 16년 동안 6성, 오라버니는 1년 반 만에 염력 3단에서 4성. 그러니 오라버니가 저보다 낫죠.”

이은이 설명을 마치자 천막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천막 안에 모인 이들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이은을 뭐라 불러야 하겠는가. 그리고 이은을 천재라고 한다면 대체 이준을 무어라 불러야 마땅할까?

구석에 있던 기태와 대철은 이은이 설명을 마치자,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그랬단 말이지?”

여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탄하며 이준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뜯어보았다.

“무슨 뜻인지 알겠구나…네가 말을 해주지 않으면 놓칠 뻔 했어.”

* * *

“여러분은 7일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7일 후 가람 아카데미의 비행선이 은빛성에 도착하면 그 때 모두 같이 아카데미로 이동합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대충 정리되자 여린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스승님, 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니?”

“저는 아마 아카데미에 같이 가지 못갈 것 같습니다…해결하고 가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같이 못 간다는 거야? 왜? 규정에 따르면 신입생은 방학 외에는 학교에 있어야 해.”

“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해요.”

“흠…”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고…절대로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준의 눈을 쳐다보던 여린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좋아. 그럼 며칠이 필요한데? 너무 길지만 않으면 내가 대신 허락을 받아줄게.”

“1년…쯤이요.”

준의 말에 다시 한 번 천막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지금 나랑 장난 하는 거니?”

여린은 준의 요구에 다소 화가 난 듯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스승님…저는 지금 정말 진지하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소년의 단호하고도 진지한 말투에 여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기간이 너무 길지 않니? 조금 시간을 줄여 보는 게 어때? 너 정도라면 아카데미에 도착하자마자, 특별교육을 받게 될 거야. 가한제국 어디에 가도 받을 수 없는 굉장한 수업을 받게 되겠지. 그런데 그걸 제쳐놓고 시간을 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제게는 이 기간이 가장 중요한 기간입니다.”

“신입생 휴학이 너무 길어…”

여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는 말만 하지 않았지, 사실상 거절의 의미였다.

“그게 안 된다면…내년에 다시 원생 모집에 참가하겠습니다.”

“나간다고?”

이준의 단호한 태도에 천막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옥은 준의 영문 모를 행동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흠…이봐 천재소년. 날 난처하게 하지 마. 1년은 너무 길다니까.”

여린은 아쉬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조금 전보다 더 단호하게 준의 부탁을 거절했다.

“스승님, 1년입니다. 이건 무를 수 없어요. 그 누구라도 제 결정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뭐? 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그렇게 오래 쉬어서 얻을 수 있는게 대체 뭔데?”

준의 태도가 너무 강경하자 여린은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요.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허락해주시면 감사하지만, 안 된다면 저는 내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고 말하신다면, 저는 가람 아카데미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건 스승님에 대한 도전도 아니고, 여유도 아니고, 남들보다 실력이 조금 낫다고 건방을 떠는 것도 아닙니다. 스승님. 왜 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이 일이 그만큼 저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람 아카데미 입학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정말로 이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정말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그 1년 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니?”

여린은 준의 눈빛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지만, 동시에 자신이 살면서 이런 인재를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 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