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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9화 (49/818)

제49화. 위협

준은 이옥과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내쉬며 기태를 바라봤다. 그는 쓸데없는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기태라는 자의 행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 그럼 꼬맹이, 시작해 볼까? 선배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좀 가르쳐 줘야겠어.”

기태의 명을 받은 대철이라는 사내가 어깨를 빙빙 돌리며 앞으로 나서자, 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가다가, 갑작스레 이옥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돌발적인 행동에 이옥은 멍하니 준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여태까지 얌전히 있던 소년의 박력 넘치는 행동에 여자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기태는 똥씹은 표정이 되어 대철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세게 해!”

기태의 말을 들은 대철이라는 사내는 음흉하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옆에 선 이은등 세 사람도 둘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이자야.”

준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이옥의 허리를 두 어번 더 쓰다듬고는 얼굴이 새빨개진 이옥을 뒤로 한 채, 대철이라는 사내를 향해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겼다.

* * *

천천히 걸어 오는 이준을 보며 대철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신입생이 들어올 때 마다, 선배의 위엄을 보이는 것 역시 가람 아카데미의 전통 중 하나였기 때문에, 썩 문제될 일도 없는 대결이었다.

사실 가람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많은 학생들은 재능이 넘치고 자신이 자란 곳 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자들이 대부분인 만큼, 이런 전통이 썩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이런 전통은 혈기 왕성하고 건방진 신입생들에게, 실력차를 확실히 보여 불필요한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웬만하면 스승님들도 눈을 감아주는 문제였다.

대철은 주먹을 쥐며 자신이 신입생일 때 2성 투사였던 선배에게 얻어맞고 바닥을 기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은 한 방에 무릎을 꿇고 개망신을 당한 뒤, 그대로 밖에 나가 쏟아지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았었다.

“옥이야, 왜 쟤를 안 막는 거야? 밖에 나가 앉아 있는 게, 얻어터지는 것보다는 백 배 낫잖아? 왜 괜한 짓을 해!”

차갑게 웃는 대철을 보며 이옥 옆의 소녀들이 참지 못하고, 이옥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유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차분하게 이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정말 저 아이가 3성 투사…?’

그녀는 마음속으로 과연 이준이 아카데미의 요물 같은 여자와 비길만한 대단한 천재인지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아니다 이건 대보지 않아도 알거야. 괜한 짓을 하는 쪽이 누군지 똑바로 지켜봐.”

이옥의 단호한 말투에 친구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이었다.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신입생들의 시선이 이준과 대철을 향했다. 그들 중에도 신고식을 치렀던 이가 몇 명인가 있었기에, 이 대결에 더욱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 신고식에서 신입생이 이길 것 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나름대로 난다긴다하는 인재였지만 손 한번 뻗어보지 못하고 얻어터지고 말았으니, 눈앞에 있는 애송이도 마찬가지일 것이 뻔했다.

“꼬맹이, 준비 됐어?”

사람들의 주목을 온 몸으로 느끼자 대철은 더욱 신이 났다.

“시작하지.”

준이 무신경한 표정으로 짤막하게 대답을 하자, 대철은 울컥하고 화가 치밀었다.

“하하, 녀석 배포가 꽤 좋은데?”

눈 앞의 신입생은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좋아!”

대철이 오른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앞으로 숙이자, 강렬한 염력이 주먹을 휘감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선배들은 대철이 전력을 다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신고식이라고는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준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분에 못 이긴 대철이 전력으로 몸을 날리자, 준은 멀뚱히 서서 주먹이 얼굴까지 날아드는 것을 구경하다가는, 머리만 살짝 움직여 주먹을 피한 뒤 손바닥으로 대철의 주먹을 호되게 후려쳤다.

짝!

누가 봐도 준의 손짓은 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고 슬쩍 휘두른 손에 대철은 균형을 잃고 말았다.

“속도도 느리고, 힘도 약하고, 진짜 가람 아카데미 학생 맞아?”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선배의 공격을 뿌리쳐내는 준을 보자, 신입생들은 물론이고 선배들도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이준은 1성 투사의 공격을 파리라도 때려잡듯 대충 뿌리치고 있었다.

대철은 한 수만에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 새끼가 죽을라고!”

신입생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대철은 분을 이기지 못 하고, 오른발을 들어 준의 얼굴을 걷어차려 했다.

퍽!

그러나 대철이 발을 제대로 휘둘러 보기도 전에, 복부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흐읍…”

그는 강렬한 일격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참지 못 하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대철이 염력을 끌어올려 화려하게 날아오르자 청색 투기가 그의 오른 다리를 휘감으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 어떻게 애한테 바람칼날까지 사용할 수 있어!”

대철의 무투기를 알아본 소녀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그가 사용한 무투기는 4격 상단계의 무투기로, 도저히 신고식에 쓸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옥은 이번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흥…가온은 3격 무투기를 사용하고도 개박살이 났다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일격에 팔이 뒤틀려 바닥을 기던 가온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준은 이번에도 멀뚱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발차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짜증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꺼져!”

순간 무형의 강력한 기운이 준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가더니, 대철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컥!”

쿵!

대철은 대략 4~5미터를 날아가 비참하게 바닥에 내동댕이 처지고 말았다. 그는 추하게 몸을 움찔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 준을 바라봤다.

“너…너…”

신입생에게 본 떼를 보여주려던 선배는,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까무라치고 말았다……

불과 10여 초 만에 일격에 1성 투사를 쓰러뜨린 이준의 모습에 모든 신입생들이 준에게 뜨거운 존경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준을 보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 자리에 있는 20여명의 신입생들은 모두 나름대로 한가닥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선배들에게 손 한번 뻗어보지 못하고 얻어터져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왠 새파란 애송이 하나가 그 대단한 선배를 모기 때려잡듯 가뿐히 물리치니, 위에는 또 위가 있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연…우리 옥이가 그 요물이랑 비교할만하네.”

준의 행동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던 유희가 감탄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옥아, 쟤 대체 몇 성 투사야? 보아하니 이미 투사가 된지 오래된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소녀들은 놀란 표정으로 이옥을 에워싸고 질문을 던져댔다.

1성 투사를 한 방에 저 꼴로 만들 수준이라면, 아마도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강할 것이 틀림없었다.

“진짜로 붙으면 나도 못 이겨.”

이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씁쓸하게 내뱉자, 소녀들의 눈동자가 반짝 거리기 시작했다.

“와…얼굴도 잘 생긴 게 실력까지 죽이네! 옥아 옥아, 근데 쟤, 네 사촌 동생이라지 않았어? 우리한테 양보하는 건 어때? 이 몸이 저 아이에게 연상의 성숙함이랄까, 뜨거움이랄까, 그런 것들을 아주 잘…”

“야이 미친년아!”

소녀들의 짖궂은 호감 표현에 이옥은 욕설을 퍼부으며 친구들을 밀쳐냈다.

‘난 쟤랑 그렇게 가까운 친척 아니라고…’

이옥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며 얼굴을 붉혔다.

* * *

이옥과 여자 원생들이 이준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자, 기태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마음에 불길이 이는 기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이제 안 나가도 되겠지?”

“하하, 실력이 만만치가 않네.”

기태는 다시 한번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그는 천천히 준에게 걸어가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히 경고를 했다.

“잘난 척 하지 마 새끼야. 가람 아카데미에는 너보다 센 놈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곧 뜨거운 맛을 볼거다.”

“충고 고맙군.”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짤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당신은 그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이준은 처음부터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던 기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은 실력이 있다고 초면부터 이렇게 나오는 얼간이들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적개심의 이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구차하게 이옥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진짜로 맞붙더라도 지금의 준에게 이제 막 4성이 된 투사 정도는 그리 어려운 상대도 아니었다.

신입생의 날선 비아냥에 기태의 얼굴이 숨기지 못 할 만큼 굳어갔다.

“그래…아주 대단한 천재납셨군. 학원에서 보자. 그 때는 선배로서 너에게 예의라는 게 뭔지 가르쳐주지.”

준은 유치한 기 싸움에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가람 아카데미에는 무슨 영기라도 흐르나? 은빛성에서는 못 하던 교육을 거기가면 할 수 있게 되고, 여기서는 못 이길 상대를 가람 아카데미에만 들어가면 천지의 기운을 받아 이길 수 있게 되나보지?”

신입생의 독설에 기태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소년의 눈에서 자신이 여태까지 보지 못 했던 살기가 담겨 있는 것을 느낀 그는,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이 살기등등한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 갑자기 천막 안에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 녀석, 자질이 아주 훌륭한 걸? 내가 큰 보물을 하나 주은 것 같아. 호호.”

* * *

천막 안에 낯선 여자 하나가 나타나자 이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옥은 어린아이처럼 콧소리를 내며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매달렸다.

“여린 스승님, 보고 싶었어요! 힝.”

“호호, 우리 옥이구나. 방학 동안 잘 있었니?”

“뭐, 그저 그랬어요.”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구?”

“네. 여린 스승님은 더 예뻐지신 것 같은데요?”

“그래…고맙구나.”

여린은 이옥의 애정표현을 가볍게 받아 넘겼지만, 이옥은 더욱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여린에게 다가섰다.

“네가 데려 온 애들이니?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여린의 시선이 이씨 가문의 아이들로 향하자, 이옥은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쳐들었다.

“네. 우리 가문 동생들이에요. 대단하죠?”

여린 역시 준을 비롯한 이씨 가문의 아이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 뒤, 이옥의 손을 슬며시 뿌리치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모두들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의 다정한 한마디에 땡볕에 앉아 비 오듯 땀을 쏟던 신입생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막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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