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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5화 (45/818)

제45화. 강도출현

다음 날 아침. 가씨 가문.

문중의 누구도 가후를 둘러싼 섬뜩한 살기에 누구도 그에게 말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가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석의 방을 훑은 후 입을 열었다.

“유석이 사라졌다고?”

“네, 촌장님… 어젯밤에 제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는데…유석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밖을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들도 유석님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제발 살려 주십시오…”

시녀는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떨궜다.

“어젯밤에 그는 방에서 나온 적이 없어. 우리 가씨 가문에는 대문이 두 곳밖에 없는데, 모두 대투사 레벨의 강자들이 지키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그 놈이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가후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고함을 치자, 시녀의 얼굴은 더욱 더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씩씩거리며 다시 한 번 방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시녀는 숨소리조차 가후의 신경을 거스를까 염려하며 가만히 눈동자를 굴렸다.

“잠깐…”

가후는 방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방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겨, 하얀색 분말을 손에 묻혀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하얀 분말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유석이…… 내 눈 앞에서, 이 가씨 가문의 안방에서 죽었다고?”

* * *

다음날 오후, 준은 마을을 빠져 나와 가씨 가문의 정보를 캐내려고 은빛성 구석구석을 살폈다. 유석이 실종 되었으니, 가씨 가문에서는 분명 난리가 났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정상영업을 하고 있었고, 연금비약 역시 평소처럼 팔고 있었다.

“가후…그래도 한 가문의 수장다운 수완은 갖추고 있구나…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다니…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준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유씨 가문의 경매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경매장 외곽의 구석진 곳, 소년이 사라지고 또 다시 검은 망토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오늘도 그가 경매장에 나타나자, 아름다운 시녀 하나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접대실로 모시고 갔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자 주희가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호호,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오늘은 웬일이신가요?”

여전히 존댓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주희의 태도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지금 그녀의 말투는 분명히 준을 놀리는 듯 한 것이었다.

소년은 한숨을 내쉬며 저장반지에서 다섯 개의 옥병을 꺼내 주희 앞에 내밀었다.

“오늘은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이미 주희에게 신분을 들켰기 때문에, 오늘은 준이 직접 말을 하고 있었다.

주희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다섯 개의 뽀얀 옥병을 홀린 듯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준의 옆에 우아하게 앉으며 조심스럽게 옥병 하나를 집어 들어 기울였다. 그러자 병 안에서 기이한 옥색의 연금 비약 하나가 굴러 나왔다.

그녀는 몇 번이나 용의 정수의 향기를 맡은 뒤, 조심스레 옥병 안에 다시 연금비약을 집어넣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생께서 드디어 가씨 가문에 손을 쓰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일찍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야.”

준은 주희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인 뒤, 가슴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종이에는 몇 가지 약재가 적혀져 있었는데, 약재들은 모두 원기를 회복하는 효능이 있는 약재들이었다. 이 약재는 그가 이은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종이를 건네받은 주희는 아무 말도 없이, 즉시 시녀를 불러 약재를 준비시켰다.

준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씨 가문이 다른 도시에서 약을 찾은 것 같던데요?”

“음… 얼마 전부터 금빛성에서 한 약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문과 협력을 하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그 곳에서 구입하는 약재들이 은빛성보다 4할은 더 비싸. 완전히 바가지지.”

주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싱긋 웃자, 이준의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돈을 아끼지 않는군요. 그럼 그들이 약재를 어떻게 운반하는지도 알고 있나요?”

준의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찻잔을 든 주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너…또 무슨 짓을 하려고…?”

“강도짓이요.”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씨 가문도 참 운이 없어, 너 같은 적을 두다니…”

주희는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켜 접대실을 나가더니, 잠시 후 손에 두루마리 몇 개를 들고 나타나 그것을 준에게 건네주었다.

“금빛성 경매장에 관한 정보를 얻었는데, 이틀 전에 가씨 가문에서 총 40만 골드나 되는 약재를 주문했다고 하더라구. 이 약재는 아마 오늘 오후에 은빛성에 도착할 거야. 그리고…가씨 가문에서 지불한건 선금 10만 골드뿐이야. 나머지는 아직 주지 못 했고. 약재를 운송하는 자들은 3성 이상 투사가 세 명, 대투사가 한명. 그리고 이제 막 투사가 된 호위무사 수십 명.”

준은 주희의 말을 듣자, 환히 웃으며 두루마리를 받아 저장반지에 집어넣었다.

“40만 골드요? 통도 크네요. 이 약재가 없어지면 그 쪽 약재상에 어떻게 둘러대는지 두고 보죠. 지금 가씨 가문은 이미 파산 직전일 텐데… 30만 골드를 어떻게 갚나 보자구요.”

약재를 들고 들어오는 시녀를 본 이준은 주희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약재를 받아,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나섰다.

의자에 앉아 소년의 뒷모습을 보던 주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꼬마 녀석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보통이 아니야…어쩌면 가씨 가문은 정말로 끝장이 날지도 모르겠군…”

* * *

넓은 길 위에는 18대의 마차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고, 태양이 뜨겁게 내려앉아 마차 주위의 호위무사들은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호위무사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오늘 호위를 맡은 자 중에는 3성 대투사 가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가씨 가문의 장로 중 하나이자, 은빛성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로, 그 역시 미칠듯한 폭염으로 인해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이게 다 그 죽일 놈의 이씨 가문 때문이야…조만간 그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려야지 안 되겠어.”

가흠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약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장반지 몇 개만 있다면, 이런 원시적인 방식으로 운송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급 저장반지에 자신들이 구매한 약재를 모두 담으려면 적어도 5개의 저장반지는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가씨 가문이 가진 저장반지는 하급 저장반지 두 개 뿐 이었으니, 결국 나머지는 힘겹게 직접 나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가흠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냐고 짜증스럽게 입을 열려는 순간, 가문의 호위 무사 하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장로님,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이유 없이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보고를 받은 가헌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거렸다. 마침 화풀이 거리를 찾고 있던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마차에서 뛰어내려, 검은 망토의 사내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나아가니 길 가운데에 큰 돌이 하나 놓여져 있고,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그 돌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가흠은 그 사람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음을 직감했다.

“댁은 누구요? 왜 우리의 앞길을 막는 것이요?”

“당신들 가씨 문중 사람들 맞지?”

검은 망토 사이로 약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가흠은 어두운 얼굴로 손을 치켜들었다.

장로의 명에 호위 무사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에 찬 무기를 꺼내들고, 정체불명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오, 제대로 찾아왔나 보군.”

가흠의 반응을 본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가흠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옆에 있는 호위무사의 손에서 활을 빼앗아 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가던 화살은, 괴한의 코앞에서 하얀색 불길에 휩싸여 먼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가흠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눈 앞에 있는 자는 틀림없이 대투사 수준의 강자였다.

가흠은 천천히 숨을 내 뱉고, 뒤에 선 부하한테서 짙은 남색 창을 받아 쥐고 즉시 염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하늘색 염력이 피어오르자, 주위의 공기가 습해지며 숨 쉬는 것이 더욱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쉬익!

창을 붙잡은 가흠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발을 구르며 몸 전체를 하나의 파란색 빛덩이로 만들어 그대로 괴한의 목을 노렸다.

가흠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자, 손에 든 창이 요란스레 떨리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해일창!”

해일창은 3격 단계의 무투기로 가흠이 지금까지 익힌 투기 중 레벨이 가장 높은 무투기였으며, 전력으로 승부하면 상대가 6성 대투사라고 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을 만큼 강한 무투기였다.

가흠의 고함소리와 함께 파란색 염력이 파도처럼 괴한을 향해 몰아쳤다.

3성 대투사의 공격에 부하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이미 몇 차례 도둑들을 만났지만, 그 도둑들은 예외 없이 모두 가흠의 창 아래 주검으로 변하고 말았다.

자리에 있는 호위 무사들은 이번에도 일 합만에 상대가 시체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창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기세가 더해져, 해일처럼 적을 덮쳐나가고 있었다.

“죽어라!”

점점 가까워지는 목표물을 보며, 가흠의 얼굴에 살기가 번뜩거렸다. 그는 전력으로 창을 붙잡고 모든 체중과 염력을 실어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창이 머리에 거의 닿기 직전…괴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낯익은 얼굴 하나가 가흠의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은…이씨 가문의…’

거대한 해일이 괴한의 목전에 닿는 순간, 거대한 하얀색 불길이 화산처럼 폭발해 가흠을 덮쳤다.

……

치이이이익…

3성 대투사를 재로 만든 불길이 잦아드는 장면을 보며, 가씨 가문의 호위 무사들은 눈을 의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흰색 불꽃이 치솟는 듯 하더니, 3성 대투사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괴한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자신감 넘치던 표정은 어느새 공포로 물들어 있었고, 환호성을 지르던 입에서는 공포스러운 신음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내가 다시 손바닥을 뻗자, 무시무시한 하얀색 불길이 다시 한 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줘!”

“제…제발 살려주십시오!”

잠시 후…정체불명의 괴한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 불꽃이 화살처럼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약재를 재로 만들어버렸다.

* * *

“뭐라고? 약이 전부 타버렸다고? 둘째 장로는? 지금 어디 있어?”

가후는 미친개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호위 무사 한 명이 가후 앞에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째 장로도 약을 태운 그 사람한테 죽었습니다.”

둘째 장로가 죽었다는 말에 가후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가흠은 가씨 가문에 셋 밖에 없는 대투사 중 하나였다. 이미 벼랑 끝에 몰린 가씨 가문의 입장에서, 대투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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