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33화 (33/818)

제33화. 시장조사

가씨 가문에서 관리하는 이 작은 시장은 성의 구석진 곳에 있어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곳 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장 입구부터 구석진 곳까지 사람들이 가득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가까운 곳에 있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내들을 비집고 시장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몸 곳곳에 배어있는 피 냄새로 미루어보아 용병들인 것 같았다.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그들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약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니, 이렇게 가씨 가문의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시장 곳곳에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치료약을 담은 나무통을 들고 나오는 용병들을 발견했다.

‘저 통 안에 ‘활기의 물약’이 들어있겠지?’

준은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활기의 물약을 구매했다. 살 때도 나올 때도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한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느라, 활기의 물약 한통을 구매하는데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 나무통을 열자 그 안에는 작은 병 열 개가 들어 있었다. 병은 가장 급이 낮은 옥석을 사용한 듯 했다. 이런 용기로 약을 담으면,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잠시 후 뚜껑을 열자 연한 청색의 액체에서 미약한 향이 뿜어져 나왔다.

“스승님, 이것도 상처 치유약이에요?”

준은 약로의 것에 비하면 거의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약이 얼마나 약효가 있을지 궁금했다.

“음, 최저 수준의 치유약이다. 어느 정도 상처를 치유하는 작용을 하긴 하지만…큰 효과는 볼 수 없을게다. 이런 약은 정제하기도 어렵지 않아. 게다가 상처 치유약이 드문 것도 아닌데, 아무리 1레벨이라 해도, 연금술사가 이런 것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구나.”

“열 병에 100골드니까 한 병에 10 골드 꼴인데, 너무 저렴하긴 하죠.”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승님, 혹시 더 좋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 처방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발에 채일 만큼 많다. 다만 너무 수준이 낮아서 정제하지는 않지.”

약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천천히 운을 뗐다.

“흠…좋아. 너도 이제 투사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정제술을 배워야겠구나.”

“예? 제가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준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놈이… 그럼 그런 약을 만드는데 스승이 나서야겠느냐? 그리고 너도 하루빨리 연금술사가 되어야 할 것 아니냐. 상처치료약 정도면 첫걸음마를 떼는 정도로 제격이지. 우선 경매장에서 괜찮은 약솥을 하나 찾아보고, 대량의 초급 단계 약재가 필요하다. 초보 연금술사에게는 약을 끓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니까.”

이준은 흥분으로 눈은 반짝였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그는 즉시 손에 든 통을 도랑에 집어던지고 경매장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 * *

경매장에 가까워지자 그는 구석진 곳에 가서 예의 그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경매장으로 들어섰다.

이미 ‘검은 망토의 연금술사’는 경매장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손님이 되어 있었다.

멀리서 검은 망토가 보이자마자, 하인들은 즉시 경매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 주희와 곡니에게 연금술사의 방문을 보고했다.

주희와 곡니는 그 사내가 나타났다는 말에 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경매장 입구까지 한 달음에 달려 나왔다.

약로는 둘을 보자마자 준을 대신해 용건을 알렸다.

“이번에 방문한 이유는 당신들한테 괜찮은 약솥을 하나 얻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희는 즉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뒤, 시녀를 불러 무언가를 지시하고는 검은 망토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호호, 마침 잘 오신 듯합니다. 마침 오늘 아침 경매장에 하원 대사가 만든 솥이 올라왔다고 하네요. 그 솥은 염력으로 만든 화염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고 정제율을 높여주는 기능이 있어, 많은 연금술사들이 탐을 내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마음에 드실 것 같은데…”

“음.”

준은 스승의 지시에 따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아직 무엇이 좋고 나쁜지 가릴 수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로가 좋다면 틀림없었다. 이윽고 준을 대신해 약로가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말했다.

“그럼 약솥과 함께 초급 단계의 저장반지와 응혈초 500잎, 양귀비 500송이, 활기의 열매 500알을 준비해주시오.”

약로의 요구를 들은 곡니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장반지라면 가장 저렴한 것이라 해도 7~8만 골드는 필요했고, 나머지 약재들도 초급 약재이긴 하지만 양이 워낙 많아 10만 골드는 필요했다. 게다가 주희가 말한 약솥은 15만 골드는 되는 물건이었으니 대략 30만 골드는 필요해보였다.

주희도 필요한 재료들을 듣고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어쨌든 자신은 일개 경매사일 뿐 경매장 자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사적으로 30만 골드 정도야 동원할 여력이 있었지만, 유씨 가문의 허락 없이 그 정도 금액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4레벨 연금술사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물론이죠 선생님. 한 시간 안에 모두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고맙군요.”

그가 주희에게 호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웃음이 주희에게는 상당히 좋은 신호로 받아 들여졌는지, 그녀는 금세 안색이 밝아졌다.

약로가 대신 말을 마치자 준이 검은 망토 사이로 손을 내밀어 카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방금 그 약재들 외에 얼마 전과 똑같은 재료를 준비해주시오.”

곡니는 그 말을 듣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미소를 지었던 주희도 이번에는 잠시나마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30만 골드도 큰 금액인데, 거기에 용의 정수를 사기 위한 재료값이라니…아무리 4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라도 조금 억지스러운 요구였다.

주희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투자하기로 한 이상 몇 십만 골드 때문에 괜히 연금술사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연금술사였다. 그는 단순히 자기의 지위만 믿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오만한 연금술사들과는 달리 거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허허…이거…제가 두 분에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군요. 이 재료들은 내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두 분에게 ‘용의 정수’를 하나 만들어주려 하는 겁니다. 용의 정수를 판매한 대금으로 나머지 재료값을 치르시고, 만일 돈이 남거든 그건 두 분 몫으로 하세요. 제가 만든 용의 정수도 단왕이라 불리는 고하의 그것보다 못하지는 않을 테니…아마도 충분할 겁니다.”

검은 망토 사이로 멋쩍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오자, 둘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주희와 곡니는 입이 귀에 걸려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 * *

응접실에 앉아 기다린 지 한 시간째,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옷 한 벌만을 입은 매혹적인 시녀 하나가 조그마한 손수레에 물건들을 싣고 나타났다. 시녀는 말없이 은빛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공손하게 뒷걸음질 쳐 문을 닫고 나갔다.

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느다란 손으로 은빛 그릇의 뚜껑을 열자, 그릇 안에서 자주색의 반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지 위에는 신비한 문자가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선생님, 필요한 약재와 말씀드린 약솥은 모두 이 안에 있습니다.”

준은 반지를 손바닥에 올려 유심히 살펴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내 용의 정수를 정제해서 가져다주리다. 그럼 이만…아참, 배웅은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이 영 불편해서…”

주희는 얼굴에 화색이 만연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불명의 연금술사가 사라지자 주희는 그가 남기고 간 카드를 잠시 바라보다 낮은 소리로 곡니에게 말을 걸었다.

“곡니 아저씨, 용의 정수가 그렇게 정제하기 쉬운 물건이던가요?”

“어쩌면 저분은 4레벨 연금술사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곡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하자 주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4레벨 연금술사라면 잘해봐야 성공률이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분은 용의 정수 한 알을 만들 재료만 받아가는군요. 아마도 절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의미겠지요. 게다가 겸손한 말투이긴 했지만, 그 단왕의 용의 정수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제가 또 저분의 실력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주희의 얼굴은 화색이 도는 정도가 아니라, 흥분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런데…가한제국 내에 4레벨 연금술사 이상이 그렇게 많은가요?”

그녀의 질문에 곡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제가 말끝을 흐린 것입니다. 저는 가한 제국 내에서 4레벨 이상의 연금술사가 몇 명이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5레벨 연금술사라면 제국이나 운남종 조차 국빈으로 모시는 수준입니다. 그런데…그런 분이 경매장에 와서 손수 재료를 구하고, 연금비약이나 연금비약을 판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4레벨 연금술사라도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용의 정수 제조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저 태도로 보아 운을 믿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당혹감,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어찌됐든 적어도 4레벨인건 확실하군요. 그 이상일 가능성도 상당하고…아까 잠시 망설이고 불쾌한 표정을 드러낸 게 후회되네요. 혹시라도 불쾌해하지는 않을까요?

주희는 자신이 잠깐 보인 그 태도가 정체불명의 사내를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만들었을까 노심초사했다.

“아가씨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그만한 양이라면 누구나 망설였을 겁니다. 2레벨이기는 하지만 연금술사인 저도 즉답을 못할 정도의 요구였으니까요. 그 정도면 아주 잘 대응하신 것입니다. 어찌됐든 전보다 훨씬 태도가 부드러워진 걸로 보아,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곡니의 차분한 설명에 주희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왜 그런 분이 저런 초급 수준의 약재를 저렇게나 많이 필요로 하는 걸까요? 연금술사들에게는 그런 일도 있나요?”

“저 약재들은 모두 지혈과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어요. 보아하니 상처치료제를 제조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곡니도 이유를 알지 못 하는 듯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정말 이상한 일 입니다…2레벨 연금술사 정도만 되어도, 저런 초급 약재로 치유약을 제조하는 일은 드물거든요. 그런데 대체 왜…”

하지만 곡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희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이씨 가문!”

주희의 말에 곡니는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

“그 말인즉슨 이씨 가문에게 치유약을 정제해주려고 한다는 뜻인가요? 왜죠? 이씨 가문의 재력 정도면 자신들이 쓸 치유약 정도는 구할 수 있을 텐데요. 그들에게 선물로 주기에는 양이 너무 많습니다.”

곡니의 지적에 주희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최근 가씨 가문이 1레벨 연금술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연금술사가 치유약을 제조해준 덕에 지금 은빛성내의 돈을 가씨 문중에서 쓸어 담고 있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두 가문은 아주 죽을 맛이겠죠. 그리고 지난번 분명 저분이 기회가 되면, 이씨 가문과 연을 맺고 싶다고 했으니…”

그녀의 추리에 곡니도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을 지었다.

“오호…!이건 이씨 가문에서 금덩이를 주운 것이나 다름없군요.”

주희는 역시 총명한 여자였다. 그녀는 이미 곡니의 생각을 한 수 앞질러 있었다.

“지금 당장 이씨 가문에 연락을 하죠. 잘되고 나서 축하하면 의미가 없어요. 지금쯤 모두 가씨 가문에 줄을 대려고 난리가 났을 테니, 우리는 이 때 이씨 가문과 친분을 쌓아 둬야 겠어요.”

곡니도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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