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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32화 (32/818)

제32화. 구름의 불꽃

준은 자신이 은밀하게 마련해둔 수련 장소에서 조용히 염력을 수련했다.

약로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준의 마음에 마음이 뭉클해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실 처음에는 준을 적당히 구슬려 부활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육체도 없이 반지에 갇혀 있던터라 준과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고, 정이 쌓이자 정말로 준을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걱정 말거라. 내 반드시 너를 가한 제국 최고, 아니 투기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로 만들어주마.’

약로는 제자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옅은 황갈색의 염력 회오리를 조용히 주시했다.

투사가 된 후에는 누구나 자기만의 염력 수련법을 통해 염력을 단련해나가게 되고, 투사가 되기 전 백색이었던 염력은 점차 자신의 수련법에 따라 고유의 색을 띠게 된다. 지금 준의 염력 회오리는 옅은 황갈색이었다.

투사가 된 이후 최초로 하는 염력 수련인 만큼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은 지 두 시간쯤이 지나자 준이 고개를 들었다.

“성공했겠지?”

옆에 앉아 있던 약로가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준의 손바닥 위에는 처음보다 눈에 띄게 노란 빛을 띠게 된 염력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염력을 완전히 방출하는 것은 적어도 대투사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 지금의 준에게는 아직 무리였다. 그는 손바닥 위에 방출된 자신의 염력을 가만히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4격 단계 하 수준의 불의 속성을 가진 수련법은 대부분 노란 빛을 띠었고, 불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계통의 수련법이라면 등급이 높아질수록 색깔은 더욱 짙어진다.

준은 손바닥 위의 연한 노란 색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 불개가 진화하기 전까지는 3격 단계 정도의 라이벌을 만나도 승산이 없겠죠?”

“불개의 최초 등급은 4격 단계 하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그 위력은 4격 단계 중 수준의 수련법정도는 된다. 게다가 수련법이 약하더라도 너는 흡장과 척력장, 태초의 힘 세 가지의 무투기를 익히고 있으니, 그 차이를 충분히 메꿀 수 있을 것 이다.”

지금 약로의 태도는 예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 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부드러웠고, 말투 역시 더 이상 괴팍하고 짖궂게 제자를 놀리고 괴롭히던 그 때의 그것이 아니었다.

“단, 아직은 다른 사람들보다 지구력이 떨어지니 대결을 벌이게 되거든 반드시 깔끔하게 빠르게 결판을 내는 것이 좋을게야. 불개를 더 강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언제나 속전속결을 목표로 하거라.”

이준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의 그런 표정을 보자 약로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허…요놈아. 일단 세 가지 무투기부터 통달하거라. 그러고 나면 내 또 새로운 무투기를 주마. 능숙하게 다루지도 못 하면서, 무조건 무투기의 수만 늘려서는 강해질 수 없다.”

“정말요? 역시 스승님! 이번에는 어떤 단계의 무투기인가요?”

스승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자 준은 눈을 반짝거리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태초의 힘보다야 좋은걸 주지 않겠느냐? 그것만 못한걸 줄거면, 그냥 태초의 힘이나 열심히 익히는 게 낫지.”

약로의 시원스런 대답을 들은 소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태초의 힘은 3격 단계 무투기였으니, 그보다 높다면 ‘2격 단계의 무투기일 것이 틀림없었다.

두 가지 무투기는 위계상으로 한 단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10단계쯤은 차이가 나는 느낌이었다.

3격 단계 상 수준의 무투기라면 사실 돈이 많고 운이 조금만 따르면, 경매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격 단계 무투기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 없는 물건으로, 지하경매장에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2격 단계의 무투기들은 하급이라도 보통 천만 골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구하지 못 해 아우성이었으니, 둘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2격 단계의 무투기라는 말에 준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무투기를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승의 말을 따르는게 나을 듯 싶어, 일단 그 생각은 접어두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게 나아보였다.

“스승님, 연금비약 정제법은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준은 오랜 시간 마음에 쌓아놓은 것을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약로는 그런 제자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었는지, 또 다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에잉…쯧쯧…정말이지 어린놈이 욕심은…정제술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다. 이곳은 주위의 시선도 너무 불편하고, 마음 놓고 너를 가르칠 환경이 아니야. 그래서 너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수행을 하는 게 어떨까 한다. 일단 나가면 돌아오는데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이제 나설아와 약속한 날이 1년 반 정도 남았지?”

스승의 제안이 이준은 잠시 망설이는 듯 우물쭈물 거리다가 나설아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좋아요. 스승님. 언제 출발할까요?”

“두 달 후가 좋을 것 같구나…”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가 있어요?”

이준이 답답한 듯 물었다. 그는 지금 준비만 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수행을 떠나고 싶었다.

“한 달 뒤면 가람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모집할 거야. 그리고 너도 그 아카데미에 등록해야한다.”

뜬금없는 스승의 제안에 준은 그를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거기에 왜 가요? 수련법, 무투기(武鬪技) 부족한 게 없는데 제가 거기서 배울게 뭐가 있어요?”

“에잉…쯧쯧”

약로는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진정한 목적을 말했다.

“너는 그곳에 불꽃을 찾으러 가는 게다. 그곳에는 ‘구름의 불꽃’이라는 불꽃이 있다. 그 불꽃은 22개의 불꽃 중에 14번째 불꽃이니…그 불꽃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불개를 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름의 불꽃이요?”

불꽃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준의 눈이 반짝 거렸다.

* * *

이준은 느릿느릿 산굴에서 기어 나와 가파른 길을 따라 산 정상을 향했다. 그는 몇 번이나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 * *

집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이준은 급한 걸음으로 자신을 스쳐가는 세 장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장로들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무언가 화가 난 듯 싶었다.

‘또 무슨 일이야…어휴…지긋지긋한 노친네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돌리자 갑자기 푸른 색 옷을 입은 소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이은과 눈이 마주치자, 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동굴에서 약로가 했던 말이 떠오르니 소년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먼 산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은은 평소와 다른 이준의 행동에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한 발짝 다가오다가 갑자기 환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라버니, 투사가 되었네요?”

소녀에게서 풍겨오는 달콤한 살 내음에 준은 잠시 취한 듯 몽롱해졌다.

‘하아…스승님은 괜한 소리를 하셔가지고는…’

그는 얼른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정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좀 내 입으로 말하게 해주면 안 될까?”

이은은 조금 민망했는지 말없이 해맑게 웃으며, 흐트러진 준의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이는 평소에도 그녀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지만, 준은 오늘따라 그런 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에도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머리가 바람에 날려 흔들리는 것도,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도, 애교스러운 웃음도 익숙한 그 모든 것들이, 오늘따라 낯설은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오…오라버니 왜 그래요?”

평소와 다른 준의 뜨거운 눈빛을 눈치 챘는지 이은은 얼굴을 붉혔다.

“어? 어…”

준은 소녀의 뺨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더욱 가슴이 뛰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농을 던지듯 말했다.

“아니야, 은이가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서 자세히 봤어.”

이은은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진 듯 머리를 넘기며 해맑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 맞다…”

소녀는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였다.

“오라버니도 이제 투사가 되었으니, 염력수련법을 배워야겠네요?”

준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떤 수련법인지 보여줄 수 있어요?”

“흠흠…수련법은…열심히 수련하는게 중요하지 무슨 단계인지는…”

이준이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은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안돼요?”

준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잠시 뒤 연약하고 흐릿한 노란 불빛이 손바닥위에 나타나자, 이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부풀어 오른 뺨과 삐죽 튀어나온 입은 그녀가 정말 화가 났다는 뜻이라는 것을 준도 잘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이게 오라버니가 말한 더 좋은 수련법이에요?”

당장 꺼질 것 같은 빛을 보며 이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처음에 좋은 수련법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거, 오라버니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지금 투기각에서 얻은 것보다도 한참 못한, 가장 낮은 단계의 수련법을 익히신거에요? 저한테 더 좋은게 있다고 말했잖아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이게…이게 오라버니가…”

전에 없이 화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는 은이를 보자, 준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지금까지 화는커녕 인상 한번 쓴 적 없던 그녀였다. 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내가 정말 아무 의미 없이, 가장 낮은 수련법을 골라서 배웠을 것 같아?”

“그렇지만…이 수련법은 4격 단계 하 수준이잖아요.”

준의 다정하고 진지한 말투에 조금 화가 풀린 듯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화가난 상태였다.

“모든 사물은 겉모습만 보면 안 돼. 지금 모든걸 설명해 줄 순 없지만, 앞으로 너도 알게 될 거야. 내가 지금 왜 이러는지…”

확신이 가득한 표정의 준을 보고 이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진짜에요?”

“그럼, 진짜지…”

준의 확고한 태도를 보자, 이은은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되는 듯 했다.

“근데 집에 무슨 일이 있어? 방금 보니까 장로들 표정이 다들 안 좋던데?”

이은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지자 준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아, 며칠 전 가씨 가문에서 1레벨 연금술사 한명을 모셔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가씨 가문의 시장에 지금 ‘활기의 물약’ 이라는 약물이 나왔어요. 상처를 치유하는 약이라는데, 저렴하고 수량도 많아서 용병들이 많이 찾는 약이래요. 그것 때문에 이씨 가문의 모든 시장에 손님이 뚝 끊겼어요. 요 며칠 사이에 손님이 평소에 반도 안 된다고…이미 경제적인 타격이 꽤 큰가 봐요. 게다가 그 연금술사와 가씨 가문은 앞으로도 일을 같이 할 모양이구요.”

설명을 들은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을 가만히 좌시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고작 1레벨 연금술사 따위가 우리 가문과 맞서겠다고…?’

* * *

준은 은이와 헤어진 후 몰래 마을을 빠져나와, 가씨 가문의 시장으로 향했다.

장로들 따위야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이는 아버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준은 힘이 닿는데 까지는 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가씨 가문의 시장에 대해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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