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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8화 (28/818)

제28화. 경매 종료

주희가 손을 들자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이윽고 그릇 위에 놓인 뽀얀 백옥병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소문의 그 물건이 나타나자 경매장 안은 순식간에 뜨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이번 연금비약은 지난번의 그것과 동일한 약사가 제조한 것입니다. 당연히 약효도 같겠죠? 이번에도 본 경매장의 곡니 선생님이 직접 감정을 했으니, 안심하고 구매하셔도 됩니다.”

주희는 경매장내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일한 사내를 가리키며 요염한 몸짓으로 옥병을 들어올렸다.

“지난번에 이 연금비약을 사용하신 이준 도련님이 자리에 오셨군요. 이준 도련님은 1년 안에 염력이 3단에서 8단이 되어 성을 뒤집어 놓았죠.”

주희의 말이 끝나자 탄성과 함께 모든 시선이 일제히 앞 줄에 앉은 소년에게 집중되었다.

‘역시 무서워…’

준은 수줍은 어린아이를 연기하기 위해 몸을 비비꼬면서, 머릿속으로는 저 여자에게 절대로 틈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어찌됐든…저 여자 덕에 비싸게 팔릴 테니 고마운 일인가?’

주위의 시선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주희 덕에 연금비약은 지난번보다 배는 비싸게 팔릴 것 같았다.

준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희의 말과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 시작 가격은 1만5천 골드 입니다!”

“너무한데……지난번의 두 배잖아.”

경매 시작 가격을 들은 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 * *

“1만6천!”

경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젊은 사내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가격을 외쳤다.

하지만 사내의 시선으로 보아 관심은 연금비약이 아닌 듯 했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홀린 듯 주희의 풍만한 가슴에 고정되어 있었다. 주희는 속으로 그 젊은이를 비웃으면서도 그 사내를 향해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1만8천!”

“1만9천!”

끊임없이 올라가는 가격에 그 젊은이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가격이 2만3천 골드가 되자 멋쩍게 자리에 앉았다.

준은 경매가 시작하자마자 치솟는 가격에 혀를 차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자기 주머니로 들어올 돈 이었다.

결국 경매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4만7천 골드라는 가격에 연금비약이 낙찰됐다. 첫 번째 경매의 승자는 뚱뚱한 상인이었다.

준은 10분 만에 들어간 돈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가격에 연금비약이 낙찰되자 왠지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첫 번째 연금비약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자 주희는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정체불명의 연금술사에게 호감을 살 생각뿐 이었다.

그녀는 첫 번째 경매가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지체 없이 바로 두 병의 연금비약을 꺼내들었다.

“이제 남은 여섯 병은 세 번으로 나누어 경매를 진행하겠습니다. 한 번에 두 병씩이고 경매 시작가격은 3만 골드입니다!”

두 번째 상품이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정적이 감돌고, 장내의 시선이 맨 앞줄의 3대 가문에게 쏠렸다.

“3만1천.”

먼저 뛰어든 것은 가씨 가문의 수장이었다.

“하하, 지난번에 수련법을 사느라 돈이 바닥났나보지? 3만5천. ”

가후를 비웃은 것은 박씨 가문의 우두머리 박진이었다. 둘의 싸움에 이한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 가후가 수십만 골드를 손해 보게 한 장본인이 자기였기 때문이다. 박진은 가후를 비웃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또 다시 손을 들었다.

“3만8천.”

“4만5천.”

“5만.”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가격을 올리는 동안 가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박진의 말대로 지난번 손실은 상당히 뼈아픈 것 이었다.

“5만5천.”

“5만6천.”

두 가문의 기 싸움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경매장안의 모든 사람들은 두 가문의 경쟁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이씨 가문이 언제 나설지 기대했다.

결국 가격이 7만3천 골드까지 오르자 가씨 가문에서 먼저 손을 들고 말았다.

주희는 이씨 가문이 나서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겨 이한을 한번 바라보았지만, 그가 미동도 하지 않자 아쉬운 듯 봉을 두드려 낙찰을 알렸다.

그리고…주희가 다시 새로운 연금비약 두 병을 꺼내자 드디어 이한이 입을 열었다.

“7만5천.”

이한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가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

“8만5천!”

좀 전보다 더 높아진 가격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격을 올리는 가후를 보자 이한도 기분이 상한 듯 다시 가격을 올렸다.

“9만5천!”

이한의 강경한 태도에 가후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오만상을 쓰며 다시 가격을 올리고 말았다.

“10만!”

이쯤 되자 장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이미 연금비약을 사기 위한 경쟁이라기보다 오기에 가까웠다. 축기영액 두 병에 10만 이라니…누가 봐도 밑지는 장사였다.

눈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드는 가후를 보며 준은 낮은 목소리로 이은에게 귓속말을 했다.

“한 번 더 올리면 끝일 것 같은데?”

“글쎄요…? 저 사람 표정을 보니 꼭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더 올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연금비약 두 병에 10만 골드면 이미 밑지는 장사 아닐까요?”

그리고 다음 순간, 이한의 웃음소리와 함께 장내가 뒤집어졌다.

“하하, 당신이 이겼소.”

이한의 웃음소리에 경매장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가 삽시간에 불이라도 붙은 듯 소란이 일었다.

“큭큭…10만 골드에 2레벨 연금비약 두 병이래. 가씨 가문이 돈이 많긴 많은가 보네.”

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가후를 비웃었다.

보통 2레벨 연금비약은 3만 골드면 살 수 있다. 수련을 도와주는데 사용하는 계통의 연금비약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높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병에 5만 골드라면 완전히 바가지였다.

이은 역시 이한에게 말려든 가후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2레벨 축기영액 한 병 가격을 생각해보면 역시 연금술사들은 모두 부자겠지?”

준이 부럽다는 말투로 한숨을 내쉬자, 이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연금술사가 투기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직업인 것은 확실하죠. 그렇지만 수준이 높은 연금술사일수록 경매에 자기 물건을 내놓는 짓은 잘 하지 않아요. 보통 물물교환을 하죠. 어차피 돈 같은 건 그들한테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원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는데 그깟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물물교환?”

“네, 수련법, 무투기(武鬪技), 희귀한 약재, 진귀한 마정석…뭐 그런 것들이요. 그러니 연금술사가 꿈의 직업 아니겠어요? 연금술사가 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투기 대륙에 단 한명도 없을걸요.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어서 문제지.”

아쉬워하는 듯한 은의 표정을 보며 준은 자신이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 * *

가후는 또 다시 이한에게 농락당한 것을 깨닫고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또!”

“하하, 당신도 똑같은 생각이었지 않소?”

이한이 차갑게 비웃자 가후는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좋아 좋아. 이한… 두고 봐, 내 오늘 일을 두고두고 잊지 않을 테니…!”

하지만 이한은 가후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서 마지막 경매를 시작하시죠.”

주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연금비약을 팔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녀는 가후를 위로하듯 살짝 미소를 짓고 마지막 연금비약 두 병을 꺼내들었다.

“여러분, 마지막 연금비약입니다. 시작 금액은 마찬가지로 3만 골드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장로들의 시선이 이한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한은 장로들의 시선을 무시하듯 느긋한 태도를 유지했다.

“5만.”

이미 큰 손해를 본 가후는 더 이상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는지, 인상만 쓸 뿐 입조차 벙긋하지 못했고, 어부지리로 경쟁자 하나를 제친 박진만이 잠시 고민하다 입찰에 참여했다.

“5만5천.”

은빛성의 3대 가문의 관계는 경매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씨가 가씨를 치면 박씨에게도 힘이 붙는다. 가씨가 이씨에게 반격을 가하면 박씨는 어부지리로 더욱 강해진다. 결국 두 가문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물어뜯으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가문이 최강자가 되는 것이다.

세 가문은 그런 식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때로는 손을 잡고, 의도치 않게 다른 가문에게 이익을 제공하기도 하며 오랜 시간 절묘한 힘의 균형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번에 먼저 떨어져 나간 것은 가씨 가문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나머지 두 가문도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는 것이다.

……

이한은 박진의 반격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가격을 올렸다.

“6만5천.”

“하하, 이번에는 이 촌장님 덕분에 손안대고 코를 풀었으니, 제가 물러서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군요.”

6만5천 골드도 시세보다는 높은 가격이다. 박진은 이쯤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그럴싸한 구실을 대며 발을 뺐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도 가후와 같은 꼴을 당할 것이 뻔했다.

‘흠…두 번째 경매에서 가후가 나가떨어지지 않았더라면…저자도 끼어들어 가격을 올렸겠지?’

준은 세 가문의 경쟁을 보면서 촌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 자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안에서는 장로들과, 바깥에서는 다른 가문의 촌장들과…그는 아버지가 짊어진 짐을 실감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자신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좋아. 이제 돈은 해결됐어. 하루 빨리 투사가 돼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경매가 거의 끝나가는 것을 본 이준은 조용히 경매장을 빠져 나왔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경매장을 나선 후 근처를 몇 바퀴 돌다가 구석진 곳에 가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다시 경매장으로 향했다.

* * *

주희는 검은 망토의 사내가 최소한 4레벨의 연금술사라는 것을 알게 된 뒤 경매장의 시녀에게 그를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덕분에 준은 경매장에 도착하자 부담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준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천천히 차를 마시며 시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이번에도 시녀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아닌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였지만.

“경매가 언제 끝나지요?”

“네?”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시녀는 4레벨 연금술사가 말을 걸자, 조금 겁을 먹었는지 작은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공손하게 답을 했다.

“선생님, 경매는 이미 끝이 났고…주희 아가씨가 지금 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듬더듬 말을 잇는 소녀를 보자, 준은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준은 그녀를 위해 가급적이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녀는 주희와 곡니에게 이 정체모를 사내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라는 명을 듣고 자리에 와 있었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엄한 벌을 내릴 것 이라는 말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게다가 연금술사들 중에는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자들이 워낙 많으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알 리가 없는 준은 소녀의 불안한 태도가 자신이 무서워서라고 생각해,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준과 소녀 둘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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