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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6화 (26/818)

제26화. 준비

준이 땀에 절은 옷을 말리려고 옷을 벗자, 검게 그을린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아직 성장기의 소년인지라 우락부락하고 건장하지는 않았지만, 날렵하고 탄탄한 것이 제법 사내다운 태를 갖추고 있었다.

소녀는 준의 탄탄한 몸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준은 이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옷을 든 채 바위에 몸을 기댔다.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염력이 8단에 머물러 있어…”

이은은 한숨을 내쉬는 준을 보고는 생긋 웃으며 바위에 기댔다.

“초급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인걸요. 너무 조바심내지 않아도 되요. 지금도 충분히 빨라요.”

하지만 은의 말이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지, 준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젓고는 바위에 몸을 기대었다.

“나설아와의 대결을 생각하면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도 길다구……”

“급하게 마음먹지 않아도 되요. 지금도 충분히 빠르니까.”

소녀는 다정하게 준의 땀을 닦아주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언제나처럼 투명하게 자신을 비추는 소녀의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은은 저도 모르게 잠이 든 이준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들어 준에게 가져다댔다. 잠시 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연한 금색 빛이 흘러나와 준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금빛 기운이 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그녀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

바로 그 때, 이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 *

울창한 숲 속에 가득한 생명의 기운이 곤히 잠든 준의 몸속으로 쉴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은은 생긋 웃으며 살짝 뒤로 물러서 주위를 경계하며 그가 깨지 않도록 노력했다.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자, 준의 얼굴에서는 피곤한 기색이 천천히 사라지며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염력의 파동이 지속되다가 마지막 한줄기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숲은 이전의 고요를 되찾았다.

소녀는 이 모습을 보고는 안심한 듯 숨을 내쉬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9단이네. 아마 반년만 더 있으면 오라버니도 투사가 되겠지?”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바위 위에 뛰어 올라가 다리를 꼬고 앉아, 조용히 이준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 *

이준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오래 잠이 들었다는 사실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들자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삼아 소녀의 반짝이는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뻐근한 몸을 풀어주었다. 가볍게 목을 돌리고 기지개를 켜자 전신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

그는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은을 바라보았다.

“은아…나…”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준을 보자 이은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어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것을 믿을 수 없었는지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염력을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기운이 온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하하하!”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에 소년은 크게 웃음을 짓다가, 옆에 앉은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의 변화를 눈치 채고 해가 질 때 까지 얌전히 기다려주었다는 것에 생각에 미치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서둘러 옷을 걸치고 이은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기다리느라 배고팠지? 가자. 좋은 날이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야지. 내가 살게.”

“좋아요! 히히 제일 비싼 거 먹어야지……”

준이 건넨 다정한 말투에 이은은 환히 웃음을 지으며 바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에게 다가섰다.

* * *

준은 오늘 오후 내내 지켜준 것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은과 함께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폭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곧 투사인가…?’

한창 꿈에 젖어있는 와중에, 갑자기 방안에 약로가 나타났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꼬마 계집 덕을 톡톡히 보았구나.”

노인의 말에 이준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에잉, 쯧쯧……! 그 애가 아니었으면 9단이 되는데 일주일 이상은 더 걸렸을 게다.”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며 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알거 없다 이놈아. 어린놈이 벌써부터 계집후리는 재주가 용하구나.”

준은 호기심이 일었지만 약로의 태도로 보아 물어본다고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약로나 은이나, 둘 다 자신들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투사가 되려면 적어도 반년은 있어야겠죠? 이미 1년이나 지났는데…아직도 투사가 되지 못 했어요. 이 속도라면 앞으로 3년이 지나도 나설아에게 복수하는 건 불가능하다구요.”

그러나 약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볼 뿐 묵묵부답이었다.

“그 게집은 운남종에서 다음 종주로 내정할 정도로 재능이 있다구요. 게다가 그 유명한 단왕 고하도 운남종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아마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겠죠. 그녀는 지금도 발전 중인데, 저는 아직도 투사가 되지 못 했잖아요.”

소년은 초조한 말투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에헴!”

약로는 한참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못 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약로의 표정을 본 준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염병…좋아. 내일 시장에 가서 약재를 사와라. 내가 그놈의 용의 정수라는 연금비약을 반찬처럼 먹게 해주지.”

“좋아. 내일 50년산 검은 연꽃 5송이, 다 익은 뱀독열매 두 알, 20년 산 영혼의 열매 한 알, 그리고 물 속성의 2급 마정석 한 알만 준비해 오거라.”

용의 정수를 반찬처럼 먹여준다는 그의 말에 화색이 돌았던 준의 얼굴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었다.

“요놈 봐라? 왜? 용의 정수를 반찬처럼 먹여준다니까?”

“50년산 검은 연꽃? 이렇게 오래 된 약재는 한 알에 3천 골드는 족히 넘을 거예요. 다 익은 뱀독 열매 초급 약재 중에서는 최상급이라 약재 시장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구요. 운 좋게 찾는다고 해도 8천 골드는 될걸요? 20년산 영혼의 열매요? 그건 저번에 경매장에서 딱 한 번 봤었는데, 낙찰 가격이 1만5천 골드나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2급의 물속성 마정석이면 2천 골드 이상은 될 거구요.”

“흠……”

약로는 준의 불평을 듣고는 못 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아니 이놈이…… 이제 아주 맞먹으려고 드는구나.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이놈아. 나는 약만 정제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

준은 죽을상을 하고 툴툴 거렸다.

“아니, 스승님 말대로 저는 새파란 애송이인데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이걸 반찬처럼 먹으려면 우리 집안 재산을 다 팔아도 안 된다구요. 저번에 영약(靈藥)을 팔고 남은 돈도 이제 1만 골드 정도밖에 없는데, 대체 그 재료들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에요!”

하지만 약로는 실실 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릴 뿐 이었다. 결국 준은 이번에도 스승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이 돈으로 축기영액의 재료들을 사죠. 그래서 축기영액을 좀 더 정제해서 경매장에 가져가서 파는 거예요! 단왕 고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스승님에게는 그 정도는 일도 아니잖아요!”

약로는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단왕’ 이라는 말이 그의 자존심을 긁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가 머리를 끄덕이자 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 * *

다음날 아침 이준은 일찌감치 마을을 몰래 나와 약재상에서 연금비약을 정제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최대한 많이 사서 구석진 객점으로 향했다.

약로가 약을 정제하는 사이 준은 초록색 카드를 손에 들고 축 늘어져 있었다.

‘으아…점점 금전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아. 4만 골드를 다 쓰고 이제 무일푼이라니…’

순식간에 거금이 사라진 탓에 멍해진 제자의 앞에서, 약로는 꼬박 한 시간에 걸쳐 일곱 개의 연금비약을 정제해냈다.

나란히 서있는 7개의 약병을 보자 준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레 약병을 가슴팍에 넣고 검은색 망토를 뒤집어쓴 채 객점을 나섰다.

* * *

준은 다시 한 번 유씨 가문의 경매소로 향했다.

갑자기 나타난 7개의 연금비약 앞에 주희는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흠흠…”

정체불명의 연금술사가 헛기침을 하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병을 집어 들어 곡니에게 전해주었다.

곡니는 백옥병 속의 액체를 꼼꼼히 검사한 뒤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축기영액이 틀림없습니다.”

곡니의 확답을 들은 주희는 잠시 놀라운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다가, 이내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반 년 동안 안 보이시다가 갑자기 이렇게 큰 물건을 내려 주시네요.”

“경매는 언제 시작할 수 있겠소?”

이번에도 말을 하는 것은 약로였다.

“선생님께서 돈이 급히 필요하신 게 아니라면…하루나 이틀 정도를 기다려주시지요. 시중에 이런 연금비약이 7병이나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지라…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뒤에 진행하면, 선생님께 더 많은 이윤을 남겨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희가 매혹적인 입꼬리를 올리며 생글생글 웃었다. 준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백옥 같은 손으로 찻잔을 집어 들었다.

준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약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경매장에서 혹시 약재도 구해줄 수 있는지요?”

정체불명의 연금술사의 말에 주희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선생님께서 필요하신 약재가 무엇인가요?”

“50년 된 검은 연꽃 열매 다섯 송이, 다 익은 뱀독열매 두 알, 20년 된 영혼의 열매 한 알, 물 속성의 2급 마정석 한 알.”

약재의 이름을 들은 곡니는 순간 안색이 변해 준을 훑어보았다.

“호호, 걱정하지 마시지요. 이 주희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약재를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좋은 소식이 있으면 선생님께 알려 드리도록 하죠. 그런데 어떻게 연락을 드리면 될까요?”

“연락을 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이 약재가 있으면 연금비약을 판 돈에서 직접 빼두시면 됩니다. 제가 이틀 뒤에 시간을 내서 찾으러 오지요. 그럼 볼일이 있어서 이만…”

검은 망토를 두른 연금술사는 그 말을 끝으로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떴다.

* * *

주희는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사라지자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심스럽게 곡니를 바라보았다.

“곡니 아저씨, 방금 그 약재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주희는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그녀가 곡니의 표정 변화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곡니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약 제 기억이 맞다면…그 재료들은 용의 정수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일 것입니다.”

“용의 정수는 적어도 4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만 정제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곡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가한제국 전체를 통틀어 4레벨 약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체 누굴까요?”

그의 말에 주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4레벨 이라…이건 정말 놓치기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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