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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5화 (25/818)

제25화. 확인

오늘은 근 몇 년간 투기각에 가장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날임이 틀림없었다.

모든 속성의 통로에 수련법을 얻으려는 아이들이 가득했고, 이곳저곳에서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보호막을 뚫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쪽에서 누군가가 보호막을 뚫는 동안, 반대쪽에서는 보호막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들려왔고, 투기각 전체가 그런 상태였다.

준은 작은 길을 돌아나와 시간을 확인하고는 은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시간 다 됐어.”

이은은 고개를 끄덕인 후 준과 함께 투기각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투기각의 작은 통로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이준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 통로의 끝에서는 빨간색 치마를 입은 이안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방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안의 수련법을 얻고 싶지만 보호막을 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 *

이안은 속이 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오늘 투기각에 들어오기 전,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드시 어떤 수련법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귀띔을 받았다.

이안의 아버지가 알려준 방에 들어있는 것은 4격 단계 상 수준의 수련법으로, 이씨 가문의 초보 수련자가 얻을 수 있는 것 치고는, 제법 고급 수련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시간 동안이나 온 힘을 다해 애를 썼지만, 결국 보호막을 깨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곳에는 바람 속성을 가진 소년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 몇몇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안을 도우려 했지만, 누구도 보호막을 깰 수 없었다.

투기각의 보호막은 반드시 혼자서 깨야했다. 사람이 늘어나면 보호막은 두 사람의 힘을 합친 것 보다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혼자 깨지 못 할 것이라면 아예 손을 보태지 않는 편이 나았다.

결국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도전했던 모든 사내들도 단독으로 보호막을 깰 수 없었고, 그녀 역시 한 시간 가량을 보호막과 씨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약속한 두 시간이 임박했다. 이안은 여전히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 보호막을 깨지 못 하면 그녀는 빈손으로 나가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다시 올 수는 없으니, 이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주위의 소년들은 모두 가슴이 아팠다.

사실 같은 수련자라면 누구나 이안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안쓰러워도 방어막을 깰 능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결국 이안은 포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 때,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검은 색 옷을 입은 소년 하나가 느릿느릿 팔자걸음으로, 투기각 안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안은 준이 나타나자 희망의 빛이 비추는 듯 했다. 그녀는 일부러 흐르는 눈물을 다 닦아내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북적이던 작은 길이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준은 이안의 얼굴을 보고도 못 본 척, 무표정하게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이안은 잠시 우물쭈물하며 그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다가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한 행동이 떠올랐다.

그녀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두 손으로 자기 뺨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업자득이지 뭐…내가 오라버니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정신 차려 이안.’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안은 갑자기 더욱 서럽고 서글퍼져,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흐흑…힝…”

그녀는 마치 길가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마냥 애처롭게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라버니한테 도와 달라고는 못 해.’

“끄윽…끅…”

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에게 불쌍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그게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자 양심이었다.

그러나 눈물을 참기 위해 애쓸수록 더욱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고,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

그 때, 이안은 주위가 묘하게 고요하다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흐릿하게 준이 다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준은 눈물로 얼룩진 이안의 얼굴을 슥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비켜봐.”

“네? 네…”

이안은 이 뜻밖의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시간 없어. 비켜보라구.”

붉은 색 치마를 입고 쪼그려 울던 소녀는 반쯤 넋이 나가 엉거주춤 옆으로 한걸음을 옮겼다.

이준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손바닥을 뻗어 보호막에 가져다 댔다.

“후…”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갑자기 번개처럼 몸을 돌려 보호막을 향해 발을 날렸다. 그의 발이 채찍처럼 그림자를 남기며 허공을 가르고, 공중에서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박살나자, 준은 다시 몸을 돌려 숨을 몰아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라버니, 고마워요…그리고 미안해요…”

이안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더듬더듬 준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

준은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충 대답을 하고는 그대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 * *

투기각의 거대한 대문 앞에는 호위무사들이 양 옆에 서서 두 줄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문 바로 앞에 있는 고급스러운 의자에는 한 노인이 앉아, 이씨 가문의 젊은 수련자들이 어떤 수련법을 가지고 나가는지 기록하고 있었다.

노인이 손에 들고 있는 수련법은 특수한 먹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 대나무는 어미 대나무와 새끼 대나무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중 어미 대나무는 손바닥 만한 크기인 반면, 새끼 대나무는 최대 십 미터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이 대나무는 둘이 한 쌍이기 때문에 새끼 대나무가 일정한 거리 바깥으로 벗어나면, 어미 대나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즉시 이를 알아차릴 수 있고, 이씨 가문에서 어미 대나무는 오로지 촌장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투기각의 수련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한 것인 만큼, 이씨 가문에서는 단 하나의 수련법도 이처럼 귀중하게 관리하는 것 이었다.

병아리 투사들이 한 명 한 명 노인에게 자신의 수련법을 보이고, 드디어 이준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가슴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은은한 심홍색의 두루마리를 받은 노인은 놀란 듯 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흠…이 ‘연꽃화염’의 보호막은 족히 염력 9단은 되는데…이 아이는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군.‘

“규정은 잘 알고 있겠지? 수련법은 가문 밖을 벗어나면 안 되고, 벗어날 경우 중벌을 받게 된다. 수련법은 1년 후 반납이 원칙이며, 반납 시 수련법에는 어떤 손상도 없어야 한다.”

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뒤로 물러났다. 다음은 이은의 차례였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두루마리를 받아 기록을 마친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다른 아이를 대할 때와 달리 공손한 태도로 은을 대하는 노인을 보며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투기각을 관리하는 노인은 소한이라는 이름으로, 가문에서 장로와 비슷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촌장인 아버지에게도 규정에 대해 따박따박 따지고 들 정도로 성격이 칼 같은 자였다.

‘한참 어린 은이에게 저렇게 한다는 건…’

이쯤 되자 준은 이은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자신의 배경이나 신분에 대해 물을 때 마다, 단 한마디도 답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준아, 얻었느냐?”

대문을 나서자 이한이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할까봐 조바심이 나는 듯, 연신 눈치를 살피며 준에게 다가왔다.

“네, 고마워요 아버지.”

소년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심홍색의 두루마리를 보여주었다.

“얻었으니 됐다.”

부자는 눈을 맞추며 동시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수련법은 대체 뭘까? 정말로 진화하는 수련법이라는 게 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본 가장 높은 수준의 수련법은 은이 보여준 지옥화염이었다.

거절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수련법을 거절한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휴…이제 정말 스승님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어.’

* * *

아버지와 은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준의 머릿속에는 수련법에 대한 생각뿐 이었다.

그렇게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준의 머릿속에 약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나오셨네요…흐흐…”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이준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

“이런 교활한 녀석, 감히 나랑 장난을 쳐? 어린놈이 갈수록 잔꾀만 느는구나. 쯧쯧! 어찌됐든 수련법은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수련이나 해라! 절대로 아쉬울 일 없을 테니까. 이 몸이 준 수련법과 비교할만한 것은 세상에 없느니라. 그 아이의 가문이 아무리 대단해도…”

준은 약로의 마지막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이은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이번에도 묻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해줄 것이 뻔했으니까. 어찌됐건 약로의 확답을 받았으니 2년간 전심전력으로 수련해서 나설아를 만나러 갈 일만 남은 것이다.

* * *

투기각의 행사가 끝나자 마을은 한동안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제 7단 이하의 젊은이들은 가문의 각 사업장으로 배정되어 일을 배우고, 수련법을 얻은 젊은이들은 하루 빨리 염력 회오리를 완성해 수련법을 사용하기 위해, 각자 집안에 틀어박혀 수련에 몰두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쥐 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두 달이 흘러갔다.

* * *

울창한 나뭇잎에 가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못 하는 숲속, 두 개의 그림자가 나무 사이를 가르며 빠르게 맞부딪히고 있었다.

쿵!

이은의 공격을 받은 준의 팔에는 순식간에 시퍼런 멍 자국이 생겨났다.

‘크으…말도 안 돼. 이 녀석 왜 이렇게 센 거야.’

그녀의 동작은 부드럽고 유연했지만, 한번 맞부딪힐 때 마다, 뼛속까지 저릴 정도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준이 통증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두 세 걸음을 물러서자, 소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는 옅은 금색의 염력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준은 다시 한 번 힘차게 발을 구르며 앞으로 전진했다.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 이은의 손끝에서 더욱 짙은 금빛 섬광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준은 급작스레 멈춰서며 염력을 끌어 모은 뒤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공중으로 뛰어오른 준은 왼다리를 날카로운 채찍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이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돌려 주저 없이 이준의 왼쪽 다리를 내려쳤다.

펑!

다시 한번 그녀의 손에서 금빛 섬광이 번쩍이고, 다리와 손이 마주치는 순간 묵직한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이은의 반격에 준의 몸이 공중으로 크게 떠올랐다. 그는 땅에 떨어지기 직전, 옆에 있던 나무에 손을 뻗어 흡장을 사용했다. 그러자 흡입력으로 몸이 나무쪽으로 끌려가며 추락 속도를 줄여주었고, 그는 나뭇가지를 밟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방금 사용한 무투기(鬪技)는 무슨 무투기야?”

“’3격 단계 상의 연반격(燕返擊) 이라는 무투기에요. 능숙하게 수련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그대로 고스란히 돌려보낼 수가 있죠. 하지만 저는 아직 미숙해서 1할 정도의 힘 밖에 돌려보내지 못해요. 오라버니가 방금 사용한 무투기도 대단한걸요? 아마 염력 수준이 비슷했으면 받아치지 못 했을 거예요.”

이은의 칭찬에 준은 멋쩍게 웃은 뒤, 느릿느릿 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태초의 힘을 사용한데다가 자기보다 강한 은의 반격까지 받았으니, 온 몸이 쑤시고 힘이 빠져 피곤이 몰려왔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이겨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니 온 몸이 땀에 젖어 기분이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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