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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3화 (23/818)

제23화. 대결

행사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준을 한껏 추켜세워 주었다.

“오라버니!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오늘 행사는 완전히 오라버니가 주인공이었어요! 다들 얼마나 놀라는지 봤죠?”

소녀가 달콤한 내음을 풍기며 신이 난 듯 재잘거리자, 준이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무투기는 또 언제 익힌 거예요? 정말이지 은근히 사람 놀래키는 재주가 있다니까!”

준은 뒷짐을 지고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은을 떠보았다.

“하하, 은이 너만큼 할까? 저번에 무투기당에서 네가 사용했던 무투기도 일반적인 무투기는 아닌 것 같던데…”

소녀는 그 말에 잠시 당황한 듯 눈을 피하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역시 오라버니는 보는 눈이 있네요! 오라버니가 관심이 있다면 제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준은 뜻밖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그럼…염력 수련법은요?”

소년이 단칼에 거절하자 이은은 다소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5일 뒤면 무투기당에서 배울 수 있는걸.”

“가문에서 가장 좋은 수련법이라고 해봤자 3격 단계 중 수준의 ‘사자의 포효’ 뿐이잖아요. 그것마저도 오라버니는 배울 수 없구요. 오라버니도 잘 아시면서.”

그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을 삐죽거리다 혼잣말을 하듯 낮게 속삭였다.

“저라면 3격 단계 상의 수련법도 얻어줄 수 있는데…”

“하하, 너! 어린 녀석이 집에 돈 많다고 그렇게 함부로 돈 쓰면 안돼! 나쁜 버릇 든다!”

준은 일부러 농담처럼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그녀의 배경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3격 단계 상 수준의 수련법이라니…아마도 그녀의 집안은 자신이 상상한 것 보다도 더욱 대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은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생을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욱 컸다.

사실 3격 단계 상 수준의 수련법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법 했다. 경매장에서 그 가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에, 준은 그 가치를 더욱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동생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소년은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반지를 살짝 쓰다듬었다. 은의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약로의 도움이면 충분하다. 아니, 은이 더 큰 것을 해줄 수 있다 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자꾸 그런 얘기하지 마. 나는 내 힘으로 강해질 테니까.”

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은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

소녀는 이준의 반응에 다시 한 번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그에게 무언가 뒷배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흠…오라버니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 되는 듯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이마를 톡톡 치던 이은은, 한참 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오라버니는 다른 사람이 뒤를 캐는걸 싫어하니까…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걸 보면 악의는 없겠지.’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녀의 눈에 잠시 금색 불길이 스쳐지나갔다.

‘만일…그럴 의도가 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준은 성인식을 치른 이 후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 위해 수련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 축기영액도 다 소모했지만 다시 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이미 염력 8단이 되었기 때문에, 영약의 효과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 이었다.

약로 역시 휴식기를 가지는 제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지난 1년간은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준은 한가롭고 여유로운 날들이 이어지자, 금세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어져, 매일 이은을 데리고 성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가끔씩 뒷산에 가서 무투기를 수련했다.

* * *

퍽!

뒷산의 깊은 숲 속, 준은 야수처럼 빠르게 날아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피하다가 커다란 나무를 힘껏 내리쳤다. 그의 주먹이 닿자 금빛 섬광이 옅게 퍼져나가며 나무를 박살냈다.

이준은 나무를 부순 뒤 다시 유연한 몸놀림으로 잽싸게 나무를 피해 바위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나뭇가지 위에 걸린 옷이 손바닥을 향해 날아 들어왔다.

그는 이마 위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낸 뒤 천천히 옷을 갈아 입었다. 요즘 준의 수련이래 봤자, 고작 이런 가벼운 몸 풀기가 끝이었다.

* * *

숲을 나서자 따뜻한 햇살이 그를 포근하게 감쌌다. 준은 싱그러운 풀내음을 즐기다가 바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바위 위에는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햇살이 늘씬한 여자의 몸에 비치자 유혹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요염하고 늘씬한 백옥같은 다리가 유독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리가 아주 예쁘군. 대놓고 자랑 안 해도 알아.”

준의 도발에 이옥의 얼굴이 또 다시 분노로 일그러졌다.

“내가 왜 널 찾아왔는지 알아?”

“패주려고?”

“너의 그 한 방이 내 동생한테 중상을 입혔어. 아직도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다고. 네가 그렇게 심하게 때렸으니 누나인 내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하지만 준은 그녀를 차갑게 비웃으며 고개를 까딱 거릴 뿐 이었다.

“그럼 당신 뜻은 그 상황에서 나는 꼼짝 말고 쳐맞았어야 했단 말이야? 몰랐군. 우리 가문의 성인식이 가족들이 화낼 것 까지 고민해가며 때릴지 맞을지를 결정해야 했다니.”

이옥은 윤기 나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독살스런 시선으로 이준을 노려보았다. 준은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연달아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하…웃기지도 않군. 그걸 그대로 맞았으면, 나는 남은 생을 불구로 살아야했을걸? 네 잘난 동생이 노린 것도 그거였고. 그 자식은 날 병신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나는 그 자식 누나 기분을 배려해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거군. 내가 불구가 되면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미안해했을까? 하루? 이틀? 당신이 화낼 테니 그대로 서서 외팔이가 되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이러 거지같은 년!”

준은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당신이나 동생이나 그 집 안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군.”

“그 입 다물지 못해?”

이옥은 이를 앙다물고 그의 말을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에 끝내 참지 못하고 바위 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이준, 넌 오늘 내 손에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긴 다리를 휘둘러 준을 공격했다. 준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몸을 날려 즉시 그녀의 발차기를 피했다.

“흥, 네가 아무리 천재라 해봤자 아직 투사도 못 됐지? 오늘 네 놈 말버릇을 단단히 고쳐주지.”

그녀가 다시 한번 다리를 뻗자, 긴 다리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그에게 날아왔다.

둘의 실력차는 명백했다. 어찌됐든 그녀는 3성 투사였고, 준은 아직 투사조차 되지 못했으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이옥이 공격을 퍼부을 때 마다, 준은 반격 한번 하지 못 하고, 이리저리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하느라 진땀을 빼다가, 끝내 피하지 못 하고 한 번씩 얻어터지고 있었다.

그러나 준은 정신없이 날아오는 공격에 얻어맞으면서도 계속해서 틈을 노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발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이옥은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흥!”

이옥이 균형을 잡기 위해 염력을 순환시켜 발바닥에 모으는 순간, 갑자기 흡입력이 사라지고 강력한 힘이 그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이옥은 순간 균형을 잃고 엉거주춤하게 뒷걸음을 치다가, 기다란 다리를 휘적거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햇병아리에게 이런 꼴을 당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옥이 황급하게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짐승처럼 달려들어 그녀에게 올라탔다.

“이년. 너 오늘 내 손에 당해봐라!”

준은 여기 저기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된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찍어 눌렀다.

이옥은 별안간 벌어진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을 붉히다가, 꼴사납게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이준이 자신의 손목을 누르는 힘이 너무나 강해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개새끼, 비켜!”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탄 준의 얼굴에는 이미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있었다.

“비키라고? 그럼 내가 맞은게 억울하지 않을까?”

이옥은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를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 새끼가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좀 더 크면 다시 와. 꼬맹아.”

그녀의 도발에 준은 다시 한 번 이성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화가 나자 그녀에게 얻어맞은 곳이 더욱 쓰라리게 느껴졌다.

“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구나?”

순간 돌변한 준의 음흉한 눈빛에 이옥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속으로 적잖이 겁을 먹었지만, 마른 침을 삼키면서도 냉정한 척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해봐. 내가 너의 물건을 잘라버릴 테니!”

준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친척뻘인 그녀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상태로 잠시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열 받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잠시 후, 준은 갑자기 몸을 아래로 숙여 이옥의 몸을 짓눌렀다. 두 몸이 약간의 틈도 없이 밀착되자, 그녀의 가슴이 짓눌리며 준의 가슴팍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이옥은 당혹감과 모멸감에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준은 그대로 조용해진 그녀의 팔을 자신의 왼쪽 팔로 움켜진 후에 오른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꼬집었다.

“꺄아아아악!”

그녀는 순간 돌처럼 굳었다가 고막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이크!’

준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원숭이처럼 벌떡 일어나 번개같이 산 아래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욱 하는 마음에 저질러버리기는 했지만, 이준 역시 그녀의 성미가 얼마나 지랄 맞은 지를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얼쩡거리다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고개를 든 이옥의 얼굴에는 모욕감과 살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산 아래로 쏜살같이 달아나는 꼬맹이의 뒤통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쁜 자식!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이옥은 실컷 욕설을 퍼부은 뒤 바닥을 내리치며 분노하다가, 조금 진정이 됐는지 다리에 묻은 흙 자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힘이 풀린 다리를 일으키다가 헝클어진 옷을 보고 또 다시 울화통이 터졌다.

“개새끼, 나한테 잡히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는 침착하게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터덜터덜 산 아래로 걸어내려갔다.

일단 저지르고 보긴 했지만 준을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는 산 중턱에 몰래 숨어 이옥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저 멍청한 년이랑 만날 때 마다, 화를 못 참겠단 말이지.”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멍청한 짓 이었다. 하지만 준은 이상할 정도로 이옥과 맞붙을 때 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하곤 했었다.

* * *

숲길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던 준은 길가에서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는 소녀를 보고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은아, 거기서 뭐하고 있어?”

이은은 뭔가 심통이 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그를 훑어보며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방금 이옥 언니가 화난 모습으로 내려가던데…또 언니랑 싸우기라도 한 거예요?”

준은 민망한 듯 콧잔등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누가 알아? 그 미친년이 왜 그런지……”

시선을 피하는 준을 보며 소녀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를 했다.

“오라버니는 평소에는 더 화나는 일도 잘 참으면서, 언니랑 엮이면 꼭 사람을 놀라게 하는 행동을 하네요.”

소녀의 날카로운 지적에 준은 가슴이 뜨끔했지만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쩔 수 없잖아, 저 멍청한 계집은 나만 보면 죽자 살자 달려든다고.”

이은은 준의 태도가 귀여웠는지 몇 번 입을 삐죽거리고는 해맑게 웃었다.

“내일 투기각에 가야죠. 얼른 돌아가서 준비 하세요 오라버니.”

소녀는 그 말을 남기고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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