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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7화 (17/818)

제17화. 시험

성인식을 치르기 한 달 전, 성인식을 치를 모든 사람들은 예선에 참가해야 했다.

성인식 때 염력이 7단을 넘어선 이들은 성인식 이후 투기각에 들어가 수련법을 찾을 수 있는 자격을 얻지만, 7단에 다다르지 못 한 사람들은 그 권리를 잃게 되는 것이 가문의 규칙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문에서 담당하는 다양한 사업장에 배정되어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을 하다가 여생을 마치게 된다.

그가 옷을 다 갈아입을 때 즈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준 오라버니? 이-준-!”

은이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한 글자씩 또박또박 준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댔다.

준은 잽싸게 나무통을 들어 보이지 않는 구석에 감추고는 문가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간만에 보는 햇살이 따뜻하게 소년을 비추어 주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햇살을 등져서인지 오늘따라 더욱 눈부셔 보이는 소녀가 서있었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잠시 넋을 읽고, 눈 앞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다가 태연한척 입을 열었다.

“은이잖아. 무슨 일이야?”

소녀는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던 소년이 귀여웠는지, 티 없이 맑은 눈을 깜빡 거리며, 입을 가리고 키득 거렸다.

불과 일 년 사이에 준은 꽤나 자라서 이제는 제법 남자다운 태가 났다. 허여 멀건한 피부는 보기 좋을 정도로 타 있었고, 말라비틀어진 팔뚝은 근육이 붙어 사내다운 냄새를 풍겼다.

은 역시 1년 사이에 제법 자라 이제 여자다운 태가 나고 있었다. 피부는 여전히 아기처럼 뽀얗고 부드러웠지만, 한줌도 안 되는 가느다란 허리에 비해 눈에 띄게 자라난 둔부와 옷 위로 살포시 솟아오른 작은 가슴은, 그녀가 소녀에서 여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준은 1년 사이에 부쩍 여자가 되어버린 은을 자꾸만 흘깃 거렸다.

소녀는 자신을 자꾸만 바라보는 준의 눈길을 느끼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그녀는 태연한척 말을 건네 놓고는, 부끄러운지 눈길을 피하며 잽싸게 발을 옮겼다.

“가요 오라버니, 오늘 예선은 잘 준비했어요?”

준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글쎄…”

소녀는 이제 제법 남자 같은 냄새를 풍기는 준을 바라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흐음…어찌됐든! 나는 오라버니를 믿어요!”

“너는 당연히 믿겠지. 내 실력을 이미 알고 있는 거지?”

소년이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기자, 소녀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해맑게 웃으며 그를 칭찬했다.

“3단에서 7단 까지 1년도 안 걸렸어요. 오빠의 재능은 역시 대단해요.”

“가자.”

준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소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훈련장에는 이미 백여 명의 소년소녀가 모여 있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여전히 거대한 검은 비석이 서 있었고, 그 때와 똑같은 시험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왼쪽의 높은 무대 위에 아버지와 세 장로를 비롯한 가문의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뿐 이었다.

장내에 위치한 소년 소녀들의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이미 그 재능을 인정받은 아이들도 긴장한 듯 서성거리면서 눈을 굴렸고, 평범하거나 자질이 부족한 아이들 중에는 새파랗게 질려있는 아이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촌장은 굳은 얼굴로 시험장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이가 오늘 이 관문을 넘을 수 있을까…’

“촌장님,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준은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거죠?”

둘째 장로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이미 준이 떨어질 것을 확신한다는 듯, 셋째 도련님이라는 호칭조차 생략하고 있었다.

“시간이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합니까?”

촌장이 쏘아붙이자 노인은 얼굴이 굳어 차갑게 맞받아쳤다.

“40만 골드짜리 연금 비약을 사줬다고 해도, 1년 안에 7단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흥, 오늘 이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당신이 거금을 날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거요.”

이한은 분노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그에게 장로의 이런 태도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것 이었다.

“이…”

촌장이 고함을 치려는 순간, 시험장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광장 끝의 작은 길에서 한 쌍의 소년 소녀가 시험장 쪽으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한은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의 여유로운 태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은과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 이준에게 질투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이씨 문중의 모든 이들이 가문 제일의 미녀이자 천재인 이은이, 저딴 폐물과 어울리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광장 모퉁이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소년들 중 유독 분노로 눈을 빛내는 이가 있었다.

“개자식, 어디 내일도 네가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마을을 활보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투 어린 시선들을 무시하고, 이은과 함께 연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심사를 받아야 할 소년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폐물의 여유만만한 태도에 장내에 위치한 모든 이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 이미 포기라도 한건가?”

둘째 장로는 촌장의 성미를 건드리기 위해 일부러 대놓고 준을 비웃었지만, 이한은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느긋하게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허허, 둘째 장로님. 뭐든지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요.”

“글쎄요. 저도 저 애가 저한테 놀라움을 선사해 주길 바랍니다만.”

“시간 다 됐어요. 이제 시작하지요.”

둘째 장로가 계속해서 비아냥거리며 촌장의 성질을 건드리려 했지만, 큰 장로가 말을 끊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이한은 첫째 장로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켜, 훈련장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이씨 가문의 새싹들아. 오늘의 시험이 너희들한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험 규칙은 간단하다. 염력이 7단에 오르면 합격, 그렇지 못 하면 불합격이다. 이에 더해 언제나처럼 시험 외 규정으로 시험이 끝난 후 7단 미만의 사람은 7단 이상의 수련자에게 도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만약 도전이 승리하면 그도 역시 합격이 될 것이다!”

“모두들 알았으면 자, 시험을 시작하겠다!”

이한의 연설이 끝나자 비석 옆에서 시험관이 앞으로 나와 명단을 꺼내들고 시험을 볼 인원을 한명 한명 호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호명된 소년들은 바짝 긴장해 얼어붙은 채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개중에는 너무 긴장해 다리를 덜덜 떠는 아이도 있었다.

준은 다리를 꼬고 바닥에 앉아 여유롭게 다른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것을 구경했다.

결과는 신속하게 나왔고, 준은 무표정하게 불합격한 자들을 바라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옆에 앉은 이은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시험을 보는 다른 이씨 문중의 소년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준보다는 조금 나아 탈락하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뜨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 이상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안!”

시험관의 호명에 준이 고개를 들자, 이은은 심통이 난 듯 코를 찡긋거렸다.

이안은 오늘 눈에 띄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당당한 걸음걸이로 비석을 향해 나아갔다.

빨간 옷의 소녀를 보는 준의 얼굴에 냉소가 어리자, 이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그녀가 오빠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네요.”

이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자 이은도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준은 은의 그런 태도가 귀여워 손을 뻗어 은의 머리 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몸이 약한 자신을 밤마다 주물러 주던 서툰 손길이 떠올랐다.

소년은 썩 효과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2년이나 매일 밤 지치지도 않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병약한 소녀를 주물러 주었다.

은은 준의 손길이 닿을 때면 문득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다.

“이안, 염력 8단, 상!”

시험관은 이번 시험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이안의 실력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1년에 염력 1단이 올라갔군. 그냥 평범한 실력이야.”

준의 차가운 말에 이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당당하게 합격을 받았지만, 그 뒤로는 열 명에 한두 명 정도가 7단을 받고 나머지는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이은!”

은의 이름이 불리자 시험장의 모든 눈길이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한줌도 안 되는 가느다른 허리를 숙여 준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 뒤, 부끄러운 듯 종종 걸음으로 비석 앞으로 나아갔다.

“오라버니, 놀라면 안돼요.”

“설마, 너 벌써…?”

준은 놀란 눈으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소녀는 이미 비석 가까이 이동해 있었다.

* * *

한 순간에 훈련장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연두색 옷을 입은 소녀에게 집중 되었다. 가문의 높은 사람들도 모두 웅성대던 것을 멈추고 이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두색 옷을 입은 소녀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비석 앞으로 나아가 손을 들었다.

잠시 후…검은 비석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던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시험장 곳곳에서 감탄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은, 일성 투사!”

늘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던 시험관마저도 놀란 듯 감탄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흠…열다섯 살에 일성 투사라…”

이한과 세 장로도 머리를 끄덕였다. 가문 최고의 인재라고 해도 놀라운 재능이었다.

놀라기는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이맘때쯤 염력이 9단 이었으니, 1년 동안 투사가 된 것으로도 모자라 별 하나만큼의 실력을 더 쌓은 것이다.

이는 자신이 연금 비약을 통해 계속 수련을 한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장내에서는 찬사와 감탄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은은 그런 반응이 달갑지 않은 듯 인상을 쓰며 몸을 돌려 인파를 뚫고 준을 향해 걸어갔다.

“자만하지 말거라. 너의 재능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1년 안에 투사가 되지 못 했으면 혼을 냈을 게다. 앞으로도 자만하지 말고 더욱 수련에 매진하거라.”

은과 눈이 마주친 준이 엄한 스승이라도 된 듯한 말투로 장난을 치자,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

자리로 돌아온 천재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다가 털썩 앉아, 그의 옆에 바짝 붙었고, 둘은 또 다시 무료한 표정으로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탈락자들이 늘어날수록 시험장의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합격하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 같이 울상이었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리며 자리로 돌아와 주저 앉아 우는 아이도 여럿 보였다.

준은 점점 더 시험 결과에 관심을 잃기 시작했다. 몇 백 명의 아이들 중 서너 명 정도가 8단 이었고, 9단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합격자는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한 수준이었으니 장내의 분위기가 안 좋을만도 했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재능이 없는 아이들의 비중이 높아졌으니, 지금 자리에 남은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은 모두 누구도 합격을 기대하지 않는 마을의 폐물들이었다.

“이준!”

돌고 돌아 마지막 순서가 오고, 드디어 준의 차례였다.

“오라버니!”

은의 작고 따스한 손이 이준의 손을 잡았다. 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험장을 한번 훑어보고는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느긋하게 몸을 움직여 비석으로 향하면서 아버지를 한번 바라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보낸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촌장은 안심한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인 후 찻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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