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수련에 매진하다.
초급 단계의 염력은 뒤로 갈수록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기가 어렵다.
준은 경매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3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련을 한 끝에, 염력을 6단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수련이 부족했다. 아직도 태초의 힘을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마비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게다가 힘 조절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신경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쳐왔다.
준은 아픔을 참아내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꿈치를 바라봤다.
“쓰읍…그래서 그렇게 쓰러질 정도로 맞는 연습을 한 거였구나. 그 훈련이 없었으면, 이 힘에 끊어지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내 팔뚝이었을 수도…”
현재 준의 염력 수준으로는 태초의 힘을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고, 일단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소년은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바위에 드러누웠다.
그는 전신에서 전해져오는 찌뿌둥한 느낌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준은 바위에 누워 푸른 하늘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 곳곳에서는 몇 달간 빨아들인 연금 비약이 천천히 배어나와, 그의 온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스승님, 얼마나 더 지나야 7단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까?”
소년은 힘이 빠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씨 가문에서는 염력이 7단에 올라가면 투기각에 들어가 염력 수련법을 익힐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그곳의 수련법 따위는 약로가 있는 그에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버지의 체면 문제다. 준은 반드시 심사에 통과해 그곳에 들어가야 했다.
시원한 바람이 지나자 어느새 약로의 투명한 모습이 바위 옆에 나타나 있었다.
“너의 수련 속도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영약의 도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1년이 지나야 7단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지금 이 속도로 수련하면 2개월 안에 염력이 7단에 오를 것이다.”
약로의 말에 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난 3년간 당했던 수모가 머리를 스쳤다. 그녀가 자신의 염력이 불과 몇 개월 사에 7단에 오른 것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나설아…기다려라.”
그는 벌써 마을 사람들을 넘어, 3년 뒤 나설아에게 설욕할 것 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바위에 드러누워 결의를 다지는 소년을 보며 약로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목적이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다.
준은 원래 재능 있는 아이였다. 재능이 있고, 목적도 있고,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원도 있다. 약로는 준이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빨리 발전하는 것에 몹시 흡족했다.
“그래, 앞으로도 쉬고 싶을 때면 그녀를 생각해라.”
“갑시다! 집에 가서 수련 계속해요!”
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약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산 아래로 달려갔다.
* * *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 지나고, 어느 새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계절이왔다.
하지만 푸르른 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기가 왔어도 준의 일상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온종일 염력을 수련하는데 몰두했고, 틀에 박힌 듯 고정된 일상은 그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난 반년간 그의 실력만큼이나 외모도 상당한 변화를 거쳤다. 계집아이처럼 하얗고 부드럽던 피부는 뒷산에서 매일 같이 무투기를 수련하느라 그을려 어두워졌고, 말라비틀어진 수수깡 같던 그의 체구는 탄탄하게 변모해, 한 마리의 들짐승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오늘은 꼭 7단에 이를 수 있을 거야.’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준의 머릿속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의 숨소리는 점점 규칙적으로 평온을 되찾았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기 위해 필요한 폭발적인 기운을 외부로부터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준이 호흡을 반복할 때 마다, 나무통 속의 푸른색 액체가 미세하게 파동을 일으키며 반짝이고, 이내 기체가 되어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영약을 흡수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나무통 속의 푸른색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옅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이준은 하나의 큰 자석처럼 주위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초급 단계의 염력은 1~3단까지가 하, 4~6단까지가 중, 7~9까지가 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6단과 7단은 그 차이가 커 7단의 염력은 6단의 몇 배에 달하기 때문에, 7단은 많은 초보 수련자들이 투사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준은 6단에서 7단에 오르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준은 7단에 오르기 위해 매일 같이 수련을 반복해왔다.
나날이 반복되는 수련에 그의 몸은 점점 더 빠르게 주위의 기운을 흡수하게 되었고, 영약의 약효를 흡수하는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어 이제는 푸른색 기류가 작은 회오리처럼,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통안의 액체는 깨끗하고 투명한 색으로 변화했다. 약에 담긴 기운이 모두 사라지자, 준의 얼굴도 연한 청색에서 원래의 것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두 달이 걸렸던 일이 이제는 하루면 충분했다.
영액의 힘이 사라지려는 찰나, 손가락에 있던 검은색 반지의 빛이 미세하게 반짝이더니, 다시 최상의 연금 비약 한 방울이 나무통 속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투명한 물이 다시 진한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물이 다시 녹색 빛으로 변하자 다시 그의 얼굴이 퍼렇게 변하고, 온 몸에 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연금 비약의 기운을 빨아들이기를 30분 째, 짙은 색의 물은 또 다시 눈에 띄게 연해져 있었다.
‘왔다!’
순간 아랫배가 조금 당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자 준은 눈을 번쩍 떴다.
검은 눈동자 사이로 푸른색과 흰색의 빛줄기가 지나가고, 그의 입술 사이로 탁한 공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준이 몸을 푸니 전신에서 뼈마디가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7단이다.”
준은 온 몸에서 용솟음치는 새롭지만 익숙한 기운을 만끽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준은 나무통에 기대고 누워, 몸 속에서 용솟음치는 기운을 음미하다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머리를 돌려 오른손을 뻗자, 순식간에 옷이 그의 손안으로 날아들어 왔다.
“음…훌륭해. 염력이 많이 저장된 것 같군. 지금의 힘이라면 사람 하나 정도는 끌어올 수 있겠어! 하지만 별 공격력은 없는 것 같은데…역시 나와 비슷한 수준에 있거나 수준이 낮은 사람한테나 통하는 무투기라는게 사실인가보군.”
준은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입을 삐죽거리며 무언가 고민하다 손바닥을 천천히 안으로 오므려보았다.
그가 손을 들어 1미터 정도 밖에 있는 꽃병에 손바닥을 향하자, 손바닥에서 염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염력의 방출은 대투사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지금 그의 염력으로는 미약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정도의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 했다.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준은 그다지 실망하지 않은 듯 했고 오히려 즐거운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그는 다소 흥분한 듯 손을 비비고는 다시 뒤로 물러서 오른쪽 손바닥을 들어 꽃병을 겨냥했다.
“흡장!”
준의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강한 흡입력이 발생해 꽃병을 끌고 왔다.
하지만 그는 꽃병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기 직전, 손바닥에 모인 흡입력을 멈추면서 동시에 염력을 방출했다.
쾅!
방향이 반대인 두 힘이 공중에서 만나자 그 중심에 있던 꽃병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되어 폭발하듯 깨졌다.
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결과 자체는 계산대로 였지만, 그 파괴력은 자신의 기대 이상이었다.
“녀석 제법인데… 이런 생각으로 ‘흡장’을 강하게 할 생각을 하다니.”
손가락 위의 반지에서 다시 미약한 빛이 반짝이더니 약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로는 깨진 병조각을 훑어보며 흡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밀어내는 힘을 가진 무투기를 정확하게 수련 한다면, 흡장의 위력도 한층 올라가겠구나. 아마도 3격 단계 중이나 상 수준의 무투기와 비슷한 위력을 내게 되겠지.”
약로의 말에 준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맞장구를 쳤다.
“스승님, 스승님도 아시다시피 이런 힘을 가진 무투기가 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이 흡장을 얻은 것도 운이 따라줬을 뿐인데, 이제 이 흡장과 어울리는 무투기를 어디가서 찾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이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방법이 없다는 듯 울상을 짓자 약로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쯧…이놈이 아주 갈수록 영악해지는구나,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척력을 가진 무투기를 내놓아라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니냐?”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입을 삐죽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은 생각을 한 애송이들이 예전에도 몇 놈 있었지. 하지만 이 두 종류의 무투기는 모두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실제로 두 개를 같이 사용한 사람은 아주 적었지.”
“스승님한테도 없으신가요?”
약로의 말에 이준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척력을 쓸 수 있는 무투기 없이, 단순히 염력을 뿌려대면서 흡장을 사용하면 효율이 너무 떨어질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면 아직 미약한 그의 염력으로는 이는 안하느니만 못한 공격이 될 것이 뻔했다.
약로는 풀죽은 제자의 모습을 보자 재미있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약을 정제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그런 무투기를 주었던 것 같기도 하구나. 그때 마침 수중에 별 용도가 없었던 연금 비약이 있어서 거래를 했었지. 그 일이 하도 오래 된 일이라 네가 오늘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까마득하게 잊을 뻔 했구나.”
준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약로는 신이 난 제자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노인의 손이 이마에 손이 닿자, 준의 머릿속에 무투기에 관한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척력장 : 3격 단계 하, 강풍 제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촌스러운 명칭까지 붙여져 이 “3격 단계 하”라는 글자가 약간 초라해 보였다.
“이 무투기의 창시자는 대장장이였다. 한평생 철을 만든 사람이었지. 보다 강한 불이 필요했던 그는, 염력으로 바람을 불어 불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무투기를 만들어냈다.”
준은 그 대장장이의 능력과 인내심에 감탄이 들었다. 무투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무투기가 비록 하급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척력장은 상당히 쉬운 무투기였고, 약로의 조언에 힘입어 준은 약 두시간만에 그럭저럭 새로운 무투기를 익힐 수 있었다.
척력장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자 준은 서둘러 방 중앙으로 이동한 뒤 방안에 남은 마지막 꽃병을 빨아들였다.
“흡장!”
꽃병이 손안으로 날아들자 그는 즉시 흡장을 멈추고, 척력장을 사용해 꽃병을 밀어냈다.
펑!
두 가지 무투기를 응용한 그의 새로운 기술 앞에 꽃병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자, 소년은 뛸 듯이 기뻤다.
엄청나게 강력한 공격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대결중에 적의 의표를 찌를만한 것은 되었다.
준은 기쁜 얼굴로 온 몸에 뒤집어 쓴 하얀 가루를 툭툭 털어내며 눈을 빛냈다.
3개월 뒤 자신의 성인식에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눈에 선했다.
* * *
어느새 3개월에서 절반이 날아가고, 이제 성인식까지는 불과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준은 여전히 방에 틀어박혀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마지막 연금 비약이 남아있었다. 염력의 수련을 본래 뒤로 갈수록 어려워진다지만, 지난 2달간 8단에 오르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이 마지막 연금 비약으로 8단에 오를 수 있을까…”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방안을 서성이다 옷장에서 단정한 검은색 옷 하나를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