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쟁탈전
……
눈 깜짝할 사이 연금 비약의 가격은 이미 1만 골드를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한은 아직까지 눈을 감고 사람들이 부르는 가격을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 이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이 어느 정도 멈춰갈 때 즈음, 이한의 옆에 있던 가씨 가문의 촌장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가격을 불렀다.
“2만!”
순식간에 경매장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허허, 가후, 당신의 아들은 이미 투사가 되지 않았소? 왜 이 축기영액이 필요하오?”
장내에 있던 한 사내가 기가 찬 듯 노인을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이자, 가후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미래의 손자에게 줄 선물이지!”
사내는 조용히 입을 다 물었지,만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연금 비약이 경매에 올라온 지 10분도 되기 전에 이미 그 가격은 3만 골드에 육박하고 있었다.
“4만!”
다시 한 번 장내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번에 가격을 부른 이는 바로 이한이었다.
“허허, 보아하니 이 촌장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영약을 차지하고 싶은 모양이군요.”
가후의 말에 이한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한 말투로 대꾸했다.
“촌장님께서 갖고 싶으시다면 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시면 되지요.”
노인은 이한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머리를 저었다. 사실 이번 경매에서 그의 목적은 이 연금 비약이 아니었기에 이 영약을 구매하는데 거금을 쓰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이한 촌장님께서 제시하신 가격은 4만 골드 입니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실 분이 있습니까?”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경매장을 바라보며 주희는 다시 한 번 뜸을 들였다.
“더 없으시면 이 연금 비약은 이한 촌장님에게 낙찰됩니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자 주희는 더 이상은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해, 손에 든 봉을 두드려 낙찰을 알렸다.
……
“호호, 계속해서 이번 경매의 마지막 물품입니다!”
옥병을 정리한 뒤 주희가 손을 들자 갑자기 불빛이 어두워졌다. 컴컴해진 경매장 한 가운데서 그녀는 몸을 약간 숙여 은색 쟁반을 꺼냈다. 쟁반위에는 푸른색의 낡은 두루마리가 놓여져있었다.
두루마리는 신비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조명을 받아 그 신비한 느낌이 더욱 강해보였다.
“3격 수준의 수련법! 바람의 노래입니다!”
3격 단계 상급 수련법이라는 말에 경매장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는 연금 비약보다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연금 비약은 아무리 귀하더라도 한 순간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염력 수련법이라면 평생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가문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고급 수련법만 있다면 연금 비약의 도움 없이도 언젠가는 강자가 될 수 있다. 반면 연금 비약이 아무리 많아도 고급 수련법이 없다면 진정한 강자는 될 수 없는 것 이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청색 두루마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처음으로 경매장 안에 있는 사내들의 눈이 주희의 농익은 몸이 아닌 다른 곳에 고정되는 순간이었다.
뒤쪽에 앉아있던 준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3격 단계의 수련법이라면 자신의 가문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수련법인 ‘사자의 포효’보다도 더 높은 수련법이다. 다른 가문 역시 사정은 비슷하니, 아마도 촌장들은 이 물건을 노리고 온 것이 분명했다.
준은 청색 두루마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른 침을 삼켰다. 이 두루마리를 얻는 자가 분명히 장차 은빛성의 패권을 쥐게 될 것 이다.
“으이그, 쯧쯧…고작 3격 단계의 수련법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바로 그 때, 준의 머릿속에 약로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소년은 대체 이 노인이 뭘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궁금했다.
1격 수준의 수련법은 벌써 수 백 년째 나타나지 않고 있고, 2격 단계의 수련법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3격 단계 수준의 염력 수련법이라면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고의 수련법이나 다름없었다.
준은 노인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와 언쟁을 벌여봤자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관망했다.
“애송이, 안심하고 수련에만 매진하도록 해. 투사가 되는 그 날에 너한테 진정한 고급 수련법이란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줄 테니까.”
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포기한 듯 대꾸했다.
“네 스승님…부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여러분, 이 3격 단계의 수련법은 한 사냥꾼이 운 좋게 산속에서 얻은 것으로, 선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 됩니다. 저희 경매장에서 이렇게 내놓기 전에 수도 없이 감정을 한 물품이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주희는 사람들의 욕망에 부채질을 하듯 하얀 손으로 청색 두루마리를 흔들어댔다.
“빨리 가격을 제시해라!”
무대 아래에서 이미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자 주희는 잠시 뜸을 들이며 장내를 한번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바람의 노래, 20만 골드부터 시작합니다!”
어둠속에서 이준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날강도들, 아무리 그래도 20만 골드라니……해도 너무한 가격이었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쓸개라도 빼서 내다 팔 기세였던 사람들도 선뜻 입찰에 나서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는 앞에 자리를 잡은 세 촌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희는 썰렁한 분위기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뿐 이었다.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누가 사도 사갈 것이고, 누가 시작을 하느냐가 문제일 뿐, 결국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다. 그녀는 제 1 경매장의 여왕답게 이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조용한 분위기는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입찰에 불을 붙인 것은 듬성듬성 머리가 빠진 한 중년 사내였다.
“21만!”
사내는 은빛성내에서 유명한 무기 상인으로, 성의 무기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다. 비록 3대 가문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은빛성에서 꽤 세가 있는 인물이었다.
“23만!”
다음은 노란색 옷을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은빛성의 약재 상인으로, 성내에 큰 약재 가게 몇 개를 운영하고 있는 거상 중 하나였다.
“24만!”
“25만!”
둘의 입찰 경쟁에 막 불이 붙을 무렵, 가후가 찬물을 끼얹었다.
“30만!”
가후와 눈이 마주치자 두 상인은 고개를 흔들며 입찰을 포기했다. 가씨 가문의 자금력은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고, 노인의 눈빛으로 보아 절대 포기할 리가 없었다.
“33만!”
이번에는 박씨 가문의 촌장 박진이었다. 은빛성에서 가씨 가문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가문은 이씨와 박씨 가문뿐이니, 이제 3명 중 2명이 입찰에 뛰어든 상태였다.
가후는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박진을 한 번 흘겨보고는 다시 입을 뗐다.
“35만!”
“37만!”
“38만!”
“40만!”
박진과 가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상대가 가격을 부를 때 마다 즉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가격이 43만 골드에 이르자 박진이 입을 다물었고, 가후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스쳤다.
“45만!”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이한이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가후의 가슴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씨 가문과 박씨 가문은 모두 3격 단계의 수련법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씨 가문만이 3격 단계의 중급 수련법을 얻지 못 한 상태였다. 그래서 가후는 이번 경매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3격 단계 상급 수련법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미 경매를 포기한 듯한 박진이 즐겁다는 듯 가후를 바라보며 낄낄댔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상급 수련법이 반드시 필요했던 그는 결국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46만!”
그러나 가후의 절박함 따위는 제 사정이 아니라는 듯, 이한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다시 한 번 가격을 올렸다.
“50만!”
주희는 이 두 사람의 싸움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누가 승자가 되든 가격만 올려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씨 가문 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잠시 고민하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끝내 55만 골드까지 가격을 올렸다.
바로 그 때, 이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이겼어.”
잠시 멍한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보던 가후의 얼굴이 험상 궃게 일그러졌다. 정신을 차린 그는 그제야 이한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음을 깨달았다.
“이한… 이한!”
가후는 분을 이기지 못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주희와 눈이 마주친 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자리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은빛성의 3대 가문이라고 해봤자, 유씨 가문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권력. 감히 이 경매장에서 소동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끝내도 되지 않을까요?”
유씨 가문의 경매인이 태연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네자 가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탕! 탕! 탕!
“3격 단계 상급 수련법인 바람의 노래는 55만 골드에 가후 촌장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준은 이 광경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경매장을 나섰다.
‘아버지도 참 어지간하시군.’
준의 머릿속에는 3격단계의 수련서를 보았을 때 보다, 자신의 수련을 위한 연금 비약을 발견했을 때 더 기뻐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스쳤다.
* * *
1호 경매장을 나선 준은 감정실로 돌아갔다. 감정실에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자꾸만 존경심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소년은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호호, 이 분이 축기영액의 주인분 되시죠? 선생님은 은빛성에 처음 방문하신 건가요?”
매혹적인 향수 냄새와 함께 달짝지근한 여인의 살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주희였다.
‘안 돼, 이 여자는 요물이야. 아까 경매장에서 하는 짓 봤잖아.’
준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검은 망토 속으로 얼굴을 더 깊게 파묻었다. 하지만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아름다운 다리로, 눈이 향하는 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이준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망토에 얼굴이 가려져 그녀는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준은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낙찰됐죠? 그럼 돈을 주세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말을 한 것은 이번에도 준이 아니라 약로였다. 그녀는 준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요염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수속이 채 끝나지 않아서요.”
준은 다시 한 번 가볍게 머리를 끄덕인 뒤, 입을 다물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주희는 망토를 걸친 정체불명의 연금술사의 그런 태도에 심히 불쾌감을 느꼈다. 그녀는 은빛성 전체에 소문이 난 미녀였고, 자신의 미모에 혹하지 않는 남자 따위는 본적이 없었다.
간혹 관심이 없는 척 냉담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사내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런 자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미소와 달콤한 말 한마디면 아닌 척 하면서도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고, 어서 돈이나 받아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듯 보이는 사내의 태도에, 그녀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불쾌한 듯 입을 삐죽이며, 조금이라도 그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흘깃흘깃 망토를 뒤집어 쓴 정체불명의 사내를 훑어보았다.
“선생님, 저는 휘장을 달지 않은 연금술사를 본 적이 없는데, 실례지만 선생님의 성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왜요? 여기에 오면 신분을 밝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호호, 제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기 싫으시다면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주희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