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10화 (10/818)

제10화. 흡장의 비결

이준은 다음으로 사내의 가슴팍을 살펴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2성 투사…’

“너무 비싸요. 일반 1급 마정석 가격은 400~450 정도 밖에 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불여우는 마수이긴 해도 공격력이 별로 세지 않은데, 당신의 형제들에게 적지 않은 부상을 입혔다고요?”

사내는 준의 말에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눈앞의 소년이 마수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470으로 합시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우리 형제들도 먹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에이…”

준은 그 용병사내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는, 즉시 노점의 물건을 뒤지는 척 하다가 검은 색 철편을 집어 들었다.

“덤으로 이것까지 두 개에 470!”

노점의 주인은 이준의 손에 든 것이 형편없는 낡은 철편인 것을 보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시원하게 주머니에 든 돈뭉치를 건네준 이준은 두말없이 물건을 집어든 채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하하, 녀석 괜찮은데, 물건 사는 것도 아주 조심스럽고 계산적이야.’

몸을 돌리는 찰나, 약로가 준의 머릿속에 말을 걸어왔다.

‘흥, 장사꾼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어떤 물건을 맘에 들어 하는 눈치가 보이면, 금방 가격을 올릴게 뻔한데.’

준은 마음속으로 짤막하게 답변을 한 뒤, 이은과 함께 여유롭게 시장을 둘러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 *

이은과 헤어진 후, 이준은 급하게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조심스레 창문을 모두 닫았다.

머리를 돌리자 언제 반지에서 나왔는지 약로가 나타나 있었다. 준은 시장에서 산 약초들과 마정석을 꺼내며 노인을 다그쳤다.

“물건을 다 준비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약로는 여유롭게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재료들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검은색 철편을 더 자세히 보거라.”

“네?”

약로의 말에, 준은 철편을 위 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았다.

“특별한건 없는 것 같은데요?”

“에잉…이래서 보는 눈이 없는 놈들은…”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며, 철편을 준의 손에서 낚아 챘다.

“이 안에는 한 가지 무투기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철편을 제조한 사람이 연금술사인 것 같구나.”

“무투기요?”

말을 들은 이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급인데요?”

무투기(武鬪技)는 투기대륙에서 염력 수련법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높은 단계의 무투기는 전투 중 자신의 힘을 최고치 이상으로 끌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었다.

약로는 철편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다가 한참 뒤 웃으면서 말했다.

“흡장(吸掌): 3격 단계 하!”

“3격 단계 하?”

이준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녹슨 고철덩어리에 3격 단계의 무투기가 숨어 있다니! 이씨 가문의 제일 높은 무투기조차 3격 단계 중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은 촌장과 몇 몇 장로만 배울 자격이 있는 것 이었다.

“흡장: 완벽하게 수련하면 천근 바위도 흡수할 수 있고, 적을 만나 있는 힘껏 흡수하면 인체의 혈액도 뽑을 수 있다.”

“혈액을 뽑아낸다고요?”

깜짝 놀란 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노인을 바라봤다.

“이거…너무 센 거 아니에요? 피가 몸 밖으로 빠지면… 누가 살아남아요?”

“이 물건은 염력 수준이 너보다 낮거나 같은 상대방한테만 통한다. 너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끌어들여봤자 얻어터지는 건 네놈이지. 그러니 사용하지 않느니만 못 할게다. 그보다 차이가 더 심하다면 끌려오지도 않을 테고.”

약로는 철편을 휙 집어던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어쨌든 이 흡장이 가문의 평범한 무투기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이걸 배워야지…”

“크, 이런 뻔뻔한 놈. 고작 3단으로 나뭇가지 하나나 끌어당긴다면 믿을까, 사람 피를 뽑을 생각을 꾸다니…”

약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삐쭉거렸지만 어찌됐든 준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즉시 노인이 집어던진 철편을 고이 집어 들고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못난 녀석, 3격 단계의 무투기에 이렇게 넋을 잃다니, 창피해서 원…”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던 약로는, 탁자 위의 마정석을 집어 들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서 물이나 한 대야 받아와!”

약로의 말에 준은 서둘러 철편을 집어넣고 물을 받으러 뛰어갔다.

* * *

노인은 조용한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뒤, 왼손으로 보라색 난초를 집어들고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왼손에서 하얀 색 불길이 타오르면서 방안을 달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약로 손에 있던 흰색의 불길이 점점 커지더니, 보라색 난초를 집어삼켰고 불길이 거세지자, 난초는 순식간에 작은 초록 액체로 변화했다. 첫 번째 난초가 완전히 액체로 변하자, 약로는 다시 오른손으로 다른 난초를 태우고, 다시 왼손으로 세 번째 난초를 태웠다. 세 송이의 난초를 모두 태우고 난 뒤에는 초록색 액체의 양이 이미 상당히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로는 다시 그 액체를 더 큰 불로 달구기 시작했고, 액체는 점점 줄어들어 손톱만한 크기가 되어 버렸다.

이어서 약로는 황혼의 잎새 두 잎을 불에 집어넣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황혼의 잎새가 역시 초록색 액체 안에 스며들었다.

다음은 마정석이었다. 마정석은 아주 단단해 이번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지만,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딱딱했던 마정석도 흐물흐물하게 녹아 연두색 액체가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작업을 마친 노인은 손바닥 위에 흰색 불길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준은 약로의 손바닥 위에 떠있는 액체를 바라보며 손바닥을 비벼댔다. 그는 이 액체가 얼마나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스승님, 그냥 삼키면 됩니까?”

소년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눈을 반짝이자, 약로는 한심하다는 듯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응. 삼켜라. 아주 단숨에 삼키거라. 묘 자리는 내가 좋은 곳으로 봐줄테니.”

이준을 흘겨보던 약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옥색 액체가 물이 담긴 대야 속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깨끗한 물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변했다.

“앞으로 이 안에서 수련하거라. 그럼 너의 재능으로 볼 때 1년 안에 7단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게야.”

‘우와, 진짜였어. 진짜 연금술사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승으로 모신건데!’

“네! 네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소년은 잔뜩 흥분한채,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까먹을 뻔했네. 이런 약물은 두 달 동안만 유지가 가능하다. 그 말인즉슨 매 2개월마다 오늘과 같은 물건들을 사와야 된다는 뜻.”

약로의 짤막한 한마디에 화색이 만연했던 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지며 울상이 되고 말았다.

‘젠장! 두 달에 한 번…? 그럼 1년 이면 얼마야?’

* * *

따뜻한 햇살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어느 아침, 소년은 방안에서 옷을 벗은 채 다리를 꼬고 나무통에 들어가 앉았다.

나무통 안에는 푸른색 물이 가득했고, 물살이 흔들릴 때 마다 기이한 빛이 반짝였다.

소년이 천천히 규칙적인 호흡을 반복한 뒤 몇 분후, 푸른색 물에서는 옅은 기류가 피어올라 소년의 호흡을 따라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류가 몸속으로 들어갈 때 마다 소년의 얼굴은 기이한 빛을 발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소년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액체속의 기운을 흡수해나갔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 * *

나무통 속에서 두 눈을 꼭 감은 소년은, 마지막 한줄기 기류까지 놓치지 않고 몸속으로 빨아들였다.

소년이 눈을 뜨자 검은 눈동자 위로 연한 청색 빛이 스쳐 지나갔다.

준은 숨을 천천히 내쉰 후 몸을 벌떡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이 속도로 수련하면 앞으로 두 달 안에 5단을 뛰어 넘겠는데!”

그는 약로가 액체를 만들어 준 뒤, 보름동안 방안에 쳐박혀 하루 종일 염력을 단련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3년간의 무시와 천대는 그에게 절박함을 가르쳐 주었다. 숱한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그는 약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에 비하면 보름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약로가 정제한 연금비약은 그 약효가 실로 뛰어났다. 이는 심지어 약로 본인의 예상조차도 뛰어넘는 것으로, 그 역시 이준의 발전 속도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물론 예전에 염력 회오리를 완성했던 적이 있는 만큼, 다른 이들보다 빠르기야 하겠지만, 지금 준의 발전 속도는 그가 상상했던 것을 아득하게 초월해 있었다.

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은 기초를 수련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10단의 염력을 완성하기까지 10년, 나아가 20년이 걸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진정한 투사가 되면 빠르게 가속도가 붙지만, 투사가 되기 전에는 1년에 1단 정도 밖에는 향상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투사가 되면 1년 안에 별 몇 개를 따는 자도 있었으니, 정말이지 염력은 기초를 수련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이다.

* * *

나무통 밖으로 나온 이준은 머리를 돌려 이미 상당히 색이 옅여진 푸른색 액체를 바라보았다. 색이 연해진 이유는 그 액체에 함유된 에너지가 자신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타까운 듯 머리를 흔들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한 달 반 더 유지할 수 있겠네…”

준은 몸에 묻은 물을 닦은 후, 침대에 올라가 베개아래에서 검은 색 철편을 꺼냈다.

보름 동안 이준은 철편 속에 있는 무투기(武鬪技)를 수련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요사이 이준은 약로의 가르침 아래 흡장의 비결도 어느 정도 몸에 익히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다만, 아직 몸속의 염력이 너무 미약해 실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이었다.

* * *

소년은 두 손바닥 사이에 철편을 끼운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이준의 호흡이 평온해 지면서 방안은 다시 한 번 조용해 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침대 위에 앉아있던 이준은 두 눈을 뜨고, 오른 손가락을 구부려 갈고리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몸속에 있는 염력이 빠르게 손바닥의 혈관을 지나며 주위의 물건을 빨아들였다.

그의 염력이 닿자 청색 도자기 하나가 흔들흔들하더니 결국 땅에 떨어지면서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쨍그랑!

“하…아직 너무 약해.”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잇, 투기당(鬪技堂)에 가서 좀 쉬운 하급 무투기(武鬪技) 수련법이 있나 찾아봐야겠어. 이제 무투기를 수련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예전처럼 바보같이 수련하진 않을 거야…”

문을 열고 나서자 길 양 옆에는 푸른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울창한 초록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한 내음이, 지난 2주간 한 번도 밖을 나서지 않은 그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갔다.

* * *

길가로 접어들자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준이 고개를 돌려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유독 눈에 띄는 매력적인 소녀 하나가 소녀들 사이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준은 그녀를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매력적인 소녀는 과거 시험장에서 이은 다음으로 이목을 끌었던 ‘이안’으로, 그녀 역시 천재로 주목받을 때 자신을 쫓아다니던 계집아이 중 하나였다.

물론…준의 능력이 떨어진 이후로는 아니었지만…

준이 그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갑자기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안과 다른 소녀들은 천천히 다가오는 이준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이안 옆에 있던 몇몇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한 때는 가문의 별이었던 소년을 바라봤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 서려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