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투기대륙
하지만 ‘염력 수련법’과 ‘무투기’, 로 강함을 측정하는 것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으니, 개인이 타고난 특수한 능력에 따라서도 전투력은 크게 달라졌다.
예를 들면, 대륙의 북쪽은 힘이 세고 짐승의 영혼과 합체가 가능한 야수족이, 대륙의 남쪽에는 지능이 뛰어난 요괴족이, 또 괴이하고 음험하기로 이름난 마족 등등이 있는데, 이들은 높은 수련법과 무투기를 소유한 강자들도 상대하길 꺼릴 정도였다.
이렇게 투기대륙에서는 염력과 무투기, 개인의 실력을 기반으로 투사의 강함을 구분한 뒤, 이 기준과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별에 숫자를 붙여 그들의 강함을 나타냈다. 일반적으로 별의 숫자가 많을수록 강한 투사였고, 적을수록 약한 투사였다.
또한 투기대륙 투사의 레벨은 투사, 무투사, 대투사(大鬪師), 투령((鬪靈), 투왕(鬪王), 투황(鬪皇), 투종(鬪宗), 투존(鬪尊), 투성(鬪聖), 투제(鬪帝) 순으로 높으며, 매 레벨은 9성으로 나뉘었다.
염력, 무투기, 실력, 그 외의 요소…수 많은 요소들이 얽히고 설켜 약자가 강자가 되고, 강자가 약자가 되고, 무수한 기적과 마법과도 같은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 상상도 못한 우연과 기연,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곳. 투기대륙은 그런 곳 이었다. 어떤 이는 절벽에서 떨어졌다가 기연을 만나 대투사가 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우연히 만난 노인을 도와주었다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염력 수련법을 얻어 대투사가 되기도 했다.
대륙 전체에는 이런 기연을 만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투사들이 별처럼 많았고, 우연히 성공해 대투사가 되는 자와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이는 모두 일단 염력 회오리를 만들어 투사가 되고 나서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준에게는 그 모든 것이 꿈같은 일 이었다.
“퉤!”
준은 자리에 누워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입안에 있던 풀을 뱉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염병, 날 괴롭히려고 타임슬립까지 시킨거야?”
전생에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투기대륙에 왔을 때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뛰어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전생에는 꿈도 꾸지 못 했던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단꿈에 젖어있었다.
투기대륙에서 영혼이 강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였다. 나이가 들고 수련을 쌓고, 좋은 수련법을 익히면 강해 질수야 있지만, 그 어떤 수련법으로도 타고난 영혼의 강도만큼은 바꿀 수 없었다. 1격 수준의 수련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수련법이 있어도, 타고난 영혼의 강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 이었다.
하지만 준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별 탈 없이 이어졌더라면, 이준은 정말로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점점 더 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11살이 되던 해, 천재의 재능은 뜻밖에 찾아온 변화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가문의 빛이니 100년만에 한 번 나오는 천재니 하던 찬사는 모두 덧없이 사라지고, 지금 그는 ‘폐물’, 이나 ‘쓰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 * *
몇 번 악을 지르고 나자, 답답한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화를 내든, 기분을 풀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젠장……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거야!’
그는 몇 번이나 세차게 고개를 젓고 머리칼을 쥐어 뜯기를 반복했다.
영혼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강해지고, 염력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몇 년 전 수련을 시작할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다른 기준으로 보면 그의 천부적인 실력은 결코 약해진게 아닌데도, 그의 몸속에 들어간 염력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기이하고 놀라우면서도 개 같은 현상이었다.
“하아……”
그는 또 다시 한참 동안이나 한숨을 내쉬다가 손가락에 끼워진 검은 반지를 바라보았다.
“후…몇 년간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었구나.”
그 반지는 10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일한 유품으로,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독특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매우 오래된 물건이었다. 준은 손가락으로 반지를 쓰다듬으며 땅이 꺼져라 장탄식을 내뱉었다.
바로 그 때, 준은 숲속에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비록 염력은 3단 밖에 되지 않지만, 그의 영혼 탐지 능력은 5성 투사보다도 예민했다.
“아버지, 오셨어요?”
“허허! 준아, 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것이냐?”
고요한 숲 속에서 화려한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멋쩍은 듯 웃으며 나타났다. 그의 커다란 체격은 자세나 걸음걸이로 인해 더욱 크고 당당해 보였다.
준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준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이 후에도 한 번도 그를 채근하거나, 실망한 기색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몰락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존중해주는 것은 아버지와 이은 뿐 이었다. 준은 그런 아버지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준아, 아직도 오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그는 특유의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아들에게 다가갔다.
“생각할 게 뭐 있나요? 어차피 예상했던 결과인데.”
이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지만,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참…”
이한은 아들의 앳된 얼굴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준아, 네가 벌써 올해로 열다섯 이구나.”
“네, 아버지.”
“1년만 있으면 곧… 성인식을 치루겠구나…”
“네. 아버지, 아직 1년의 시간이 있어요.”
이준은 애써 태연한 척 주먹을 가볍게 쥐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성인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잠재력이 없는 상태에서 성인식을 치르게 되면, 투기각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무투기 수련법이나 염력 수련법을 찾을 자격도 박탈될 것이며, 결국 가문의 일터에 배정 되어 가문을 위해 장사나 농사 같은 아주 평범한 일들을 하다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 준아. 만약 1년 후 너의 염력이 7단이 되지 못하면, 이 못난 아비는 어쩔 수 없이 너를 가문의 일터에 배정해야 한단다”
준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걱정 없다는 듯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1년 뒤면 반드시 7단이 되어 있을거에요!”
담담한 척 하는 아들의 태도에 아버지는 더욱 마음이 미어졌다.
‘1년에… 4단…? 하하,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어림도 없어…’
입으로는 아버지를 위로하였지만…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향해 애써 담담한척 웃어 보이며 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늦었다. 얼른 돌아가서 쉬거라. 내일 집안에 귀한 손님이 올 것이니 실례하지 말고.”
“귀한 손님이요? 누구에요?”
“내일이면 알게 될 게다.”
이한은 다시 한번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 최선을 다 할게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 신비한 빛이 잠시 반짝이다 사라졌지만, 소년은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준은 투박한 침대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편 뒤, 천천히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위에 모았다. 규칙적인 호흡이 한참동안 이어지자, 천천히 염력이 모여들었다.
그가 눈을 감고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손가락의 검은색 반지에서 또 한 번 작은 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이를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후우……”
소년은 천천히 마지막 숨을 내 쉰 뒤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한 줄기의 옅은 빛 줄기가 검은 눈동자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 빛은 방금 흡수하고 아직 완전히 몸속에 흡수 하지 못한 염력의 흔적이었다.
“겨우 수련해 온 염력이 또 사라지고 있어… 이런… 젠장!”
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떠올랐다.
잠시 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참동안 앉아있어 감각이 사라진 발목과 허벅지의 감촉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저린 감각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헛고생을 했는지 확인시켜주는 증거였다.
소년은 허탈감에 사로잡힌채 계속해서 허벅지와 발목을 주물렀다. 그의 염력은 아직 3단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 후 쏟아지는 피로감을 반드시 풀어주어야 했다. 그가 비참한 마음으로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을 때, 밖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도련님, 촌장님께서 나오시랍니다.”
준은 삼형제 중 막내로, 위에 형이 둘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밖에서 수련 중이라서 1년에 한 두 번 밖에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지금 마을에 있는 촌장의 혈육은 그가 유일했다.
“네.”
소년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문 밖으로 나가자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죠, 묵집사님.”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앞장섰다. 그의 눈에는 이슬처럼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예전의 실력이었다면 진작 유명한 투사가 되었을 텐데…… 불쌍해서 어쩌누…’
* * *
잠시 후 준은 이묵 집사와 함께 뒷마당을 지나 응접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그는 공손하게 문을 두드린 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접실은 매우 넓었고,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준의 아버지인 촌장 이한과 무뚝뚝한 표정을 한 세 장로가 있었는데, 그들은 가문의 연장자였고, 촌장 못지 않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 네 사람의 왼쪽 아래로는 가문에서 제법 발언권이 있고 실력이 있는 어른들이 앉아 있었고, 다시 그들 옆으로는 가문내에서 실력이 출중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낯선 사람 셋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어제 저녁 아버지가 말한, 귀한 손님들인 것 같았다. 세 사람 중 가운데에 있는 하얀색 망토를 걸친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풍채는 늠름했으며 작은 눈에서는 광채가 일었다. 이준은 노인을 바라보다가 그의 가슴께에서 시선을 멈췄다. 노인의 가운 왼쪽 가슴에는 은색 달이 그려져 있었고, 그 달 주위로 일곱 개의 금색 별이 빛나고 있었다.
‘칠성 대투사(七星大鬪師)!’
이준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노인의 실력은 아버지보다도 별이 두 개나 높았다. 7개나 되는 별을 가진 투사는 그 숫자가 매우 드물어 ‘대투사’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대투사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흰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젊은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는데, 사내는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큰 키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별 다섯 개가 그려져 있었다. 20살 무렵에 5성 투사가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잘생긴 외모에 훌륭한 실력까지…가문 내의 소녀들 중에는 이미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 젊은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 아이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청년의 옆에 있는 여자아이는 준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한 눈에 보아도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소녀의 귀에는 초록색 옥으로 된 귀걸이가 걸려 있었고, 살짝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며 울리는 녹색 옥 귀걸이가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소녀의 가슴 위에도 별 3개가 그려져 있었다.
소녀의 가슴에 달려있는 세 개의 별을 보자, 소년은 순간 가슴이 서늘해져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다.
소녀의 가슴에 달린 세 개의 별은… 자신에게도 달릴 수 있었던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