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만날 사람은 만난다 ⑵
크웩!
허공을 치솟아 올랐던 신형이 바닥으 로 떨어졌다. 동공은 천만다행으로 잿 빛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며칠은 골골 거려야 할 파괴력을 몸소 체험했다. 철 수의 불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집에 오 자마자 도전하기에 정우는 일격을 날려 주었을뿐이지만.
“철수 좀 그만 괴롭혀!”
“내 허락도 없이 사귄 대가는 치러야 지.”
“나도 다 컸어.”
“그래도 내 동생일 분이다.”
정우는 철수와 수연이 괘씸했다. 자신 이 아직 허락하지 않았으며, 약속을 지 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감히 둘이 여행 을 떠났다.
행적을 놓치고, 본인의 의무를 망각한
흑금단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순간 의 빙심과 수연의 교묘한 수법에 당한 대가는 컸다. 덩달아 실드와 백금단도 고초에 합류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 다. 오덕X는 우린 서류 작업만 했다고 반박했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오빠도 효린이하고 한 약속 어겼잖 아. 왜 나한테만 그래.”
“흥, 억울하면 네가 먼저 태어나지 그 랬냐.”
오빠의 억지가 분명하다. 그런데 수연 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저항해 봤자 본 인만 힘들어지고, 철수는 매일 기절한 다. 이런 식이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 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소영아, 나 어떡해?”
“오빠 말 잘 들어.”
소영에게 물은 수연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소영이야 본인 마음만 돌리면 언제든지 남자친구 를 만들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오빠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 다. 아무래도 괘씸죄에 걸려 일생이 편 안하긴 힘들 게 분명했다. 기절해 버린 철수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더럽게 꼬였네.’
수연은 오빠로 인해 강해졌고 풍요로 운 삶을 누리고 있다. 받아먹은 게 있으 니, 앙탈을 부려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해 봤자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오빠 말이나 잘 들으라고 하겠지. 오빠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 다는 소리는 덤이고. 진짜 오빠한테는 말 정말 잘해야 했었다.
상위 호환이 된 9급 케이브가 열려 처음에는 고생을 했지만, 인간의 적응 력은 놀라웠다. 유니크로서 속성과 능 력을 업그레이드하여 대응이 가능해졌 다. 초반보다 피해를 줄여, 이제는 원래 대로 돌아왔다. 역으로 케이브에서 얻 은 광물 자원이 인간의 삶을 한층 더 풍 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우는 한국의 대마법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직접 나서진 않았 다.
혹금단, 백금단, 실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능력치를 개선시켰다. 특히 실 드의 약진이 눈부셨다.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신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방어 에 관해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위치 에 올라섰다. 흑금단이 답답해하는 것 만 봐도 견적은 충분하다.
두근!
상황실에 앉아 있던 정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 가를 느꼈다. 변화는 진화라고 해야 마 땅했다. 그야말로 한 차원을 벗어난 신 의 전언과 같았다.
-진화하라, 살아남으라.
빌어먹을 진언이다. 그리고 깨닫게 되 었다.
케이브의 변화에 맞춰 인간의 능력치
가 상승하고 있는 연관관계를 고려했던 예상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야말로 인간, 아니 생명체를 농락하는 조물주의 유희라고 해야 하나.
“날 건드렸겠다, 이거 화딱지 나네.”
농담 삼아 튜토리얼 모드일지도 모른 다고 했건만, 비약이 현실이 되었다. 본 격적인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조물주의 농간이다.
두드드드!
기운의 파장이 바뀌었다.
케이브의 오픈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 르기도 했다. 지금까지 장난이었다는 조물주의 전언을 증명하는 변화였다. 인류의 생존을 걸라는, 격이 다른 흐름 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
한 단계 그 이상의 흐름의 변화가 있 은 후, 케이브가 오픈될 조짐이 있었다. 장소는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이다. 이 전과 달리 이번에는 랜덤 케이브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마치 이 시간에 열릴 테니 와서 맞이하라고 경고를 해 왔다.
호수공원 인근은 통제되었고, 만약을 대비해 범위를 더 넓혔다.
기존과 다르다는 걸 이 대통령이 직
접 밝혔다. 계엄령을 내려 통제에 적극 협력하도록 당부했다. 명령을 따르지 않고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8급 이하는 모두 결계를 치는 데 협 조해.”
이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8급 이하가 전투에 끼어들어 봤 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간을 통제해 서 최악의 사태를 모면해야 했다. 한국 내 6급 이상의 유니크는 총동원되어 결 계를 치고 있었다.
호수공원에 있는 유니크는 무문과 길
드의 수장급에 달하는 자들로 구성되었 다. 총 인원 200을 넘지 않았다.
“어떠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 릅니다.”
정우와 이 대통령의 대화에 모두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실로 살벌한 대 화였다. 말투만 들어 봐서는 대수롭지 않지만,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다. 저들 이 저렇다면 자신들은 있어 봤자 도움 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있어 봤자 도움이 될까?”
“하는 데까지 해 봐야지.”
강현과 강우 형제가 자리했다. 현재 금강문의 문주 대리를 강현이 맡고 있 었다. 두 형제도 발전을 거듭해 9급과 8급에 이르렀다. 강천은 중국에서 여전 한 신혼의 재미를 맛보고 있었다. 명절 날 찾아온 세경의 변신이 놀랍긴 했다. 긁지 않은 복권 중에서도 슈퍼 복권이 었다.
“정우가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놈이 그 녀석이었다니, 꼭 잡거 라.”
염화와 권영일이 화천문을 대표해서 자리하고 있었다. 권영일은 여전히 이 호극과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이호극 이 항상 ‘부럽냐?’ 하고 물어볼 때마다 염장이 뒤집힌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이 호극이 잘되는 걸 보고 싶진 않다. 그러 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우를 화천문으로 끌어와야 한다.
저벅, 저벅!
케이브가 오픈되기 직전이었다.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대를 통제했기 에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어지 간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출 입하지 못한다. 한데 결계를 통과하여 걸어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인원은 총 100명이었다.
허
100명의 유니크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자들 이건만, 기세가 평범하지 않았다. 개개 인이 일기당천의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저만한 자로 구성된 문파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 었다. 그 안에 정우에겐 낯익은 인물이 함께했다.
“백경수.”
유니크 전문학교 입학 후, 흑호와 다
툼이 있을 때 중재하려고 했던 인물이 다. 당시에는 6급의 유니크였거늘, 지금 은 그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정우의 시선을 사로잡은 자는 백경수 가 아닌 그 앞에 있는 자다. 학교에서 직접 마주하지는 않았어도, 사진과 영 상으로는 본 적이 있었다.
유니크 전문학교 학생회장이었던 김 호진.
‘초면인데, 어째서 익숙하지?’
김호진의 진신이 읽히지 않는다. 숨겨 져 있는 속성 따위가 문제가 아닌, 그의 진의가 다른 자들과는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익숙하면서도 재수 없는 기억 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손이 근질근질 거렸다.
휘
사라진 정우가 김호진의 정면에 있었 다. 이어서 뻗어 나간 주먹이 김호진의 얼굴을 노렸다. 아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수 준을 벗어났다.
처어엉, 후아0}아앙’!
기운의 파장이 번져 나갔을 때야 비 로소 정우와 호진이 맞붙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지가 거대한 너울을 그리다 버티지 못하고 찢겨 나가며 흩어져 버 린다.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충격의 여 파는 호수공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빗방울이 되어 쏟아져 내린 일대가 축 축이 젖어 들었다.
두둥!
정우와 호진.
놀랍게도 호진은 정우의 주먹을 막았 다. 그러나 충격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육신을 파고든 경력에 잔 경련을 일으킨다. 단순한 주먹질임 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의 깊이가 남달랐 다.
“문주!”
“물러서.”
호진은 알고 있었다. 마주한 정우의 진의는 결코 수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 공간의 누구도 정우와 격을 논 하지 못한다.
“너냐?”
“그래.”
정우가 이처럼 성질을 드러내는 경우 는 보기 드물다. 미물이 적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듯, 정우는 언 제나 냉철했었다.
“죽고 싶어 나타난 게4?”
“한손 거들려고.”
정우는 호진의 실체가 전생의 진강백 이라는 걸 깨닫자 어이가 없어졌다.
바로 코앞에 두고도 몰라봤다는 거잖 아.
정말 병신 같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력은 아니더라도 주먹에 실린 거력 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전생의 진강백 은 막아 내기는커녕, 받는 순간 갈가리 찢겨 나갔을 것이다. 호진의 능력이 자 신과 마찬가지로 진일보했음을 확인했 다.
그런데 왜 여태 숨죽이고 있었을까?
기회를 노릴 거면 케이브 오픈이 이 루어지고 난 후가 적기였다. 굳이 지금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거들려고 왔다 니.
“이번에도 함정이냐?”
“내가 왜 함정을 팔 거라 생각하지?”
이놈 보소.
그새 발뺌하네, 많이 뻔뻔해졌다. 지 금에서야 나타나 약을 팔다니, 꼼꼼하 게 지적은 해 줘야 했다. 전생의 원한이 사라졌을 거라고 보는 건가. 그렇다면 사람 잘못 봤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성 격 X같거든.
“넌 원래 그랬잖아.”
“원래 그런 게 아니라 네가 고지식해 서 그렇다.”
“웬 개소리야!”
다른 이도 아니고 진강백한테 고지식 하다는 말을 듣다니, 정우는 인정 못 했 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대쪽 같은 놈이 이제 와 나한테 유도리 가 없다고?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전생과 현생을 통해 이보다 더한 개소 리는 없다고 자신했다.
“네가 조금만 다른 길을 갔어도 난 죽
지 않았다.”
“뭐?”
“너 때문에 5번이나 죽어야 했던 내 가 불쌍하지도 않나.”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개자식이!
한데 이렇게 따지고 들어오니 정우도 할 말이 없어졌다. 내 죽음만 억울하다 고 생각했지, 이놈의 죽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 기에 당연한 희생으로 받아들인 줄만 알았다. 정의의 화신이자, 영웅으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의 농간이 확실하게 작용한 케이스로 본 것이다.
“그때와 난 다르지 않아?”
“달라.”
“어떤 점이?”
“지켜야 할 사람이 있지 않나.”
그때나 지금이나 속을 파고들어 염장 을 지르는 건 여전했다.
정우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어 준 장본 인다웠다. 앞뒤가 막혀 보이나, 핵심을 찔렀다. 과거에도 지켜야 할 게 있다고 주장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에는 버리는 패로 쓴다 해도, 마음이 아 프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타난 거야?”
“살고 싶으니까.”
“진짜로 날 도우려고?”
“난 분명 거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 다.”
호진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정우는 맥이 빠졌다. 이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한데 또 미묘하게 달라 졌다. 전생의 진강백이었다면 하지 않 았을 말이다.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 일 만큼 도량^ 커졌다는 건가.
“너 마력도 있네?”
“속성이 용기사다.”
“젠장, 운 좋네.”
“그나마 네게 비빌 힘을 주었더군.”
호진은 각성을 한 후, 곧바로 9레벨의 마력을 얻었다. 용기사로서의 능력과 전생의 무력이 결합했으니 다른 이들과 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했다. 재능의 차이를 속성으로 극 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놀았어.”
“네가 너무 강한 거다.”
정우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읽히지 않았다곤 했지만, 역량이 얼추
보인다. 노력하면 빼지 않을 놈이 현장 에서 동떨어져 있다 보니, 쇠락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시 나타났을 때 최 소한 승패를 짐작하기 어려울 거라 확 신했거늘.
어쩌면 이마저도 녀석의 수작일지도 모른다.
우우웅!
케이브가 오픈되었다.
-진화흐}라, 살0]남0}라.
조물주의 전언이 또다시 울린다. 살아
남지 못하면 지구가 끝장나는 각이다. 그 와중에 정우는 케이브가 아닌 호진 을 보며 말했다.
“이따가 좀 맞자.”
“다행이군.”
작가후기
리버스 빌런을 완결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20권을 고려하고 썼다고 말 하면 믿지 않으실 분도 있겠지만, 제가 참 용의주도한 편입니다. (농담)스 마지막 부분을 상당히 고심했습니다. 분량도 늘어나고, 그렇다고 더 쓰기에 는 지지부진할 것 같았습니다. 인정하 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최대한 마무리를 잘하려고 매번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게 완결이더군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 고, 끝내는 경우는 저도 원하지 않습니 다. 열린 결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 다. 사실 케이브는 주인공의 중점적인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현세에 환생한 빌런이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레이드 쪽을 원하시는 분들의 만족을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 역량의 부족이었습니다.
도중에 진강백에 대해서 왜 안 나오 냐고 하셔서, 저로선 참 곤란했습니다.
실상 뉘앙스를 초반에 풍기도록 해 놓고, 마지막에 나오도록 배치했는데. 그냥 나오게 할까? 저도 많이 고민했습 니다. 반전이랍시고, 금강문주와 하라가 원래는 진강백의 환생이라고 해 버릴까 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식이 오히려 더 식상해 보여, 차라리 평이하 게 가는 편이 낫다고 봤습니다.
물론 판단은 독자님들의 몫입니다.
매 작품을 완결 지을 때마다 아쉬움
이 큽니다. 능력에 비해 과분한 관심을 받는다고 항상 생각하면서도, 저 스스 로 이만하면 됐지, 라고 한계를 규정한 모양입니다.
차기작을 ‘리버스 빌런’을 쓰는 도중 에 몇 번이나 쓰고, 엎고를 반복했습니 다. 이제 뼈대가 완성되어 분량을 만들 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로드 오브 나이 트’를 완결 지으면서 작가 후기로 ‘원-볼레이드’를 쓴다고 했다가 ‘리버스 빌 런’을 쓴 저로서는 제목을 말하기가 이 제는 쉽지 않더군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다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드리고고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