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관광의 묘미는 역관광이지 (1)
다음 날 앨런가는 비상이 걸렸다.
마이클과 올리버가 마법사로서의 능 력을 상실했고, 한국에서 손님으로 온 마법사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범죄 현장에 대한 검증이 끝나고, 증인과 증 거까지도 나온 마당이었다. 앨런가의 요청으로 온 손님이라 해도, 죄가 엄중 했다. 손님이면 알아서 자제했어야 한 다는 가문 자체적인 여론이 형성되었 다.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공식적인 행사로 왔으며, 한국의 대통 령이 연락을 해 왔다. 은밀하게 처리했 다가는 한미 간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 었다. 다만 운신을 제한받은 채 방 안에 감금되었다.
“그는 무얼 하고 있지?”
“내색하진 않았지만, 당황하는 눈치예
요.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될 줄 몰랐 던 모양이에요.”
그럴수밖에.
마이클과 올리버의 상태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금제는 풀기만 하면 될 일 이지만, 당사자조차 풀지 못하고 말았 다. 마법을 걸어 놓은 후, 나중에 풀어 주려고 했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달리 알아낸 건?”
“그는 앨런가를 의심하고 있어요.”
“의심할 만하지.”
“작금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비밀
병기를 홈쳐간 대상으로 앨런가를 조사 하러 온 거예요.”
그녀의 말에도 세 사람은 딱히 혼들 리지 않았다. 순순히 요청을 받아들였 을 때부터 일정 부분 의심을 하고 있었 다. 하물며 한국 내에 포섭한 요원이 정 보를 보내왔다. 그가 앨런가의 요청을 받아들인 목적을.
“제 예상으론 마이클에 금제를 가한 것도,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던 거 같아 요. 그를 압박하면 좀 더 수월하게 비밀 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 예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마이클을 제압한 수법은 실로 놀라웠 다. 한국을 마법의 불모지라고 얕잡아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도의 극을 이 룬 자만의 특성인 마도권능이다. 이는 대마법사가 되었다고 해서 가능한 경지 가 아니다. 선택받은 자만의 영역이었 다.
“그래도 악마의 유혹에 걸린 이상 빠 져나가진 못할 거예요.”
“그렇긴 하지.”
세 마법사는 믿고 있었다.
그 일례로 앞에서 비밀을 술술 토해
내고 있는 여인을 보면 답이 나온다. 본 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비밀 을 토설하다니, 대단한 척해도 아직 여 물지 않았다. 가문의 주인이 되어 아비 를 되찾고 싶어 하나, 그녀조차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물론 앨런 가의 전대가주의 마나폭주만 없었어도 그녀에게 불행이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 이다.
“그를 조심하셔야 해요. 그는 정말 강 해요.”
“알았으니, 그만해.”
두 번 세 번 강조하는 그녀의 말에 그 들은 피식! 거렸다. 아무래도 그에게 받 은 인상이 지나치게 강렬한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자신들과 놈을 비교할 정 도라니, 놀랍기는 하다.
5일이 흘렀다.
정우가 감금된 채 운신의 제한을 받 은 대신, 앨런가는 발 빠르게 움직여 조 사했다. 형평성이 상당히 결여됐음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감금 도중에 금제를 풀 수 있다고 호언 장담을 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그로 인해 사태가 더 불리하게 진행 되었다.
앨런가 대회의장, 펜타곤.
펜타곤은 가문의 주요한 안건이나 사 건을 처리해야 할 때만 가주의 명으로 오픈되는 장소다. 미국의 국방부가 앨 런가의 대회의장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 이 있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펜타곤은 앨런가를 구성하는 12개의 대저택이 둘러싸인 중앙의 지하 3층에 위치한다. 침투가 불가능한 불가해의 구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대 저택과 30개의 저택이 배치된 구조를 보면 답이 나온다. 가주실과 펜타곤을 지키기 위한 배열이었다.
“지하에 축구장 5개는 들어가겠는걸.” 회의장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크기 였다. 끝에서 끝에 선 자는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거리가 있었다. 실 상 근래에 와선 회의장이라고 부르지만, 콜로세움과 같은 결투장으로 써 왔다. 속된 말로 처형장이기도 했다.
그런 살벌한 장소에 불려 왔음에도 여유로운 정우의 태도는 펜타곤에 모인 마법사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앨런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뉘 앙스다.
“가문의 마법사를 해하고 저리 건방 을 떨다니.”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펜타곤에 모인 마법사의 수는 100명 으로 가문을 이끌어 가는 핵심 멤버다. 이들 대다수가 7레벨 이상의 마법사이 기도 했다. 무력으로 따지면 어지간한 중소 국가는 힘으로 굴복시키는 게 가 능한 수준이다. 당연히 가문에 대한 자 부심이 남다르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두둥!
앨런가의 가주가 등장했다.
그가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 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였다.
정우는 현재 아이템과 금제로 마법을 제한당했다.
황금마탑의 대마법사인 벤자민, 록스, 카멜라가 직접 제작한 아이템과 금제이 기에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문을 하도록.”
“예, 가주.”
형식은 법원과 다르지 않았다. 피고와 원고로 나누어 증언을 하도록 되었다.
정우의 변론은 윤정이 했다. 이로 인
해 눈초리가 더 좋지 않아졌다. 친분이 있다 해도 윤정은 앨런가의 적통이었다. 가문에 해를 가한 인물을 변호해선 안 되었다. 욕먹기 딱 좋은 일에 나선 꼴이 다.
“부탁한다.”
“어련하시겠어.”
“그래도 걱정된다.”
“퍽이나.”
윤정은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담 담했다. 그녀가 비록 순혈이 아니라 차 별을 받고는 있지만, 엄연히 대마법사 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최연소로 8
레벨의 마법사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 는 대목이다. 그런 그녀를 실력으로 폄 흐}할 마법사는 이 안에 없다.
‘어쩌려는 거지?’
윤정은 정우가 대체 뭘 믿고 저리 자 신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상 대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닌, 앨런가 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마법사였다. 확 실한 증거가 있지 않고서는 여러모로 불리했다.
‘그래도 널 믿어.’
불리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 한 윤정이다.
가문 내 여론이 좋지는 않지만, 잘잘 못을 따지면 마이클과 올리버의 책임이 더 컸다. 게다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정보를 조작하고 시녀까지 포섭했다.
심문이 시작되었다.
마이클의 변론을 맡은 인물은 가문 내에서 언변이 좋기로 정평이 난 7레벨 의 마법사 헬레나였다.
“피고는 원고를 공격하고 회복하지 못할 금제까지 가했어요. 마법사로서 마력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모 인지 알고 있겠죠?”
“마이클 부자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피고는 모독을 당했고 보복은 원고가 했습니다.”
윤정도 열변을 토하며 변론했다.
원고가 금제를 당한 장소가 피고의 방과 가까웠다. 굳이 찾아가지 않는 이 상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정황증거일 분, 시녀인 레안이 원고의 편을 들면서 정우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졌다. 레안은 미안한 듯 정 우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럼에도 그녀를 탓하진 않았다.
‘불쌍하군.’
‘나름 열심히 했는데, 어쩌나.’
공판과정을 지켜보는 벤자민, 록스, 카멜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정우를 보 았다. 어차피 게임은 끝났다. 마이클 부 자에게 건 금제는 자신들이 아니면 풀 지 못한다. 마력금제에 대한 처벌을 피 하기 어렵다. 본인이 한 금제가 아니라 는 발언은 해 본들 믿어 줄 사람이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웃어?’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데 정우는 웃고 있다. 그것도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방법이 없는 걸 알고 체념했거나, 불
안감에 미쳐 버리지 않고서야 나오기 힘든 행동이다.
우웅, 팟!
마나파장이 펜타곤 전체로 퍼져 벽면 을 두드린다. 휩쓸고 지나간 마력의 폭 풍에 다들 모골이 송연해졌다. 마력의 순도가 단순하지 않았다. 위대한 경지 에 오르지 않은 자는 감히 다가갈 수조 차 없는 지고한 영역이었다.
“……저럴 수가!”
“스스로 마력제한을 풀었어!”
금제를 당했던 정우가 족쇄를 풀고 태연히 일어서자 다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제를 가했던 벤자민, 록스, 카멜라 의 두 눈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만약 을 대비해서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혈맥까지 꼼꼼하게 차단했었다. 마법사 지만 무인에 대한 연구도 해 오고 있었 다. 무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오랫 동안 연구해 왔다.
“좀 어울려 줬더니 기고만장이 하늘 을 찌르는데, 적당히들 해.”
“말을 함부로 하지마……크윽!”
말을 내뱉었던 헬레나가 타격을 받고 픽! 쓰러져 버렸다.
그 일련의 광경은 놀람을 분노로 바 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우의 마 력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기는 해도, 여기는 그들의 성지였다. 성지에서 난 동을 부린 이상, 뼈에 사무치는 대가는 당연했다.
“이로써 죄가 밝혀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물며 저자는 오만하게도 무력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 가 문에 대한 명백한 도전행위입니다!”
“맞습니다! 단죄의 철퇴를 내려야 합 니다!”
마법사답게 분노한 와중에도 인과를
따진다. 그러나 내심을 따져 보면 명분 을 세우기 위한 그럴듯한 화술에 불과 했다. 죄를 시인하지 않고 공격했으니, 화를 당한다 해도 책임은 정우에게 있 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펜타곤의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모든 상황을 찍고 있었다.
피식!
정우의 비웃음은 마법사의 분노에 기 름을 부어 주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서진 않았다. 마도의 절대권능을 가지고 있 었다. 7레벨의 상위 마법사를 손짓 한 번으로 쓰러뜨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 는다.
“다들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여기 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의 민낯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련된 장소야.”
“그딴 허술한 변명으로 죄를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럼 도둑이 제 발 저리지 말았어야 지.”
“헛소리를 들어 주는 것도 여기까지 다.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아니면 죽음이 편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
언성이 커지면서 정우와 마법사의 기 세가 충돌했다. 무시무시한 기의 파장 이 형성되었다. 마법의 정점에 도달한 자들의 기세가 뭉쳐졌다. 하지만 이를 받아 내고 있는 정우의 태연함에 모두 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하다!’
‘황색 원숭이 주제에!’
마법의 조종은 앨런가여야 했다. 한국 의 마법사 따위가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기 와 질투는 만국공통이었다. 마법사의 투기가 기세가 되어 정우를 짓밟으려 했다.
그때였다.
“그만.”
분노한 기류를 꺾어 내는 마도의 권 능, 그야말로 일가의 주인다운 엄청난 마력이었다. 끓어오르던 분노가 순식간 에 식어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앨런가의 가주, 에드워 드에게 향했다.
“대단하군.”
“그대야말로.”
“이제 말해도 되나?”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가문을 모
욕한 대가를 치러 주겠네.”
“그건 당연하고?”
가주의 물음에 답하는 정우의 건방진 태도에 다들 불만을 토했다. 당장 쳐 죽 이지 않은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앨런가에 온 이유는 도둑놈을 잡기 위해서야.”
“그 도둑놈이 우리라고 말하는 싶은 건가?”
“맞아.”
“명을 재촉하는군.”
정우는 비밀기지에 놓아둔 기간트를 앨런가가 훔쳐갔다고 확언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마법사들이 격분했다. 가문의 마법사를 해한 범인이 오히려 가문을 도둑으로 몰다니, 참고 견딜 한 계를 벗어났다.
앨런가의 마법 수뇌부이자 가주의 심 복인 클링턴과 베이든이 격렬한 노기를 토해 내며 독설을 내뱉는다.
“알량한 재주를 믿고 우릴 도둑으로 몰아! 이러고도 살기를 바라는 것이냐!”
“증거가 있다면?”
“헛소리, 증거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딴 수작으로 어물쩍 넘어가지 못한 다!”
“수작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부렸 지.”
정우의 시선이 카멜라, 록스, 벤자민 에게 향했다. 다들 무지한데다가 왜곡 이 심하니, 꼭 집어 주었다. 이 많은 관 중이 바라보고 있고, 스크린에 영상까 지 나오면 키스타임인 줄 알겠지만 다 행히도 아니다.
“저년이 내 기간트를 홈쳐갔다.”
“어디서 헛소리를! 그분은 골든타워의 노블퀸이시다!”
그럴 줄 알고 준비를 했지.
정우도 말로써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
는다. 아공간을 열어 스마트폰에 저장 해 놓은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개방했 다.
영상에는 로브를 깊게 눌러쓴 3명의 마법사가 있었고, 그들은 함정과 결계 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 기간트를 홈쳐 달아났다. 로브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 이 보이진 않지만, 저들의 대화가 저장 되었다.
-죄송합니다, 노블퀸!
수작을 부렸다고 하기에는 영상에 저
장된 마법사의 능력치와 속성이 상당했 다. 대마법사가 아니고서는 하지 못할 신기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하물며 노 블퀸 특유의 속성이 담겨 있었다. 조작 이라고 주장할 순 없다.
“……그것만으로 노블퀸이 범인이란 걸 어떻게 믿느냐!”
“아니라면서 떨기는.”
정우는 이때를 위해서 앨런가의 핵심 수뇌부가 모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서 전생을 꺼 내들었다.
“데려와.”
-알았다, 주인.
올칸이 송신을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응이 왔다. 리차드 교수의 연구 성과를 검증할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