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87화 (487/500)

제 4장

백혈도 ⑵

철컹, 철컹!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던 정 우는 정원을 뛰어다니는 철괴를 보고 있었다. 철괴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피가 줄어든 대신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정할수밖에 없군.’

올칸의 일부를 흡수한 철괴는 한 단 계 이상의 업그레이드를 했다. 철괴의 진화로 전투력과 특수속성이 강화되었 다. 올칸의 공능 중에 하나다. 단순히 금속을 흡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능력치를 끌어올렸다.

‘내 이름을 올려놓았으니, 어떤 식으 로든 움직일 테지.’

뻔히 보이는 속임수도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전략전 술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우는 주변의 환경보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특화되었다. 전략전술은 환경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결정권자의 습성 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방정식이었다.

‘선택은 민주주의지만, 대가는 공산주 의이거든.’

그땐 공산당이 싫다는 말도 통하지 않을거다.

패배의 비참한 공기가 공간을 무겁게 짓누른다.

공동에 모인 자들, 모두 입을 굳게 다

문 채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분노 와 공포가 융합하여 짙은 어둠과 살의 가 되었다. 인간이 공포와 분노에 젖었 을 때의 본능적인 행동패턴이 그대로 드러났다. 평범한 자들이 아닌 수양이 깊은 무인임에도 다르지 않았다. 덮여 있던 도금이 벗겨져 온전한 자신을 돌 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백혈도오오오! 죽일 테다!”

“진정하시오, 방장!”

부처를 모시는 소림의 방장이 살기등 등했다.

그만큼 백혈도에 대한 분노가 컸다.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불성을 백혈도에 게 잃었다. 그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작금의 참담한 현실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허망하게…… 빈승의 불찰이 오!”

“그것이 어찌 방장만의 책임이겠소.”

불성은 소림 최고의 고수 이전에 대 륙 무림을 대표하는 최강자다. 오무제 의 범주에 들어가나, 누구도 불성을 대 신하지 못했다. 불성의 허무한 죽음은 무림맹에 큰 충격을 주었다. 흑혈마교 의 공세에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 고 패배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과연 그 이유뿐일까?’

백혈도 아니, 마교주 장경의 무력은 굳이 기습을 하지 않아도 불성을 압도 했을 정도다. 그가 뿜어내는 마기는 무 시무시했다. 초절정의 고수들이 그의 일도에 추풍낙엽으로 쓰러졌다. 하물며 그가 데리고 다니는 백마의 무력은 구 파의 수장들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개 세적인 경지에 든 백마임에도, 합격진 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 존심보다 승리에 목말라 있다는 점이 무섭게 다가왔다.

“당장은 전력을 재정비해야 할 때입 니다. 마교가 강하다 하나, 대륙 무림의 정기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종남, 점창, 공동의 삼신검(三神劍)에 속하는 점창신검 신광운이 사태 수습을 위해 운을 뗐다. 불성의 죽음으로 전쟁 의 기세가 마교로 기울었다. 그 결과 무 림맹은 정비도 되지 않은 채 마교를 상 대해야 했다. 온전한 힘으로 싸웠다면 지금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 다. 실상 구파일방과 속가문파까지 합 하면 50만에 육박하는 전력이 된다.

“오대세가와 연합할 수 있다면 승산 이 있습니다.”

“연합을 하려고 했다면 진작 했겠지, 여태 연락이 없지 않소.”

오대세가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전력을 소모하지 않기 위 해 마교와의 전쟁을 기피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 다음은 오대세가라는 것을 깨 닫게 해 줘야 합니다. 자칫 각개격파를 당한다면 사태를 돌이키기 어렵습니 다.”

“신 문주의 말씀이 옳소이다.”

오대세가가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 고 있다는 걸 명시해야 했다. 전력의 소 모를 줄이려 하다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오대세가의 전력 약화를 틈타 청성과 아미가 당문을 노렸다. 결과적으로 아 미와 청성이 마교의 역습에 궤멸지경에 이르렀지만, 오대세가로서는 괘씸할 수 밖에 없다. 본인들의 약세를 틈타 구파 일방이 공격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마교도 당장은 오대세가를 공격하진

않아. 이런데 과연 우리말을 믿어 줄 까?”

개방의 전대방주 개왕의 답답한 외침 이 공간을 울렸다.

아미와 청성이 성급한 행동을 바람에 마교에 빌미를 준 것이다. 보기에는 전 력의 반을 잃은 것이지만, 실상은 다르 다. 구파일방이 속절없이 밀리는 바람 에 따르는 소속문파의 이탈이 기하급수 적으로 증가했다. 마교는 과거처럼 힘 으로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항복하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척했다.

말이 좋아 50만이지, 구파일방의 무

인으로만 구성해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안에서 고수라고 할 만한 무인을 추 리면 수는 더 준다.

개왕의 한풀이에 종남신검과 점창신 검의 언성이 커졌다.

“그래서 손 놓고 있자는 말씀입니까?”

“누가 그렇대.”

“대책도 없이 무책임한 말씀은 사기 진작에도 좋지 않습니다.”

“대책이 왜 없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이런 지경에서도 자존심을 찾아! 다 들 알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는 게 아니 고.”

개왕의 다그침에 모두는 침묵으로 일 관했다.

오대세가를 움직일 방법은 하나다. 구 파일방의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를 해 야 길이 열린다. 이대로 자존심 대결로 몰고 간다면 공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알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건, 구파일방이라는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그때였다.

진동이 전해진다.

기의 파장에 의한 울림이 점점 더 강

해졌다. 그렇다는 건 빠른 속도로 다가 오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모두의 두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분노와 별 개로 백혈도가 새겨 놓은 공포의 잔상 이 남아 있었다.

-……마교다!

-……막아!

-백..혈도다!

이 일대는 구파일방이 비밀리에 구축 한 장소다. 백혈도가* 찾아내려면 시간 이 걸릴 거라 봤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 나갔다. 채 정비를 끝내기도 전 흑혈마 교가 급습을 해 왔다.

우우웅!

일대를 장악하는 백혈도의 가공할 마 기에 숨이 턱턱 막혀 온다. 거리가 있음 에도 피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기운의 파장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크아아악! 살려?!

-……죽고 싶지 않……아!

.. 악적 물 러서 지 않 커억!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짧은 시 간 수백의 무인이 도륙당하고 있었다. 마교의 파죽지세로 그려 낸 살육의 장 이다.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일방적이 다. 전력을 잃었다지만 구파일방의 정 예가 반수는 남아 있었다.

‘우리의 잘못이다!’

‘결속부터 다져야 했어!’

‘참으로 어리석구나!’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여태 작금과 같 은 피해를 입어 본 적이 없었다. 문파의 절기를 익혀 고수가 되었고, 탄탄대로 만 걸어왔다. 그런 그들에게 구파일방 이 허울뿐이라는 진실은 무겁게 다가왔 다. 혼란을 수습하기보다 분노에 사로 잡혀 사태를 직시하지 않은 것이다. 오 랜 시간 평온에 익숙해진 나태함이 불 러온 참사이기도 했다.

“어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들을 버리고 가잔 말씀이오!”

“대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입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 그러면 서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무인들의 희생을 부추기 고 있었다. 살아남아야 복수도 할 수 있 다지만, 죽어 간 자들이 그 말을 순순히 믿어 줄까?

타박, 타박!

둔탁한 걸음걸이의 사내, 손에는 5자 가 넘는 칼이 들려 있었다. 도면(刀面)을 따라 흐르는 한 방울의 선혈이 섬뜩하 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주 변으로 썰려 나간 육편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건물의 잔 해 사이로 흐르는 선혈이 대지를 뒤덮 었다. 시체는 공산국가답게 남녀노소 평등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 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게 물러서라고 했잖아.”

다독이는 말투와 달리 백혈도 장경은 잔인하게 히죽였다. 마치 더 많은 피를 원하고 있는 뉘앙스였다.

장경의 앞을 가로막은 자들의 면면은 평범하진 않았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검수인 화산칠검 이 주검이 되어 있었다. 기습에 놀라긴 했어도 방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백 혈도의 진신은 그들의 상상을 훨씬 상 회했다.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흑혈 마신경(黑血魔神經}을 대성하여 마신의 경지에 올라섰다. 이전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마공을 칼에 싣자, 비교를 불허 했다.

“다 죽여.”

“예, 두목!”

장경의 전위부대인 백마는 주검을 대 지에 쌓고 있었다. 민가에 숨어든 무인 을 색출해서 죽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 는 대로 다 죽였다. 누가 되었든. 일대 는 백마의 마기와 살의에 뒤덮여 혈해 (血海)를 이루었다.

부르르!

결계를 활용해 벽을 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자.

청풍은 분노했다. 그가 백혈도를 무림 맹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작금의 유혈사 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 같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 다!”

“용서하지 않으면?”

청풍의 유운검은 장경의 근처에도 닿 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손을 뻗자 청풍 은 접인지력에 휩쓸려 맥없이 목을 잡 히고 말았다.

크으으으윽!

청풍은 믿기 힘든 현실과 조우했다.

백혈도의 무력은 그의 잣대로는 재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이다. 무당의 장로 를 허공섭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존 재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끝이다!’

백혈도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진신 을 감싸고 도는 검은 기류가 불타오르 자, 흡사 지상에 강림한 마의 종주, 마 신을 보는듯했다.

“불성의 항마기만 아니면 별거 아니 지.”

장경이 불성을 기습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불성의 무력도 거슬리지만, 그 가 가진 항마기가 흑혈마신경과는 상극 이었다. 무력의 차이가 난다 해도, 상극 이 부딪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특히 불성은 은둔을 하면서 무공보다 불도를 닦는 데 집중했다. 그의 항마기 는 가히 부처의 현신이라 불려도 손색 이 없었다.

우드드득!

청풍도장의 목이 수수깡처럼 부러지 며 숨이 멎는다.

스왁, 푸스스스!

장경의 도가 휘둘러지자 청풍도장의 주검이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흩날린다. 핏방울조차 갈라 내 버리는 극한에 다 다른 장경의 도법이었다. 그의 경지가 불성을 넘어선다는 걸 확인시켰다.

“도망치고 싶으면 쳐라. 크하하하하!”

장경은 오대세가에 약조를 했다.

하북성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면 건 드리지 않겠다고. 하나 말뿐인 약속이 었다. 구파일방의 명운이 다하는 날, 오 대세가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그는 원하고 있었다.

“피가 더 필요해.”

흑혈마신경은 피를 원하고 있었다.

대륙이 혈풍에 젖어들었지만, 언론매 체는 차단되어 외부적으로 알려지지 않 았다. 중국이 왜 공산국가인지를 체감 하게 해 주는 사례였다. 자국의 문제점 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 더욱이 SNS를 비롯한 각종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검열 을 강화해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했다. 전화 통화마저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중국정부였다.

“대단한 나라야.”

배를 타고 중국에 도착한 정우는 혼 란이 아닌 평온함에 혀를 내둘렀다. 오 히려 외국에서 중국의 내부사정을 밝히 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정작 죽어 나가는 국민은 조용하고, 외국에서 인 권을 보장하라고 강력한 경고를 했다.

“내 알 바는 아니지.”

중국의 행태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다고 해도, 그 나라의 사정일 분이다. 내부적으로 죽어 나가는 수가 많아진다 한들, 정우에겐 숫자에 불과했다. 따지 고 보면 중국 정부가 수고를 덜어 주고 있었다. 뭘 해도 힘만 있으면 무마가 가 능했다. 조종하기 딱 좋은 정부와 국민 성이었다.

정우는 하북팽가로 행선지를 잡았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오문을 통해 대륙 전역의 죄표를 계산해 놓았다. 케 이브 오픈으로 흐름이 변한 지점은 수 시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하오문이 일종의 공간이동 좌표 내비게이션 역할 을 한다고 보면 된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

유호는 하오문 북경지부 지부장이다.

그는 혹금단주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 도 식은땀을 홀렸다. 문주님이 연락을 넣어 대비하라고는 했지만, 혹금단주의 실체를 알기에 조심해야 했다.

‘저 모습이 그때의 그 괴물이라니, 믿 어지지 않는다.’

남궁세가에서 흑금단주를 목도했던 유호였다. 그는 당시를 상기할 때마마 전율이 일었다. 평생을 살아도 잊지 못 할 가공할 추억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 면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그렇고 간이 작아.”

“예?”

“서운하네, 남궁세가에서 봤으면서 모 른 척하기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유호는 그날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 던 하찮은 미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니 영광스러 운 반면, 소름이 돋았다. 작은 미물조차 잊지 않고 기억하는 꼼꼼함이 점차 달 갑지 않았다.

‘눈도장 잘못 찍으면 평생 갈지도 모 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혹금단주의 눈 밖에 나면 끝장이었다. 도망치지도 못 할 것이다. 실상 문주께서 발 벗고 나서 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

“가 봐.”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항시 대기하 고 있겠습니다.”

“오버하진 말고.”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정우는 과잉된 유호의 충성심을 받아

들였다.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의 감 정을 컨트롤하진 않는다. 흐}지만 유호 의 쓰임새는 지금까지일 것이다. 소식 이 들어갔으니 여운랑이 오늘 내로 찾 아올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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