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84화 (484/500)

제 3장

정상회담 ⑵

12지신가는 흑금단주가 한국으로 돌 아간 직후 회의를 했다. 혹금단주의 과 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지를 재차 의논한 것이다. 협상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일본은 엄청난 후폭풍과 홍역을 치를 게 분명했다.

가주 회의를 하고는 있으나, 누구 하 나 나서지 못한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용신가의 시부토 장로 가 입을 뗐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켄신이 있을 때와는 대접이 달라졌다.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미래를 꿈꿀수 있습니다.”

“하나, 국민들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 니다.”

“우시가는 단주님의 요구를 거절하는 겁니까?”

“……말을 왜 그렇게 하는 거요.”

우시가의 가주 시바시키가 격하게 손 을 저으며 아니라고 항변했다. 국민의 뜻으로 발을 빼려고 했는데, 사루가의 아야네가 물고 늘어졌다. 이쯤 되니 서 로는 깨닫고 있었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못해서 혹금단주의 분노를 샀다가는 가문의 명맥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었다.

‘소름이 다 돋는군.’

‘그의 악마 같은 심계임을 알면서도.’

‘당할수밖에 없다.’

서로를 믿기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간격을 좁히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 간조차도 좁혀질 거란 기대를 하기 어 렵다. 오히려 골이 더 깊어져 적의만 남 게 될 수도 있었다. 혹금단주는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금제를 다 하지 않은 것 이다. 자신들이 혹금단주의 꼭두각시가 되었음을 직시했다.

“단주의 요구조건을 전적으로 수용하 는 걸 더해, 성의를 더 보여야 합니다.”

“가문을 들어 바치실 요량이시오.” 따지고 보면 금강문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흑금단주 혼자서 12지신 가를 말아 먹은 것이다. 그런데도 대규 모의 피해보상과 함께 성의를 더 보여 야 했다. 가주들은 억울해서 한숨도 못 잤다.

“그거야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겠지 요.”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요?”

“우린 힘이 없지 않습니까.”

“힘이 없다고 자존심까지 버려야 한 다는 것이오!”

“자존심 때문에 다 죽고 싶다면, 말리 진 않습니다.”

용신가의 시부토는 자존심을 버렸다.

그것이 모두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왔다. 용신가의 저력을 체감하는 일면이었다. 과거의 영광에만 의지하지 않고, 현재 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고 수긍했다. 말 이 쉽지 절대 간과하기 힘든 일이었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미국을 끌어들여 야하는데, 가능할까?’

그들도 알고는 있었다. 괴물에 대적할 만한 세력은 많지 않은 게 아니라, 한 손에 꼽힌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오대 가문 중에 하나를 불러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괴물 의 뒤통수를 치기에는 눈이 너무 많다.

또한 오대가문이라고 해도 괴물을 대적 하려면 주 전력을 전부 끌고 와야 하는 데, 이리되면 허용범위를 넘어선다. 어 쩌면 그 전에 괴물에게 소식이 전해질 지도 모른다.

띠링!

각각의 핸드폰으로 똑같은 메시지가 왔다.

-미국이라면 날 상대하는 게 가능할 거야, 나도 기대가 돼.

흑금단주의 메시지에 다들 굳어 버리

고 말았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 고 있었다. 어쩌면 이 안에서 연락을 취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이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단합을 해도 부족한 판국에 자기 살길부터 찾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최악의 암계였 다.

혹금단주의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인 간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안다. 특히 전략 전술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켄신의 무력을 압도했던 광경보다 무섭게 다가 왔다.

“총리 부릅시다.”

“이 시간에요?”

“시간이 뭐가중요합니까.”

“맞습니다.”

총리고 나발이고, 우리부터 살아야 했 다. 명목상 총리를 대우해 주지만, 일본 의 기틀은 12지신가였다. 수틀리면 총 리도 내일 당장 갈아엎어 버릴 힘이 있 었다.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공식 서한을 발표했다.

그간 한국 내 대사관의 외교관은 항 상 강경대응을 모색해 왔었다. 한데 이 번에는 그간의 공식발표와는 달랐다. 질질 끌며 외면했던 민감했던 사안을 거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성명을 내 놓았다.

공식성명이 발표되자,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연일 떡밥들이 등장하면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가상의 전쟁 터가 불바다를 이루었다.

-방숭이들이 약 오지게 처먹었나?

-얼레, 너무 정상적이어서 적응이 안 된다!

-아직 몰라, 뒤통수친 게 한두 번이

야.

-그래도 이번 성명은 좀 다르던데.

-대체 뭘 팔아먹었기에 일본이 저리 나오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안을 협 상하겠다는 정중한 요청이었다.

일본의 총리가 직접 마중을 나오기로 약속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역대로 이루지 못했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이자, 쾌거라고 극찬을 했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갑론을박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었다. 하나를 얻 으면 하나를 내어 줘야 한다는 말처럼, 일본에게 암묵적으로 엄청난 양보를 한 게 아니냐는 비평이다. 대업을 달성한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실상 아무런 소 득이 없었던 지난 정부의 행태를 거울 삼았다.

“뭐가 어쩌고 저째!”

“왜요?”

“왜요, 라니! 나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야.”

“근데요.”

이 대통령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산

하며 정우를 압박하지만, 씨알도 먹히 지 않고 있었다. 가공할 기세가 청와대 를 휘감고 있어서 다들 살얼음을 걷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경호책 임을 맡고 있는 이경훈 경호실장은 죽 을 맛이었다.

‘누가누굴 경호하란 건지?’

그도 7급의 유니크이자,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기세에 숨이 턱턱 막혔다. 한국 최강의 유니크 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직 접 마주한 것도 아니고, 벽을 기대고 있 음에도 다들 식은땀을 좔좔 흘렸다.

“쪽빠리 나부랭이랑 나를 비교하는 거냐!”

“얼추 비슷했어요.”

“그런데 가볍게 끝냈다고 떠벌려! 그 럼 내가 뭐가 돼!”

“노력을 더 하세요. 대통령 됐다고 인 생 안 끝납니까.”

이 대통령은 얼굴을 붉히며 씩씩대지 만, 결국 수긍해야 했다. 정우가 심상구 현을 통해 당시의 전투 상황을 객관적 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인정하긴 싫 지만, 제법 까다로운 적이었다. 만약 자 신이었다면 정우처럼 손쉽게 끝내지 못 했을 것이다.

화르르르!

평범한 사람들은 이쯤 되면 포기할 테지만, 이 대통령은 달랐다. 오히려 더 한 기세를 뿜어내고, 투기를 불태웠다. 반드시 넘어서고 말겠다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단, 지 금 당장은 어려웠다.

“언제고 널 넘어서 주마.”

“저도기대가 큽니다.”

정우는 환하게 웃었다. 안주하지 않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높이 샀다. 그리고 그는 더 강해질 여력이 충분했다.

“그 전에 벽부터 넘으셔야 할 겁니 다.”

“알고 있었냐?”

“무의 끝은 없으니까요.”

“이 자식, 넌 넘어섰구나.”

“벽 다음엔 또 벽이 있죠.”

이 대통령은 정우의 실체가 눈에 보 이는 게 다가 아님을 실감했다. 수없이 많은 대결을 했으면서도 간격이 벌어지 고 있었다. 그러나 초조해하진 않았다. 강함은 수학의 계산처럼 딱딱 맞아떨어 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벽을 넘어 또 다른 벽까지 부술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 있던데요.”

“그래 다 네 덕이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두 단계 이상 올 라갔다. 10년간 정체되었던 등급이 지 금처럼 오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IMF가 터지고 신용등급이 급격히 하락 했다 다시 올랐던 경우처럼, 특이한 사 태가 벌어지지 않고서는.

“거봐요, 부정부패만 청결해도 오른다 고 했잖아요.”

“네똥 굵다.”

경제 성장도 등급 상향에 영향을 끼 치긴 했지만, 부정부패 척결이 중요 요 인으로 작용했다. 부정부패 지수가 높 을수록 나라의 등급에 얼마나 큰 영향 을 미치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세 계적인 관심이 상당했다. 대통령이 바 뀐 시간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에 부정 부패를 척결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만 있을 수 있나요.”

“잘못들었다.”

“들었으면서.”

“이번엔 또 뭬4?”

“국민연금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할 때 예요.”

욕먹기 딱 좋은 카드 중에 하나를 거 론하는 정우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 가의 미래를 위한 설계에 중요한 버팀 목이다. 현재를 바르게 살피지 않고서 미래의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분명 좋 은 정책이기는 하나, 중대한 결점이 있 었다.

“그간의 사용내역을 철저히 밝히고, 국가의 지급보증을 보장해야 합니다.”

“여태 사용한 내역을 밝히면 들고일 어날수도 있을걸.”

국가의 지급보장으로 인해 신용등급 하락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만큼 국 민연금의 활용도와 파급력이 컸다. 국 민연금으로 종합주가지수를 버티고 있 다는 소문이 있었다. 수익률이 다른 연 금보험에 비해 높고 안정적이라고 하지 만,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일례로 국민연금이 그리 좋으면 강제가 아닌 자발적 선택적으로 하라는 말까지 나왔 다. 국민연금이 권력자의 쌈짓돈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야 할 때다.

“피해 간다고 될 일은 아니죠.”

“나도 맘에 들지 않기는 했어. 내가 얼마나 냈는데, 그걸 지들 맘대로 쓰고 지랄이야.”

국민연금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국 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강제로 걷기 만 해서는 답안이 되지 않는다. 투명성 을 확보하고, 그간 사용했던 내역에 대 한 공과 실을 명확히 규명해야 했다. 또 한 사용 결정을 내린 후, 책임 소지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

“나이도 좀 줄이고요, 80세 수급연령 은 문제가 많습니다.”

“백세시대라며.”

이 대통령은 80세부터 받아서 최소 500살+a까지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급살 맞아 뒈지지 않는 이상 매달 받는 연금으로도 충분하다. 대통령 연금까지 더하면 상당한 액수였다.

“저나 대통령님이야, 이 모습 그대로 500년은 가뿐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50세에 명예퇴직당하고 골골거리면서 100세까지 살겠죠.”

국민연금의 부족으로 세율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국민적 반 감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해 수급연령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었다.

“하나 더 국민연금이 세금임을 밝히 세요.”

“날 불사신으로 만들 생각이구나.”

욕먹기 딱 좋았다.

여태 국민연금은 세금이 아니라고 설 명했지만, 실상 준세금이나 다름이 없 었다. 계속 말을 바꿔 가며 폭탄을 돌릴 바에는 미리 터트리는 편이 나았다. 무 엇보다 이번 정부가 아닌 지난 정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있고 일석이조였다. 어차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전임 정 부의 책임이 크다. 이번 정부에 책임을 넘기기에는 시기상조가 되었다.

정우는 단순히 국민들의 복지와 미래 를 위해서 국민연금을 거론하지 않았다. 어차피 터트려야 하는 폭탄이다. 이걸 계속 안고 가면 이번 정부에서도 책임 을 벗어나기 힘들다. 작은 티끌이라도 책임소지는 분명히 해야 했고, 가급적 이면 전 정부의 책임이 되어야 했다. 도 태된 자들이 있기에 덮어씌우기에는 안 성맞춤이었다.

“유토피아를 원하는 게냐?”

“아니요.”

정우는 짜증나는 불합리함을 제거하 길 원할 분이다. 보통은 납득이 되지 않 는다고 해서 뒤엎지는 않겠지만, 정우 는 그런 꼴 못 봤다. 물론 그것이 전적 으로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포장하진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 롯한 정책이었다. 그렇기에 무조건 좋 은 정책이라고 볼 순 없다. 어떤 정책이 든 약점과 부작용이 있고,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정책권자 의 중요한 자질이었다.

“창고 건설은 무기계약을 치르기 전 에 끝을 내 주셨으면 해요.”

“그건 왜?”

“기간트만 있으면 뭐해요, 훈련이 필 요하잖아요. 제가 성심을 다해 훈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보겠습니다. 라이더 는 연합 내에서 선별해 놓았으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극적인 정우의 행보가 굉장히 미심 쩍은 이호극이다. 평소의 게으른 성향 을 알기에 더더욱 의심을 눈초리를 지 우지 못했다.

“너 수상해.”

“의심은 병이거든요.”

“하늘에 맹세코?”

“그렇습니다.”

물론 하늘도 정우를 단죄하려면 각오 단단해야 할 거다. 수틀리면 하늘을 찢 어발기= 남을 성격이었다.

“창고가 지어지는 대로 제가 좀 손을

보겠습니다.”

정우는 창고가 건설되는 대로 마법을 걸어 놓을 작정이다. 9레벨의 마법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마법트랩을 설치해야 한다.

‘완벽하면 안 되고.’

불완전해서도 안 된다.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하기에 소수정예만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정책 결정이 이루어진 이상, 기밀을 알고 있는 자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럼 회담 잘하고 오세요.”

“대접 형편없으면 알아서 해라.”

“회담이니만큼, 의견 차이가 있을 순 있겠죠.”

“누가 회담 말했냐? 회담은 당연한 거 고.”

“제가 알아들게 말해 뒀습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이 대통령이 다. 회담에 대해서는 걱정은커녕 한 톨 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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