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생(生)라면 먹을래? (3)
속성개방.
?공간통제.
고로의 속성은 일정한 영역의 공간을 통제하여 환영을 일으킨다. 실제 눈으 로 보는 영역과는 다르기에 어지간한 능력자가 아니고서는 찾아내기 힘들다. 하물며 밤에는 그의 능력이 극대화를 이룬다.
“좋은데,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썼어야 지.”
고로도 쓰고는 싶었다. 다만 눈앞에서 펼쳐진 경이적인 광경에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속된 말로 쫄아서 실력발휘 못하고 허무하게 당했 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러나 그 말을 차마 입에 담진 못했다.
‘쪽팔리잖아!’
고로의 착잡한 눈빛에 사카모토와 유
우신은 동병상련을 느꼈다. 자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삶에 대한 욕구로 비루 한 처지를 자처했으니, 자괴감이 상당 했다. 그래서 더 오기가 발동하고 있었 다.
‘우리만 당할 수 없지!’
‘너희라고 다를 것 같아!’
인간은 다 똑같다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살아남은 쪽팔림을 모면하기 위해서일까? 저들의 선택은 정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활용 할 도구와 수단이 더 날카로워졌다는 점이 만족스러울 분이다.
‘원래 앞잡이들이 더 지독한 법이지.’
일제강점기 시절 변절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답은 나온다. 그들은 일본인 들보다 더 지독하게 한국인을 괴롭혔다. 일본인보다 더 충성스럽다는 걸 드러내 기 위한 추악한 발악이었을 것이다.
‘쪽빠리를 쪽빠리로 제압하면?’ 이쪽저쪽.
크크크크!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바쁜 시간에서 도 짬을 내는 정우의 여유. 그만큼 긴장 감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대담무쌍함이 었다. 근심, 걱정, 불안, 똥줄은 쫓아오 는 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러고 보면 지분 비율에 의한 정확한 분배는 꽝이었다.
“전쟁 준비가 한창인 줄 알았는데, 의 외로 한산하네.”
그럴수밖에.
선전포고한 날 바로 쳐들어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하물며 용신가를 필두로 8개의 가문이 연수를 동의했다. 네즈미가와 이누가, 토리가로서는 발등 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필사적일 거라고 판단했을 터, 기습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저쪽이군.”
정우는 목표물의 기를 읽었다. 방어 체계를 완성했다면 흐름을 읽기 어려웠 을 텐데, 전쟁 불감증이 만들어 낸 틈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휴전국이라 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은 전략게 임처럼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 다.
“그녀의 주변엔 사루가의 십성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
“내 걱정 말고 주변이나 잘 막아.”
그들은 쓸데없는 심력 낭비였음을 실 감했다.
십성류가 사루(원숭이)가를 대표하는 가주 직속의 최강 무력대이기는 해도, 괴물과 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실상 십성류에 당할 정도면 자신들이 이런 신세가 되지도 않았다.
“일단 가볍게 시작해 볼까‘?”
가볍다고!
어디가?
정우의 의지가 깃든 거대한 강환이 빛을 발산하기가 무섭게 전각을 향해 날아갔다. 미처 방비할 시간도 없이 시 작부터 화려했다.
꽈아아앙!
9층 높이의 고루거각에 닿은 강환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낙하하며 산산이 부 서뜨렸다. 일순간 화려함을 자랑했던 사루가의 고각(高閣)이 사라져 버리며 안에 있는 내용물 대부분이 소멸되었 다.
그나마 남은 건 11명에 불과했다.
부르르르!
자다가 봉창 두드린 11명, 그 안에 포 함된 사루가의 가주 아야네는 엉망진창 이 되어 버린 현실을 인지하는 데 꽤 시 간을 소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다가 날벼락을 맞고 제정신일 수 있는 사람 은 혼치 않았다. 사루가의 가주쯤 되니 까, 놀라운 생명력으로 겨우 살아남았 을 분이다. 마지막 순간 위기의식에 반 응해 강기막을 치지 않았으면 거각과 함께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도대체 누가?”
사루가의 본가를 이런 식으로 급습하 는 대담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 조차 못했다. 겨우 안정을 찾고 주변을 살필 수 있을 때, 정면으로 누군가 걸어 오고 있었다.
“자는 사람 깨워서 미안한데, 내 휴가 가 먼저거든.”
“누구냐?”
대화가 따로 놀지만, 거리끼지 않는 정우다.
그냥 내말만한다.
답정남이라고 할까.
그저 원하는 답이 나오기를 바랄 분. 혹 나오지 않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는 다. 제법 담대한 마음가짐이었다.
票고, 항복할래? 아니면 얌전히 항복 할래?”
“이놈이 감히!”
담대하긴 개불!
정우는 일본어를 쓰지 않았다. 한국 본토 발음을 사용했다. 알아들을 수 있 으면 다행이지만, 못 알아들어도 상관 없다는 뉘앙스였다.
그 일련의 과정을 뒤에서 지켜본 유 우신, 사카모토, 고로는 혀를 내둘러야 했다.
‘얌전히 받아 주지 않겠다는!’
‘사악한, 악1가가 따로 없구나!’
‘우리가 제 발등을 찍었어!’
사루가의 가주, 아야네가 독 오른 암 고양이처럼 분노를 표출하지만 상대를 잘못 봤다. 열 받으라고 기름을 부으며 즐기고 있는 괴물에겐 한없이 가여울 따름이다. 도발에 걸려들면 그때부터 자신들처럼 괴로움이 시작된다.
파파팟
아야네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 정우의 정면을 십성류가 가로막는다.
사루가가 자랑하는 최강의 무인, 여인 으로 구성되었다고 방심하다, 목숨이 끊어진 자들이 부지기수다. 7급의 속성 과 초절한 무력, 합격진이 결합하여 절 대무쌍을 이룬다. 아야네가 십성류를 항상 대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 다.
?속성 개방, 금성철벽(金城鐵壁).
-십성류 호신(護身) 무적천망(無敵天 網).
가주를 수호하기 위해서 완성된 십성 류 최강의 방어진형. 속성과 무력, 합격 진이 완성체를 이루어 그 누구의 접근 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다 깨서 그러나, 상황 파악 안 되 지.”
십성류의 구성은 우락부락한 번외 규 격의 여인들이 아닌 미녀로 분류해도 부족하지 않은 외모와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력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선별했다는 외모차별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 상태는 그다지 아 름답진 않다. 거각과 함께 부서지는 과 정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봉두난 발로 산개한 머리카락과 여기저기 찢겨 진 옷가지들, 봉변 제대로 당했다고 봐 도 무방하다.
휘
정우의 손끝이 십성류의 중심을 가리 킨다.
푸。}앙!
좌우로 손짓하자, 허공을 격해 강력한
기공이 관통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의 형강기를 이용한 공기 폭발?이었다. 의 식하지 않은 공기는 평온하나, 의지가 담기자 그 어떤 병기보다 무시무시했 다.
쿠다다다당!
속성과 무력을 결합하여 의지를 불태 웠던 십성류 최강의 방어진이 버티기는 커녕 좌우로 날아가서 지면에 처박혔다. 휙휙! 날아가서 박히는 광경도 가지가 지였다. 무인은 본능적으로 육신을 보 호하기 위해서 최적화된 동작을 하기 마련인데, 십성류는 볼썽사나웠다. 주인 을 지키기 위해서 용맹을 불태웠지만, 대우는 시원치 않았다. 마치 대한민국 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와 후손이 대우받지 못하는 것처럼.
부르르르!
허공을 향해 들어 올려진 다리의 잔 경련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했다.
“조무래기들은 빠지고.”
철혈여제(鐵血女帝)로 불릴 만큼 아야 네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도 작금의 현실 은 예측불허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건물이 부서지고 등장한 자들, 범상치 않을 거라고는 생 각했다. 거각을 단숨에 부수었던 강환 의 위력은 그녀에게도 버거운 감이 없 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십성류는 사루가 역사상 최강의 무력 부대다. 이보다 완벽한 수호부대는 없 다고 자신했었다. 그런 십성류를 손짓 한 번으로 쳐내 버렸다. 일본 내에 그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있다면 용신가의 켄신이 유일하나, 그 가 이런 참혹한 짓을 벌일 이유가 없었 다.
“지금이 상념에 젖을 때냐.”
“..헉!”
아야네의 상념은 산산조각이 되었다.
십절무천류(十絶武天類)의 진의(眞意), 철극패(鐵極輸을 개방하여 제공권을 확 보하고 있었다. 그 어떤 침입에서도 굳 건함을 유지했던 철극패가 허무하게 뚫 리며 제공권을 헌납해 버리고 말았다.
제공권을 채 정비하기도 전.
주먹이 날아왔다.
목표지점은 얼굴.
맞는 순간 바닥에 내던진 수박이 되 어 버릴 터. 얼굴에 대한 여인의 본능일 까? 아야네는 경천무극기魔天無極氣}를 극한으로 끄집어내어, 육신을 조여 오 는 가공할 압박감에서 간신히 벗어났 다.
꽈아아앙
정우의 주먹이 지나간 공간은 굉음과 함께 소멸되었다. 파괴범위가 좁다 하 여 위력을 폄하할 수 없다. 살아 숨 쉬 는 생명체의 삶을 용납하지 않는 흉악 한파괴력이다.
“잡아.”
사정권을 벗어난 아야네는 걸려들었 다.
꽈악!
두 팔과 육신을 잡아채는 자들로 인 해서 운신이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도 망을 친 줄 알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공격범위와 위력을 제한해 회피할 장소 를 유도했다. 전력을 다한 발버둥마저 계산되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현실은 육신을 잡 아챈 자들이었다.
“당신들이 어째서?”
사카모토, 고로, 유우신이 그녀의 사 지와 육신을 잡고 있었다. 빠져나가려 고 해도 불가능했다. 철혈여제로 불리 는 그녀라고 해도, 그들을 동시에 상대 할 순 없었다. 더욱이 저들은 현재 본신 의 속성과 무력을 극한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방심은커녕 작은 빈틈도 찾기 힘들었다.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성싶으냐!” 아야네의 앙칼진 외침이 고막을 두드 렸다.
고로, 유우신, 사카모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도망치면 뒷감당은 온 전히 자신들 몫이 된다.
파팟!
그보다는 그녀의 육신을 완전히 장악
해 허튼수작 부리지 못하게 단속했다. 상성이 다른 그들의 기공을 기맥에 침 투시켜 내력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 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기맥으로 침투한 고로, 유우신, 사카 모토의 경력에 아야네는 절망했다. 시 간이 주어진다면 기공을 해소할 수 있 겠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12지신가의 다툼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는 했어도 오 늘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1명도 아 니고 3명씩이나. 억울함에 감정이 복받 쳐 올랐다.
저벅, 저벅!
아야네의 시선이 발걸음 소리에 쏠렸 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자, 그가 12지신 가의 가주 셋을 움직이는 실세였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약속대로, 맞자.”
제압을 해 놓고, 때리겠다고? 저항은 커녕 몸부림도 칠 수 없는 비폭력의 현 신이었다.
아야네는 작금의 현실을 부정해야 마 땅했다. 성을 공략해도 성주에 대한 예 의는 차려 주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신 은 여인이다.
‘네놈이 사내라면 마땅히!’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으나.
어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지, 원
퍽, 퍽, 퍽!
정우는 일절 망설임 없이 아야네의 육신을 꼼꼼하게 두들겼다. 한 방 칠 때 마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는 충 격이 육신과 영혼에 새겨진다.
까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야네의 비명과 대조적으로 주먹을 날리는 정우는 무심 했다. 의뢰를 받아 통나무집을 짓는 목 수의 심정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 먹질을 완성해 나갔다.
‘괴물은 여자든, 남자든 가리지 않는 구나.’
‘그야말로 양성평등의 현신이로다.’
고로, 사카모토, 유우신은 남녀평등이 한발 더 진일보했음에 소름이 돋았다. 괴물은 목적을 위해선 남녀노소를 구분 하지 않았다. 연장자 우대, 노약자 우대 정책은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놈이었 다.
“...그만...제발!”
그녀의 애절한 외침은 심금을 울리기 에 충분했으나, 함께하지 못해 유감이 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관처럼 냉 정함의 극치를 달렸다.
뭔가 한끝 부족했던 아야네의 비명이 었다. 그 한끝을 메웠어야 했는데, 안타 깝게도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결국 정 우의 무심을 흔들어 놓기에는 부족했다. 오히려 사지육신을 붙잡고 있는 고로, 유우신, 사카모토의 안면에 질린 기색 이 완연했다.
“난분명히 항복을 권했다.”
“..크o}o}2|!”
처맞고 항복하기를 선택했던 아야네 의 의지를 존중하는 정우다. 충분히 맛 을 보도록, 육신 곳곳에 주먹의 흔적을 새겨 넣었다.
추욱!
아야네는 늘어져 버렸다. 나이에 걸맞 게 뼈마디가 시원치 않은 상태가 되었 다. 그럼에도 의식은 남아 있었다. 강약 의 배분이 절묘한 주먹질이다. 의식을 빼앗지 않는 상태로 최악의 고통을 생 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 사악한 배려 에 그녀는 치를 떨었다.
“……기필코 오늘의 치욕을…… 용서
……치 않을…… 것이다!”
“호오, 너희들보다 독한데.”
정우의 미소에 고로, 유우신, 사카모 토는 움찔하며 얼굴을 붉혔다. 끝까지 독기를 머금고, 발악하는 아야네에 비 해 그들은 항복을 선택했다. 비교 대상 이 되니 수치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스윽!
정우는 아야네의 당찬 독기를 칭찬하 며 아공간을 열었다. 자고로 무인이라 함은 이만한 독기는 가지고 있어야 했 다. 그래야 아직 사용하지 못한 무수한 고문을 실험해 볼 수 있다. 기꺼운 마음 으로 시간을 즐겼다.
“자, 라면 먹자.”
악을 쓰며 저항하던 아야네의 얼굴에 서 핏기가 가셨다.
“……너 무슨…… 짓을…… 우우우우 웁!”
라면은 불기 전에 먹어야지.
아, 살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