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77화 (477/500)

제1 장

생(生)라면 먹을래? ⑵

“살려 주면?”

사카모토와 고로는 무릎을 꿇었다.

삶의 기회가 오자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은 안도하면서도 자신들이 이렇게 나 형편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에 오열했 다. 무사는 삶에 연연해 목숨을 구걸해 선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과거 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가.’

‘우리가!’

그들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목숨 을 구걸하지 않았었다. 하나 그런 상황 이 없었을 분, 궁지에 몰리자 본성이 튀 어나왔다. 그들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한 실체였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미리 얘기했으면 반은 살았을 텐데.” 사카모토와 고로는 맥이 탁 풀렸다.

지나치게 간단히 끝이 났다. 가문의 무 사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비천 하고 허망한 죽음이었다.

“돌아가는 즉시 가문을 정비하고, 네 즈미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도록.”

“?…"알겠습니?!”

고로와 사카모토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대답이 한 박자 늦었을 분인데 주먹이 날아왔다. 반응, 그딴 것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처맞은 즉시 영혼이 잠시 이탈했다가 돌아왔을 땐 아찔한 고통이 자리했다.

커억!

벽면에 음각을 새겨 넣은 고로와 사 카모토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겨우 손을 짚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믿기 힘든 결과다.

“……단 일격에!”

괴물의 강함은 충분히 인지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본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한데 궁극에 이른 혼 살마정기(混殺魔精氣)와 십전무쌍기(十全 無雙M)가 실로 무기력했다. 경지에 이 른 심공은 육신에 위협을 가했을 때, 극 강의 전살기공(戰殺氣功)을 발출한다. 어 지간한 상대는 전살기공에 즉사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저 괴물 앞에서는 60년 의 적공(積功)이 허무할 따름이다.

“제자리.”

<?.2”

“새끼들, 정신 못 차리네.”

“?…"헉!”

무의식적인 반응조차도 하지 못했다. 날아오는 주먹질과 발길질에 무차별적 으로 얻어터진다. 살기 위해서 움직일 때마다 뇌리를 파고드는 음성은 지저에 서 올라온 악마를 연상케 한다.

“똑바로 대, 뼈 부러져.”

학생과에 불려온 불량학생을 훈계하 는 학생주임선생보다 무지막지했다. 싹 수 노란 것들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사실 쓰레기가 바뀌기를 바라 기보다는, 선량한 학생을 잘 키우는 편 이 효율적이다.

부거적!

발버둥 치다 뻗은 팔과 다리가 맥없 이 부러져서 덜렁거린다. 그럼에도 정 우는 폭력의 미학을 멈추지 않았다. 잘 다져 놓은 고기처럼 사카모토와 고로를 반 죽여 놓았다.

“일어서.”

<*.2”

다리를 으스러뜨려 놓고서 일어서라 니, 이게 말이야 방구0卜 그럼에도 그들 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혼살마정 기와 십전무쌍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간신히 일어섰다. 그야말로 삶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기적을 이룬 것이다.

“늦었어.”

“그런!”

으스러진 다리로 일어섰음에도 늦었 다는 이유로 또다시 주먹과 발이 날아 왔다. 이번에 맞으면 죽을 것 같았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발동했다. 그러나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주먹이 아 닌데?

피했다.

“어쭈, 피해.”

피했다고 볼 수 없다. 궤적이 다 읽히 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했다는 건, 분명 고의적이었다. 저 괴물이 의도적으로 피하도록 유도했다. 그 사악한 그물망 에 자신들이 걸려든 것이다.

푸억!

주둥이가 뭉개졌다.

이빨이 남아나지 않았다.

“알았지‘?”

그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먼저 죽어 버린 가문의 무사들이 전혀 불쌍하지 않다는 것을. 이 괴물은 악마보다 더 지 독했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자신 들은 이제 괴물의 한낱 소모품에 지나 지 않았다.

“컵라면의 종주국이 너희라며?”

내어 준 두 개의 컵라면엔 생생한 라 멘이 들어가 있었다. 면이 살아 있는 듯 탱글탱글하다. 진짜로 살아 있다는 게 문제긴 해도.

꼬물, 꼬물!

설마 했거늘.

“특별히 곱빼기다.”

사카모토와 고로는 차라리 죽고 싶어 졌다. 하지만 혀를 깨물거나, 근맥을 터 뜨릴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육신은 금제가 되어 있었다. 그 아무렇 게나 휘둘렀던 주먹과 발이 요소요소를 정확하게 두드렸다.

“이제 9개 남았나.”

몇 개 남든 정우 입장에선 크게 다가 오지 않았다. 그저 휴가 기간 동안 정리 해야 할 조무래기에 불과했다.

유우신과 가신들은 집을 비우라는 흑 금단주의 명령을 이해 못했었다. 그가 괴물처럼 강하다는 걸 알지만, 혼자서 토리가와 이누가의 주 전력을 상대하기 는 벅차다고 봤었다.

‘저럴 수도 있는 거냐?’

‘저분은 인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큰 실수를 했다.’

‘절대 충성해야 합니다.’

무시무시한 전투력, 극강의 무인이 저 앞에 있었다. 만약은 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군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잴 수없는 존재다.

그들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인간의 전형적인 마인드가 발동 했다. 하물며 혹금단주는 유일무이한 절대강자였다.

덜렁, 덜렁!

유우신과 가신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 고 있는 반면, 신녀는 전용예복을 입고, 연신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출렁거리는 가슴이 시선을 잡아끈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신녀의 매력적인 육신이 빛을 발한다.

다만 이 와중에 저 차림은 어울리지 않았다.

‘고맙기는 한데, 너무하는군.’

‘어쩌겠습니까, 신께서도 살고자 하는 데.’

‘그래도 신녀의 행동은 좀.’

유우신과 가신들은 작게 소곤거릴 뿐 두말하지 않았다. 신녀의 행동이 경박 스러워 보일지는 몰라도 신성은 거짓이 아니다. 영혼을 복종시키는 거대한 힘 이 있었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줄 팬티 를 입고 혼들어 대는 뽀얀 엉덩이는 굉 장히 거슬리면서도, 고맙다.

신녀의 전언

-고개 안 돌려.

크홈.

안 보는 척, 동공이 주인의 말을 거부 했다.

일본 내 12지신가가 분열을 일으켰 다.

용신가를 필두로 한 12개의 가문은 이견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네 즈미가, 토리가, 이누가의 불참은 뜻밖 이다. 암묵적으로 용신가를 12지신가의 수장으로 인정했던 과거와는 달랐다.

반한 정서를 극대화해 자국의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려는 총리와 그들 로서는 예상치 못한 난항이었다.

“이거 참, 내 꼴이 우습게 됐군.”

“어쩌시려고요?”

“어쩌겠어, 협상을 해야지.”

“당신답지 않네요.”

“나다운 게 뭔데?”

艾한판 뜨자고 할 줄 알았거든요.”

친구와 대화를 하듯 평범해 보이는 사내와 여인.

일본 최강 무가인 용신가의 가주와 총관인 켄신과 요호다. 사나운 용을 연 상케 했던 무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반듯하게 잘라 낸 머리카락과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 눈매, 어디에서 나 혼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여인의 아 름다운 이목구비와 달리 딱딱해 보이는 인상, 전형적인 비서의 외형이다. 물론 꾸며 놓는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 다.

“협상이 꼭 말로 하란 법 있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세요.”

“총관이 가주에게 할 소린 아니잖아.”

“거봐요, 달라졌지. 예전엔 얼마나 과 격했는데.”

“그래서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이?”

“장소에 따라 다르겠죠. 홍.”

총관과 가주의 대화치고는 가볍다. 또 한 서로를 대하는 데 연인처럼 허물이 없었다. 당연히 오해의 소지가 생길 염 려가 있었다. 총관의 지위는 가문의 2 인자다. 일본 최강 무가의 2인자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자리다. 하나 평범해 보이는 요호의 실체는 무시무시했다. 혹한의 마녀라는 별호가 그녀를 대변해 주었다.

“말 안 들으면 듣게 해 줘야지.”

“다른 가문에도 연락을 넣을게요.”

“그렇게 해.”

“역시 달라지셨네요.”

“나이가 들더니, 기력이 떨어지더라 고.”

요호는 켄신을 향해 싱긋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금이야 우유 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과거 의 그는 파격 그 자체였다. 어느 누구의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12지신가도 용신가의 결정에 반하지 않 았다. 그가 화를 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뻔히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가문 내 의 경쟁에서도 용신가는 제외 대상이었 다. 어느 가문도 용신가를 넘어설 수 있 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선전포고를 했다는 거야?”

“10일 후 낮 1시에 쳐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웃기는 놈이네, 전쟁을 왜 그딴 식으 로 하냐.”

“켄신이라는 놈은 예전부터 그랬습니 다.”

네즈미가의 잘 꾸며진 가주실.

상석에 정우가 앉아 있었다. 그 앞으

로 유우신, 사카모토, 고로가 반듯하게 무릎을 꿇은 채 보고를 올렸다. 다른 이 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생소해 보일 수 있으나, 정우에겐 지극히 당연했다.

“열등감이 대단한데.”

“저는 그저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분 입니다.”

“사실치곤, 감정이 섞여 있잖아. 아 냐?”

“……그렇습니다.”

용신가의 결정에 맹목적으로 따라야 했던 그들로서는 켄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 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어린 나이에 가 주가 되었음에도, 그는 강했다. 20년 전 그와 대적했던 전대의 무신조차 켄신의 3검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다른 가문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색다른 녀석이긴 하네.”

“위험한 자입니다. 경계하셔야 합니 다.”

그들은 이제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가문의 명운은 물론 본인들의 목숨까지 걸었다. 내지른 게 있어서 돌아설 수 없 는 현실이다. 한국에 대한 사죄와 정당 한 보상을 거론했으니, 12지신가에서 낙오자가 된 꼴이다.

-잘못되면 인당 라면 3개다.

그날 먹어야 했던 살아 있는 라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몸 구석 구석으로 퍼져 나간 면발이 육신을 강 제로 금제하고 있었다. 터럭만큼의 배 신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켄신도 문제지만 용 신가를 따르는 8개의 가문이 뒤를 받치 고 있었다. 수적인 차이가 지나치게 크 다. 전력을 기울인다 해도 승산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길게 끌 일도 아니고, 이쪽에 서도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편이 좋겠 지.”

“염두에 두신 계책이 있는 겁니까?”

“계책은 무슨.”

“하오면?”

“뭘 고민해, 10일이나 시간을 줬잖 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던 유우신, 사카 모토, 고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했었다. 이다지도 대책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모 범답안이기도 했다. 핵심을 정확히 찌 른다고 해야 할까? 가벼운 언행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의는 전가의 보도처럼 날카로웠다.

괴물의 무서움은 단순히 전투력에만 있지 않았다. 전체를 들여다보며, 흐름 을 이끌어 오는 통찰력까지 갖추었다.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최강의 무사 다.

“우리도 선전포고를 해야겠지.”

“어쩌시려고요?”

"함정을 파고 기다리겠다고 해.”

“그러다가 역공을 맞을 수도 있습니 다.”

“전쟁 전에 선전포고나 하는 놈이잖 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텐데, 이러면 더 열 받겠지. 안 그래?”

그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며 전율을 맛 보았다. 단 몇 마디 말로 켄신을 정확히 파악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과연 켄신이 함정이 있다고 해 서 뒤통수를 치려고 할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10할 이상이다.

“다들 연장 챙겨.”

“예, 주군.”

그날 밤.

정우는 딱 10명만 데리고 움직였다. 굳이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유우신, 사카모토, 고로 정도면 조무 래기들을 처리하는 것쯤 식은 죽 먹기 지.

전쟁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절대 강자를 기준으로 해야 마땅했다. 유니 크의 다양한 특이속성이 간혹 의도치 않은 변수를 만들지만. 격이 다른 존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밤공기 좋지.”

“그렇습니다.”

유우신, 고로, 사카모토는 떨떠름했다. 한밤중에 남의 집 담벼락을 넘어야 하 는 처지가 한심스러웠다. 이러려고 가 주가 되었나 하는 한숨이 홀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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