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설계하다 (3)
9급 케이브가 열렸다.
비상벨이 울리고, 전담반인 정우는 마 법을 발동했다. 한국 전역에 공간이동 진을 설치해 거리를 단축시켰다. 케이 브가 오픈된 지점은 마력방해가 심해 공간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인접한 지역 은 가능했다.
‘역시 일은 합법적으로 해야 뒤탈이 없어.’
공간이동진을 개인적으로 해도 되지 만, 전국에 설치하려면 아무래도 정부 의 승인이 필요하다. 정우는 정부의 허 가를 받아 마법진을 설치했다. 당연히 마법진에 사용된 핵심 코드는 정우가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차후 사용 해야 할 때마다 정우가 준 단기핵심코 드 아이템을 저렴한(1억) 가격에 사야 한다.
‘편의에 익숙해진 사람은 불편함을 견 디지 못하거든.’
안정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해진 상황 에서 걸어가라고 하면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케이브 오픈에서 가장 중요 한 요소는 초동대처다. 빠른 시간 안에 케이브 입구에 결계를 치고, 인적 물적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대처는 훌륭하다 해도, 만의 하나가 있 을 수 있다. 자칫 대량의 인명피해가 발 생한다면 결과적으로 대처를 미흡하게 한 정부가 질타의 대상이 된다.
‘덤으로 마법진을 설치할 명분도 생기 고.’
정우는 정부가 승인한 마법진만 설치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공간이동진을 설치해 놓았다. 만약을 대비해 놓은 것 이다. 누군가 수작을 부렸을 때 사용할 패였다.
“마법진을 발동할 테니까, 준비해.”
“예, 소대장님!”
마법진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한 소대 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소대장은 인간의 영역을 가분히 벗어나 있었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9
급의 마물을 처리할 때, 소대장은 대마 법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솨아!
공간이동진이 발동되자, 삽시간에 환 경이 바뀌었다.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
도착 지점은 화성.
케이브가 빈번히 열리는 구역이라 인 적이 드물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일대 는 변화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계부터 치도록.”
결계사를 지휘하는 자는 박대성 소위 로 유니크 6급이다. 그는 신속, 정확, 명령에 최적화되었다.
최상위에 속하는 결계사들이 속성을 융합하여 케이브 입구를 차단했다.
“9급이긴 해도 하급이군.”
케이브 등급 상향으로 9급에도 상중 하(上中下)로 구분을 지었다.
하급은 과거에 열렸던 9급 케이브 수 준이라고 보면 된다. 중급 이상부터는 등급 게이지에 측정된 값으로만 판단해 선 곤란하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발동 하고, 정해진 등급 이상의 능력을 갖추 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하급이라고 해서 방심했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양산 할 위험이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또각, 또각!
어디서 들어 본 하이힐 소리.
주변의 시선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여인이 등장했다. 타오르는 불길처럼 강렬한 적발을 휘날리며 몸에 착 감기 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다가왔 다.
결계를 치던 요원들이 자동반사적으 로 돌아봤다.
‘와, 섹시 그 자체다!’
‘젠장, 섰다!’
‘우리가 많이 굶기는 굶었나 봐.’
군인은 여자가 치마만 입어도 정신 못 차린다고 한다. 하물며 동양인의 체 격으론 가지기 힘든 잘록한 허리와 흐 뭇한 가슴, 오밀조밀 다 들어가 있는 조 막만한 얼굴까지 여신이 따로 없었다.
그녀가 사내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정우의 코앞에 섰다.
“많이 강해졌네.”
“누나한테 반말하지 말랬지.”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나이가 뭐가 중요해.”
“웃기고 있어!”
그녀는 화천문의 수석총관 염화, 권우 화다.
현재 나이 서른두 살, 결혼해야 할 적 기를 살짝 넘어서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실현하고 있다. 화천문 의 대소사를 총괄하는 수석총관으로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차기 화천문 의 문주로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만큼 총관으로서의 능력은 물론, 유니크로서 도 완벽에 가까웠다.
“아주 감쪽같이 속였어.”
“속은 사람이 바보지.”
“안속을수가없잖아.”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자고.”
권우화는 정우의 정체가 전호경이라 는 걸 알아냈다. 무공만이 아닌 마법을 사용할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었다. 무 공을 대성하기도 어려운데, 마법까지 극한에 도달해 있었다니. 괴물 같은 녀 석이 아닐 수 없었다. 능력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 이 녀석을 대적할 유니크가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건 여태 꼬맹이 한테 속았다는 사실이다.
‘스무 살도 안 된 놈이 어떻게 절대무 력을 소유한 거지?’
미스터리다.
작금의 현실을 이해하려면 어미 뱃속 부터 무공을 익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물며 유니크 전문학교에 입학해서 마 법까지 절대레벨로 연성했다. 천재라는 수식어는 가당치도 않았다. 괴물도 넘 어선 초괴수다.
“혹, 연하라서 더 끌리고 그러는 거 아니지?”
“말이 심하잖아, 날 어떻게 보고?”
“난 또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고민했는 데.”
“……그랬어?”
아쉬워하는 뉘앙스에 염화는 반응하 고말았다.
솔직히 그동안 나이를 속인 게 괘씸 하기는 했어도, 정우는 특급 신랑감이 다. 저 나이에 무공과 마법은 물론 전략 전술, 심계까지 완벽했다. 정우를 문파 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화천문은 날개 가 아닌 부스터를 달 수 있었다.
“뻥인데.”
알면서도 속아서, 더 분하다.
“너, 진짜 나쁜 놈이야!”
“그 나이에 순진한 척하지 마시지.”
“망할 놈, 벼락 맞아 뒈질 놈!”
순간 울컥해 버린 염화는 간신히 마 음을 다스렸다. 정우의 단순한 수작에 넘어간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다른 이 들을 상대할 때는 이렇지 않은데, 정우 만 보면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 래도 부끄럽진 않았다. 정우라는 괴물 과 심리전을 해 봤자, 손해 보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정우가 걸어간 발자취 를 살펴보면 소름이 돋는다.
‘진짜로 대통령을 만들 줄이야.’
금강문주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상 상이나 했으랴.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다른 이도 아니고 화천문주 권영일이었 다.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 놀람으로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했다. 난 찍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어록이 여전히 회자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빼고 다 찍 었다고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90퍼 센트의 말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 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대통령 하고 싶구나.
-가능하겠지, 저딴 놈도 하는데.
-내가 저놈보다 못한 게 뭐가 있냐!
-그치, 염화야.
그걸 말이라고!
금강문주가 대통령이 되면서 염화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비교 대상이 정우가 되니, 더더욱 그렇다. 지 금이야 많이 양호해졌지만, 당시엔 스 트레스로 원형탈모까지 생겼었다.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지. 대통령 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면 초등학생 들 대부분은 당선되어야 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9급 공무원이 꿈이라고 하 니, 세상 참 각박해졌다.
“비결이 뭐야?”
“그딴 거 없어, 내가 잘난 것분이야.”
“확실한 비결이네.”
“나만큼만하면 돼.”
“미친놈!”
염화는 짜증나지만 인정해야 했다. 다 른 말 다 필요 없다. 정우의 말대로다. 저 앞에서 준비하고 있는 실드만 봐도 답은 충분했다. 실드의 어수룩해 보이 는 외모에 속으면 환장할 수밖에 없다. 그녀조차도 실드와 붙으면 승부를 장담 하지 못한다. 싸우다 보면 본전도 못 찾 고 손해만 막심하다.
“따지고 보면 감춘 것도 아니잖아. 대 부분 다 보여 주지 않았나?”
“연관성이 없잖아.”
전호경과 하정우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가 없다. 보여 주면 뭐하나, 염화로서 도 추측이 불가능했다. 가까이서 훈련 을 도와줬는데도 연상을 못 할 정도면, 다른 이들은 두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그동안 놀진 않았네.”
“너만 아니면 나도 잘나가.”
염화는 흑화와 완전히 융화하여 염화 무극공을 대성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비교를 해도 부족하지 않은 성취를 얻 었다. 성장 속도로만 놓고 본다면 그녀 를 따를 자 많지 않았다. 그만큼 발군의 성장이었다.
“그 복장으로 들어갈 거야?”
“이거 변형슈트거든.”
“호오, 연구 좀 했네.”
“흥, 우리도놀고만 있진 않았어.”
원피스에 하이힐이 변화하며 그녀의 육신에 딱 맞는 슈트가 되었다. 전투슈 트는 7급 변형마물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들었다. 체형에 따른 일정한 형태의 변화가 가능하다. 물론 올칸처럼 완전 히 다른 형태로 변하진 못한다.
“잘해 보자.”
“좋아.”
케이브는 화천문과 공조하기로 계약 이 되었다. 기본 원칙은 6 대 4지만, 관 할 구역에 따른 배분이 달라서 5 대 5 로 균형을 이룬다. 연합으로서는 무조 건 완벽한 정리가 필요했다.
염화가 화천문 소속 무인과 함께 들 어갈 준비를 마쳤을 때, 정우도 채비를 마쳤다. 실드와 함께하게 된 차선후는 요즘 들어 말수가 부쩍 줄었다.
‘그동안 난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이 없었어.’
실드와의 첫인상은 솔직히 실망이었 다. 딱 봐도 사회성 결여된 루저들 같았 다. 이자들과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사 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 대위가 자 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의심이 들 었다. 그래서 보여 주고 싶었다. 실드와 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한데 케이브가 오픈되고 보여 준 활약상은 명백한 오 판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수준이 다른 방어력, 그야말로 방어의 최적화 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격이 달라!’
차선후는 지나온 삶을 반성했다.
“들어가자.”
정우는 차선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잘 해 보려는 의지가 읽힌다.
어이구, 이를 어쩌나.
반성한다고 해서 삶이 한 번에 바뀌 진 않는다. 어쩌면 과거보다 미래를 더 후회할 수도 있었다.
‘그건 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