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설계하다 (2)
케이브 변이로 걱정을 했던 것과 달 리, 실제 피해는 크지 않았다.
9급 케이브의 오픈 빈도는 다른 케이 브에 비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열렸을 때 대처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피해를
양산할 수 있는 만큼, 신속한 대응은 당 연했다.
그러던 때 무문연합과 유니크 연합의 공조가 공론화되었다. 다른 때와 달리 이제는 협력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여론이 있었다.
문제는 돈이다.
케이브 공략 시 나오는 부산물의 처 리에서 무문연합과 유니크 연합의 이견 이 있었다. 협상 비율이 8 대 2로 정해 져 있었지만, 마법사의 활약으로 유니 크 연합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조정을 하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비율을 6 대
4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단순 비교로 2가 더 올랐을 분이지만, 부가적인 수 익은 상당했다.
인천지부로 유니크 연합 본부의 총괄 인사과장인 채남호가 찾아왔다. 그는 인천지부의 관리과장을 맡았었기에 아 는 얼굴들이 많았다.
“지부장이 되더니 신수가 훤해졌습니 다.”
“연합의 인사권을 쥐고 혼드는 분께 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요.”
“흔들다니요, 공정한 인사를 위해 최 선을 다했습니다. 아니라면 지부장께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시도 은혜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채남호가 아는 체를 하자, 박상원은 언짢은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 인간 이 찾아올 때마다 지부의 분위기가 흐 려진다. 똥물을 어지간히 튀겨야지. 본 인 능력이라도 좋으면 또 몰라, 순전히 아버지 빽만 믿고 설치니 더더욱 그렇 다.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 들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지부장님의 평가도 높아졌고 요.”
“제가 할 일이 뭐가 있다고요.”
“겸손하기까지, 오래 하시겠습니다.”
“그리 봐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채남호의 직위 자체는 박상원보다 낮 았다. 그러나 본부의 인사과장이다. 밉 보이면 파격적인 이사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사람 괴롭히는 데 채남호보다 뛰어난 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도가 텄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복덩이를 좀 보고 싶은데,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고 대기시켜 놨습니다.”
“호오, 역시 지부장은 센스가 있습니 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인천지부를 맡았던 오장훈 전임 지부 장은 본부로 가면서 부장의 직위를 얻 었다. 등급판정을 다시 받아 8급에 올 라섰다. 강직한 성향인 오장훈 지부장 앞에서는 채남호도 설설 기었었다. 아 버지 빽이 통하지 않는 부류였다. 박상 원과는 케이스가 달랐다. 그럼에도 친 구의 빽을 써서 채남호를 눌러 주고 싶 진 않았다. 무엇보다 채남호는 계산이 빨랐다. 재수가 없는 놈이긴 해도, 실수 는 하지 않는 편이다.
채남호의 아버지는 유니크 연합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임 국장이자, 현 유니크 연합 고문위원이다. 또한 8급의 유니크다. 경력이 오래된 최상위 유니 크는 나이가 찼다고 해서 버릴 수 없었 다. 무문연합과의 등급 차이가 커지는 만큼, 데리고 있어야 했다.
“자네가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 든 그 유명한 마법사인가?”
“그렇습니다.”
“연합의 마스코트를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군.”
“저도 반갑습니다.”
정우는 채남호와 독대를 했다. 장소는
박상원이 지부 내에 마련한 비밀장소였 다. 공적인 사안이 아닐 경우 이용하는 공간이다.
“하온데 어쩐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 까?”
“젊은 사람답게 단도직입적이구먼.”
채남호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현장 전투요원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상대하 는 데는 특화되었다. 시작부터 본심을 드러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허례는 됐고, 터놓고 말할게.”
“마법을 걸었으니 소리는 새어 나가
지 않아. 그러니 편하게 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채남호의 안색이 굳었다.
대뜸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 상도 못 했다. 그간 마법사가 보여 준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못해, 전혀 달랐 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가면을 쓰고 있 었다는 뜻이 된다. 연예인의 유리가면 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중성이 오히 려 도드라진다.
“민심을 잘도 기만했군.”
“마법사에 대해 안다면, 나이로 판단 해선 곤란해.”
“확실히 그렇겠지.”
“시간 낭비 말고, 본론을 꺼내.”
“그런 거 없다면 어쩔 텐가?”
채남호도 무턱대고 오지 않았다. 정우 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마법사가 되려 면 마나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요소는 뛰어난 두뇌다.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연산 능력을 지녀야 한다. 계산이 빠르고, 이 해력이 남다른 존재다.
그런 자들이 과연 허술할까?
마법사야말로 가장 까다롭다. 또한 자 부심으로 사는 존재다. 오만이 극에 이 브렀다.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한데 나 이도 어린 마법사가 절대레벨에 근접했 음에도, 모두에게 친절하다? 상식적이 진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의 차출은 거 부하지.”
“일반인과 달리 군인 신분으로 명령 불복종은 어려운 일이지 않나. 강요하 는 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받아 줄지 모르겠군.”
군인은 상명하복의 수직체계를 중요 시하기에 상부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하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으로 처벌을 피 하기 어렵다. 그것이 군인의 어려운 점 중에 하나다. 개인의 의지는 군인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채남호는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능수 능란하게 대응했다. 사람을 다룰 줄 알 았다. 단순히 인맥만으로 본부의 인사 과장이 되지 않았다. 그에 걸맞은 교활 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피해가 커지면 연합의 위상이 말이 아닐 텐데.”
“국민을 담보로 협상을 하겠단 건가, 참으로 위험한 친구로군.”
“상황이야 만들면 그만이지, 못할 것
같아?”
“허허, 이거한 방제대로 먹었군.”
실없이 웃고 있지만 채남호의 머릿속 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분히 계 산적임에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말 몇 마디 주고받는 단순한 대화와 거리가 멀다. 짧은 대화 속에서 무수히 많은 수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가 더 우 위에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다른 의 미의 전투였다.
생각이 길진 않았다.
심리전은 시간의 싸움, 길어질수록 어 렵다.
‘답답한 놈은 아니군.’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마법사의 이미 지였다면 협상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벌써부터 계산이 선 상 태다. 이제까지 포장을 제대로 한 것이 다. 누구도 마법사의 성향에 대해 의심 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 봐도 마법사가 얼마나 교활한 놈인지를 깨닫게 해 준 다. 모든 사태를 파악하고, 이때를 위해 서 기다린 것이다. 그 말은 교활한 두뇌 못지않게 인내심도 뛰어나단 뜻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이제 큰 의미가 없 어졌다.
“1할을 주지.”
“3할.”
“욕심이 많군.”
“욕심이라니, 내가 한 일을 보고도 그 리 말하는 거야. 알다시피 내 뒤에는 대 통령이 있고, 그분은 무문연합의 수장 이지. 무문과의 협상이 단순히 연합의 위상이 높아져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거 야?’, 채남호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
예상 못 했던 내용이 흘러나왔다. 실 상 현직 대통령의 강직함과 정직성은 이전과 비교를 불허했다. 여태까지 해 온 일만 봐도 적폐청산에 앞장서고 있 었다. 전임 국회의원과 재벌이 대통령 의 서슬이 향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였다.
‘과연 그렇게 된 거구나!’
대통령의 초탈했던 모습이 전부 의도 되었음을 확인한 채남호는 혀를 차야 했다. 이토록 완벽히 모두를 속이고 있 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 해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 려면 3할은 너무 많아.”
“나야 워낙 가진 게 많아서 돈에 연연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면서까 지 하고 싶진 않아.”
돈에 연연하지 않아, 그러면서 협상에 서 2할을 더 올려?
채남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네, 혼자서 모 든 걸 다 할 순 없어.”
“그 말은 줘야 할 인간들이 많다는 걸 로 들리는데, 이거 완전 시궁창이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다 그렇지, 항상 좋은 냄새만 풍길 순 없지 않나.”
채남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 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 사는 사회 속에서 이 정도의 부
패는 당연하다고 봤다. 그리고 눈먼 돈 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찾아 먹지 않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사실 케이브에 서 나오는 부산물은 그야말로 눈먼 돈 의 향연이다. 공정하게 처리할 거란 기 대를 사람들도 하지 않았다. 외부에 알 려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유니크 연합 이라는 이름하에 관리하고 있으니 그렇 다.
“2할 그 이하는 안 해.”
“좋아.”
“호오, 협박할 줄 알았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내 목이 남아 있지
않겠지.”
채남호의 동공엔 야망이 깃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이기는 해도, 큰 패를 하나 얻게 되었다.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해도 대통령이 관련되어 있는 이상, 드러낼 순 없을 것이다. 이 나라 는 이제 대통령의 것이나 다름없다. 국 회까지 장악을 한 이상, 무소불위의 절 대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그 말은 호 랑이의 등을 맘껏 이용해도 뒤탈이 없 다는 의미다.
“앞으로의 활약상을 기대하겠네.”
“군인으로서 국가와 국민에 헌신할
따름입니다.”
“하아, 좀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 되지 않는구먼.”
“과장님도 마찬가집니다.”
마법을 해제한 정우는 본래의 모습을 지우며, 겸손한 마법사가 되어 있었다. 무지개처럼 변화무쌍한 정우의 태도에 채남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채남호가 본부로 돌아가고, 박상원이 들어왔다.
“왜요?”
“저놈이 뭐라던?”
“명색이 연합 본부의 끗발인 인사과
장인데, 함부로 말씀하시네요. 그러다가 오지산골의 지부장 노릇하는 수가 있습 니다.”
“없는 데선 호극이도 욕한다, 이놈 아!”
“대놓고는 못하고요?”
“그 녀석 성질 알면서 그러냐.”
박상원은 채남호가 단순히 공치사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줄타기의 명수였던 얍삽한 놈 이었다. 콩고물이 떨어질 게 있으니, 찾 아왔을 것이다.
“연합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
라더군요.”
“그게 다냐?”
“케이브 등급이 높을수록 수익이 높 으니까요.”
“대놓고 달라는 거군.”
“줄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큰일 났네.”
박상원은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인 생을 조용히,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는 데 정우로 인해 평지풍파를 겪게 생겼 다.
“뒤를 부탁해요.”
“?…"망할!”
내가 청소부도 아니고.
박상원은 울고 싶어졌다.
무문연합과의 공조가 이루어지면서 정우는 활동 폭이 넓어졌다.
금강문에 소속된 혹금단과 실드를 맘 껏 활용할 수 있었다. 특히 실드를 개인 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연합과 협상을 따로 했다.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마법 사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텀이 있어 방어조가 있어야 한다. 유니크 연합의 방어조로는 어렵다고 판단, 실드의 개 입을 허용했다.
정우는 특별 케이스로 인정을 받아 연합에서도 소대를 따로 편성해 주었다. 위험한 현장에 참여하고, 발 빠르게 행 동해야 하기에 전담반을 만들었다.
전담반의 이름은
CRP(Cave-Responsibility-Position)으 로, 상급 케이브가 열렸을 때 출동하게 된다.
소대의 구성은 총 10명으로 정우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급 결계사로 구성했 다. 현장 전투는 전적으로 정우의 결정 에 달렸다. 또한 특수계급을 얻어 소대 장이 되었다.
“네가 어쩐 일이냐?”
“부탁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케이브 전담반이 세 차례의 공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막대한 부가 수익 을 올리는 시기에 차선후가 찾아왔다. 그때 이후로 얼굴을 보지 않아 잊어 먹 고 있었다. 물론 사정이 당시와는 또 달 라져 있었다.
정우는 현재 소대장이라는 특수계급 을 얻어 대위(=)의 직위를 얻었다. 같 은 이병이었던 시절과는 급이 달라졌다 고 봐야 한다.
노는 물이 달라요, 라고 다이아몬드 3
개를 보여 주었다.
“요즘 군대 좋아졌네, 이병 나부랭이 가 아무 때나 찾아와서 부탁씩이나 하 고. 나 땐 그런 거 꿈도 못 꿨는데.”
“……(첩)!”
일전의 일도 그렇고, 어느 정도 마음 의 각오를 했음에도 차선후는 숨이 턱 막혔다. 대놓고 계급으로 찍어 누를 줄 은 상상도 못했다. 사람은 출세를 해도 평소의 마음가짐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하 대위는 서류에 잉크가 마르 기도 전에 벌써부터 대위의 직급으로 유세를 떨었다. 알면 알수록 성격을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모습이 진짜인 지 판단불가의 사내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할 말 없으면 가봐.”
귀찮다는 손짓에 차선후는 마음을 다 잡기가 어려웠다. 신성이 정신과 육체 의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복장이 여러 번 무너졌을 것이다.
“저도 전담반에 들고 싶습니다.”
“안 돼.”
“각오가 서면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 까?”
“내가 그랬나?”
기억이 안난다는.
차선후는 순간 뚜껑이 열려 터져 나 갈 뻔했다. 그때 한 말들은 다 개소리라 는 건가?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 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데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신성은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 리지 않았다. 흔들림은 신성을 믿지 못 한다는 반증.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어찌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러자 화 가 가라앉으며, 냉철한 이성이 돌아온 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제법 성장했네.”
깊은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차선후는 눈앞의 이 인간이 과연 자 신과 비슷한 연령이 맞는지 의심이 들 었다.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움 과 냉철함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 제는 경쟁심을 갖는 것 자체가 민망했 다.
“실드의 일원으로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
이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면 시키 는 일은 무엇이 됐든 열심히 하겠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라는 동물 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나간다. 물론 회사의 근무요건이 법률 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벗어난다면, 항 의는 당연했다.
“그럼 걸어.”
“예?”
“신성을 걸라고.”
“알겠습니다.”
횟집도 아니고, 어딜 날로 먹으려고.
들어올 땐 선택이지만, 나갈 땐 허락 을 받아야 했다. 당연한 소리긴 해도, 정우는 쓸모가 다할 때까지 절대 버리 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