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설계하다 (1)
와 이 대통령님은 사랑이다! ■우리가 꿇릴 게 뭐가 있어!
-일본 총리 얼굴 붉어진 거 봤냐!
-중국 주석도 경련 일으키던데!
-맞는 말이야, 매국노는 이 땅에서 사
라져야 해!
미국의 주도로 열린 정상회담.
케이브 변이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 어졌었다. 국가별로 최 상위 유니크의 수에 따라 어려운 국가를 도와주기로 합의를 봤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와중 한중일 간의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다른 지역에 비 해 한중일은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했고, 일본은 일전에 타결 한 협상을 거론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동북아 정세의 대립 속에서 중국과 일 본은 한국을 압박해 노선을 분명히 하 라고 경고했다.
이호극은 얌전히 듣고만 있다가 결정 적일 때 한 방 날렸다. 중국과 일본이 상상하지 못했던, 기존의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을 가지고 너희들이 뭔데 자꾸 우리에게 감 놔라 배 놔라 지 적하는 거야! 우리가 미사일을 배치하 든 말든 신경 꺼!
-협상을 하려면 우선 진심으로 사죄
하고 보상부터 해야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역사 교육이나 똑 바로 시켜!
이호극은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 았다.
중국이 내정간섭과 경제보복을 좌시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일본은 과거사 사죄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협상 은 꺼내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중국 주석과 일본 총리가 발언이 과 하다며 반발했지만, 이호극이 으르렁거 리자 움찔하며 물러서야 했다. 투기를 발하지 않았음에도 이호극의 기세를 받 고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면 중국와 일본의 정상은 참담한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 다.
회담장에서 설마 주먹질을 하지는 않 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호극의 육신 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공간을 압도했다. 실상 각 나라의 정상들 중 9급의 유니 크는 이호극이 처음이다. 각성자가 있 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국가 간의
일에 지나치게 감정적이잖아!
속만 시원하면 다야, 이러다가 생계 가 끊어지게 생겼다고!
-대통령께서 못 할 말 한 거 아니잖 아, 다 맞는 말인데 왜 그렇게 열 내냐. 짱깨, 쪽빠리 새끼야!
-병신들, 굶어 봐야 정신 차리지! 이 대로 끝날 것 같아!
-난 굶어 죽어도 좋으니까, 자존심 지 키자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식구들 굶어 뒈지면 그땐 어쩔 건데!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자부심 을 세웠다는 말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 의 보복이 걱정되는 시선이 더 컸다. 금 한령으로 수출에 타격을 입었던 기업들 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일본 과의 교역에서도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예상과는 달리 중국과 일본은 곧장 보복을 가해 오지 않았다.
“당장 보복할줄알았는데, 아쉽네.”
“입맛 다시는 걸 여론이 알면 난리날 겁니다.”
이호극은 이번 일로 중국, 일본과의
대립이 심해지리라 예상했다. 어떤 식 으로든 보복이 오면 되돌려 줄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어떻게 한 거냐?”
“안이 엉망이면 밖은 신경 쓰지 못하 는 법입니다.”
“내부의 격론을 외부로 돌릴 수도 있 잖아.”
“그거야 중심이 잡혔을 때나 가능한 일이죠.”
정우는 대통령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오대세가를 움직였다. 중국의 주석이 정권의 실세라곤 해도, 오대세가의 영 향력을 무시하진 못한다. 그간 받아먹 은 것도 있고, 오대세가와 척을 졌을 때 의 불편함도 컸다. 다만 구파일방에서 도 지원을 하기에 대립각이 세워졌다. 물고 물리는 설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일본도 불순물을 제거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제기랄, 다 예상하고 있었구나.”
이호극은 나름 정우의 예상에서 빗나 갔다고 봤는데, 그마저도 손바닥 안에 있었다. 이 망할 녀석의 머릿속에는 뭐 가 들었는지, 뚝배기를 한번 따 보고 싶 을 지경이다. 그러나 딱히 이상하진 않 았다. 일곱 살 때부터 난놈이었으니까, 지금은 능구렁이가 되어 있는 게 당연 했다.
“조만간 일본 출장을 고려하고 있습 니다.”
“ 나는?”
“다문화 개정과 불법체류자 단속부터 시행하고요.”
“……너 일부러!”
공약 이행으로 벌써부터 말들이 많았 고, 노조가 시위를 벌일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와중 다문화 개정과 불법 체류자 단속까지 국회에 상정이 되었 다.
이혹극은 일복이 터졌다.
“쉴 틈을주지 않는구나.”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외국 인력 을 무작위로 끌어다 쓰면 탈이 나기 마 련입니다. 섞이지 않는 부류는 유럽처 럼 테러의 온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가려서 받 아야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 듯, 국내의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한국 의 정서에 융화되지 않는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인종 간의 차별은 좋지 않 으나,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는 만큼 변하지 않으면 곤란했다. 종교의 자유 는 허락하되, 다른 이유의 자유를 침해 하는 건 옳지 않았다.
“하고 외국인 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 화해야 합니다.”
“너 나 싫어하냐?”
“그럴 리가요, 제일 존경합니다.”
“두 번 존경했다간, 과로사로 쓰러지 겠다!”
“그럴 분이 아니시잖아요.”
누가 보면 튼튼해서 대통령으로 봅은 줄알겠다.
정우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외국인 입국 시 지문 채취와 얼굴 인식 을 재도■입하기로 상정해 놓았다. 개인 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는 하나,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가 버리면 잡기 어렵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범죄 예방과 근절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 한 절차였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일벌백계 에 처한다는 걸 외국에 인지시켜 주어 야 한다. 그래야 법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도 손을
봐야겠죠.”
u..싸우자■『
공약3]라고 해서 무조건 다 지킬 순 없잖아.
보통 5퍼센트만 수행해도 잘했다고 하는데, 정우는 100퍼센트를 목표하고 있었다.
“아직은 안 될걸요.”
“안 되긴, 그때완 또 다르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럼, 죽여 주마!”
“대통령 살해범은 되고 싶지 않은데
요.”
이호극도 이판사판이다.
이대로 숨 막히게 살 바에는 시원하 게 싸워 보고 난 후 결정하는 편이 낫다. 실상 요즘 들어 불만이 쌓이다 보니, 소 화도 잘 안 된다.
우응
정우는 케이브를 열어 이호극과 판을 벌였다.
대통령의 스트레스 해소도 청와대를 방문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물론 받 아야 하는 상은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 다.
그 이후로도 9급 케이브가' 열려 맹활
약을 펼쳤다. 정우의 활약으로 유니크 연합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과거에 비 해 많이 해소되었다.
20분후.
쿨럭!
이호극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검붉은 피가 상처의 심각성을 얘기해 준다. 그 러거나 말거나, 정우는 선결해야 할 공 무수행과 과제를 전했다. 몸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국가에 이바지하라는 무언의 강요도 포함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입니다.”
“망할놈, 넌 지옥 갈…… 거다!”
이호극에게는 사나이의 우정이 국민 과의 약속보다 더 중요했다. 그간의 우 정을 배반하고 일감을 몰아 준 정우에 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우가 아니 면 누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 언제고 이기고 말 것이다!”
“저도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효린이를 부탁한다.”
“그건 장담 못 하겠네요.”
정우는 이 대통령과 밀담을 나누고,
특수직을 허가받았다. 이에 대해선 청 와대 내의 비밀 협업으로 문서화 작업 을 마쳤다. 후일 법적인 문제를 거론했 을 때를 위해 청와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을 남겼다.
‘기록을 지우지 못하도록 강제력을 행 사해 놓아야지.’
다다미식으로 이루어진 방 안.
단조로운 형태지만, 장인의 정성스러 운 손길이 느껴졌다. 방 안의 증심엔 사 각의 술상을 마주하고 두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기로 이루어진 작은 술잔에 술을 따르고, 한 잔씩 마셨다. 한동안 말없이 침묵이 흘렀다.
“협상을 하지않겠나?”
“5 대 5라면.”
“욕심이 과하군.”
“용신가가 개입하면 그땐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텐데.”
“그거야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두사내.
일본을 지탱하는 12개의 가문에 속하 는 토리가와 이누가의 수장 사카모토와 고로다. 그들이 은밀히 밀담을 나누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돌아가는 실정이 어수선하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과거의 영광을 찾 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 다. 과거에 쌓아 놓은 유산에 기대어 경 제를 유지하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급 속하게 우익화가 진행되었다. 예전에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한국이 밑에서 치 고 올라서자 그러한 성향이 더더욱 눈 에 띄었다. 한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 을 바탕으로, 국내의 산적한 문제를 외 부로 돌렸다.
그런 와중 한국의 약진이 눈에 띄었 다. 에너지 스톤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세계적으로 호황기를 맞으면서 한국의 경제력이 어느새 5위권에 도달했다. 기 초산업이 허약해 중국의 추격에 무너질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총리가 노발대발을 하더군.”
“그런 식으로 나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공식석상에서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 리를 면박 준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 되면서 난리가 났다. 동영상 짤방으로 계속 나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경제, 정치적 보복을 해야 일 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12지신가도 발 빠르게 움직였지만, 네즈미가는 감정적으로 나와서 좋을 게 없다고 일선에서 한 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어째서 토리가와 이누가에 게 시간이 없을까?
두 가문은 네즈미가와 접점에 있다. 서로의 영역을 넘보기 위해 암묵적으로 경쟁이 붙었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12지신가 전체의 공론을 샀다. 네즈미가의 영역을 노리고 있던 토리가 와 이누가로서는 지분을 나누어야 할 사태에 이르렀다. 만약 12지신가의 중 심축인 용신가에서 나선다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시간이 많지 않아.”
“남 일처럼 말해 봤자, 소용없네.”
“빌어먹을 조센징이 일을 아주 복잡 하게 만들었어!”
“다른 가문으로서는 좋은 일이겠지.”
한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제적 고립 이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일본과 중 국의 반응이 없으니 유야무야 넘어가는 형국이다. 안팎으로 중국 주석과 일본 총리가 지랄을 해 봤자, 의미를 부여하 지 못했다. 그 와중에 미국과의 공조를 거론했으니, 단순무식하다고만 볼 수도 없었다.
“혹, 전력을 숨기는 짓 따윈 하지 않 겠지?”
“이번 일은 본가로서도 중요하네.” 토리가의 사카모토는 아쉬움이 컸다. 네즈미가의 거점을 공략하기 위해 오 랜 기간 공을 들였고, 기회가 왔다고 판 단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이 판을 깨 버렸다. 12지신가 전체가 나서게 되 면 그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진행하기도 어렵
다.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다른 가문 이 개입할 여지를 주게 된다. 이누가와 협상을 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골치 아 픈 상황이었다.
“시간을 길게 끌어 봐야 서로에게 좋 을 게 없으니, 결행 날짜를 정하지.”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