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65화 (465/500)

제 4장

공약이행 (3)

“호오, 근성은 있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연에 대한 철수의 일편단심은 무너 지지 않았다. 패배를 곱씹으며 방학 기 간에 폐관수련을 했다. 황룡문의 지옥 십관(地獄十關)을 가문 역사상 가장 빠 른 시간에 통과한 것이다. 그 결과 공력 이 이전과는 배 이상 상승했으며, 정령 합신의 단계로 올라섰다.

휘익!

정우가 손짓하자 공간에 결계가 완성 되었다.

철수의 안면에 긴장이 새겨졌다. 뉴스 를 통해 선배의 마법이 절대레벨에 도 달해 있음을 파악했다. 저 나이에 한국 의 마법사 중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입 신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일전의 패 배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 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경이로울 만 큼 무지막지했다. 과연 인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속성개방, 정령합신!

-황룡신화기, 종극신화(終極神化)!

정령의 극의에 도달해 새로운 영역을 개방했다. 조금 더 정진한다면 정령왕 의 소환도 멀지 않았다.

“와라.”

“가겠습니다.”

촌음.

빛이 번쩍이고 난 후.

허공으로 치고 올라가 버린 신형, 횐

자위만 남아 버린 철수의 육신이 제멋 대로 팔랑거리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아아앙

떨어져 내린 철수는 의식을 잃었다.

“많이 발전했네.”

철수의 성장은 분명 빨랐다. 운이 나 브게도 정우의 성장이 더 발랐을 분이 다. 이미 경지를 개척하여 초월 영역에 도달한 정우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 아가고 있으니, 철수와의 간격은 좁혀 지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

남아일언중천금을 신뢰하진 않지만,

내 동생의 장래가 걸려 있다면 다를 수 밖에. 내로남불이라고 욕한다 해도, 오 빠로서 동생의 의지를 관철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 막중한 오빠의 책임을 무겁 게 느낀다.

스륵!

결계를 해체하자, 수연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오빠는 약속을 칼 처럼 지키는 분이시다.”

하아!

수연의 한숨은 더욱더 짙어졌다.

누굴 원망하랴.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꼴이다. 일수에 겨울 낙엽처럼 떨어져 내린 철수가 안쓰러웠다. 보기에도 실 력은 늘었다. 방학 내내 얼마나 혹독한 수련을 했는지가 훤하다. 자괴감에 흔 들린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서기 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자신을 속 박하고 있던 틀을 깨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노력은 인정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 괴물 같은 오빠는 철수의 모진 훈련을 일수로 박살 내 버렸다. 다 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먼저 가는 선배로서의 아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베풀지 않았다.

“밥 먹으러 가자, 오빠가쏜다.”

밥이 넘어가냐!

이 화상아!

9급 케이브의 등장에 이목이 집중되 는 시기, 대통령이 제시한 법률이 상정 되어 통과되었다. 사법부의 반발이 있 었으나, 국회에서 통과된 이상 시행해 야했다.

-난 억울해, 고작 3천만 원 가지고 8 년은 너무하잖아!

-그 여자가 먼저 꼬리쳤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그 남자가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고 요, 시선강간 맞잖아!

-우리 애는 고작 열다섯 살이라고! 18 년이 말이 되냐고!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지, 그걸 법 으로 강제해도 되는 거야!

사기, 폭력, 추행, 무고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면서 적용받은 범죄자들이 앓는 소리를 했다.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았다는.

정신 병력이 있어서 왜 그랬는지 모

른다는.

나이가 어려서 판별력이 부족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음주에 의한 사건사고는 오히려 가중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가 만히 있었으면 3년은 줄었을 텐데, 더 받는 경우가 발생했다. 또한 나이가 어 리다고 하여 교육과 훈계로 끝나지 않 았다. 죄질이 나브면, 형량을 과감히 때 렸다.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도 되 는거야!

-민주경찰이 아니라, 폭력경찰이잖아!

-왜 살려 낸 거야, 어딜 만져! 고소할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너희들 다 뒈졌 어

군사 쿠데타 시절 공권력이 강해 시 민이 억압을 받고, 폭압에 숨을 죽여야 했다. 시대가 변해 문민정부가 들어서 고 인권이 강화되면서 공권력이 약화되 어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에 대한 항의가 있어 봐야 경찰, 구급 대원, 의로운 시민이 되레 곤란한 지경 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법치가 확실하게 적용되지 못하 기에 발생한 문제다. 법적 강화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을 해야 하나, 이를 악용하는 사례로 몸살을 앓 았다.

기준을 확실하게 세워 무고한 시민을 지키고, 공권력에 저항하는 몰상식을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전까지 통 용되던 막무가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 다.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었던 무법 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야, 씨발, X나 시원하다, 그런 새끼 들 다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니까!

-동네 양아치들 설치고 다니지 않아 서 깨끗하고 좋네!

-살려 달라고 했으면서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건 심하잖아!

-난 이번 법안 찬성이야, 병신 같은 놈들 때문에 피해 볼 순 없다고!

-범인들 얼굴 드러내서 딱 좋다. 인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큰 폭력, 작은 폭력을 나누지 않았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고 전과가 쌓인 범죄자는 가중처벌 기준을 강화했다. 또한 피해자의 신분보장과 보복폭행에 관해서는 엄중히 단속했다. 그간 피해 자의 신분이 손쉽게 노출되는 바람에 보복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졌었 다. 이를 보완하고, 강력 범죄자는 얼굴 노출을 강제했다. 얼굴이 알려져 범죄 자의 가족들이 고통받을 수 있다고 하 지만,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이라고 못 을 박았다.

-난 못 내, 병역비를 우리가 왜 내!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무료봉사를

하라는 거잖아.

?군가산점 폐지되고, 좋은 거 아닌가?

-맞아, 군대부심 부리는 사내들한테 우리도 할 말이 생긴 거지.

-준비도 안 하고, 갑자기 시행하는 건 잘못됐다고 봐.

■준비한다잖아. 출산 후 육아휴직과 경력단절도 보장해 주고.

-이번엔 국방부에서도 허락한다던데.

군대는 여전히 민감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자를 군대에 보내지 못해서 안달이냐고, 반발했다. 폭력과 죽음의 피해자 대다수가 여자인 걸 감 안하면, 남자가 군대 가는 게 당연하다 고 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기간을 잠 시 유예했지만, 3개월 이내에 통과하기 로 결정이 났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인정해 주마.”

정우는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고 있었 다. 군대에 대한 문제는 남녀만이 아닌 종교도 골칫거리를 제공했다.

“4년으로 늘리고, 총이 아닌 삽을 주 면 끝날 일이지.”

군번 대신 삽번올 도입해 본연의 임 무에만 충실하도록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편도 있었다. 그마저도 싫다면 군대 가기 싫어서 개수작 부리는 것으로 비 칠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선택조차도 할 수 없 는 걸 모르나.”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 상이 위험할 순 있으나, 모순되진 않았 다. 난민의 신세가 되어 봐야 국가가 소 중한 줄 안다. 우린 국가의 소중함을 자 칫 간과하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개인의 인권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렇다 해도 인권을 넘어선 방임과 무 조건적인 배척은 온당치 않았다.

“부리를 봅아야겠지.”

정우는 오전에 박찬균이 보내 준 자 료를 확인했다.

단, 과거의 자료만으론 사안을 확실하 게 처리하기 어렵다. 이제부터 적당히 양념을 쳐서 버무려 놓아야 한다.

벌써부터 연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받아는 주지.”

일정을 계산하고 내무반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차선후가 앞을 가로막았다. 망설임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비중 없 는 캐릭터라, 잠깐 밟아 주고 잊어버렸 었다. 조연이면 얼른얼른 빠져 주는 게 주연을 위한 배려였다. 다시 나타나서 전체적인 연출을 흐리면 곤란하다.

“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말 참 예브게 하네.

그 말을 돌려 말하면, 내가 못하면 남 도 못한다는 소리잖아. 본인에 대한 프 라이드가 지나치다 못해 우주를 뚫을 지경이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정우 도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받아들이는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 다.

“그거야 내가 잘났으니까, 잘난 놈은

원래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야. 그것 조차 못하면 잘난 게 아니라 잘난 척했 을뿐이라는 거지.”

들으면 들을수록 재수 없는 단어들의 퍼레이드다.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수준이 상상 초월이었다. 그럼에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토록 엄청난 일을 대수롭지 않 게 하는 재능,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 간의 재능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영역 이다.

차선후의 오만을 가볍게 짓밟아 주는 정우다. 밟고 부수는 데 특화를 이루어 전투력 못지않게 주둥이도 천하무쌍이 되었다.

“그동안 모두를 속였구나!”

“속이다니, 무엇을?”

“그동안 겸손한 척 쇼한 거잖아.”

“그럼 안 되냐?”

어떤 멍청한 놈이 자기 자신을 다 까 발리고 다녀, 죽고 싶다고 동네방네 광 고하고 다니지 그러냐.

한데 이놈은 식상한 레퍼토리에서 벗 어나지를 않는다.

“내가 밝히겠어, 네 위선을!”

“누가 믿을까?”

정우는 차선후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 다.

차선후도 그걸 느꼈다. 그것은 자신이 다른 이들을 볼 때와 다르지 않았다. 하 늘이 내려 준 압도적인 재능에 견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진정한 괴물 의 등장에 천재라는 도금은 처참히 벗 겨져 버렸다. 재능의 한계를 뼈저리게 되새겨야 했다. 동시에 아무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았다.

“날 받아줘.”

“내가 왜?”

차선후의 얼굴이 불게 물들었다.

9급 케이브가 열린 그날을 잊지 못했 었다.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격차, 다가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이 회자되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하 면 그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일생을 살아오면서 해 보지 않았던 고민의 연속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한데 자존심 상했다. 연륜이 있는 유니크도 아니고, 시기의 대상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하는 현실이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비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자신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어째서?”

“재능이 아까워서 선뜻 가르침을 내 려 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테고. 그 런 거면 너무 순진하잖아.”

“내 재능이 두려워서 가르치기 싫은 건 아니고!”

“격장지계도 사람 봐 가면서 써야지. 하수나 쓰는 개수작에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어. 하물며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더더욱 아닌 거지.”

차선후는 부탁을 하러 오기까지 심각

하게 고민을 했고, 많은 걸 내려놓았다 고 생각했다. 재능에 관해서는 누구보 다 뛰어났고, 가르치고 싶었던 유니크 가 많았다. 사제관계를 맺고 싶다며 사 정을 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눈앞의 괴물에게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너 자신이 특별하고 싶으면 압도적 인 강함을 보여 줬어야지, 알량한 재주 하나 믿고 설치는 놈을 키워 줄 거라고 보는 거야? 다 떠나서 널 가르쳐서 내 게 올 이득이 없잖아.”

정우는 작은 인연에 연연해서 선의를

베풀지 않는다. 그런 인연을 일일이 다 신경 쓰면서 살 만큼 오지랖이 넓지도 않다.

“널 주인으로 모실게, 진심이라고!”

“진심일수록 배신의 아픔이 크지.”

“난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신뢰를 강요하진 마, 너와 난 생판 모르는 남남보다 못한 사이니까.”

차선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존심 다 버리고 사정했다. 그런데도 돌아보기는커녕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정우의 표정올 보고 있자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간 함께한 시간을 감안해서 최소한 들어는 줄줄알았다.

차선후의 언성이 커졌다.

치밀어 오르는 격정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징징대지 마, 난 네 부모처럼 오냐오 냐 받아 줄 의무가 없어.”

정우는 차선후의 간절함을 안다. 그러 나 아는 것과 가르침은 별개의 사안이 었다. 이 세상에 간절하지 않은 자가 어 디 있다고. 다들 나름의 고민이 있고, 현실에 치이면서도 발버둥을 친다. 그 렇다 해서 그 사람들 전부 받아 주라는 건가,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생각이 다.

“신성을 걸게!”

“어리네.”

“뭐?”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신성을 걸어, 네 인생을 평생 속박하면 어쩌려 고?”

신성은 강력한 속성 중에 하나다. 거 의 완벽에 가깝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마법이나 무공을 동시에 펼칠 수도 있 었다. 일반 속성보다 훨씬 뛰어나며, 저 항력이 강해 어지간한 속성은 잘 통하 지도 않는다.

그러나 신성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속성으로 부여받기는 했어도, 신뢰를 부정하면 신성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네즈미가의 신녀가 신성을 배반하면, 평범한 여인이 되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하면 받아 줄 건데?”

“그거야 네가 고민해 볼 문제지.”

정우는 답을 주지 않고 자리를 벗어 났다.

그때까지도 차선후는 발에 못이 박힌 듯, 망연히 서 있었다.

씨익!

돌아선 정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 고 있었다.

‘실드의 보완책으로 딱 좋겠어.’

신성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실드의 절대방어가 완벽에 가까워졌음에도 뭔 가 하나가 빠져 있었다. 올칸과의 전투 에서 살아남은 차선후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걸 파악했다. 삶에 대한 생존본능의 발로일지 모르지만, 당시에 발했던 신성은 상당한 수준이었 다. 조금만 가다듬어 준다면 실드의 방 어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그럼 에도 애를 태운 이유는 차선후를 완전 히 복종시키기 위해서다.

‘훌륭한 방패로만들어주지.’

만들다 실패하면 차 교관에게 반품 신청도 염두에 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