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64화 (464/500)

제 4장

공약이행 (2)

“질량보존의 법칙을 완벽히 무시하는 금속이구나.”

“법칙은 원래 깨지라고 있는 거죠.”

“잠깐, 그럼 그 칼, 설마?”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죠.”

“……이 미친 녀석!”

노벨상을 받아도 될 엄청난 발견을 고작 개인병기로 쓰고 있었다. 변신이 가능해서 좋다는 말에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때 잠자코 있던 전생의 도신에 입 이 생겨났다. 도면에 입만 덩그러니 나 오니, 모양기 기괴했다.

“난 칼 따위가 아니라, 올칸이다…… 케엑!”

“반말하지 마라.”

정우는 올칸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금속이 받는 가 장 큰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심심할 때 마다 신의 불길(God-Fire)로 담금질을 했다. 두드리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 던 옛 성언의 말씀을 되새겨 현실에 반 영했더니, 올칸을 장악했다.

“이거 말도 할 수 있는 거였어?”

“이번에 나온 9급 마물입니다. 가르치 는 데 꽤 고생했습니다.”

“잠깐 그 칼 좀 다시 보자.”

“그러세요.”

전자현미경으로 전생을 확인해 본 리 차드 교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전생의 내부를 분석해 보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생(生)-금속으로 들어차 있었 다. 금속 알갱이 하나가 증식해서 기간 트를 움직일 동력을 가졌다. 이 많은 금 속이 퍼져 나간다면 상상도 못할 대혁 명이 일어날 것이다.

리차드 교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 다. 농담 따먹기나 할 발견의 범위를 넘 어섰다. 하물며 마물이란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요놈만 통제하면 나머지는 쉬워요.”

“올갱인지, 올칸인지 그게 핵인가 보 구나.”

“멍청한 게 홈이지만요.”

전생을 흡입한 올칸이 격렬히 반발해, 그 대가로 담금질을 좀 더 당했다. 신의 불길은 언제든 사용 가능한 정우 개인 용 화로다. 단, 화력이 너무 강해서 닿 기만 해도 녹아 버린다는 단점이 있어 고기 굽기에는 부적합하다.

“칼로만 쓰지 않겠는 건데, 원하는 게 뭐냐‘?”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지면 감도가 약 해져요.”

“그래서?”

“교수님이라면 수신 강도로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올칸의 금속 장악력은 놀랍다. 그러나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지배력이 약 해진다. 단순히 금속을 지배하는 걸로 만족하기에는 을칸의 능력이 아까웠다. 보다 더 지배력을 확장시키고, 다룰 수 있었으면 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미리미리 대비를 하자는 거죠, 누군 가 기간트를 훔쳐갈지도 모르고.”

“훔쳐가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길바닥에 천 원이 떨어져 있어도, 주 인을 찾아주는 게 도리죠.”

“도리 좋아하시네!”

인간의 양심을 거론하는 정우의 철면 피에 리차드 교수는 등골이 서늘했다.

기간트는 천 원에 비할 수 없는 마도 공학의 모든 기술이 집적된 최종병기다. 이를 양산할 수 있는 국가는 손에 꼽힌 다. 각국의 기술 스파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빼앗으려는 기술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인간의 양심을 거론한다고?

한반도에 목화씨를 가져온 각색된 문 익점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마도공학의 부흥을 위해서 노력해 보자고요.”

“개소리 작작 해라!”

“혹, 불가능한 일인가요? 그럼 다른 데 알아보고요.”

“너그말취소못해!”

마법사란 동물을 이해하면 다루기가 아주 쉽다.

본인의 능력에 관해서는 자부심이 유 달리 강한 종족이다. 똑똑하다는 개념 과는 또 다르다. 하물며 생-금속을 통한 새로운 연구가 가능했다. 이를 포기할 만큼 리차드 교수는 초탈하지 않았다.

연구 욕구가 불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우가 기름을 부어 주었다.

“망할 놈!”

“상부상조 좋잖아요.”

리차드 교수는 정우에게 끌려다니는 현실이 한심스러웠지만, 빠져나가지 못 했다. 이 망할 놈의 제자는 자신을 너무 나 잘 알고 있었다. 이상과 욕망의 경계 를 허물어뜨려 마법사의 호기심을 극대 화했다.

“내가 널 만날 건 인생 최악의 실수로 구나.”

“제겐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스승을 부려 먹는 못된 놈이 분명한 데, 리차드 교수는 정우를 미워하지 못 했다. 대놓고는 절대 말 못 해도, 자신 의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망할 녀석!’

하라와 2박 3일 여행을 갔다.

군인 신분이라 제주도를 택했다. 휴가 나오고 이틀 후에 연락하는 바람에 제 대로 뿔이 났었다. 휴가 나오기만을 기 대하며 고무신도 거꾸로 신지 않고 기 다렸다는 식상한 멘트를 날려 주었다.

2박 3일은 즐거웠다.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공식 커플로 소문이 파다했다. 불과 얼

마 전까지만 해도 하라의 유명세가 워 낙 심해 격이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근 래엔 달라졌다.

절대레벨의 신성 마법사에 대한 관심 이 컸다. 최상위 유니크의 존재 가치가 부각되었다. 유니크가 국가 경쟁력이 된 시대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 정경유 착의 폐단을 저질러 이미지가 실추되어 도, 외국에서 선전하면 자랑스러운 느 낌과 비슷한 이치다.

대한그룹 산하 대한호텔.

침대에서 일어난 정우는 거실로 천천 히 걸어 나왔다.

하라가 아침부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준비된 대로 되고 있진 않은 모양이다. 주방의 동선이 자주 겹치고, 오락가락 한다. 옷도 어제와 다르다. 내 셔츠를 언제 가져갔는지, 하의실종 패션을 완 성했다.

“뭐 해?”

“보면 몰라, 요리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요리를 왜 하냐고?”

“기다려 봐, 깜짝놀랄걸.”

지금이 더 놀라운데.

정우는 맛집 투어를 기본으로 시간 되면 요리를 직접 했다. 요리 실력은 수 준급에 도달해 있었다. 꾸준히 연구한 결과다. 이전에는 단일 음식에만 자신 있었지만, 이제는 가짓수도 꽤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국적조차 불분명한 요 리를 굳이 먹어야 하는지, 정우는 고민 했다.

세상엔 먹을거리도 많고, 요리 잘하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날 사랑하는 만큼 맛있을 거야.”

어째 솔직하면 꽤나 큰 타격을 입을 것같다.

정우는 가급적 人} 먹고 싶었지만, 하

라의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말리진 못했 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방의 밥상을 차 려 주고 싶다나. 요새 여자들의 마인드 와는 다르다. 조사한 바로는 아침이 가 장 귀찮다고 했었다.

‘차라리 내가하는 게 나을 텐데.’ 입맛에 안 맞으면 먹기 싫다.

정우는 하의만 입은 채로 화장실로 향했다. 일단 몸부터 씻고 난 다음에 고 민을 해 봐야 할 일이다.

팬티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육체를 뒤덮는다. 수압이 딱 좋다. 원체 완성에 가까운 육신이라 샤워를 하지 않아도 청결함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없 지만, 물로 닦아 주는 편이 찝찝하지 않 았다.

살결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튈 때마다 역동적이었다. 198의 장신임에 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균 형을 이루었다. 머리를 감으면서 움직 일 때마다 성난 등 근육이 화음을 넣고 있었다.

드륵!

문이 열렸다.

“다됐어.”

“문안 닫아.”

“볼 거 안 볼 거 다 보고서, 부끄러워 하긴.”

정우는 데자뷰를 보는 기분이다.

일전에 했던 말이다.

“그래도 예의는 갖추자.”

“됐어, 어서 나와.”

정우도 딱히 놀라거나 부끄럽진 않았 다.

다만 서로 간의 사소한 예의가 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시켜 준다고 들었다. 너무 편하게만 대하면 신비감이 사라진 다나. 하물며 하라는 국민여신으로 추 앙을 받는다. 여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조금 전과 같다면 환상이 깨질 수밖에 없다.

“방귀는 트지 말자.”

“시끄러!”

아무리 편해도.

예쁘면 뭘 해도 용서가 될 거 같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하의실 종 연출은 제법이었다. 본인 딴에는 메 이크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딱 봐도 풀?메이크업이다.

*1 어때?”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

시각적인 효과와 향기는 나브지 않았 다. 본인 맘대로 만든 베트남식 꽃게탕 에 숟가락을 넣었다.

입으로 가져와 삼켰다.

후륵!

입 안에 들어간 국물이 낱낱이 분해 되며 미각을 테스트한다. 기대감에 한 껏 긴장한 기색이 완연한 하라가 똘망 똘망한 동공으로 직시한다. 물기가 살 짝 묻어 있는 헤어가 인상적이다.

“밋없어?”

“딱히 맛이 없는 편은 아닌데, 잘했다

고 하기에는 부족해. 돈을 내라고 한다 면 난 안 사 먹을 거야.”

맛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사랑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음식에 대 한 객관적인 철두철미함이 남아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한 점을 샅샅이 까발린다.

“성의가 가상하잖아, 맛있다고 해 주 면 어디가 덧나?”

“그러면 발전이 없어. 무조건 정확한 평가를 해야 네가 독을 품고 더 잘하 지.”

맛없는데 맛있다고 하다가 애정이 식

으면 가정이 박살 날 수도 있다.

“음식에 독 탄다.”

“홍, 난 독신의 경지에 올라서 어지간 해서는 죽지 않아.”

“침 뱉으면 기분은 나쁠걸.”

솔직함으로 인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으나,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곤란하 다.

정우는 하라의 요리 솜씨를 테스트하 기 위한 실험체가 아니다. 막말로 남자 친구에게 요리를 해 주고 싶었다면 완 벽한 검증을 끝낸 후에 했어야 했다. 본 인 딴에는 노력했다고, 인정을 받고 싶 어 하는 어수룩함은 통하지 않는다. 반 드시 고유의 맛을 살린, 프로페셔널을 보여야 했다.

“다신 해 주나 봐라!”

“요리야 내가 하면 되지.”

정우는 딱히 남녀를 가르지 않았다.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해야 한다 는 가부장적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다. 둘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하는 게 효율 적이었다.

“밥도 먹었겠다, 힘 좀 써 볼까.”

“짐승!”

화들짝 놀라 일어선 하라가 교태를

부리며 도망친다-어디로?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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