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63화 (463/500)

제 4장

공약이행 ⑴

등급 게이지를 넘어선 케이브의 오픈 은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세계 각국은 예상을 훨씬 초월한 막 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상향된 마물 의 전투력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규격 을 가뿐히 넘어섰다.

8급 이상의 유니크가 10명 이상은 있 어야 상대가 되었다. 유니크를 체계적 으로 갖추지 못한 국가일수록 피해가 더 컸다. 세계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국가는 OECD에 소속된 상위 20개국에 불과했다.

-위 병사는 투철한 군인정신을 발휘 하여 마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워 이 표창장을 수여 합니다.

-대통령 이호극.

정우는 청와대 초청으로 대통령 표창 장을 수여받았다.

처음에는 상을 줘도 되나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세계 각국의 피해가 확인되 자 여론이 달라졌다. 만약 신속히 나서 지 않았다면 인적, 물적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살린 공로를 인정해 주어야 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구 나.’

‘군인으로 맡은바 소임을 다했을 분이 거든요.’

정우는 이호극과 전음으로 수군거렸 다.

상을 받는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 었다. 불만사항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깔린 쇼였다. 무엇보다 상을 받을 만한 공적을 쌓았다.

이호극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겁니다.’ 한 차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케이 브를 통해 나오는 생명체는 마물이라 단정해선 안 되었다. 그보다는 고차원 적인 생명체로 해석해야 이치에 합당했 다. 차후에 나올 마물은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번에 국제정상회담 열리 는 거 알지?’

‘각국의 상급 유니크를 모아 대응하자 는 안건이 나올 겁니다.’

‘앉아서 세계를 보는구나.’

‘뻔한 거 아닌가요.’

9급 케이브의 등장으로 세계는 몸살 을 앓았다. 최상급 유니크를 다수 보유 한 국가는 그나마 대응이 신속해서 피 해가 크지 않았지만, 부족한 국가로서 는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지금도 피해 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협의를 하자 고 미국이 제안을 했다.

‘대의적인 선택이라고 포장하지만, 9 급 케이브에 대한 욕심이 크게 작용했 을 겁니다.’

‘하긴 이번에 나온 에너지 스톤을 비 롯한 광물이 기존에 비해 등급이 훨씬 높았다지.’

케이브 등급이 상향될수록 얻는 부수 적인 수입이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다.

상급 케이브의 경제적 가치를 포기할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대 국이라고 해도 제국주의 시절이 아닌 이상, 강제력을 대놓고 행사하진 못한 다. 협약에 의한 합리적인 의견을 도출 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물론 이를 아예 무 시하는 국가도 더러 있기는 했다.

‘같이 갈 게招’

‘제가 왜요?’

‘지루한 회의잖아.’

‘알아서 하세요.’

‘나 막 풀어놓아도 되는 사람 아니다.’ 국제정상회담에서 깽판 치면 시원은 하겠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심사 가 뒤틀린다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후 폭풍은 알아서 해결해야 할 거다.

정우는 입대 전 김 총관의 의견을 수 렴해 대통령의 행사에 최소한으로 간섭 하기로 결정했다. 대다수의 결정은 이 호극 본인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시비는 걸어도 됩니다.’

‘그러다 싸움 나면.’

‘국민적 영웅 되는 거죠.’

‘날 이용할 심산이구나, 그런 수작에 넘어갈 것 같아’

일본 총리의 아구창을 날리는 순간, 국민적 영웅은 될지 몰라도 국제적 지 탄의 대상이 되기에는 딱 좋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정상회담에서 주먹질하는 대통령을 좋게 볼 나라는 없다.

‘한데, 전역 안할게招’

‘만기전역할 겁니다.’

‘굳이 그럴 필욘 없잖아.’

‘제삼자의 입장에서 공은 공이고, 사 는 사입니다. 아마 제가 전역하는 순간 잡설이 많을 겁니다.’

충분히 전역을 해도 될 만한 큰 공을 세웠지만, 사람의 심리는 그리 간단하 지 않다. 시기와 질투는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삽시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곤 한다. 본인과 다른, 특별할수록. 정우는 전역으로 일부일지라도 잡설을 만들진 않을 계획이다. 물론 그들이 어떤 생각 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홈 집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신상 내력이 필요할 분이다.

‘네가 그런 걸 신경 쓰는 부류인 줄 처음 알았다.’

‘전 보시는 그대로 센서티브합니다, 누구와 다르게.’

‘이놈이 날 무식한 주먹쟁이로 보는 거냐!’

‘아닌가요?’

‘아니지, 난 대통령으로 조국과 민족

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 쳐 충성…… 응? 너 그거 썼냐?’

‘잘 먹히네요.’

‘망할 놈의 현천공, 나도 좀 배우자!’

‘싫습니다.’

정우는 숨 돌리지 않고 일언반구에 거절했다. 줄 게 있고, 주지 않을 게 있 었다. 남의 독문무공을 달라는 건 도둑 놈 심보다. 무엇보다 이호극이 익히고 있는 뇌력광마신공은 현천공에 비해 떨 어지는 무공체계가 아니다. 본인의 깨 달음과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현천공에 비견될 절세신공이다.

‘나도해 본소리다.’

‘그런다고 안줍니다.’

‘독한놈.’

‘안줍니다.’

이호극은 피식거렸다. 그도 남의 무공 을 탐하는 성향이 아니다. 뇌력광마신 공은 정우가 준 무공이었다. 현재도 완 성되었다고 자신하지 않았다. 후일 이 무공으로 정우를 박살 낼 것이다.

“피해가 컸다고?”

-그래요, 까닥 잘못했으면 산서성이 날아갈 뻔했어요.

‘그런 것치고는 잠잠한데.’

-당에서 정보를 차단한 데다가, 구파 일방이 직접 나섰거든요.

여운랑이 연락을 보내왔다.

그녀는 중국 내 동향과 변화를 꿰고 있었다. 오대세가와 접촉해 수면 위로 올라선 하오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규모가 커지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 인데, 빈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여운랑 의 지도력이 상당하다는 반증이다.

“구파일방도 피해가 컸나?”

-평소 하던 대로 안일하게 대처하다 피해를 키운 거죠.

“안전 불감증은 어딜 가나 비슷하구 나.”

-미리미리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죽 은 사람들만 불쌍해요.

9급 케이브:가 열리고 오대세가는 전 력을 집중시켰다. 각 세가의 남아 있는 주요전력을 합쳐 공동대응을 한 것이다. 비록 정우로 인해 전력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렸지만, 저력은 남아 있었다. 그에 반해 구파일방은 오대세가의 거점 지역을 공략하려다가 전력분산이 되는 바람에 피해를 양산했다.

구파일방은 부랴부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는 했지만, 대외적인 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미국 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했다. 피해가 미 미한 미국과 간접적으로 비교가 되었 다.

“안됐군.”

-제가 보기엔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요?

“그럴 리가.”

-간악한 흉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데요. 같은 편인데, 좀 알려 주세요. 제 가녀린 심장이 버티질 못하겠어요.

“그런 거 없다니까.”

영상통화는 이쯤에서 끝을 냈다.

정우는 기분이 한껏 달아올랐다. 예상 하지 못한 수확이다. 구파일방이 타격 을 입었다고 하니, 슬슬 기회를 엿보는 불순분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물 론 당장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타격을 입은 만큼 구파일방도 마음이 조급해졌 을 테니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널 때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의 차이 다.

정우는 휴가를 나왔다.

휴가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라는 공식루트를 따르지는 않았다.

리차드 교수의 마도공학실로 향했다.

마도공학실은 하이 퍼 팩토리의 지하에 있지만, 관계자 외에는 출입문조차 찾 기 힘들다. 그만큼 보안에 심혈을 기울 였다.

리차드 교수와 의논해서 최고의 결계 와 기관을 설치했다. 멋모르고 들어왔 다가는 살아서 나가지 못하는 수가 있 었다. 차후 만약을 대비한 대피소로 사 용할 계획이었다.

“화려하게 놀았더구나.”

“놀다니요,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 행했을뿐인데요.”

“어쨌든 대처를 잘해서 다행이다.”

“공치사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그런 녀석이 공이란 공은 다 받아 처 먹고 다녀!”

“그러면 전역했겠죠.”

“네 흉계를 모를 것 같으냐.”

리차드 교수도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절대 레벨에 오른 천재 마법사라고는 하나, 능력을 과신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 다는. 마물 퇴치에 열을 올리며 능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리차드 교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우는 이득이 되지 않는 비효 율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더욱이 전력을 드러내기는커녕 일부에 불과했 다.

“마법이 무슨 엿가락도 아니고, 볼 때 마다 늘어!”

“좀 하죠.”

“좀이라고, 겸손을 미덕으로 한다는 동양의 사상이 심히 의심스럽구나!”

“다들 이 정도는 하잖아요.”

“다들 접시물에 코 박고 죽으라는 소 리로들리는구나.”

리차드 교수는 일전에 봤을 때와 또 달라진 정우의 진면목에 마른침을 삼켜 야 했다. 뒤늦게 마법을 시작해서 자신 을 넘어서더니, 끝도 없이 강해지고 있 었다. 마법에 관해서는 가르치기보다 배워야 할 수준에 올라섰다.

“교수님도 많이 늘었으면서 왜 그래 요.”

“자괴감 느끼게 하지 마라.”

한눈에 보이는 정우와 달리 리차드 교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고수 와 하수의 차이를 극명히 드러낸다. 그 게 바로 너와 나의 눈높이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전달력은 상당했다.

정우는 리차드 교수의 의기소침을 치 유해 주었다.

“마도공학은 교수님이 최고니까, 안심 하세요.”

“내 밑천을 탈탈 털려는 수작이구나!”

안 되는 마법으로 승부하지 말고, 잘 하는 마도공학이나 더 발전시키라는 뜻 으로 들렸다. 다른 놈이 그랬다면 말 같 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다그쳤겠 지만, 정우를 대입하니 납득이 되었다.

사제지간의 오붓함을 뒤로하고, 리차 드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냥 왔을 린 없고, 어쩐 일이냐?”

“보여 줄 게 있어서요.”

“이번 케이브에서 널 움직일 만한 소 득이 있었나 보구나.”

“역시 대화가잘통하네요.”

“그거 불법이야.”

“맞습니다. 신고하세요;

유니크 연합 소속인 상태에서 케이브 에서 얻은 모든 부산물은 국가로 귀속 되었다. 다만 규정을 일일이 지키는 유 니크는 많지 않았다. 수익이 적은 연합 소속의 요원들이기에 암묵적으로 일정 부분 용인했다.

단, 가치가 큰 부산물은 예외 대상이 다.

적당히 생활자금으로 쓰는 정도라면 국가 소속 유니크로서 희생에 대한 대 가로 보겠지만, 콩고물이 지나치게 크 면 반감이 생긴다.

“신고는 나중 문제고, 어디 한번 보기 나 하자꾸나.”

“공학자의 호기심은 죽기 전엔 사라 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공간에서 전생을 소환했다.

흑색을 띠는 무광의 칼, 전생의 날카 로운 예기가 리차드 교수의 심혼을 흔 들었다. 전생이 지니고 있는 힘이 느껴 졌다. S륜의 마법에 도달했음에도 모골 이 송연해질 만큼 섬뜩했다. 대체 얼마 나 썰어 댔기에 칼에 이런 무지막지한 예기가 생기는지, 심히 궁금할 지경이 다.

“스승한테 칼 자랑하려고 온 게냐?”

“전생이 훌륭한 칼이긴 해도, 굳이 찾 아올 이유는 아니죠.”

군인에게 있어 휴가는 목숨보다 소중 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는 않을 것이다. 휴가기간에 가장 먼저 찾아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했다.

스윽!

칼을 들어 연구실 한쪽 벽면에 세워 놓은 연구 중인 기간트를 가리켰다. 그 러자 시동도 걸지 않은 기간트의 두 눈 에서 불이 들어오더니 움직였다. 인공 지능과는 거리가 멀다. 탑승용 기간트 였다.

헛!

리차드 교수는 깜짝 놀랐다. 정우라면 기간트를 의지만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 할 것이다. 권능의 영역이면 받아들이 겠는데, 지금은 좀 달랐다. 마치 기간트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사실 추상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마도 공학자로서의 감각이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혹시 권능?”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움직여 보라고 명령했을 분입니다.”

“명령을 한다고 기계가 예, 하고 움직 인다더냐.”

“갑자기 말이 빨라지시네요.”

“사람 조급하게 만들어서 숨넘어가게 할 셈이야!”

평소의 리차드 교수는 점잖고 신사적 이라 말도 또박또박 강약을 잘 조절했 다. 하지만 새로운 걸 봤을 때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다. 경험이 많은 노회한 마법사라기보다는, 이제 막 꽃을 피운 청년처럼 열의가 가득하다.

“전자현미경이 필요할 거예요.”

“알았다.”

리차드 교수는 최신형 전자현미경을 가져왔다. 원소보다 작은 미립자를 꿰 뚫어 보며, 마법 처리를 해서 속성 연구 도 가능했다.

“가만, 이 형태는, 금속이잖아.”

“그렇죠.”

“■한데, 살아 있어?”

리차드 교수는 생전 처음 보는 금속

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미립자 의 금속이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킨 다. 그것도 정우가 명령을 할 때마다 수 시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주인을 따르 는 애완동물과 비슷했다.

“여기에 금속을 넣으면.”

금속의 종류는 상관없었다.

헐!

리차드 교수는 살아 있는 금속이 보 여 준 기괴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 다. 삽시간에 광물을 통제하여 변신을 한다. 놀랍게도 광물의 성질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통제력만 가지고 왔다. 금 속에 대한 동화, 통제, 증식까지 했다. 정우의 명을 듣는 걸로 봐서 일정 부분 지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금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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