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등급보류의 신(新)마물 (2)
한가로이 지부 내 카페에서 딸기 스 무디에 고독을 즐기고 있던 정우는 아 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 나다.
“교관님이 웬일이세요?”
차우진 교관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다시 만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기 에 전화번호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 게 알고 전화를 했으려나.
놀랍진 않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짐 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냐?
“의외로 밑도 끝도 없으신 분이시네 요.”
-시치미 떼지 마라.
“아드님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잘 지낸다면서 내 아들 얼굴이 반쪽
이 되냐!
“요즘은 얼굴이 작아야 인기가 많아 요.”
전화기상으로 차 교관의 언성이 높아 졌다.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잘난 아 들이 휴가를 나온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막상 얼굴을 봤을 때 수 심이 가득하고,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 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아들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어도 처음 에는 답하지 않았었다. 집요하게 파고 들어 겨우 원인제공자를 찾아냈다.
-그간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오해세요.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 니다.”
축 처진 아들을 생각하면 강력하게 따지고 싶었지만, 차 교관의 불만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막상 따지려고 하 니, 아들의 못난 점만 부각되었다. 실력 에서 밀린 패배자가 구차한 변명을 구 구절절 늘어놓은 격이다.
차 교관은 심호홉을 했다.
-사회 경험 좀 시켜 달라고 했지, 기 를 죽기라고 한 거 아니잖아!
“그거야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다 른 거죠. 제가 그런 사소한 감정까지 일 일이 신경 쓸 이유는 없지 않나요.”
내 아들 아니니, 상관없다는 무신경한 태도에 차 교관은 머리뚜껑이 열릴 뻔 했다. 오랜 세월 사람을 가르친 차 교관 은 말투만 들어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이 어떤 심정인지? 정말로 관심 없 었다.
-너 그렇게 살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거다!
“아드님도 사교성이 뛰어나진 않던데
요.”
-내 아들이 어디가 어때서!
“알려 드릴까요? 영상도 있는데.”
차 교관은 괜한 부탁을 했다는 후회 가 밀려왔다. 아들의 자만심을 고쳐 보 려고 부탁했는데, 상대가 잘못되었다. 정우는 아들보다 훨씬 오만한데다가 압 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최 초의 대마법사가 탄생할 거라는 주변의 기대를 받았다.
이미 천재라기보다는 괴물이라는 수 식어가 어울렸다. 그러니 주변의 관심 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아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경 쟁상대라도 되면 받。}들이기 수월할 텐 데, 아들은 정우의 안중에도 없다. 내 자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인정할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선후, 잘못되면 네 책임이다!
“아니죠, 교관님 책임입니다.”
보통은 어른이 말하면 받아들이는 시 늉이라도 할 텐데, 정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책임전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물며 맞는 말이다. 자식교육 이 어렵다고는 해도, 책임의 상당 부분 은 부모의 몫이다. 훌륭한 교육과 환경 이 주어져도 엇나가는 병신 같은 놈들 도 있지만, 대다수는 가정교육이 잘못 되어 벌어진다.
-선후는 어려. 받아들일 연륜이 안 된 다고!
“저도 어립니다.”
나도 어리니, 받。]■들이지 않는다.
차 교관은 대화 도중 뒷목을 잡아야 했다.
하는 말마다 틀린 말이 없지만,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들이 정우에게 얼마 나 시달림을 당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였다. 자존심이 강해 말을 하지 않았을 분,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아들을 폐인으로 만들어 놓은 정우가 얄밉지만, 반박하지 못하겠다. 해 봤자 못난 부모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격이다.
알면 알수록 정우의 가정교육이 의심 스러운 차 교관이다. 대체 어떤 교육을 해야 저런 녀석이 나올까? 연구 대상이 었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비온 뒤 에 땅이 굳는다고, 시련을 극복하면 홀 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안 되면?
“어쩌겠습니까, 그게 아드님의 한계겠
지요.”
-네 아들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 말거 라.
근래엔 자식을 하나씩만 낳는 편이라 내 자식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할망정, 훈계를 하면 무조건 열부터 내는 부모가 많아졌다. 식당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잘못임에도, 애들이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받아넘긴 다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는 크게 될 수 없습니 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아드님을 현장 전투요원으로 배치시 켜 달라고 했습니다.”
-뭐?
“좋지요?”
-인마, 전생에 나하고 원수라도 졌느 냐! 어서 취소해!
“전 아드님의 부탁을 들어줬을 분입 니다. 본인이 결정했다면 시련을 극복 할 준비는 됐다고 보는데, 정말로 취소 하길 바라는 겁니까?”
온실 속의 화초로 살다가 사회 적응 못하고 패배자가 되든지, 아니면 시련 을 이겨 내고 날개를 활짝 피든지 선택 은 자유라고 했다.
차 교관은 말문이 막혔다.
선택은커녕 강요였다. 아들의 미래를 망치고 싶은 아비가 어디 있겠는가. 하 지만 현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사소한 실수에도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선후를 지켜 줄 거지?
“그럴 리가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싫다면 빼겠습니다.”
-……됐다! 징그러운 자식,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 봐야 알 거다.
“전 유니크합니다.”
차 교관은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아들의 오만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 앞에서 아들 자랑을 했으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하물며 선택의 기회를 줄 뿐, 그 기회를 잡는 건 본인의 몫이 라고 칼같이 잘라 냈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부탁할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아들은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 할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에 아들의 미 래의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내 자식도 아니고.’
정우는 비효율적인 일에 시간을 낭비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다만 교관의 부탁을 받아 차선후의 선택을 인정해 주었다. 선택을 통해 성장을 할지, 나락 으로 떨어질지는 본인의 노력에 달려 있었다.
‘신성이 방어에는 효과적이니, 죽지는 않겠지.’
재수가 없어서 죽게 되면 부조(扶助) 는 해줄 셈이다.
차선후에 대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 녀석이 어떤 삶을 살든, 남의 일이
다. 연관된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 지만, 실제로는 선별해야 한다. 끝까지 함께하려면 다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스스로 빛날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세 간의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위이이이이잉!
귀에 박히는 사이렌의 투박한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유니크 연합, 인천지부의 관할 지구에 서 랜덤 케이브가’ 열렸다.
전투조에 배속된 정우가 전투복을 착 용하고 요원들과 서둘러 현장으로 움직 였다. 바쁜 와중에도 현장 전투요원에 게 지급된 병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오 랫동안 사용한 흔적은 둘째 치고, 수리 가 완벽히 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잘도 빼먹는군.’
전투슈트와 병기의 모양3] 제각각이 라는 점을 감안하면, 답은 뻔했다.
주안역 앞 번화가, 케이브가 열렸다.
현장을 돌던 대원들이 주변을 통제하 고 결계를 친다. 곧장 케이브 등급을 확 인해 지부에 연락을 넣었다. 필요하다 면 금강문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일정 등급 이상의 케이브는 유니크 연합에서 처리하기에는 골치 아팠다. 자칫 인명 피해라도 발생하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 다. 그래서 돈을 주더라도 무문에 의뢰 했다.
현장엔 30명의 요원이 배치되어 있으 며, 10명의 결계사가 신속히 입구에 결 계를 쳤다.
4급의 하급 결계사이기는 하나 10명 이 속성을 융합하면 6급의 마물을 일정 시간 동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시간을 버는 일, 굳이 무리하게 진압하진 않았다.
현장 지휘자는 5급 유니크 강호성 상
사다.
그는 현장 경험이 많았다. 정해진 매 뉴얼대로 현장을 신속 정확하게 지휘했 다. 빠르게 일대를 차단해서 사람이 몰 리는 걸 최대한 막아섰다.
‘응?’
막 입구에 결계를 완성했을 때.
스륵!
언제였을까?
결계의 맞은편, 회백색 인간형의 마물 이 서 있었다. 특이한 느낌이다. 시선은 알지 못한다. 얼굴의 형상이 없었다. 하 지만 인간을 보자, 형태가 생겨난다. 흡 사 인간의 얼굴을 거울삼아 완성되어 가는 금속처럼.
“뭐지?”
강호성은 연합 데이터베이스에 접촉 해 영상을 보냈다. 마물의 종류와 등급 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케 이브와 마물의 형태만으로도 종류를 파 악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등급이 매 겨지지 않은데다가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는 부류다.
“새로운 마물이군.”
강호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신(新)-마물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
고 있었다. 나타날 때마다 놀랄 필요는 없다. 매뉴얼대로 준비하고, 현장 전투 요원이 도착한 이후 물러서면 된다.
휘익!
마물이 팔을 휘둘렀다.
스왁!
베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 아니다.
결계가무참히 갈렸다.
부릅!
강호성의 두 눈에 경악이 담겼다. 하 급의 결계사가 펼친 결계이긴 해도, 10 명이 속성을 융합했다. 저토록 간단히 잘려 나갈 만큼 약하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 화선지로 발라 놓은 줄 착각할 지경이다.
부르르!
결계가 소멸하자, 충격을 받은 결계사 가 비틀거렸다.
한데 비틀거림도 오래가지 않았다. 마 물의 손가락에서 벋어 나간 회백색의 촉수가 결계사의 이마에 구멍을 냈다.
푸웅, 푸웅!
이마가 뚫린 결계사는 맥없이 쓰러졌 다.
스윽!
마물은 죽어 버린 인간을 잠시 감상 하더니,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해 돌아섰 다.
새로운 목표를 찾는 사냥꾼처럼.
속성 개방.
-생명력 증폭, 맹폭속사(猛爆速射).
강호성의 속성은 생기발출(生氣發出) 로 생체에너지를 극대화한다. 위력에 있어서는 내공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 지만 생명력을 소모하는 기술인 만큼, 등급의 한계치를 넘어서면 위험을 초래 한다.
꽈아아앙; 퍼어어엉!
폭발과 함께 먼지구름이 피어오른다.
-금제, 속박!
-방어력 약화!
-피해량 증폭!
-회복력 증가!
강호성이 공격을 하는 동안 요원들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전투의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어도, 경험이 없진 않았 다. 더욱이 요원의 배치는 속성 능력에 따른 서로의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조합이었다.
생명력을 담보하는 강호성을 보조하 기 위한 속성의 결합은 완벽했다.
후아아앙
5층 건물을 부숴 낼 파괴력이다.
강호성은 멈추지 않고 전력을 쏟아 낸 후에야 심호흡을 했다. 찰나에 상당 한 에너지를 소모하자 육체가 받는 타 격이 컸다.
“끝났나?”
하지 말아야 할 금기어다.
끝났으면 그런 의문조차 생기지 않는 다. 끝나지 않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런 의문이 생겼으면 곧 바로 움직여야 했었다.
스왕!
공기를 갈라내는 미세한 파공성이 들 린다.
늦었다.
소리가 들렸을 땐.
정면에 배치된 10명의 요원들의 육신 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먼지구름을 뚫 어낸 채찍처럼 날카로운 곡선이 훑고 지나간 이후였다.
스르르륵!
붉은 선이 점점 벌어지더니 인간의 육체가 깍두기처럼 썰려 나갔다. 바닥 을 나뒹구는 육편의 조각조각에서 선혈 이 쏟아져 나와 대지를 적신다.
동료의 죽음에 요원들은 공포에 젖어 갔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마물은 꿈쩍 도 하지 않았다. 원래의 모습 그대로 무 심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급판정 불가의 마물.
위험했다.
“……도망쳐!”
강호성이 요원들에게 후퇴를 명하지 만, 그보다 마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헉!
30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어 지 척에 자리했다. 마물의 두 눈은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아, 공포를 확산시킨다.
요원들의 몸이 굳었다.
마치 공간이 통제된 둣, 아무것도 할 수없었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