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진정한 강자는 개미의 도발
에도 방심하지 않는다 (5)
이후로도 정우는 차원이 다른 활약상 을 펼쳤다.
7급 마물 동인(凍사을 불로 지져서 녹여 버렸을 때가 압권이었다.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격차를 보이며, 차선후를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신성은 부상 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 목적에 충실할 분이었다. 결계를 치기도 전에 정우가 나서서 불벼락을 선사하면 마물은 잿더 미가 되어 있었다.
?6급 소닉 플라이 제거, 에너지 스톤 다량 획득.
-6급 아이스맨 제거, 청정 아이스 스 톤 다량 획득.
-7급 불 호랑이 제거, 희귀 뼈와 광물 획득.
-7급 액체인간 제거, 무한형태변환금 속 획득.
현 인천지부의 랜덤 케이브 정리 현 황보고서.
현장에 전투요원이 출동했음에도 질 질 끌었던 케이브 오픈이 간단히 해결 되었다. 지부 내 성과와 평가가 수직상 승했다. 세간의 평판도 좋아졌다. 금강 문의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지부의 역할 이 축소되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위상이 었다.
-와, 8륜의 마법사였어?
-쩐다, 우리나라 최고의 마법사잖아. -난 45세 모태솔로, 그냥 마법산데.
-저 나이에 8륜이면, 절대마법사는 따 논 당상이겠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다!
유니크 연합 인천지부의 중심엔 항상 정우가 있었다.
기적에 가까운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해내자 마법사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다른 속성에 비해 저평가를 받 았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 를 받았다.
그간 유니크에 대한 불신과 지탄이 연일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와중, 활 약을 보임으로써 덩달아 유니크 연합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있었다.
그분인가?
한국인으로서 8륜의 마법사는 처음이 었다. 유니크이면서 유니크하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국력의 상징이 유니크 가 되어 버린 세상, 잘 키운 유니크가 국가의 인지도를 상승시켰다.
“괜찮습니다.”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얘들아,
뭐하냐!”
정우의 위치가 공고해지고 있었다.
내무반의 대원들은 목숨을 몇 번이나 구원받았다. 그때마다 정우가 없었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한 참화를 겪었을 것이 다.
“이러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네가 이런 하찮은 일을 하면 우리가 더 부담스럽다.”
상부에서도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 최 초의 대마법사가 될 인재에게 내무반 청소를 시키기도 부담스럽다.
“편하게 쉬어, 넌 장차 위대한 마법사
가 될 거잖아. 그때 나 잊으면 안 된다.”
“당연한 소리 하지 마세요, 임 병장 님.”
정우는 딱히 할 생각도 없었지만, 말 로만 해 주었다. 그것만으루-두 충분히 내무반의 우상으로 고착화되었다. 속된 말로 정우한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는 걸 모두는 인식했다. 자칫 조금이라 도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간, 마물의 밥 이 될수 있었다.
내무반에서 할 게 없으니, 시간은 많 았다.
케이브가 열리지 않는 이상, 대원들도
개인훈련과 정비에 시간을 투자한다. 한가로운 나날이 3일간 지속되자, 임 병장이 나섰다.
“탁구 어떠냐? 진 사람이 음료수 내긴 데.”
“승부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임 병 장도 승부욕이 강했다. 일부러 져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승부에는 항상 최 선을 다한다. 그것이 스포츠의 미학이 라는 개똥 같은 철학을 지녔다. 사회에 나가서 당연히 해야 할, 아미 (Army) 스 토리의 일환이었다. 군대와 스포츠, 사 내들 사이에서 빼놓지 않는 불멸의 소 재다.
“그렇게 나와야지.”
“후회하실 텐데요.
“괜찮아, 단속성 쓰면 안된다.”
승부의 세계에서 속성은 반칙으로 규 정한다. 육체능력으로 한정했다.
당연히 특수속성능력자에겐 굉장히 불리하다. 육체와 관련된 속성능력자가 아무래도, 다른 속성 유니크보다 우위 에 있었다. 근래에 들어 개인기록 스포 츠가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잠자코 돌아가는 사태를 지켜본 차선 후가 불쑥 나섰다. 정우가 대활약을 펼 치는 동안 현장에서 뒷방 쭈구리가 되 어야 했다.
“저도하겠습니다.”
“좀 하냐‘?”
“저도 탁구 좋아합니다.”
“그래, 알았다.”
임 병장은 쾌재를 불렀다. 그는 탁구 에 관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속 성도 육체강화다. 마력이나 신성을 쓰 지 않으면 얼마든지 정우와 선후를 상 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탁구는 지지 않겠어!’
선후는 그간의 울분을 탁구로라도 풀 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 지만, 신성은 육체강화도 가능하다. 물 론 속성을 사용할 마음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승부의 마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정우와 임 병장의 시합이 시작되고 다들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아앙
탁구공을 쳤는데, 쇳소리가 울린다.
임 병장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공
은 벽면에 꽂혔다. 보통은 이쯤 되면 탁 구공이 깨져야 하나, 마법으로 강화해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 몇 그램 안 되는 탁구공이 총알보다 무섭다는 사실 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연이겠지.’
‘간혹, 잘 맞으면 이럴 때가……?’
파아앙
있기는 개뿔
스핀을 줘서 저공비행을 하던 탁구공 이 강력한 백-드라이브에 걸려 임 병장 의 옆을 지나가 버렸다. 그때까지도 임 병장은 병풍이 되어 마냥 넋을 놓아야 했다.
“오랜만에 쳐서 그런지, 힘이 잘 안 들어가네요.”
≪..
이게 힘 안 들어간 거면, 힘 들어가면 탁구공 맞아 사망하시겠다.
임 병장과 대원들은 탁구공이 이렇게 나 무서운 병기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 다. 사람을 노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 이지, 맞았으면 뼈가 부러지는 걸로 끝 나지 않을 것이다.
파아앙
임 병장의 탁구는 병풍으로 끝이 났
다. 라켓으로 막아설 엄두가 나지 않았 다. 11 대 0, 세트스코어 3 대 0으로 끝 이 났다. 탁구공이 지나갈 때마다 몸이 얼어붙어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다음은 없네요.”
“누가하냐.”
다음 상대가 10명 있었거늘, 대원들 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휑한 탁구 장에 정우와 임 병장만 덩그러니 남았 다.
차선후도 공을 치는 걸 보자마자 신 속히 나가 버렸다. 대결도 어느 정도 격 이 맞아야 하지, 이건 숫제 라켓을 휘두 르지도 못할 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다른 걸로 하자.”
“그러세요.”
“당구 어때?”
“안 해봤지만, 상관없습니다.”
당구는 힘이나 스피드와는 관계가 없 다. 얼마나 정교하게 치느냐가 관건이 다. 동네에서 중국집을 먹여 살리며 키 워 온 임 병장의 당구 구력은 프로급이 었다.
“당구가 힘만 가지고……?”
힘만 가지고는 분명 안 된다.
그래야 하는데.
당구도 한 번으로 열 개든, 백 개든 끝도 없이 뺐다. 각도 예리하고, 칠수록 더 화려해진다. 탁구 치는 걸 봐서 축구 나 농구도 짜인 각본이다.
다들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사가 운동까지 다 잘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럴수록 차선후의 존재감은 희미하 다 못해 먼지조차 되지 않았다. 참다못 한 차선후가 폭발할 걸 귀신같이 감지 한 정우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평소라 면 거절했겠지만,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면 본인조차도 믿어지지 않는 우매한 결정을 하게 된다.
“속성을 써도 됩니다.”
“후회하지 마!”
대결 종목은 족구.
그날 족구의 명경기가 이루어졌다. 인 간의 족구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일대일 족구의 진수가 펼쳐졌다.
파아앙!
공이 박살 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누구도 응원은커녕 환호조차 할 수 없었다. 차선후는 신성을 극대화하는 반면, 정우는 육체 능력만으로 받아치 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대결은 뻔해야 했다. 순수 육체로선 한계가 분명히 존 재하거늘, 정우는 그마저도 뛰어넘었다.
“저 공 맞으면 죽는 거 아냐!”
“눈이 다 아프네!”
“거봐, 쟨 인간이 아니라니까!”
“괴물 같은……
“같은 게 아니라, 괴물이다.”
정우의 강함이 단순히 마법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마법사의 치 명적인 단점이 사라지자, 인간으로 보 이지 않는다. 그간의 활약상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발군의 실력이란 평 가도 부족해 보였다.
족구공이 탄환처럼 양방향으로 왔다 갔다를 계속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차선후는 1점도 빼앗지 못한 채 일방적인 15 대 0의 스코어를 받고 말 았다.
‘……이게 말이 돼!’
차선후는 족구공이 지나간 흔적들을 보았다.
궤적이 단순하지 않았다. 주고받을 때 마다 코스가 어렵다. 반대쪽으로 갔다 가, 앞으로 나왔다가, 선의 끝을 교묘하 게 파고들어 시선착란까지 일으켰다. 킥력과 스피드 대결을 했었던 자신과 달리 정우는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 차 이는 전율이 일고 소름 돋게 했다. 단순 히 족구로만 보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 놓고 플레이한 것이다.
‘……무서운 놈 내 심리까지 파악하 고 있었어!’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는데다가, 속성 을 사용하라는 말에 발끈해 이성을 잃 었었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힘으로 찍 어 누르려고 했었다. 하지만 교착 상태 가 길어지면서 승부를 낼 수 없었다. 힘 이 더 강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느 끼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힘으로 상 대했다.
‘그래도 간단히 내어 주진 않겠어.’ 정우는 변화를 보인 차선후의 대응을 감지했다.
‘눈치가 빠르군.’
차 교관이 자랑을 할 만큼 뛰어난 재 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의 조언도 없 이 마음을 다스리기란 간단치가 않다. 나이가 어릴수록 빼어난 재능에 도취되 어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지 못하는 경 우가 허다하다.
‘훌륭하다.’
저만한 재능이라면 어딜 가서도 제
역할은 할 수 있다. 모처럼 좋은 재능을 봐서 기분은 나브지 않았다.
파아앙!
대결은 3 대 0으로 끝났다.
하얗게 불태운 차선후는 녹다운이 되 어 넋이 나가 버렸다. 마음을 비웠음에 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승부는 승부.
얄짤없다.
정우는 차선후의 발전가능성을 염두 에 두지 않았다.
내 것도 아니니, 자라나는 싹을 잔인 하게 짓밟아 주었다. 다시는 자라지 않 도록, 불모지가 될 수도 있음에도.
그것마저 극복한다면 좋겠지만, 당분 간은 어려울 거다.
‘새싹은 밟아 주라고 있는 거지.’
앞서가는 위대한 존재로서 따라오는 하찮은 미물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어딜 감히!
꼰대 마인드가 이때는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