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3이번 훈련병 (2)
멍!
차우진은 녹아 버린 훈련장과 정우를 번갈아 넋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다른 훈련교관이나 훈련병도 마찬가 지였다. 저 엄청난 광경을 보고 아무렇 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할 수 있었 다.
반개월 전 완성한 훈련장이 그 이전 의 낡았던 훈련장보다 낙후되었다. 훈 련장 관리에 대한 책임은 교관에게 있 었다.
차 교관의 안면이 붉으락푸르락해졌 다. 징계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 봉 삭감에 휴가일수를 제한 당하지 않 으면 다행이었다.
“너 이 자식!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 냐?”
“명령하신 대로 광역기를 썼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무리해서 전력을 사 용하면 어떡해!”
“적당히 했습니다.”
무심한 정우의 시선에 차우진은 등골 이 서늘해졌다.
움찔!
전력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피 해를 봤다. 훈련장을 재가동하려면 피 해복구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은 물론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나 따져 묻기도 애매했다. 광역기 테스트는 전력을 가 늠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디서부터 수 리를 해야 할지 답답하고, 막막하거늘.
이놈은 조절했다며 나 몰라라 하고 있 었다.
‘숨조차 차지 않아?’
속성을 무리하게 운용하면 호흡의 기 복이 보이기 마련이다.
훈련장을 초토화시킬 파괴력이면, 속 성을 무리하게 운용했어도 이상하지 않 았다. 한데 숨은커녕 호홉조차 멀쩡하 다. 조금 전에 무지막지한 마법을 펼쳤 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평온함이다.
“원하신다면 좀 더 파워를 올려 볼까 요?”
“?뭐?”
“그럼 바로.”
“……아니다! 그만!”
차우진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도 무지막지한데 전력을 사용해 봐라. 훈련장의 사분지 일이 아닌 전부 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 그 관리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저 무덤 덤한 훈련병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건대 규정대로 했다고 발뺌할 게 분명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우가 잘못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이?”
“301번 훈련병, 하정우입니다.”
“……이(개자식이)…… 내가 말을 말 아야지, 넌 무조건 열외다.”
이 무식한 놈을 테스트하기에는 훈련 장의 여건이 한순간에 열악해졌다. 속 성이 하도 다양해서 모든 훈련병을 만 족시킬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30년의 세월을 보정하면서 대다수는 홉족할 만 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 자부심이 301 번 훈련병으로 인해 송두리째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안 되지.’
열외 시 일반적인 훈련병이라면 넙죽 받아넘기겠지만, 정우는 특별했다. 사회 적 지위와 명성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있는 놈들이 군대 면제되고, 특별대우 받고, 떵떵거리며 사는 걸 원하지 않는 다. 결과의 공평은 아니더라도, 기회는 공평해야 했다.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하지 마! 열심히!”
훈련을 시작한 지 고작 하루.
정우는 열외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실 상 더 이상 테스트를 한다고 해서 달라 질 게 없었다. 훈련장에 설치된 테스트 장치들은 이제 막 유니크로서 인정받은 신출내기를 위해서지, 괴물을 테스트하 기에는 부족했다. 지금까지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정우로 인해서 등급 보정을 심각하게 고려야 봐야 할 지경 이었다.
“제기랄, 일복 터졌네!”
피해 복구에 훈련병을 동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훈련장에 설치된 장치는 하나하나 특 수 제작되었다. 고치고 싶다고 해서 아 무나 쓸 수는 없다. 유니크 연합에 건의 해서 시설관리팀을 불러야 했다.
시설관리팀의 팀장은 막노동판에서 시작해 현 위치에 올라왔다. 성격이 불 같다. 난리칠 걸 상기하면 차 교관은 벌 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제가좀 도와드릴까요?”
“열외라고 했다.”
돕긴 뭘 도와, 하는 일마다 엉망인데.
말년에 이게 뭔 고생인지.
“곤란한데요.”
“내가하지 말라는데, 왜곤란해.”
“제 아버지가 하이퍼팩토리의 오너입 니다. 알다시피 하이퍼팩토리는 사회적 책임과 배려를 기업 이념으로 하고 있 습니다. 오너가의 아들로서 모범이 되 어야 합니다. 그러니 열외는 온당치 않 습니다.”
이놈이 지금 나 열 받으라고 개소리 지껄이는 건가?
차우진은 대단한 후배의 탄생이 흡족 하기는커녕, 열불이 터졌다. 그렇다고 따져 묻을 수도 없었다. 하이퍼팩토리 는 현재 신홍 대기업으로 떠오르고 있 었다. 대한그룹은 물론 금강문과도 연 계되어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너가의 아들은 일반적인 훈련병 취 급을 하기도 힘들다. 열외를 하게 되면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될 테고, 차별하 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하아아
함부로 열외를 시키지도 못한다. 차별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마저 도 사람들은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그 렇다고 저 무지막지한 훈련병이 최선을 다하도록 방치할 순 없다. 그랬다가는 훈련소가 탈탈 털리다 못해, 새로 지어 야 할 판이다.
“맘대로 해라.”
“소화한 물품들 재활용할 건가요?”
“다 녹아 버렸는데 재활용을 어떻게 해.”
“치워 버려도 되겠군요.”
“……어쩌려고?”
“허공으로 들어 올린 다음, 녹여서 덩 어리로 만들 겁니다.”
“..2”
그게 가능한 일이0V?
그 불가능한 일을 이 괴물은 대수롭 지 않게 진행했다. 손으로 휙! 젓자 허 공으로 날아오른 폐기물이 순식간에 덩 어리가 되더니, 화염과 압력에 짓눌려 버렸다.
엄청난 부피를 자랑했던 폐기물이 10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난잡하고 더 러웠던 공간은 청소마법을 걸어 깔끔하 게 처리했다. 일상생활에서 마법의 효 용성이 무공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 었다.
“마법이 원래 이토록 만능이었던 거 냐?”
“사용자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차우진은 화낼 기운도 없고, 다리마저 풀렸다. 앞으로 정우를 어떤 식으로 대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일정 부분 실력 발휘를 해야 편하거 드,
정우는 입대 전부터 마법에 한해서는
최대한 드러낼 계획이었다. 능력을 굳 이 숨기지는 않았지만, 대외적으로 밝 히진 않았었다. 허용 범위 내 역량을 보 여 주어야 활동범위를 공개적으로 넓혀 도 반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 예로 훈련병 중에 정우를 알아보 는 이들이 꽤 많았다.
하이퍼 팩토리의 후계자라는 타이틀보 다는 국민여동생 유하라의 남자친구라 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대한그룹의 금 지옥엽 유하라의 연인이라는 사실만으 로 부러움과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 다.
‘저게 말이 되는 거야‘?’
‘대체 얼마나 강해야 이런 걸 할 수 있지?’
‘마법이 원래 이렇게나 강했었어?’
‘빌어먹을 현실이네.’
유하라의 짝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였 던 정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자신 들로서는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격차가 있었다. 단순히 부모 잘 만난 금수저가 아니라 실력도 뛰어났다.
은근슬쩍 병영에서 손을 써 보려고 했던 훈련병들은 마음을 접었다. 잘못 했다가는 조금 전 훈련장을 태워 버렸 던 불길에 주검마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 비 벼 볼 여지라도 있어야 발을 뻗지, 숫제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난 접었다.’
‘나도.’
‘가진 놈이 더하네.’
‘양보 좀 하고 살자.’
하이퍼팩토리의 오너에 유니크 최상 위 등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속성 을 가지고 있었다. 어쭙잖은 실력을 가 지고 나대 봤자, 볼썽사나운 꼴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물론 객기 충만한 놈 들이 없다는 보장은 하기 힘들다. 독기 로 무장해 만용을 부릴 수도 있는 젊은 청춘이다.
정우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다 치웠다.
치운 자리는 공허했지만, 차곡차곡 반 듯하다. 군대는 각이라고 했다. 모든 각 을 완벽히 잡아야 한다. 고철도 네모반 듯하게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어디 간다고?
군대.
-그걸 왜 지금 말해!
-간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몰랐었어.
대선 파티를 하는 중 정우의 입대 소 식은 하라와 여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지만, 정 우는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봤다.
한데 발표 직후 당장 들어갔다.
입대하는 날 하라가 찾아오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 여신을 눈으로 본 훈련 병들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마저 잊 고 말았다. 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여자 의 촉은 상당히 빨랐다.
꼬 가야 해?
-괜찮아, 원한다면 너도 보내 줄 수 있어.
하라는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주목하고 있었던 사람들마저 어안이 벙벙했다. 어떤 남 자친구가 군대 간다고 여자친구까지 같 이 끌어 온단 말인가. 다들 기가 차서 말문이 턱턱 막혔다.
-어째서?
-국민의 의무니까.
-……농담 아니구나.
-당연하지.
-다른 사람들은 농담인 줄 알잖아.
?즐거운 한때지.
물귀신작전을 쓰는 정우의 사악함에 하라는 그날 몸서리를 쳐야 했다.
정우는 국민의 의무에서 남녀를 구분 하지 않았다. 남자든 여자든 국민의 4 대 의무는 반드시 이행을 해야 한다. 간 혹 여자는 출산의 고통이 있다고 하지 만 그건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국가적 으로 출산이 중요한 일이나 강요하진 않는다. 출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옥 에 끌려간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차별은 옳지 않아.’
대체 방안으로 출산한 여인에 한해서 사회봉사나 지원금을 면제, 경력단절에 의한 취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순 있 다. 의무도 하지 않고, 권리만 바라선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지 못한다. 이 는 단순한 군부심이 아닌 국가 전체를 위한 시스템의 균형을 위해서다.
사안이 처리된다면 군대로 인한 남녀
간의 갈등 조장은 사라질 것이다. 남자 도 군대 갔다 왔다고 해서 우쭐해하지 않을 테고, 여자도 할 말이 생기고 좋은 일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에서 눈을 푸며, 이땐 이랬지 추억 으로 삼을 수도 있고.
‘일단은 법부터 강화하고.’
정우가 입대를 한 근본적인 이유다.
법이 강화되면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로 인해 주변의 감 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똥 뭍 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라지 못하도 록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정책결정자의 자질이 의심되거나 문제 가 있으면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단은 복무에 최선을 다해야겠지.’ 정우의 소속은 유니크 연합이다. 무문은 정리했고, 길드의 힘도 약화시 켜서 쭉정이만 남았으니. 우리나라에서 정우의 손이 닿지 않은 세력은 유니크 연합이 유일했다. 어떤 모습을 보여 주 느냐에 따라서 손을 댈지, 말지를 결정 하게 될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 대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다 엎어 버 릴 수도 있다.